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518
제518화. 네 편 내 편
대회의실 분위기가 조금 남달랐다. 평소 같았으면 회의 내용을 검토하거나 예상되는 질문 따위를 대비함에 소란스러울 터인데, 지금 들리는 것이라고는 분노와 모멸감 섞인 언사들뿐이다.
콰앙!
“선 넘었습니다!”
“예. 적극적으로 동감합니다. 아무리 공작님이시라지만,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황궁의 관료를, 어딜 감히 바깥에서 끌어내리라, 마라 하는 것입니까?”
“게다가 다비온 가문을 노골적으로 견제하시니, 이는 중앙에 불필요한 소란만 일으키는 것입니다.”
“참나, 살다 살다 이렇게 참담한 모욕은 처음입니다.”
“전하께서는 아직 답이 없으신가?”
“들리는 말로는 출궁하셨다고 하던데요. 시간이 조금 걸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법부 장관도 자리를 비웠던데, 같이 나가셨나 보군요. 황궁 내부가 이리도 어지럽거늘! 대체, 원!”
“그리고 그대들도 너무하십니다.”
다비온 가문의 관료가 멀찍이 떨어진 다른 관료들을 쳐다보며 소리쳤다.
“같은 관료로서, 외부의 월권행위에 대해 즉시 반박하지는 못할망정, 공작이 써준 명단 그대로 마법부에 보고서를 올려요?”
“아니, 왜 저희에게 화풀이십니까? 당장 거기서 뭐라고 한들 공작께서 듣기나 하시겠어요? 그리고, 내용이야 어찌 됐건 보고서는 올려야지요! 어디 우리가 결정권잡니까?”
홀린 공작을 찾아갔던 관료들이었다. 마법부에 대금이 묶여있는 동시에, 홀린 쪽 색이 조금 더 짙은 자들, 홀린파.
이에 다비온파가 어이없다는 듯 목청을 높였다.
“당신들 입장이 곤란하니, 좀 살려달라 빌러 간 것 아닙니까? 한데 성과는커녕 별 잡소리나 황궁에 전달하고 있으니, 개탄스럽습니다!”
“살려달라 빌어? 잡소리? 말이 심하십니다!”
“먼저 모욕당한 것은 이쪽인데, 그럼 좋은 말이 나갈까요?”
“다들 그만하십시오. 지엄한 황궁입니다. 그리고 솔직히, 다비온 쪽에서 그리 열 내는 걸 이해 못 하는 건 아닙니다만, 먼저 강 건너 불구경하고 계셨잖습니까? 그런데 지금 와서 ‘같은 관료’라는 말로 유대감을 형성하려 하시니 조금 어이가 없습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겐가?”
“저희가 마법부에 대금 건으로 멱살 잡힐 때, 관망하셨잖습니까. 저희가 잘려 나가든, 아니면 홀린가가 영지를 내어놓든, 다비온에서는 손해 보는 게 없으시니까요. 그래놓고 지금 와서-”
“대금 잘못은 그대들이 해놓고서, 왜 우리에게 따지려 드는가?”
“그리 따지면 작금의 사태 또한 홀린가의 문제지, 뭐 저희 문제입니까?”
“뭐라? 너 몇 살이야!”
갈 데까지 갔다. 서류가 촤악 휘날렸고, 여기저기서 불붙은 자들의 삿대질이 난무했다.
난장판에도 묵묵히 자리하던 맥심 트웰러는, 결국 한숨을 내쉬며 궐련을 태웠다. 전쟁을 코앞에 두고 있다는 걸 다들 망각한 건가? 마음 같아서는 적군의 목을 치기 전에 저것들 먼저 베어버리고 싶다.
맞은편에 앉아있던 기술발전부장관 또한 침묵하며 이마만 매만지고 있을 뿐이다.
“황태자 전하 드십니다!”
그때, 소란을 정확히 가로지르는 시종의 기별.
트웰러는 궐련을 비벼 끄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몸싸움 발발 직전이던 관료들 역시 옷깃을 탁탁 털며 제자리로 돌아갔다. 분에 찬 시선은 그대로였지만.
스윽.
안으로 들어서던 진이 과열되었던 분위기를 느끼곤 멈칫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바로 자리에 앉으며 모두 착석하라 손짓했다.
이안 히엘로, 마법부 장관 역시 곧바로 뒤따라 들어와 제자리를 찾았다.
“쉬는 날까지 이렇게 몰려들고, 다들 기운도 좋아.”
“전하. 참으로 분하고 참담합니다!”
“그래. 그대들이 화가 잔뜩 났다고 하여 내 하던 일 모두 미루고 이리 들지 않았나? 그러니 쇳소리 그만 내어라.”
눈치 있는 자들은 진 황태자의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는 걸 바로 알아챘다. ‘하던 일’이 무엇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그걸 방해받아서 그런 것 같다.
진이 회의를 개시하겠다 이르자, 이안이 서류를 넘기며 먼저 발언했다.
“홀린 공작가가 건넨 역제시 안이 논란인 게 맞습니까?”
