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521
제521화. 자이라의 바람
정신없는 월요일 오전.
관료들은 한숨 돌리며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 주말에도 짬짬이 출근했던 것 같은데, 어찌 업무가 이리 많은가? 아니지, 그거라도 해서 이 정도인가?
대여섯 명의 사람이 모여 앉아 있었으나, 그들은 커피만 홀짝여댔다. 사소한 대화조차도 사치라는 듯이.
“아. 저기.”
그때, 누군가가 왼쪽으로 고개를 틀며 중얼거렸다. 마법부 장관, 이안 히엘로다. 방금 막 입궁했는지, 외출복을 입고서 마법사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나 싶었는데, 저자 얼굴을 보니 좀 알 것 같다.
“이안 히엘로입니다.”
“저자가 돌아오고 난 이후로, 황궁이 이상합니다. 평소에는 결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던 부장께서, 이 잡듯이 서류를 뒤지고 있습니다.”
“보이세요? 저 여기 머리카락 한 움큼 빠지는 거.”
“하아, 마법부 장관. 자기는 어리니까 맨날 밤새우고 하는 거지, 저희 같은 늙은이들한테는 너무 과한 업무 아닙니까?”
“늙은이라니요. 저 이안 경과 다섯 살 차인데요?”
“…그나저나 요즘 장관이 자주 나가십니다.”
동료의 대꾸에 잠깐의 침묵이 돌았으나, 자연스럽게 화제가 돌아갔다. 한 명이 기지개를 쭉 켜며 대꾸했다.
“황궁 인근 영지에 무기 제조 시설을 만들지 않았습니까. 어디 그, 두더지족 데리고 와서 진행하던데. 그쪽 경과 보느라 하루에도 서너 번씩 오간답니다.”
“참나, 마법부가 방위 사업이라니.”
“홀린가의 영지를 직접 받아냈으니까요. 기존에 해오던 일반 무기 품질 검사도 새로이 진행한다고 하네요. 통과 못 하면 사업권 전면 재검토하겠다고요.”
“예? 거기서까지 탈락하면, 홀린가 완전히 몰락 아닙니까? 그럼 다음 황후는 무조건 다비온 쪽에서 나오겠군요.”
다비온.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그쪽이 권력을 잡게 되면 관료들 쪽으로 힘이 들어올 터이니 앞으로는 대우가 더 나아지지 않겠나?
관료라 하면 제국 안에서도 손꼽히는 신분이건만, 최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업무 탓에 불만이 새로 생긴 게다. 엄밀히 말하자면 일이 늘어난 게 아니라 본래대로 돌아온 것이거늘, 그걸 기억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마법부에서도 홀린보다는 다비온이 유익하다 여기는 것 같았어요. 대회의장에서 홀린 쪽을 고발하면 도와준다 할 정도라.”
“그거, 연막입니다. 모르셨습니까? 영지 매입 과정에서 손 털었다고 하던데요. 그리고 무엇보다 다비온을 지원하는 거라면, 그 망할 평가 제도니 뭐니, 언급도 안 했을 것입니다.”
“그것도 맞긴 맞지요.”
“누가 황후가 되든 인권을 생각하시는 분이었으면 좋겠네요.”
“아, 제발.”
쪼르륵. 관료들은 점점 감기는 눈꺼풀을 들어 올리며 커피를 쭈욱 마셔댔다.
그렇게 있다 보니, 이안이 지나간 자취를 뒤따르는 한 무리가 보였다. 마찬가지로 마법부 정복을 입고 있었는데, 뭔가 차림새가 특이했다.
“어라, 저건?”
“클리포포드에서 마법사들이 왔나 보군요.”
“드디어 마법부가 완전히 다 모였나 봅니다.”
타닥타닥! 신나게 뛰어가는 마법사들의 옷자락이 시원하게 휘날렸고, 관료들은 다 죽어가는 낯으로 한숨만 푸욱 내쉬었다.
완전체가 된 마법부라니. 지금도 감당하기 힘든데 앞으로 얼마나 더 힘겨워질지. 상상도 하기 싫었다.
* * *
똑똑.
“이안 님.”
“이르라.”
마법사 한 명이 인기척을 내자, 이안은 서류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일렀다.
옆에서 작업을 돕던 로만드로가 무슨 일인가 싶어 쳐다보자, 문틈으로 얼굴을 들이민 마법사가 보였다. 꽤 들뜬 표정이다.
“클리포포드로 내려갔던 마법사들이 돌아왔습니다.”
“오, 그래? 다들 입궁했대?”
“예, 로만드로 님. 지금 마법부 앞에 와있습니다. 마차보다 먼저 날아왔더라고요.”
“참으로 오랜만이군. 이안, 어서 나가보자. 다들 보면 반가워할 것이네.”
클리포포드에서 붙들고 있던 바리엘 마법사들이 모두 귀국한 것이다. 이안 역시 펜대를 내려놓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부분 루스웨나 출신 마법사들이지요?”
