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512
제512화. 무대에 오른 홀린 가문
“이게, 이게 말이나 됩니까?”
콰앙!
회의장을 떠나지 못하는 관료들이 하나같이 울분을 터트려댔다. 그들은 텅 비어있는 마법부 장관의 자리를 노려보다가, 머리를 쥐었다가, 궐련을 입에 물고서 끙끙 앓는 신음을 흘려댔다.
장장 십 년 동안 차출했던 대금을, 어찌 이번 주 안에 완납한단 말인가? 아니면 홀린 공작을 설득하는 수밖에 없는데, 그것 또한 대체 무슨 수로?
“쯧쯧. 지독한 자 같으니라고.”
“그러게 말입니다. 설마 저희에게 일을 떠넘길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다섯 배 달라는 서신 읽고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더니만, 다 생각이 있었던 게지요.”
“이제 어쩌면 좋겠습니까? 완납하지 못하면 고발할 작정인 것 같던데.”
“하아. 돌아버리겠군요. 재판으로 넘어가면 회계 장부 감사가 새로 실시됩니다. 솔직히, 문제 삼으려면 뭐가 어렵겠습니까? 숫자 하나하나, 목록 하나하나, 죄다 걸고넘어질 것인데요.”
“크흠.”
부서가 발칵 뒤집히는 것은 물론 관료들의 목숨줄이 달린 사안이었다. 그들이 피워대는 궐련 연기가 짙어질수록 미간의 주름 역시 깊어졌다.
“일단 홀린 공작을 설득해보는 게 좋겠습니다.”
“예, 뭐. 방도가 없긴 하네요.”
“솔직히 영지 매입할 때, 우리가 도움을 좀 줬습니까? 우리 아니었으면 불가했어요.”
“맞습니다. 무기 사업권도 그러하지요. 공작께서 염치라는 게 있으시다면 쉽게 거절하지 못할 것입니다.”
“아, 아니면 이건 어떻습니까?”
그때, 한 관료가 재를 툭툭 털며 일어섰다. 무언가 좋은 수가 생각났다는 듯이 말이다.
“설득이 불가하다면, 차라리 홀린 공작가에서 돈을 빌립시다. 급한 불부터 꺼야 한다고, 그걸로 마법부 대금을 갚는 겁니다.”
“오, 괜찮은 방법입니다.”
“한데, 가능할까요? 자그마치 십 년 치 대금입니다. 여러 곳에서 야금야금 빌렸다지만, 모두 합하면 액수가 어마어마할 겁니다. 아무리 홀린 공작가라 하더라도 당장 그만한 거금을…….”
“모두를 구제할 수는 없겠지요.”
그러자 관료들의 눈빛이 번뜩거렸다. 기민하게 얽히고설키는 시선들. 모두가 살 수 없다면 저라도 살아야겠다, 싶은 게다.
“좋습니다. 그래도 우선 홀린 공작을 설득해보는 쪽으로 시작해봅시다. 그게 최선이니까요. 마법부가 특수한 무기를 제조하면, 마법사에 의존하지 않고도 마물에 대응할 수 있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마법부의 영향력을 약화시킬 기회입니다.”
“예. 다음 문제는 그다음에 생각하고요.”
“고생하셨습니다. 그럼, 먼저 일어나 보겠습니다.”
“크흠. 저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그들은 회의장을 박차고 떠났다.
순식간에 텅 비어버린 회의장. 끝까지 자리하고 있던 담당 시종이 몸을 돌려 황태자 궁 쪽으로 움직였다. 그 앞에는 마법부 소속의 마차가 세워져 있었으니.
타닥타닥.
끼이익.
“전하. 관료들이 모두 돌아갔습니다.”
“오래도 머리를 맞댔구나. 알겠다.”
이안과 진 그리고 로만드로가 소파에 둘러앉아 보고서를 확인하고 있었다. 진은 알겠다는 듯 손짓했고, 로만드로는 이안의 펜대를 갈아주며 물었다.
“이안. 한데, 관료들이 생각처럼 잘 움직여줄까?”
“갈 길을 제시해 주었으니, 일단은 움직일 것입니다.”
안 할 이유가 없었다. 자신이 대금과 홀린 공작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려는 것처럼, 그들 역시 대금과 마법부 견제 문제를 한 번에 이루어내려 할 것이니. 그들에겐 절호의, 그리고 유일의 기회였다.
다만 관건은, 홀린 공작 쪽인데…….
“부디 관료들이 공작가를 압박할 만한 무언가를 갖고 있길 바랄 뿐입니다. 쉽게 쉽게 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니까. 곧 있으면 라자산의 다른 데라족들도 당도할 것이니, 서둘러 마무리한 다음 연구를 진행하는 게 맞지. 사절단 출발까지 시간도 없고.”
“전하. 공문은 준비되셨습니까?”
“응. 다 했네.”