“예! 아주 정확합니다. 행정부의 마크로 경과 내무부의 차일스 경을 해임하는 조건으로 영지를 매각하겠다고 했지요. 미친 것 아닙니까?”
“자중하십시오, 황태자 전하 앞입니다!”
누군가 경고했지만, 이미 화가 머리끝까지 난 다비온파에게는 들리지 않는 소리였다.
“마크로 경은 승하하신 황제 폐하께서, 그리고 차일스 경은 황태자 전하께서 직접 위임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그런 자들을 감히, 거래를 빙자하여 잘라내려 하다니. 이게 미친 짓 아니면 무엇이란 말입니까?”
“맞습니다. 이는 곧 황태자 전하에게 도전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타 부서들이 다비온파 쪽을 힐끔거렸다. 저 중 두 명의 목만 날아가면 대금 문제가 원활하게 풀릴 것인데, 악을 질러대며 버티고 있으니, 원. 그 시선을 느낀 다비온파에서도 세모눈으로 응수했다.
그때-
“대금이 묶인 부서에서는-”
이안이었다. 사락, 서류 다음 장을 넘기며 말을 이었다.
“결국 어떤 결과도 내놓지 못하셨군요.”
부드럽고 나긋한 어투. 과열된 분위기 속에서 들으니 위화감이 상당하다. 홀린파 관료들은 멈칫했으나 곧 반박했다.
“아직 시일이 남아있습니다. 이안 경.”
“21시간 정도 남았군요. 의미가 있겠습니까?”
“무, 물론이지요. 결과는 가져오지 못했지만, 방도는 텄습니다. 이러한 사정을 헤아려, 마법부에서 시일을 늘려주시면 어떻겠습니까?”
“지금 들리는 소란이, 그대들에게는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으신가 봅니다. 황궁을 어지럽혀 놓고서 대단들 하십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크흠!”
“예예, 대단들 하시어요!”
이안의 면박에 다비온파가 옳다면서 말을 덧붙여댔다. 다비온 백작의 만남은 거절했지만, 사리 분별 하나는 잘하는구먼!
진은 손끝으로 턱을 매만지며 넌지시 회의장을 둘러보았다.
“전하께서는 누구의 편도 들어서는 아니 됩니다. 이는 형평성의 문제로 이어져 결국 어느 한쪽의 불만을 키우게 되니, 균형으로 얻을 수 있었던 이득을 놓치게 될 것입니다. 전하와 관료들의 균형이 아니에요. 전하와 다비온 그리고 홀린의 균형입니다. 우리가 기울면, 한쪽이 올라간다는 뜻과 같습니다.”
이안의 조언대로 최대한 언급을 자제하고는 있으나, 돌아가는 꼬락서니 때문에 혀끝이 간질간질했다. 마음 같아서는 죽어라 쏘아붙이고 싶은데 말이다.
이안은 진의 의중을 알아챘는지, 서둘러 뒷말을 덧붙였다.
“한데 말입니다, 다비온에서 파업한다는 말이 있던데, 사실입니까?”
“파업이라기보다는, 전하께서 홀린가를 벌하시어 기강을 다잡기 전에는 업무에 들지 않겠다 표명한 것이지요. 사실 이는 명예와도 관련 있는 것이니. 크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정상적인 업무는 불가하오.”
“그걸 어찌 황궁에서 책임지라 하십니까? 제안을 먼저 넣은 것은 마법부인데요.”
이안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정면을 쳐다봤다. 다들 은연중에 황실과 마법부가 뜻을 같이하고 있다는 걸 인정한 게다.
“책임을 져도 마법부에서 지는 게 맞지요. 시대가 변해서 그런가, 이전 회의부터 책임 소재에 대한 논의가 참 이상합니다.”
“마법부에서? 뭐 어쩌겠다는 것이오?”
인사권에 대해서는 권한 없는 곳이면서.
이안은 턱을 살짝 들더니, 잠시 고민하는 척 침묵했다. 그러고는 이내 능청스러운 웃음.
“아, 어렵네요. 마음 같아서는 솔직히 홀린 공작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싶은데요.”
“뭐라고? 이안 히엘로 경!”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홀린가의 월권행위를 두둔하겠다 이거네요?”
다들 당장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설 것처럼 소리치자, 이안이 나른하게 손짓했다.
“진정들 하십시오. ‘마음 같아서는’이라고 하였습니다. 다들 영지 매입가와 마법부의 한 해 예산이 얼마인지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홀린 공작께서 본래 매입가의 다섯 배를 원한다고 하는데, 두 관료께서 그만한 가치가 있으신지 의문이라. 아시다시피, 제가 십 년이나 바깥에 있지 않았습니까?”
두 명만 자르면 천문학적인 예산을 아낄 수 있는데, 그걸 포기할 만큼 두 명이 값어치 있나?
이안의 노골적인 질문에, 다비온파는 일순 정적에 잠겨 들었다. 둘의 값어치로는커녕 다비온 가문의 모든 재산을 합치더라도 미치지 못할 게 자명했으니까.