“아무래도 그렇지. 자이라가 간다고 하여 루스웨나에서 망명해온 마법사들이 죄다 지원했었어. 물론 바리엘 출신도 조금 섞여 있지만.”
이안이 변경에서 올라와 동고동락했던 기존 마법부원들과는 달리, 그들은 마법부 소속이기는 하나 조금 거리감 있는 자들이었다. 아직 유대감이 덜 쌓인 탓이다.
이안이 밖으로 나가자, 계단 아래 삼삼오오 모여있는 자들이 보였다. 그들은 마법부원들의 환대를 받으며, 서로 이런저런 안부를 나누고 있었다.
그중 몇몇이 이안을 알아보곤 소리쳤다.
“오, 이안 장관님!”
“소식이 사실이었군요! 무사히 귀환하셨다더니, 참 다행입니다.”
시끌벅적한 해후를 웃음으로 무마한 이안은, 그들의 귀국을 위로했다.
“먼 길 오느라 고생했습니다.”
“아니요, 사실 여정보다 출발하는 게 더 힘들었습니다. 어우, 국왕께서 어찌나 치근덕대시던지.”
“하하하. 우리도 전해 들었어. 뭐, 마차 바퀴가 없어졌다고 했었나?”
“혹시 몰라서, 귀국 명령 떨어지자마자 마차는 따로 보내고서 저흰 그냥 날아왔습니다.”
“피곤해 죽겠네, 하암.”
“여기서는 그런 말 함부로 하는 거 아니야. 아코렐라 대장이 어디서 듣고 있을지 모른다고.”
“어이! 이쪽으로들 와. 이안 님 오셨어!”
혼잡한 무리 틈, 이안은 자이라를 단숨에 알아봤다. 짧게 묶은 꽁지머리와 얼굴의 반을 가리는 안경. 그사이 성인이 되어버린 터라 많은 것이 변했지만, 어릴 적 모습은 여전했다.
마법사들과 웃고 떠들던 자이라가 계단 위쪽으로 고개를 틀었고, 이내 눈을 크게 떴다.
“…이안 님.”
“어? 이안 님!”
“지, 진짜네요? 서신으로만 봤을 때는 감이 안 왔는데!”
“돌아왔습니다! 이안 님도, 저희도!”
“와, 이렇게 보니까 예전 생각난다. 그치, 자이라?”
전쟁에서 처음 만났던 그 순간 말이다.
자이라는 대답 대신, 단숨에 계단을 뛰어올라 이안에게 다가갔다. 놀란 로만드로가 뒤로 물러섰지만, 이안은 온화한 미소만 지으며 자이라와 마주 봤다.
“그간 잘 지낸 것 같구나, 자이라.”
“…이안 님. 심연, 심연에서 올라오셨다고 했지요.”
“그래.”
자이라는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 있잖습니까. 보자마자 이런 거 물어서 죄송하긴 한데요.”
“너의 할머니는 보지 못했단다.”
“…….”
무어라 물으면 좋을까, 횡설수설 고민하는 자이라의 속내가 너무 투명했다. 이안은 담담하게 그리 일러주었고, 이내 그 낯에서 기대감이 식어가는 걸 보았다.
“하지만 실망할 것 없다. 그곳과 이곳의 시간 차이로 인해 네 생각만큼 오래 있지 못했어. 하나 심연에, 네 할머니는 분명히 살아계신다.”
대신 죽음의 순간을 끝없이 겪고 있겠지만, 그건 다른 문제였다.
자이라는 답답하다는 듯 이마를 문질러댔고, 이안은 차분히 일렀다.
“만나고자 한다면 심연으로 직접 찾아가는 것이 가장 확실하다만, 나는 말릴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대해선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 없어.”
이안이 돌아올 수 있었던 건 신의 도움 덕분이었으니까.
그렇다고 방도가 아예 없는 건 아닐 터였다. 비밀을 먹는 집시와 멜라니아 그리고 클라크가 또 다른 길로 올라왔으니, 찾고자 한다면 분명 길이 있다. 하지만-
‘자이라가 할머니를 심연 밖으로 데리고 오고 싶어 한다면, 문제가 된다.’
자신도 나움 앞에서 같은 고민을 하지 않았나? 당장이라도 나움을 억겁의 죽음에서 구해주고 싶었지만, 그가 가이아로 올라오는 순간 세상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확신할 수 없었다. 온전한 바리엘을 그리고 가이아를 위하여, 심연 속 죽음에 잠긴 자들은 그대로 두는 수밖에.
“왜 도와줄 부분이 없다는 거예요?”
이렇게 돌아왔으면서.
그것도 예전의 모습 그대로.
자신의 할머니 또한 온전하게 돌아올 수 있다는 걸, 이안 스스로 증명하고 있지 않나? 금기의 마법을 써 심연에 떨어진 것과 그냥 떨어진 것에는 큰 차이가 있지만, 어쨌거나.
“기억이 없거든. 눈떠보니 라자산 인근이었다.”
