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511
제511화. 폭탄 돌리기
카일라는 잠시 혀끝으로 입술을 축인 다음 웃어댔다. 오늘따라 클로이의 도발이 꽤 노골적이지 않나? 아무래도 심기를 건드린 무언가가 있는 것 같은데, 그걸 알아내는 게 우선이다. 상대가 자극되었다는 건, 나도 모르는 사이 가시로 그를 찔렀다는 뜻이니까. 내 손에 쥐어진 게 어떤 무기인지 인지할 필요가 있었다.
카일라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자식 된 도리로 아버지를 따라 가문에 이바지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리 칭찬할 것이 아닌데, 영애께서는 아니라 여기시나 봅니다.”
다비온 가문의 일원들은 모두 황궁 관료직에 몸담고 있었다. 온전한 제 가문의 번성을 위해 일하는 게 아니라, 황궁을 위해 몸 바치는 자들인 게다.
그러는 와중 클로이는 어떠한 입신 없이 한가로이 차나 즐기고 있었으니, 카일라는 그걸 은근히 짚은 것이었다. 아쉽게도, 클로이의 안색에는 변화가 없었지만.
“아니요. 저 또한 당연하게 생각한답니다. 하여 언젠가 다비온 가문이 해왔던 것처럼 이 한 몸, 황궁을 위해 바칠 것입니다.”
황후의 자리에서.
클로이가 뒷말을 잇지는 않았지만, 모두 숨을 헉 하고 들이쉬며 바삐 시선을 주고받았다. 오늘이 날이로구나. 카일라가 응해줄까? 영애들은 카일라의 안색을 꼼꼼히 살폈고, 이내 그녀가 웃음을 참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카일라는 살짝 오른 열감을 손바람으로 식히며 물었다.
“황궁을 위해서요.”
“예. 물론.”
주제도 모르고, 분수도 모르는 것이 자질을 벗어나도 한참 벗어났다. 카일라는 새어 나오는 웃음을 겨우겨우 억누르며 목을 가다듬었고, 클로이는 그런 카일라를 차가운 눈으로 지켜보았다.
“무엇이 그리 재미있으십니까?”
“죄송합니다. 그, 클로이 영애. 진정으로 바리엘을 위하신다면요. 황궁이 국익에 도움 되는 선택을 할 수 있게끔, 지금이라도 돕는 게 옳지 않겠습니까?”
아무런 도움 따위 되지 않는 다비온에서 황후가 나오는 것보다, 방위 사업을 꽉 쥐고 있는 홀린에서 황후가 나오는 게 여러모로 국익이지 않겠느냔 뜻이었다. 말로만 황실을 위한다고 하지, 다비온에서 황후 자리를 노리고 있다는 것 자체가 가문의 욕심인 게다.
‘결국에 너나 나나 같은 처지이건만, 어디서 감히.’
치명적인 지적이었다. 지켜보던 영애들도 이쯤에서 클로이가 꼬리를 말 것이라 생각할 만큼.
하지만 상대는 클로이 다비온. 황궁을 쥐락펴락하진 못할지언정 잔잔한 수면에 균열을 일으킬 만큼의 힘은 가진, 다비온 백작가의 영애였다.
클로이가 차분하게 반박했다.
“국익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굳건한 군신 관계만큼 가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군신 관계란 것이 그렇습니다. 그것은 장벽과 같아서, 견고하고 튼튼할수록 나라를 부강하게 하지요. 물렁물렁한 금화로는 결코 견고히 쌓을 수 없답니다.”
황궁과 다비온 가문의 오랜 결속은, 홀린에서 퍼붓는 금화 따위와 감히 견줄 수 없음을 짚은 것이다.
두 영애의 시선이 서늘하게 맞물리자, 티 파티의 주관자인 샬롯이 부채를 차악- 접었다. 고달프게 굴지 말고, 그만 발톱을 감추라는 신호였다.
“그나저나, 카일라. 마법부에 가셨다면, 소문의 그 장관을 보았습니까?”
“이안 히엘로 경이요?”
“예예. 아주 아름다운 금발과 녹안을 지니고 있다 하던데요. 기품 또한 뛰어나고요.”
“게다가 업무 능력도 탁월하여 진 전하의 애정이 아주 깊다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세월의 흐름을 거스른 자라니. 참으로 궁금합니다.”
“흐음. 뭐. 소문이 과장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만-”
카일라는 저도 모르게 말꼬리를 흐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잘생기고 유능하면 무엇하나? 홀린 가문으로서는 아주 성가신 존재인데.
클로이는 카일라의 미세한 감정 변화를 읽어냈다.
‘공작만 독대했다는 건 거짓말일 것이고, 마법부와 상당한 갈등을 겪은 게다. 홀린 가문을 저리 흔들 만한 건 아무래도 방위 사업 건밖에 없는데. 마법부에서 갑자기 그쪽으로 손을 뻗었다? 의아하네.’
다비온 가문의 면담 초청을 거절하고, 홀린 가문을 먼저 보았다는 것에 강한 불쾌감을 느끼고 있던 차였다.