“재임 기간은 꽤 되었지만, 특별히 진행하시는 업무도 없는 것 같고, 출근은 제대로 하시는지 의문입니다. 마크로 경께서는 일흔이 넘지 않으셨나요? 차기 장관을 노리고 계신 것 같습니다만, 글쎄요.”
“퀸타나 장관께서 버티고 계신데, 허허.”
“그렇지요?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 유능하시고, 무엇보다 아직 젊으신 터라.”
타 부서에서 이안을 슬쩍 두둔하자, 다비온파의 열기가 확 솟구쳤다. 그래서 지금, 자르자고? 귀족의 월권이 명백하건만, 그깟 돈 앞에 고개 숙이자는 것인가?
들을 것도 없다며, 다비온파 관료들이 자리를 박차려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공작의 발언만으로 황궁의 일원을 제할 수는 없지요.”
이안의 덧붙임에 이제는 다들 의문인 낯이다.
…저게 우리 편인지, 아니면 남의 편인지, 원.
“이안 경, 대체 어떤 입장이시오?”
“작금의 피해자는 홀린 공작에게 제적을 지명받은 두 분이시니, 두 분께서 직접 고발장을 접수하십시오. 마법부에서 지원하겠습니다.”
“고발장이라 하면?”
“월권행위에 대해서요. 죄목은-”
이안은 잠깐 생각하는가 싶더니, 싱긋 웃었다.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처음 황궁에 피해 구제를 요청하신 것과 같이, 제국법에 대한 위반 행위를 주된 것으로 올리면 되겠습니다.”
그러자 가만 듣고 있던 사법부 측에서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쳐들었다. 제국법 위반으로 재판이 진행된다면, 승소 시 그 피해배상금은 모두 황궁으로 귀속하게 되어있다. 피해자는 마크로 경과 차일스 경이지만, 배상은 황궁에서 받게 되는 게다.
그걸 모두 알고 저러는 것인가?
“문제 있으십니까?”
사법부 장관과 눈 마주친 이안이 물었다.
아. 알고 있는 게로군.
“…아니요. 없습니다.”
“예, 다행입니다.”
사법부 장관 머릿속으로 한 가지 가정이 그려졌다. 높은 확률로, 피해배상금은 홀린가의 영지로써 청구될 것이다. 그러면 그 이득은 고스란히 마법부로 흘러들어 가겠지. 참으로 징글징글하다.
“일단 마법부에서는 대외적으로 이런 입장입니다만, 알아두셨으면 좋겠습니다. 가치로 따진다면 저는 당장이라도 홀린 공작의 제안을 수락하고 싶다는 것을요.”
“이안 경이 생각하는 가치란 대체 무엇을 기준으로 하는 것인가? 행정부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분이고, 마찬가지로 내무부도 그러하네. 타 부서라고 하여-”
“오, 그렇네요. 기준이 없군요.”
누군가 그리 언급하자, 이안은 놓치지 않고 말꼬리를 잡아끌었다.
“수치화된 기준이 있다면 모두가 납득하고 이해할 수 있겠군요. 전하, 한 가지 건의드립니다.”
“이르라.”
가만 턱 괴고 있던 진이 자세를 바로 하며 허락했다.
“다비온가와 홀린가의 대립이긴 하나, 막대한 예산이 걸린 상황이기도 합니다. 마법부에서는 영지 매입을 위하여 공작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싶으나, 그것은 부당한 일이기에 절충안을 제안합니다.”
“절충안이라 하면, 어떤?”
“마크로 경과 차일스 경을 비롯하여 모든 관료의 ‘가치’를 수치화할 수 있는, 평가 제도를 도입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다들 동시에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지더니, 이안 쪽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정녕 미친 것인가?
“그리한다면 무엇이 더 값어치 있는지, 황궁에서 판단 내리기 용이할 것입니다. 주기적인 평가로써 직급과 보직의 위임을 결정한다고 하면, 홀린 가문 입장에서도 제안을 어느 정도 수용한 느낌이 들 테니 거래를 조율하기 편할 것 같습니다만.”
“자, 잠깐만요. 이안 경?”
너, 우리랑 같은 관료잖아.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는 있나?
“거래가 조율된다면, 당장 대금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이안은 관련 부서를 찬찬히 쳐다봤다. 앞으로 당장 21시간 내에 대금을 치르지 못할 경우, 마찬가지로 고발 사태다. 고발당해 옷을 벗든지, 아니면 목에 목줄을 차든지 둘 중 하나라고, 이안은 이르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두 관료를 해임하자는 부정한 입장으로 제가 돌아서지 않아도 되니, 여러모로 좋지 않겠습니까.”
마법부로서는 그깟 관료 두 명, 잘라버리고 대금 아끼는 편이 훨씬 경제적이고 이득이었다. 정도(正道)를 따라 다비온의 편에 설 터이니, 그쪽도 목줄을 목에 걸라는 뜻이다.
“어찌들 생각하는가?”
진은 심드렁하게 되물었고, 어디서도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침묵은 긍정이라는 뜻이니, 진은 한 차례 어깨를 으쓱거리곤 대답했다.
“알겠다. 그대들 뜻대로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