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522
제522화. 반려의 조건
“뭔 대화를 이렇게 오래 해?”
“그러니까, 궁금해 죽겠네.”
“밀지 말아봐. 귀 붙여도 안 들려.”
“너희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건데? 짐 정리 안 해?”
“내가 놀러 온 것 같아? 결재받으러 왔거든?”
“이안아? 이안아아.”
“쉿. 조용히 해, 베릭!”
베릭과 마법사들은 문에 바짝 붙어서는 인기척을 계속 살폈다. 클리포포드 균열 조사에서 자이라가 핵심 인물이긴 하다만, 단독 면담 시간이 생각보다 너무 길어졌다.
그 탓에 이안의 결재를 받기 위해 하나둘씩 모여든 마법사들이 줄을 이루었고, 소파에 누워 뒹굴거리고 싶은 베릭은 괜히 소란을 피워대며 안쪽에 신호를 보내댔다.
“저기.”
복도 끝, 황궁 직원 한 명이 조심스럽게 그들을 불렀다. 동시에 시선이 쏟아지자, 꽤 당황해하는 낯이다.
“장관님께 무슨 문제 생겼습니까?”
“그쪽도 보고서 올리려고요? 맡기고 가든가, 아니면 줄 서세요. 저희도 기다리는 중이라.”
“황태자 전하의 명이십니다.”
“어라.”
그러면 말이 달라지지!
마법사들이 좌우로 비켜주며 길을 터주는 것과 달리, 베릭은 문고리만 붙들고서 연신 찡얼찡얼댔다.
똑똑.
“장관님. 잠깐 실례합니다.”
“이안아아. 황태자 전하 명이래.”
이걸 밟고 갈 수도 없고, 원. 직원은 머뭇거리더니 베릭의 팔과 다리 사이를 디디며 일렀다. 그러자 바로 안쪽에서 허락이 떨어졌다.
“들어오시게.”
벌컥!
이안은 책상 앞에 선 채 서류를 고르고 있었고, 자이라는 안경을 슥슥 닦는 중이다. 빼꼼, 십수 명의 마법사들이 동시에 고개를 들이밀며 눈알을 굴려댔다.
“무슨 일이신가?”
“아, 예. 버고스로 갔던 사절단 소식입니다. 갑작스러운 습격에 전령을 제외하고 전원 사망했다고 합니다. 황태자 전하께서 공식으로 긴급회의를 여신다고 하니, 마법부도 필히 참석하라는 명이십니다.”
사절단이 모두 죽었다.
서류 정리하던 이안의 손짓이 멈추었고, 장관실을 둘러보던 마법사들의 시선 역시 직원에게 집중되었다. 확신한 것이다. 전쟁의 시발점임을.
“알겠네.”
“예, 그럼.”
꾸벅, 직원이 인사하며 뒤로 물러나자, 베릭이 후다닥 달려와 소파에 몸을 뉘었다.
“하여간, 베릭 저거는 이런 상황에서도 눕고 싶어?”
“전쟁 나가면 똥통에서 구를 건데, 시간 있을 때 즐겨야지. 너희도 어지간하면 쉬어둬라. 아 참. 마법부 회의 가야 하지? 캬캬.”
빠직. 마법사들의 눈은 웃고 있었으나, 속에서 올라오는 빡침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다들 달려들어 베릭의 멱살을 잡으려고 하자, 자이라가 일어나며 웃옷을 툭툭 털었다.
“우리는 후방에서 지원하니까 똥통 냄새 맡을 일도 없지. 베릭, 너나 실컷 굴러라.”
“이게, 연장자한테 반말?”
“왜, 네가 잘하는 짓이잖아?”
“우씨! 이리 와!”
“이안 님. 그럼 나가보겠습니다. 자세한 건 보고서로 올릴 터이니, 다시 말씀 나누시지요.”
자이라는 이안에게 꾸벅 인사하는 와중, 등 뒤로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루스웨나 출신 마법사들이 마법부에 스며드는 데 베릭이 큰 역할을 하는 게 분명했다. 정작 본인은 모르는 것 같지만.
“쪼끄만 게! 죽여버려, 진짜!”
…여전하구나. 여러 방면으로.
이안은 피식 웃으며 나가보라 손짓했고, 베릭은 자이라 쪽에 대고서 이를 박박 갈아댔다. 마법사들의 집단 구타에 꼼짝없이 붙들린 상태로.
“이안 님. 사절단 피습과 관련된 회의라면, 마법부에서는 뭘 준비하면 되겠습니까?”
외교 사절단이 공격당하다니. 흔치 않음을 넘어, 처음 겪는 일이다. 무얼 준비해야 할지 막막한 게다.