그렇다고 마법부와 척질 수도 없다. 황궁과 적대적으로 돌아선다면, 제일 큰 수혜는 다비온에게로 넘어가게 된다.
‘태도를 바꿀 필요가 있겠다. 별채 건설 등을 인질로 잡을 게 아니라 최대한 우호적으로 대하여, 홀린 쪽의 입장과 반대로 가는 게 낫겠어.’
저택으로 돌아가면 마법부와 홀린 가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금방 알아낼 수 있을 터.
클로이가 말없이 차만 홀짝이자, 카일라가 그쪽을 주시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긍정적인 신호는 아닐 것이다.
‘…만약 다비온이 황궁 내 세력을 이용해 마법부를 민다면?’
홀린 가문은 강한 압박을 받을 것이다. 단순히 가문 사업에 차질이 생기는 정도가 아니었다. 이는 홀린을 제치고, 다비온이 유력한 황후 가문이 될 수 있다는 걸 의미하지 않나? 사업권을 지킴으로써 얻을 이득은 하나지만, 황후 자리엔 짐작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이득이 얽혀 있었다.
톡톡, 카일라는 부채로 턱을 두드리며 가까운 영애들에게 눈짓했다. 따로 언질 줄 것이 있으니 따로 자리를 마련하자는 신호다. 영애들은 찻잔을 내려놓고서 자연스레 주위를 둘러봤다.
“흐음. 그나저나 정원이 참 예쁩니다. 정원사 솜씨가 아주 훌륭한 것 같아요.”
“조금 걸어볼까요? 이렇게 아름다운 정원을 두고서 앉아만 있는 건 실례지요.”
“좋습니다. 안 그래도 조금 걷고 싶었어요. 디저트가 너무 맛있어서, 저도 모르게 너무 많이 먹었나 봐요.”
드르륵.
차를 다 비우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다른 영애들은 그들끼리 모종의 신호를 주고받았다는 걸 눈치챘고, 어색한 눈웃음만 흘려댔다.
자연스레, 카일라의 세력과 클로이의 세력이 나누어지는 순간이었다.
* * *
“마법부에서 무기를 생산한다고요?”
다음 날, 오전에 열리는 정기 대회의.
이안의 발언에, 몇몇 관료들이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데라족이 입궁했을 때부터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을 벌이고 있다 여기긴 했는데, 세상에. 마법부에서 무기 생산이라니?
이건 마치, 황궁 요리사들이 군인으로서 선발대에 들어서는 것과 무엇 다른가? 각자 맡은 소임이 있거늘, 어째서 마법부가 무기까지 생산한다고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무슨 말씀입니까? 지금 제가 제대로 들었습니까?”
“이안 경. 무기 제조 및 유통은 이미 민간사업을 통하여 진행 중인데, 혹 알고 계십니까?”
“예. 하지만 정확히 할 부분이 있습니다. 마법부에서 만들려는 것은 ‘일반 무기’가 아니라, 마물과 아탄족 등 인간 외 종족에게만 효과 있는 ‘특수 무기’입니다. 인간에게는 그 어떤 상처나 고통을 줄 수 없으니, 지금껏 써왔던 무기와는 분명 다른 것입니다.”
사락.
이안의 설명에 관료들이 천천히 보고서를 넘겨댔다. 모든 내용이 제대로 이해되는 건 아니었지만, 맥락 정도는 알아들었다. 특히 굵은 글씨로 적힌 내용, 아탄족인 베릭이 직접 나서서 그 효과를 입증했다는 글귀가 그들의 이해를 도왔다.
“데라족이라는 훌륭한 대장장이는 확보하였으나, 그들의 작업장을 이곳까지 옮길 수는 없습니다. 하여, 황궁 인근의 홀린 가문 영지 일부를 매입, 무기 제조 시설 및 기반을 일부 인수하여 운용할까 합니다.”
올 게 왔다는 듯, 관료들이 크게 술렁거렸다. 다비온 가문과 연이 있는 자들은 기회를, 그렇지 않은 자들은 위기를 느낀 것이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현재 바리엘의 무기 사업권은 홀린 가문이 독점하고 있습니다. 그걸 우회하기 위해서는 데라족이 만든 무기를 ‘특수 무기’로 등록할 필요가 있는데, 전체 중 과반수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홀린 가문에서 가만있겠습니까?”
“오, 가만히 안 있으면요?”
이안은 굉장히 놀랍다는 듯 되묻자, 관료가 그 뜻이 아니라며 손을 내저었다.
“홀린 가문이 담당하는 세수가 엄청납니다. 당장 내년의 황궁 재정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고, 무엇보다 이런 식으로 귀족들과 신의를 저버린다면 장기적으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습니다.”
“맞습니다. 저희끼리 정하는 것보다 홀린 가문을 불러서 대화로 풀어나감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미 대화는 했습니다. 영지 매입과 제조 시설 인수 대금을 제시했지만, 별로 반응이 좋지 않더군요. 마법부는 마법부 나름대로 대비를 하려고 합니다.”
이안이 그리 이르자, 여기저기서 긍정적인 답이 들려왔다.
“저는 찬성합니다. 특수 무기라 하지 않습니까. 마법부만이 제작할 수 있는 것이니, 그 특수성을 인정하는 게 맞습니다.”
