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515
제515화. 형과 아우 사이
중앙의 상업구역은 언제나처럼 사람들로 북적였다.
노인들은 골목 사이에 앉아 비둘기에게 빵 부스러기 따위를 던져주었고, 젊은이들은 무엇이 그리 신났는지 종이 가방을 한가득 든 채 웃음을 터트렸다.
시끌벅적한 거리 공연 소음이 자연스레 녹아내리는 주변. 꼬치 등을 파는 좌판 앞에, 덩치 큰 남자가 쭈그려 앉아있었다. 금방이라도 침을 뚝뚝 흘릴 것 같은 눈치에, 주인 노파는 어색하게 웃으며 부채만 흔들어댔다.
“맛있어 보인다.”
“하나 드릴까요?”
“얼만데?”
“꼬치 세 개에 동화 한 닢입니다.”
“이안아아아! 우리, 이거 들고 다니면서 먹을까?”
휘익! 베릭이 벌떡 일어나며 뒤를 돌자, 상인과 얘기 중이던 이안이 그를 쳐다봤다. 시선만으로 안 된다 이르는 이안과 달리, 로만드로는 지긋지긋하다며 이를 갈아댔다.
“또 처먹어?”
“또라니? 내가 뭘 먹었는데?”
“상업구역 들어오면서부터 네가 처먹은 양만 해도 어지간한 식구 일주일 치 간식만큼은 될 게다. 온갖 과일에, 빵에, 사탕, 아이스크림까지. 원, 애도 아니고. 우리 비비도 너처럼은 안 먹어!”
“비비가 나처럼 먹으면 큰일이지. 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정성껏 하세요? 그리고 고기 안 먹었잖아요! 고기 아닌 거는 다 그냥 목구멍 가볍게 스쳐 지나가는 거지.”
“이안! 쟤 좀 뭐라고 해봐!”
하지만 어쩌겠나? 다른 것도 아니고, 먹을 것에 눈 돌아간 베릭인데. 이안은 주머니에서 은화 하나를 튕겨주었고, 베릭은 한 손으로 가볍게 그걸 잡아냈다. 로만드로는 못마땅하다는 듯 입을 비죽거렸다.
“이제 밥벌이도 제대로 하는 놈이, 왜 자꾸 이안이 주머니를 털어?”
“돈 많은 애가 사면 좋잖아요. 그래서 로만드로 님은 안 먹을 거? 그러면 고맙지, 뭐. 여기! 여기 있는 거 다 줘.”
“이, 이걸 다요?”
“역시 못 들고 가겠지? 어쩔 수 없지. 내가 좀 먹을게.”
와앙! 베릭은 주인에게 은화를 건네주고는, 미친 듯이 꼬치들을 해치우기 시작했다. 이안과 대화하던 상인은 참으로 신기하다는 듯 눈을 떼지 못했다.
“아까 하던 얘기를 계속해주시게.”
“아아. 예, 뭐. 전쟁 불안감 때문에 유통되는 과일 양이 좀 줄어들긴 했지만, 아직 큰 문제는 없습니다. 버틸 만한 수준이고요, 무엇보다 황궁에서 물가 변동을 굉장히 예민하게 주시하는 것 같더라고요. 이틀 전부터는 저희들 위한 지원금도 조금이지만 나온다고 합니다.”
상인의 말에, 이안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감돌았다. 황궁이 제 역할을 잘 해내고 있는 듯하여 만족스러운 낯이다.
상인은 궐련을 질겅거리며, 좌판대 위의 먼지를 툭툭 털어냈다.
“그래도 먹고사는 게 막 예전 같지는 않아요. 아무래도 타국에서 오가던 손님들이 줄어서.”
“버고스와 루스웨나?”
“전쟁 이후로 조금씩 줄어드는가 싶더니, 버고스 쪽은 아예 얼굴 보기 힘들고요. 루스웨나 쪽도 주머니 푸는 데 인색합니다. 어쩔 수 없지만 좀 아쉬운 건 사실이지요. 대신 그만큼 변경에서 중앙으로 올라오는 사람이 많아져서 어찌어찌 매출은 비슷합니다만. 그런데, 어디서 나오셨습니까?”
“나도 막 변경에서 올라왔네. 중앙에 터를 잡아볼까 하여 물어본 것이니, 마음 쓰지 마시게나.”
짤그랑.
이안은 유리통에 값을 치르고서 싱긋 웃어댔다. 그러자 상인은 막 짜낸 생과일 음료를 잔에 따라주며 환영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예, 잘 생각하셨습니다. 변경보다는 중앙이 살기 좋지요. 곧 있으면 진 황태자 전하가 즉위하실 것인데, 그 이후로 중앙이 얼마나 더 번성할지 모두 기대가 큽니다.”
“…나도 그렇네.”
이안이 잔을 들자, 저 멀리 진과 시아오시가 보였다. 어느 부잣집의 영식으로 보이는 옷차림. 워낙에 훤칠한 키인지라, 오가는 여인들의 은근한 시선이 그들 뒤를 쫓았다.