사락, 이안은 서류를 찬찬히 읽으며 잠시 고민했다. 사절단을 공격한 주체가 누구인지에 따라, 전쟁의 과정이 조금씩 달라질 터였다. 러더포드 쪽인지, 아니면 아탄족 쪽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의외로 왕당파나 다른 세력일 수도 있겠지.
아무튼, 우선순위는 즉위식인데…….
“즉위식과 출정식을 같이 하지 않으실까 싶다.”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전하께서 참전 의지가 강하시니까요.”
“그게 낫겠습니다. 전쟁 발발 직전이라, 즉위식 시일 잡는 것도 조금 애매했고, 무엇보다 사기 증진엔 그만한 행사가 또 없을 것입니다.”
“그럼, 마법부에서는 행사 준비를 하는 게 좋겠군요. 마법부가 건재하다는 걸 보여줄 기회이기도 합니다.”
이안이 흰 웃음을 지었다. 짤막한 언질 하나에도 마법사들이 의미를 곧잘 해석해낸 것이다. 정작 제일 중요한 건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외국 귀빈 초청을 통해 각국 입장을 파악할 수 있을 터.’
입장만 파악하겠는가? 즉위와 동시에 출정이 이루어진다는 건, 제국에 반하는 국가들의 주요 인사층을 바리엘에 묶어둘 수 있음을 뜻했다.
아마 각국에서는 이 점을 고려하여 반대 세력의 인사를 보내거나 아예 불참 의사를 보일 것인데, 전자는 기득권 세력에 반대되는 자들과 접촉할 기회로, 후자는 제국에 예를 보이지 않았다는 명분으로 쓸 수 있다.
‘불참까지 한 경우라면, 전장에서 만나게 될 테니 명분을 따지고 말고 할 필요 없으려나.’
“외국으로 보낼 전서구도 정리해 두어라. 마력석관리부에 일러서, 마력석에 문제가 없는지 다시금 점검하고.”
“예, 알겠습니다!”
클리포포드는 분명한 우군인데, 루스웨나와 하완, 그리고 다른 소수 나라들은 어떻게 나올지 확신할 수 없었다. 아마 북쪽 인근 국가들은 러더포드 세력일 가능성이 크겠지.
“또한-”
“또, 또 있습니까?”
발만 떼었다 하면 명령이 떨어지니, 마법사들은 장관실을 나서려다 멈칫했다.
“데라족에게 전해서 품질 검사할 일반 무기를 올리도록. 홀린가는 남은 사업권이라도 지키기 위해 온갖 수를 다 쓸 것이다. 거의 전투 막바지이니.”
“전투 막바지요?”
“그래.”
황비가 되는 것과 태자비가 되는 것. 둘 중 어느 것이 쉽겠는가?
진이 황제 자리에 오르기 전, 옆자리를 사수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거세질 것이다. 홀린과 다비온, 두 가문에서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그 아래에서, 또 그 아래에서 위로 오르고자 하는 자들의 손길이 뻗어날 터.
‘한데, 로버사이드… 그 꿈이 참 의아하다.’
진의 어린 시절부터 수호자를 자처했던 자가, 저 대신 보여준 새로운 인물이지 않나. 아무래도 진의 짝이 아닐까 싶으면서도 당장 확신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이안은 무의식적으로 펜을 들어, 그날 보았던 여자를 가볍게 그려냈다. 자세히는 보지 못하여 흐릿하다만…….
“흐음.”
이안이 턱을 매만지며 고민하는 사이, 마법사들은 이안의 그림을 스리슬쩍 훔쳐보았다. 이내, 하나같이 떡 벌어지는 입들.
‘이안 님도 인간적인 면모가 있긴 있네…….’
‘진 전하랑 그림 실력이 똑같으셔.’
‘저거 그림인가? 우리가 모르는 외국어 아니고?’
‘사람인 것 같지 않아? 눈, 코, 입.’
‘싹 난 음식물 같은데.’
‘…역시, 신께서는 공평하시지. 암.’
마법사들은 눈짓을 주고받으며 이안의 펜 끝을 연신 힐끔거렸다. 시선을 눈치챈 이안이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세우며 일렀다.
“그만 나가도 좋다.”
“…아, 예에!”
“송구합니다!”
“그, 이안 님-”
“허튼소리 말고 어서 나와!”
콰앙!
어설프게 그림 실력을 칭찬하려던 마법사가 동료들에 의해 질질 끌려 나갔다.
다들 왜 저러는 것이지? 이안은 굳게 닫힌 문만 바라보다, 다시금 서류에 집중했다.
* * *
“감히 바리엘 사절단을 공격하다니!”
“미친것들 아닙니까? 당장 본때를 보여줍시다!”