이안의 물음에 진이 펜으로 서명을 마무리했다. 중앙 귀족 전체에게 내리는 황가의 공문이었다.
이안은 그걸 받고서 내용을 천천히 살폈다. 이내 만족스러운 미소가 퍼지자, 진 역시 소파에 등을 기대며 웃었다.
“궁지에 몰린 관료들은 밀린 대금을 해결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할 것입니다. 개중 하나가 홀린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인데, 아무리 홀린 공작가가 금화를 쌓아두고 산다 한들, 모두 감당할 수는 없지요.”
“그리고 혹 구제해준다고 해도, 그건 그거대로 문제다. 황궁의 예산 처리 과정에 공작이 관여하는 것이니까. 필시 나중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
결코 있어선 안 될 일이었다.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려는 관료들에겐 중요치 않은 일이겠지만.
“여하튼, 관료들의 구제 요청을 받으면, 홀린은 그와 연관된 다른 귀족으로부터 자금을 끌어모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마법부와 관료들 사이의 끈을 끊어내는 게, 사업권을 지킬 방도니까요.”
그걸 방지하기 위한 공문이었다. 지금 진행되는 황궁 문제에 대하여, 간섭 따위 생각조차 하지 말라는, 경고성 짙은 공문.
-부정 청탁 및 금품 수수에 관하여 부정을 감시 및 조사하기 위한 법안 발의를 준비 중이다. 일정 금액 이상 황궁과 거래할 시, 조사단을 파견하여 자금 출처 및 거래 내용을 상세 확인할 것이니, 중앙 귀족들은 유의하여 거래에 임하도록 하라.
대의명분을 세우지 않는다면 다른 부서의 반발이 일어날 수 있다. 이 정도면 적당하여 귀족들도 뜻을 제대로 알아들을 것이다. 황궁에 발을 들이미는 즉시, 그들 또한 온전치 못하리란 것을.
“로만드로 님.”
“응. 준비해서 바로 보내겠네.”
“이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지켜보면 되겠습니다. 전하. 다비온 쪽은 어떻습니까?”
차를 마시던 진이 무언가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까딱거렸다. 그쪽 영애와의 자리를 만들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었는데, 갑자기 잠잠해진 것 같다.
“글쎄. 아무래도 마법부 쪽으로 힘을 실으려면 그쪽도 바쁘겠지. 홀린 가문의 독주를 막고 끌어내는 데엔 이만한 기회가 또 없으니까.”
“아주 협조적이라는 말씀이시군요.”
“잠잠하다는 뜻일세. 근데, 카일라 영애를 보았다고.”
“예. 송구하게도, 전하보다 먼저 보았습니다.”
“그래. 어떤가?”
황후로서 자질이 있는 것 같은가? 자신의 옆자리에 앉아 바리엘을 함께 일구어갈 자질 말이다.
진이 흥미를 감추며 넌지시 묻자, 이안이 펜대로 턱을 툭툭 두드렸다.
“아름답고, 영민한 자였습니다.”
하지만 이름이나 외모 그 어떤 부분에서도 기시감을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황실 사람이 되는 것보다 홀린 가문에 머무는 게 바리엘에 도움 될 것 같았다. 잠시 고민한 이안은, 뒷말은 머금은 채 진에게 보고를 올렸다.
“할 말이 더 있는 것 같은데?”
“전하께서 직접 뵙기 전에는 말을 덧붙이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선입견이라도 생길까 봐?”
“아니요. 전하의 온전한 판단을 믿기 때문입니다.”
흐음. 진은 어깨만 까딱거린 다음 보고서를 소리 나게 덮었다.
“그나저나, 곧 있으면 버고스 북쪽으로 사절단이 갈 것이다. 전쟁까지 머지않았어. 즉위식 이후, 나 역시 전장에 나갈 생각인데.”
“용맹하신 결단입니다. 한껏 오른 병사들의 사기가 바리엘을 지켜낼 것입니다.”
“처분하기 어려운 문제가 하나 있다.”
“무엇입니까?”
“다몬 런크비스.”
“아.”
버고스의 왕, 다몬 런크비스. 지금은 전쟁 포로 겸 왕당파의 명분으로 존재하고 있지만, 곧 있으면 도래할 내전 없는 버고스에서는 그 가치가 퇴색될 것이었다.
“클리포포드-버고스 전쟁의 주범이니 살려둘 수는 없다. 그런데, 이안 경이 일러주었던 것 때문에 죽일 수도 없었어.”
“두 번째 삶을 살고 있다는, 그것 말씀이시지요?”
“그래. 다른 세계일지라도, 다몬 저것이 바리엘을 위협하는 꼴은 용납할 수 없다. 그에게서 삶을 완전히 도려내는 법밖에 없는데, 나는 당최 모르겠어.”