“하, 젠장.”
“자이라. 자중해라. 이안 님이셔.”
“나도 알아! 아는데, 기분이 좀 이상해서 그래.”
할머니와 이안, 둘 다 심연으로 가길 선택했지만, 오로지 한 사람만이 돌아왔다. 금기의 마법이라는 족쇄만 풀어낸다면 방법을 찾을 것 같은데, 잡힐 듯 말 듯한 현실이 답답한 게다.
이안은 마법사들에게 손짓하여 괜찮다는 뜻을 보였다.
“그럴 만도 하지. 이해한다. 자이라, 잠시 장관실로.”
짐과 여독을 풀라, 이안의 명령에 마법사들이 뒤로 물러났고, 자이라는 천천히 계단을 마저 올랐다.
스윽.
장관실로 들어온 이안은 소파에 앉고는 자이라에게 맞은편을 권했다.
“듣고 말할 얘기가 많을 것 같아서.”
“실례했습니다, 처음 뵙자마자. 아까와 같은 말을 꺼내려던 건 아니었어요.”
“오, 실례라는 말도 할 줄 알고.”
“제가 아직도 사고뭉치인 줄 아십니까.”
자이라는 안경을 툭툭, 바로 올리더니 한숨 쉬었다.
“이안 님이 돌아오신 건 정말 기쁩니다. 심연과 이곳이 연결되어 있다는 증거니까요.”
“자이라. 먼저 하나 묻겠다.”
“말씀하십시오.”
“할머니를 심연에서 꺼내고 싶은 게지?”
당연한 걸 묻는다며, 자이라가 눈만 깜빡거렸다. 그곳을 겪진 못했지만 고통스러운 지옥임은 자명했다. 한시라도 빠르게, 그곳의 하루가 이곳의 일 년이라 하더라도 할머니를 구하고 싶었다.
“나 또한 소중한 사람이 있어.”
“그곳에서 만나셨습니까?”
“그래. 하지만 구하지 못했다. 아니, 구하지 않았다는 게 맞는 말이겠지. 한 사람으로 인해 세상이 예측할 수 없는 혼돈에 빠지는 걸 염려했기 때문이다.”
“저는-!”
자이라는 이안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채곤 벌떡 일어났다. 십 년 동안, 오직 할머니를 구하겠다는 사명 아래 살았다. 그런데 지금 와서 그러면 안 된다 말하면 자신은 어찌하면 좋나? 무엇보다 자신의 할머니는?
“진정하고 말을 끝까지 들어다오. 심연에서 구하지는 않았지만, 나 역시 그를 평생 거기에 둘 생각은 없다.”
“…어떻게요?”
시간을 사용할 것이다. 이대로 세상이라는 톱니바퀴를 돌게 하여, 백 년 후의 바리엘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리하면, 그곳에 나움 오비아가 존재할 터이니.
하지만 자이라의 경우에는 과거로 가야 했다.
“다몬 왕이 열쇠를 쥐고 있고, 러더포드가 그에 맞는 자물쇠를 품고 있다.”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어요.”
“곧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다. 자이라. 한 가지 당부하고 싶은 건, 할머니를 구하고 싶다면 그 방법을 조금 바꿔야 한다는 거야. 너를 위해, 그리고 세상을 위해.”
자이라는 몇 번 입술을 뻐끔거리더니, 한탄과 함께 토로했다.
“이안 님. 방법을 바꾸기에는 너무 멀리 왔습니다. 십 년 동안 제가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데요.”
스윽.
자이라는 옆에 놓인 책 두 권을 쌓더니, 맨 윗 부분을 톡톡 두드렸다.
“여기가 가이아입니다. 그리고 표지 아래 책이 균열이고요, 다음이 심연입니다. 세계는 각각의 층을 이루고 있어요. 이 말인즉슨, 층만 깰 수 있다면 균열과 심연 모두 자유자재로 오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가는 법은 알아도 오는 법은 모른다고 하니, 처음 들어설 때부터 아예 길을 만들어가며 내려가는 법밖에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허리에 붉은 실을 묶고서 미궁에 들어섰던 전사와 같이.
“균열은 마물 생성지이자 그 근간이다. 너무 많은 노력이 필요해.”
“생각보다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이드갈만 있다면.”
“하지만-”
“그리고 혹 불가피하다면-”
“자이라.”
이안이 자이라의 이름을 부르며 그를 쳐다봤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진정하라는 뜻이었다.
자이라는 순간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간 문장을 애써 지워냈다.
‘혹 불가피하다면, 틈을 조금 만들어 마물을 빼내면 될 것 아닌가?’
러더포드와 같은 생각을 해버렸다니. 자이라는 저도 모르게 소스라치게 놀라며 옷깃 아래로 주먹을 꽉 쥐었다. 그 경직을 알아챈 이안이 손등에 손을 올리며 일렀다.
“자이라. 생각을 멈추고 호흡하렴. 흥분 상태에서는 스스로에게 잠식당하는 법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