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52
제52화. 처형
광장에 모인 영지민들이 수군덕대며 교수형틀을 쳐다봤다. 한평생 변방에서만 살아왔던 그들인지라, 저렇게 기괴하고 무시무시한 사형 기구는 처음 본 셈이다. 그 뒤로, 언덕 위의 브라츠 저택은 언제나처럼 고즈넉하게 서 있었다.
“교수형이라고?”
“탈세도 중죄인데 저항까지 했잖은가.”
“세상에. 어쩌다 이렇게 된 거람…….”
“아니, 그러면 우리한테 세금은 그렇게 걷어가 놓고, 위쪽에는 올리지도 않았단 말이야? 그럼 그 돈들은 어디 갔어?”
“뱃속에 들어가서 그리 불룩한 거겠지.”
“미친 새끼네, 진짜! 세금 내려고 우리는 집까지 팔았어. 딸아이는 걸음마 떼자마자 밭일 배우느라 허리가 굽었다고!”
“이이가, 소리 좀 죽이게. 큰일 나려고 그래?”
“뭐 어떤가! 이제는 귀족도 아니고, 그저 죄인인데. 어차피 죽을 거 혼자 곱게 죽지! 병사들은 왜 일으킨 거야?”
“그러니까. 이런 건 줄 알았으면 애들을 저택으로 안 보내는 건데…….”
“애초에 백작님이 그 짓만 안 했으면 모두 좋았다고. 우리만 피해 봤어. 돈은 돈대로 뺏겨, 전투로 집도 박살 나…….”
그들에게 교수형이란 실로 불명예스러운 죽음이었다. 귀족으로서, 특히나 변경에서 야만족과 대치하던 군주로서는 검으로 삶을 마감함이 마땅했다.
특히나 아랫것들 보는 앞에서 대롱대롱 매달려 발버둥 치는 꼴이라니. 교수형은 위엄까지 함께 죽이는 처벌이었다.
“그런데 교수형틀을 천려족이 만드네?”
“안 그러면 저만한 통나무를 누가 옮겨?”
데르가의 처형대를 준비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바리엘인이 아닌 접경한 야만족이었다. 물론, 교수형대를 만들어 본 적이 없어서 조사단의 지시에 따르고 있었지만, 어째 분위기가 영 지휘 당하는 자들의 것이 아니었다.
“아, 거참 한번에 말하라고. 두 번 가게 하지 말고.”
“미, 미안하오. 기둥을 세워 박은 다음, 끈으로 꽉 묶어 고정하면 될 것 같소.”
형틀이 정면으로 보이는 높은 단상. 카칸티르는 광장의 영지민들과 조금씩 뼈대를 갖춰가는 교수형틀을 보며 새삼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불과 몇 달 전만 하더라도, 동맹과 적국 사이의 묘한 관계를 이어가던 데르가였다. 그런데 이제는 그 수장이 아랫것들 보는 앞에서 목이 매달리고, 자신은 높은 위치에서 그걸 구경할 예정이지 않나.
‘삶이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군.’
한편, 저택에서는 에리카가 머리를 쥐어 싸매며 공표문을 작성하고 있었다. 데르가의 죄목을 평민들도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고, 황궁의 위엄과 자신의 위업을 만천하에 알리는 중요한 작업이다.
드르륵.
그 아래, 이안은 지하 감옥에 당도했다. 맨 끝 감옥에 갇힌 데르가는 자갈을 문 채 천으로 시야를 차단당했다. 퉁퉁 부은 사지는 족쇄에 끌려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였다.
“문을 열어라.”
달깍.
이안의 지시에 천려가 별다른 의문 없이 문을 열어주었다. 데르가는 이안의 목소리를 들은 것처럼 귀를 쫑긋거렸다. 그에게서 오물과 핏물의 썩은 내가 진동했다.
“데르가 백작. 이안일세.”
“으으…….”
이제는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호칭까지 다 떼고 부를 정도다. 데르가가 반응하듯 움찔거리자, 연결된 족쇄 소리가 소름 끼치게 울려댔다.
끼리리릭.
“처형식 날짜가 정해졌다.”
“……!”
“그 짧은 새에 황궁으로 서신을 보냈던데, 마리브 황자에게 밀고라도 한 모양이지?”
데르가가 이안을 올려다봤으나, 눈이 가려져 있어서 표정을 확인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안은 천 아래 그의 눈빛이 심히 흔들리고 있음을 짐작했다.
“덕분에 고맙게 되었네. 에리카가 영주임명장을 받지 못하게 됐거든. 그로 인해 서둘러 브라츠를 떠나야 할 이유가 생겼고, 자네의 처형식도 당겨진걸세.”