이안은 잠시 고민했다. 러더포드가 마력을 잃고서 다른 자의 몸으로 환생했던 것은 모두 지하신의 농간. 자신이 신의 판단하에 서자 이안의 몸에 들어섰던 것과 같이, 반도르 또한 지하신의 판단으로 러더포드의 몸 안에 존재하고 있는 게다.
신과 그 그림자가 각기 내세운 말끼리 맞부딪치는 상황에서, 다몬의 존재는 조금 의아하긴 했다.
“바니아는 어찌 되었습니까?”
“아. 사절단으로 왔던 다몬 왕의 혈육 말이로군. 행방이 묘연하다. 몇 년째 흔적이 보이질 않아. 다몬이 오래전부터 제 혈육을 러더포드에게 바쳐왔으니, 연관되어 있을 것 같거늘.”
“제가 다몬 왕을 직접 만나보겠습니다.”
러더포드의 뒤에 지하신이 있으니, 버고스 왕족은 결국 지하신에게 어떠한 용도로든 이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세 번째 삶이 기다리고 있노라, 절대적으로 믿고 있는 다몬의 태도에도 답이 있겠지.
이안이 서류를 톡톡 정리하며 일어서자, 진은 그를 따라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마치 할 말이 있다는 듯이.
“왜 그러십니까?”
“…즉위 전에 잠행을 나갈 것이다.”
“아.”
시기가 적절하다며, 이안은 희게 웃었다. 황제가 된다면 쉽게 궁 밖으로 나갈 수 없으니, 그 전에 잠행하여 민심을 살피려는 게다. 황실에 대한 인식은 어떠한지, 전쟁에 대한 제국민들의 생각은 어떠한지 등등. 보고서로만 보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으니까.
이안은 잘 생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막 돌아서려는데-
“같이 나가지 않겠나? 베릭, 시아, 로만드로도 함께.”
“…이전처럼요?”
“이번에는 그대가 우유를 들라.”
진의 장난스러운 농담에 이안이 웃음을 터트렸다. 진 또한 웃었다. 이안의 미소는 간간이 보았지만, 저리 소리 낸 웃음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이안은 고개를 꾸벅 숙인 다음, 인사를 남기고서 집무실을 떠났다.
“업무가 없다면, 예. 함께하겠습니다.”
* * *
타닥타닥!
홀린 공작가의 아침은 유독 시끄러웠다.
향긋한 커피로 잠을 떨쳐내던 공작이 시종들의 발걸음 소리를 알아채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대체 무엇들 하길래 이리 소란스러워?
“공작님! 공작님!”
“무슨 일인가?”
“바, 밖에 손님들이…….”
손님? 참으로 교양 없는 작자로다. 기별도 없이 이 시간부터 방문이라니. 공작은 커피 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누구?”
“너무 많아서 다 외우지도 못했습니다.”
“뭐?”
공작은 일이 뭔가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걸 깨닫곤, 커튼을 걷어냈다. 저 멀리, 아주 멀리 보이는 저택 대문 앞으로 빼곡하게 서 있는 인파가 보였다. 마차는 또 어떻고? 어림잡아 열 대 정도 되는 것 같다.
“이게 무슨-”
“다들 공작님 좀 뵙고 싶다고 하시는데요. 용건을 여쭈어도 직접 이르겠다 합니다. 근데 대부분 황궁에서 나오신 것 같았어요.”
“황궁?”
“예. 필레느롱 장관님도 계시고, 저번에 가든 파티에 오셨던지 낯익은 분들이 섞여계시더라고요.”
마법부는 아니구나. 다섯 배 값을 부르고 난 뒤, 마법부에서 별다른 반응이 없자 한참 긴장하고 있던 차였다. 공작이 커피 잔을 휘휘 흔들며 손님들을 들이라 명하려는 순간.
똑똑.
“공작님. 오늘 들어온 서신입니다.”
집사가 금쟁반 위에 서신을 수북이 쌓은 채 들어오는 게 아닌가? 마찬가지로 마법부를 제외한 다양한 부서에서 온 연락들이었다. 공작은 손에 집히는 대로 봉투를 개봉했다.
“하, 이 미친것들이!”
“공작님. 괜찮으십니까?”
“이것도 같은 건가? 이런 정신 나간!”
“아이고, 공작님!”
꽈악!
하나같이 영지 매입가와 기반 시설 매각 가격을 낮춰달라는 내용이었다. 말이 부탁이지, 대부분 자신과의 결탁을 은근히 언급하여 협박 아닌 협박을 하고 있었다.
“손님들을 모두 안으로 들여라.”
“아, 네넵!”
“카일라도 올라오라 해! 내 이것들을 아주… 가만두지 않겠다. 여기까지 어떻게 올라왔는데, 고작 마법부 장관 그것 하나 때문에…….”
공작은 이 모든 게 이안의 수작임을 단박에 알아챘고, 곧장 웃옷을 걸쳐 입었다.
반격을 준비해야 할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