“이안!”
“오셨습니까? 일은 다 보셨고요?”
“아아, 듣던 대로였네. 불법 증축으로 광장에 들어서는 입구가 상당히 불편해졌어. 한데, 가만 보니 먹고 살려고 나온 노인들인지라, 철거 대신 다른 방법을 찾아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음료를 짜내던 상인은 심상치 않은 대화 내용에 귀를 쫑긋거렸다. 아무리 봐도 수상한 무리다. 한 명은 위에 거지라도 들었는지 먹는 게 만만치 않았고, 또 한 명은 한참 어려 보이건만 민생에 대해 이것저것을 따져 물었다. 그뿐인가? 막 합류한 은빛 머리칼의 사내는 웬 가면을 쓰고 있다.
이거, 영 이상한데.
“그럼, 이제 식사라도 하러 갈까?”
“좋아요! 도련님 최고! 갑시다! 아, 배고파 죽겠네.”
“베릭. 손에 쥔 그거, 닭 다섯 마리는 될 것 같다만.”
“우리 예전에 거기 갈까요? 꿀맥주 팔던 데.”
“듣는 척도 안 하네. 미친놈. 전, 아니지, 도련님. 저놈, 집에 들어가면 아주 쫄쫄 굶겨버리십시오.”
한평생 손님들 맞이하며 살아왔건만, 이렇게 관계 파악이 힘든 무리는 처음이다. 주종 관계인 것 같으면서도 서로 맞먹는 것 같기도 하고.
궁금증을 참지 못한 상인은 떠날 준비하는 이안을 붙잡고서 물었다.
“한데, 가족입니까? 저 두 분이랑 그쪽은 형제가 맞는 것 같은데, 붉은 머리 남자분이랑 저 중년 신사분은…….”
“같이 일하는 사람입니다.”
“아하, 그러시군요. 하하. 실례했습니다. 제가 궁금한 거 또 못 참아서. 또 오십시오! 형님분들은 제 과실음료 못 드셨지요? 과일이 아주 싱싱하고-”
타악.
그때, 상인에게 다가와 벽을 거칠게 짚는 진. 상인이 놀라서 뒷걸음질 쳤다. 가면 너머로 보이는 벽안이 생각보다 짙고 형형하여 위압감마저 들 정도다.
“왜, 왜 그러십니까?”
“다시 말해봐.”
“죄, 죄송합니다. 제가 입이 방정이라…….”
“다시 말해보라고.”
“과일이 아주 시, 싱싱…….”
“그 전에.”
상인이 눈알만 도르륵 굴려 이안을 쳐다봤다. 그러자 이안은 ‘형님’이라는 단어를 벙긋거리며 상인에게 단서를 주었다. 몇 번이고 겪었다는 듯, 아주 평온한 낯이다.
“혀, 형님이요?”
“그래. 내가 형님으로 보이는가?”
“…물론입니다. 아주 반질거리는 머릿결도 그렇고, 푸, 풍기는 기품이나 우아함이 또, 똑 닮았습니다. 제가 도련님 얼굴을 보지는 못했지만, 그, 어느 정도 분위기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예. 누가 보아도 혀, 형님과 아우 같은데요.”
그러자 가면 아래 입매가 부드럽게 휘었다. 굉장히 만족스러운 웃음인 게다. 상인은 영문도 모른 채 눈만 깜빡였고, 진은 주머니에서 금화 하나를 내어주며 당부했다.
“아이들과 가난한 자들에게 음료를 나누어주게.”
“헉! 아, 알겠습니다.”
“장사가 잘되는지, 내 지켜보겠네. 행운을 빌지.”
“가, 감사합니다! 또 오십시오!”
상인은 앞쪽 대로변까지 뛰어나오며 배웅했고, 이안은 연신 흐뭇이 웃는 진을 올려다봤다.
“그리 재미있으십니까?”
“무엇이?”
“제가 아우가 된 것이요.”
벌써 다섯 번째였다. 들르는 상점마다 이안과 저를 두고서 누가 형이고 아우 같은지를 묻는 탓에, 이안이 잠깐 따로 움직이자고 제안한 것이다.
진은 가만 생각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부정하지 않는 모습이다.
“사실상 있을 수 없는 일을 겪고 있으니, 흥미롭다.”
“제가 심연에서 세월을 그대로 받아들였으면, 아쉬워하셨겠군요.”
“아니.”
그랬다면, 마음 아팠을 터.
진은 마지막 말을 삼키고서, 상상해보았다. 고작 열흘 남짓한 시간에도 심연에서 온갖 고생을 다 하였는데, 십 년이라니. 그랬다면 황궁으로 돌아올 수 없음은 물론이요, 자신과 다시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진의 단호한 부정에 이안은 설핏 웃으며, 앞서 걷는 베릭과 로만드로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가서 우유도 먹을까요?”