데르가가 있는 힘껏 주먹을 뻗으려고 했으나, 결코 닿지 못했다.
후회스러웠다. 처음 사창가에서 데리고 왔을 때, 메리의 말대로 허튼짓 못 하게끔 어디 하나 불구로 만들어 놨어야 했다. 그깟 대외적인 시선이 무엇이라고!
“…읍읍!”
“메리와 첼 역시 죽었다.”
“…….”
“브라츠라는 이름을 가진 자 중, 그대가 제일 마지막 생존자야. 축하하네. 누구나 가질 수 없는 영광을 가졌어.”
데르가의 얼굴이 붉어졌다. 피가 거꾸로 솟는 게 여실히 보일 정도였다. 이안은 그의 머리채를 붙잡으며 마지막 말을 남겼다.
“너무 억울해하지는 마시게. 다 자네의 업보 아니던가.”
사창가의 여인을 겁탈하여 만들어낸 아이. 그것도 모자라 제물로 팔아버리기 위해 생모와 생이별시키고 학대를 밥 먹듯 했던 것. 욕심이 지나쳐 천려족 몰래 술수를 부린 것. 과다한 세금 놀음으로 중앙과 영지민 둘에게 외면당한 것 등등.
하나부터 열까지 그가 자초하지 않은 게 없었다.
“이안 님. 카칸께서 찾으십니다.”
“나가지.”
이안은 소리 없는 절규를 내지르는 데르가를 뒤로하고 지하 감옥을 나섰다.
바깥엔 성인 남자의 키를 훨씬 웃도는 창들이 일렬로 세워져 있었다.
“어어. 이안 경. 이것 좀 보시게나.”
“무슨 일이십니까?”
“창 길이는 괜찮을 것 같나?”
이안은 데르가의 심장을 뚫을 창들을 쭉 훑어봤다. 그리고 에리카 조사단장이 있는 창문 쪽으로 고개를 힐끗거렸다.
“처형식의 꽃이니, 에리카 단장에게 얘기해서 공표문에 짚고 넘어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음. 그래. 그거 좋겠어.”
무심결에 쳐다본 것인데, 에리카 단장은 초췌한 얼굴로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신경질적으로 커튼을 쳐냈지만.
촤악!
‘개 같은 상황.’
에리카는 머리를 짚으며 욕설을 중얼거렸다. 몰린에게 한 통의 해명 서신조차 없었다. 총회의 결정을 알고 있음이 분명하니, 분명 비슷한 시기에 전서구가 도착해야 했다.
“X발, 영감탱!”
몰린과 직접 만나면 문제가 얼추 풀리겠으나, 데르가의 처형이 끝나면 분명 브라츠 영지를 떠나야 했다. 이안과 천려족이 한시라도 두고 보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서신과 함께 출발했다 하더라도, 이제 절반쯤 내려왔을 텐데…….
‘안 되겠군. 나도 대책을 하나 세워두어야겠다.’
에리카는 골똘히 고민하더니, 이내 새 종이를 꺼내 편지를 적기 시작했다. 몰린에게 해명을 요구하는 것과 더불어 마리브 1황자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적의 적은 동지라는 말이 있듯, 닭 쫓던 개 신세가 되지 않으려면 그쪽으로 물길을 대놓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스윽.
에리카는 인장 대신 자신의 엄지를 베고서 피를 찍어 넣었다. 마법 물약으로 신원을 파악할 수 있을 터다.
“에리카 님. 말씀하신 자료를 찾아왔습니다.”
“이안 놈이 아주 야무지게도 싸 놓았구나.”
“바로 나가면 될 정도로 꼼꼼합니다.”
“재수 없는 새끼. 쯧! 거기 두어라.”
조사단원은 데르가의 탈세를 혐의할 중요 자료를 취합하여 에리카에게 넘겨주었고, 그 내용은 상세하게 공표문에 써 내려졌다.
데르가가 죽는 날, 그의 죽음에 대한 의미를 영지민들에게 일러주기 위해서.
* * *
드디어 날이 되었다. 교수형대가 만들어진 바로 다음 날이었다. 저택의 모든 이들이 밖으로 나와 지하 감옥 입구에 모여있었다.
“데르가를 꺼내와라.”
“네. 이안 님.”
이안의 명령에 천려 전사 두 명이 내려가 데르가를 질질 끌고 왔다.
“데르가 브라츠. 이제 그대를 처형할 시간이 왔소.”
에리카의 말에 데르가의 몸이 달달달 떨리고 있었다. 사지가 풀린 것 외, 눈과 입이 가려진 것은 똑같았다. 에리카는 부하들에게 눈짓하며 그를 광장으로 이끌었다.