“예, 그리고 국가의 중대한 사안을 민간 영역에서 담당하고 있는 것을 경계할 필요도 있다 여깁니다. 특히 전쟁을 앞둔 지금은 더더욱이요.”
“그리고 여러분, 마물에게 대응할 수 있는 무기라 하지 않습니까. 이게 무슨 뜻인지 아시겠지요?”
“병사들만으로도 마물을 처리할 수 있다는…….”
“아아, 그렇지요. 그렇네요.”
누군가의 물음에 관료들이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탄성을 내질렀다. 마법사 없이도 마물을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이요, 이는 마법부에 대한 의존도가 내려간다는 뜻이다. 마법부는 지금, 자신들을 견제할 만한 수단을 스스로 내놓은 게다. 이전의 이드갈과 비슷하게.
“조금 고민을 해보는 게 좋겠습니다. 오늘은 우선 안건만 올리고, 천천히 의논해보심이 어떠십니까?”
“예, 그리합시다. 마법부 장관.”
“그렇다고 너무 오래 걸리면 안 되겠지요. 버고스로 보내는 사절단이 다음 주에 출발한다고 했으니, 시간을 두되 최대한 서둘러서 진행하는 게 맞겠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안 경. 홀린 가문에 지불할 대금은 얼마로 상정하셨소?”
그게 적혀있지 않았다. 이안은 별것 아니라며, 손가락 두 개를 들어 보였다.
“필요한 부지 가격은 매입가의 두 배. 생산 기반은 마법부 한 해 치 예산입니다. 우선 시범적으로 진행할 것이라, 전부는 아니고 아주 일부만 제안했습니다.”
스윽.
그때, 이안 곁으로 다가오는 로만드로. 허리를 한참 숙이고서 조심스레 이안의 앞에 서신을 내려놓았다. 홀린 가문의 인장이 찍혀있는 편지였다.
이안이 잠시 기다려달라는 듯 손을 들었고, 관료들은 이때다 싶어 저들끼리 뭔가를 숙덕댔다.
“무슨 일인가?”
“흐음.”
편지를 읽던 이안이 희미하게 웃었다. 예상했다는 듯이, 아주 고요하고 평온한 미소다.
“홀린 공작의 답신입니다. 어제 제안 주었던 것을 깊이 고심하였는데-”
“역시 안 되겠다고 하지?”
“안 되면 어쩌겠습니까? 황궁 대장간을 확장하는 수밖에요.”
쉬이. 이안이 잠시 조용히 해달라는 뜻으로 손짓하자, 관료들이 멈칫거렸다.
“제안했던 가격으로는 불가하다고 합니다.”
“그럴 줄 알았네!”
“두 배 가격으로도 안 된다 합니까? 대단하군요.”
“황궁과 인접한 영지일세. 돈이 문제가 아니라고.”
이안은 편지를 툭, 내려놓으며 덧붙였다.
“영지는 매입가의 다섯 배. 그리고 기반 대금 역시 마법부의 예산 다섯 배를 원한다 하는군요.”
그 말을 들은 관료들 입이 떡, 하고 벌어졌다. 그게 대체 얼마인가? 단순 계산으로는 불가한 숫자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불가하네. 절대, 절대 불가해.”
“그래도 홀린 가문에서는 도리를 다했습니다. 거절하는 것이 아닌, 적절한 합의점을 제시했으니까요.”
“이안 경, 이제 어쩌실 것입니까? 아무리 마법부라도 그 정도 되는 금액은 무리일 것 같은데요.”
홀린 가문에서 우선적으로 할 수 있는 적절한 대응책이었다. 제안을 단칼에 거절하기보다, 역으로 제시하여 상대가 포기할 수밖에 없게끔 만드는 것.
이안 또한 인정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한데, 조금만 힘쓰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게 무슨 말이오?”
홀린이 던진 패를 마법부가 직접 대응할 필요는 없었다.
“그만한 대금을 어디서 조달한단 말이오?”
“기술발전부와 제국방위부 그리고 황궁친위대가 개발에 참여할 것입니다. 다른 부서들 또한 합심한다면 또 모르지요.”
어디서 조달하긴.
그쪽들 주머니에서 조달하지.
“각 부서는 마법부로부터 빌려간 대금을 모두 내어주십시오. 이번 주 안으로.”
“그, 그게 무슨! 한두 푼도 아니고, 그걸 당장 이번 주까지 어떻게 치른단 말인가?”
“예. 송구한 말이지만, 저희도 같은 사정입니다. 이안 경. 어느 정도 말미를 내어주심이-”
“말미를 내어주려면 마법부에도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보셨지 않습니까? 홀린 공작께서 다섯 배의 대금을 청하신 것을요.”
“아니…….”
의도를 알아챈 관료들의 낯이 흑색으로 변했다.
“홀린 가문이 마음을 바꾸어 마법부가 제시한 대금으로 계약하겠다 하면, 저희도 급히 대금을 받지 않아도 되겠지요. 그러니, 다들 저에게 이야기하실 것 없이, 공작님께 직접 말씀해 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