“되었어. 원하는 걸 들라.”
그때, 어디선가 들리는 한 남자의 외침.
“황태자 전하아!”
이안과 진은 물론이고, 앞서 걷던 베릭과 로만드로 그리고 뒤쪽에서 은밀히 호위하던 시아오시까지 놀라서 멈칫거렸다.
주변을 둘러보니, 근처에서 열린 인형극 소리였다. 시아오시가 먼저 다가가려고 하자, 진이 손짓으로 저지했다. 그리고 천천히, 그쪽으로 다가가 자연스럽게 구경꾼들과 섞여들었다.
“이것 좀 봐주십시오!”
“음! 마법부에 물어보지!”
“에궁, 그러면 저것 좀 봐주십시오!”
“그것도 마법부에 물어보겠다!”
“아니, 이것도 마법부에, 저것도 마법부에 물어보면, 대체 일 처리는 뭘 하신단 말입니까?”
“그것도 마법부에 물어보마!”
인형이 입을 쩌억쩌억 벌리며 우왁스러운 말을 뱉어내자, 몇몇 구경꾼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내용으로 보면 황실모욕에 해당하는 중죄이거늘, 인형사는 별다른 주저 없이 극을 이어갔다.
“하면, 언제 황제가 되는지도 마법부에게 물어볼 것입니까?”
“아니! 그건 버고스의 국민에게!”
“예에? 그걸 왜 그쪽에다 물어본답니까?”
“그쪽이 돈을 대주니까!”
“아하, 그래서 전쟁을 하시려는 거군요?”
가만 듣고 있던 이안이 진의 소매를 끌어당겼다. 더는 좌시할 필요가 없는 내용인 게다. 이안이 시아오시에게 정리하라 이르려는 순간.
“뭣도 모르기는.”
어디선가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형들이 동시에 구경꾼들 속 한 여자를 쳐다봤다. 그 시선을 따라 마찬가지로 움직이는 사람들의 눈초리. 갑작스레 주목받았지만, 여자는 별로 개의치 않아 하며 말을 이었다.
“누가 보면 황태자 전하께서 마법부 말만 듣는 꼭두각시인 줄 알겠소. 마법부 장관이 돌아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러는지, 원. 그전까지는 유명무실하여 있는 듯 없는 듯했던 마법부인데. 장관 없이 마법부가 뭐 제대로 굴러갔겠어요?”
앗. 저 말은 좀 가슴 아픈데. 로만드로가 괜히 머쓱해하며 코를 훌쩍였고, 베릭은 그의 어깨를 장난스레 토닥였다.
“그리고 전쟁의 승리자가 전리품을 갖는 게 당연하지. 황궁이 윤택해지면 제국민들 또한 삶이 풍성해지겠지요. 버고스인이라면 또 몰라, 바리엘인으로서 전하의 결정을 반대하는 자는 없습니다.”
“그쪽은 뉘시오?”
“말하면 알아요?”
인형사가 짜증스럽게 물었으나, 여자는 어이없다는 듯 되받아쳤다. 그 말에 또다시 웃음을 터트리는 사람들.
진은 팔짱을 낀 채 상황을 관망했다.
“아무튼, 실력은 좋은데 내용 검수 좀 제대로 하세요. 그리고 간댕이가 부은 거야, 아님 애초부터 없는 거야? 대낮 길거리에서 그러고 있으면 바로 잡혀갑니다. 예? 곧 있으면 경비들 오겠네.”
쨍그랑!
여자는 그릇에 동전 몇 개를 던져주고서 몸을 돌렸고, 동시에 정신 차린 사람들이 허겁지겁 흩어지며 가던 길을 떠났다. 인형사는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멀뚱히 서서는 여자가 사라진 방향만 노려보았다.
그걸 본 진이 뭔가 홀린 것처럼 그녀 뒤를 쫓아갔다.
타닥타닥!
“전흐아, 아니, 도련님!?”
“시아.”
“예.”
이안은 시아오시에게 인형사의 뒤처리를 부탁하고는, 베릭과 함께 진을 따랐다.
로만드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고개만 휙휙! 아무래도 인형사 처분 쪽이 나을 것 같은지라, 주머니에서 신분증을 꺼내려 했다.
“에, 이보시오! 당신-”
촤아악!
그러자 인형사가 테이블을 엎어버렸고, 위를 덮고 있던 천이 공중에서 팔락거렸다. 생각보다 조금 오래.
시아오시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감지하곤 검을 빼 들었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뭐여?”
“…….”
“시아, 이놈 어디 갔어?”
“수상한 자입니다.”
“나도 눈이 있어서 알어! 뭐지? 이게?”
땅으로 꺼진 것도 아니고, 하늘로 솟은 것도 아니고.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람? 로만드로는 바닥에 뒹구는 진의 인형을 슬쩍 뒤집어 보았고, 이내 기겁하며 뒤로 물러섰다.
“이, 이거, 촉감이… 진짜 인피(人皮)로 만든 인형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