“서둘러 움직인다.”
“어어? 꾸물대고 있네?”
그는 맨발로 브라츠의 땅을 밟으며 속죄의 행동을 보여야 했다. 터덜거리며 걸을 때마다 쇠사슬 부딪히는 소리가 울렸다. 아주 느릿하게, 도살장 끌려가는 짐승처럼 그는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다.
“데르가 브라츠. 움직여라.”
짜악!
“…으읍!”
조사단원은 어쩔 수 없이 채찍을 휘둘렀고, 데르가는 신음하며 한 걸음씩 발을 떼었다. 거의 반강제적으로 밀려나는 수준이다.
“브라츠 백작님이다…….”
“세상에나, 저 꼴이 뭐람.”
“가죽 벗겨놓으니 우리보다 더하네!”
“죽어라! 죽어! 우리 피 빨아먹고, 결국에는 가족까지 죽었어! 너 때문에!”
“정말로? 정말 저게 데르가 님이라고?”
광장으로 가는 도중, 영지민들의 기함이 사방에서 들려왔다. 난생처음 보는 가주의 처참한 모습. 실로 충격적이었는지, 광장에 도착할 때까지 거의 비슷한 말만 들려왔다.
저게, 정말로, 데르가냐. 이 정도가 핵심이다.
“올라가라.”
“흐윽…….”
쉬익! 쿵!
“데르가! 정녕 이게 최선이었나?”
“나쁜 자식아! 그러니까 잘 좀 하지이!”
“고통스럽게 죽어! 제발!”
그간의 업보가 한번에 터지는 순간이 왔다. 주춤거리며 계단을 오르는 데르가에게 돌이 날아온 것이다.
누군가는 자신의 아내가 데르가에게 희롱당했다며 분통을 터트렸고, 누군가는 세금을 못 내서 얻어맞는 바람에 절름발이가 되었노라 호소했다. 메리와 첼의 이름도 언뜻 들렸다.
“메리와 첼은 잡았대?”
“글쎄, 잘 모르겠는데.”
“근데 둘이 살아있으면 멸문이 아니지 않아?”
“처형식 이후 남은 조사단 역시 추격대에 합류할 거란 소문이 있어.”
“그래? 그럼 진짜 이방인들이 다 돌아가는 거네.”
“천려족이 남았지만, 저들도 겨울 되면 못 버티지.”
“아! 드디어, 일상이 돌아오는구나.”
부우우-
조사단원이 물소뿔을 불었다. 시끌벅적하게 떠들던 구경꾼들이 점차 목소리를 줄였다. 이내 에리카 단장이 데르가의 옆에 서며 공표문을 들어 올렸다.
“나는 황궁 조사단장 버티 에리카다. 지금부터 황제 폐하의 이름으로 죄인 데르가 브라츠 백작의 죄목을 알리겠다.”
그리고 그들이 조사한 데르가의 혐의와 그 증거를 낱낱이 읽어내렸다.
사실 평민들이 듣기에는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으나, 그 내용이 길어질수록 데르가가 부정한 일을 저질렀다는 분노만큼은 깊어졌다. 그리고 그것이 저들의 피와 땀을 빨아먹은 대가라는 것도.
“특히 몬느에 탄광의 생산량은 6만 톤에 달했으나, 중앙 신고는 절반에 그쳐 그 차익은 자그마치 금화 8,000개에 달한다. 이것은 지난 몇 년간 누락되었던 재산의 일부에 불과할 뿐이고…….”
“뭐? 금화 8,000개?”
“내가 잘못 들은 거 아니지?”
아래에서 듣고 있던 이안은 점점 일어나는 열기를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수확량이 얼마고, 수익은 몇 할이니 따위는 하등 의미 없었다. 그저 평민들에게는 금화 몇 개라 칭해주는 것이 명확했다.
“야, 이 나쁜 놈아! 어떻게 그래?”
“죽여! 당장 죽여!”
아래에서 다시 돌멩이와 쓰레기 따위가 날아왔다. 에리카 단장은 발치에서 쌓여가는 것들을 무시하며 마지막 문장을 낭독했다.
“이로 인해, 바리엘 제국에서 브라츠 성(姓)을 가진 자들에게는 영원한 죽음만이 있을 것이다. 황제의 명으로, 브라츠 가문을 멸문한다.”
따악!
그와 동시에 돌멩이 하나가 데르가의 관자놀이를 세차게 때렸다. 에리카는 단원들에게 식을 거행하라는 뜻으로 눈짓했다.
“안대를 벗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