대회의장은 오랜만에 단합되는 분위기였다. 며칠 전만 하더라도 너희 부서니, 우리 부서니 싸우던 게 무색하게 말이다. 공공의 적이 나타나니, 바리엘이라는 소속감만이 남아버렸다.
툭.
테이블 위로 보고서를 던진 진. 눈매가 서늘하여, 그 누구라도 지금 황태자가 분노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전령의 보고에 따르면, 사건 시각은 새벽 다섯 시쯤. 여명이 터오긴 했으나 아직 어두웠다고 하는군. 갑작스러운 습격으로 사절단 대표는 마차 안에서 즉사. 호위병들은 저항하였지만, 압도적인 힘의 차이로 반항 한번 제대로 못 하고 사망. 도망치던 단원들 모두 붙잡혀 그 자리에서 목이 베였고, 전령은 피신했지만 놓아준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사망한 자들 모두 외교부에서 오래도록 일했던 관료들이다. 외교부 장관은 진과 마찬가지로 열을 잔뜩 내며 덧붙였다.
“전투 방식과 목격자의 증언 따위를 토대로 했을 때, 아탄족 족장 에프디람과 그 부족장 격인 베노로 추정됩니다.”
“족장은 마법사 아닙니까? 마법을 썼답니까?”
“직접 쓴 것은 아니고, 베노의 짓으로 추측됩니다. 마검을 사용한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사절단 대표의 시체가 마차와 함께 두 동강 났습니다.”
끔찍한 죽음을 상상한 관료들이 미간을 찌푸렸다.
“아탄족이 바리엘 사절단을 해쳤다면, 그쪽 입장은 들을 필요도 없겠군요.”
“하여간 이해할 수 없는 작자들입니다. 바리엘 북쪽에서 머물면 큰 힘 들이지 않고 마물을 먹을 수 있을 터인데 말이지요.”
“아탄족의 전력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겠습니까?”
“북쪽 균열 지대에서 마법부가 꾸준히 보고서를 올려주었기에 자세히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파악된 바가 있습니다.”
“하면, 버고스의 반왕당파, 그러니까 러더포드와 아탄족이 결탁하였다고 보면 되는 것이지요? 다른 세력은 없습니까?”
“그것은-”
외교부 장관이 이르려고 하자, 진이 손을 들었다. 이안은 고개를 살짝 숙인 채로 황태자의 발언을 기다렸다.
“아직 외교적으로 특별한 움직임을 보이는 곳은 없지만, 그걸 가려내기 위해 즉위식을 이용할 것이다.”
역시. 이안은 눈썹을 까딱거리며 저도 모르게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서로 직접 논한 바는 없지만, 이렇게 의견이 일치할 때면 웃음이 새어 나오는 게다.
이에 몇몇 관료들은 날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입을 벙긋거렸다.
“즉위식을 이용하신다니요, 전하.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즉위식과 출정식을 함께 열면, 외국의 흐름을 인지할 수 있음과 동시에, 각국의 귀빈들을 바리엘에 머물게 할 수 있다. 기회를 창출하기에는 그만한 것이 없지 않나?”
“하오나 전하. 즉위식은 제국의 거사입니다. 출정식과 합동하여 치르기에는-”
“합동 안 될 이유가 있다면, 지금 이르라.”
진의 명령에 관료들이 잠시 수군거렸다.
황제의 즉위식은 사실 황제의 권위와 직결되는 사안인지라, 그 누구보다 황제 본인이 신경 쓰는 부분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 크고 장엄하게, 보다 화려하게 자신의 권위를 세상에 알리는 행사였기에, 진이 나서서 즉위식과 합치자고 하면 사실 말릴 이유가 없긴 했다.
관료들은 난색을 표하던 자들의 옆구리를 툭툭 치며 고개를 살짝 가로저었다. 입 다물고, 저건 진의 뜻대로 하자는 신호였다.
“없습니다.”
“예. 즉위식과 출정식이 함께 진행된다면, 제국민들의 사기 진작에도 효과가 크겠지요.”
“하면, 전하. 즉위식 후 바로 출전하실 것입니까?”
“내가 앞장서지 않으면, 그대가 할 것인가?”
“아. 그, 그저 여쭈어보았습니다.”
진의 퉁명스러운 대꾸에, 관료가 멋쩍은 듯 수염만 긁적거렸다.
그와 동시에 번뜩이는 눈빛들. 황제가 황궁을 비운다면, 그를 대신하여 자리 지킬 사람이 필요함을 인지한 것이다. 예를 들면, 황후.
“전하. 하면, 즉위식 전에 황태자비를 맞이하여 내실을 다지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적극적으로 동의하고 권하는 바입니다. 전하께서 바리엘을 비우시는 동안, 굳건하게 지키실 분이 필요합니다.”
“시간이 촉박하니, 우선 약혼식만 간소하게 하시는 것을 추천해 드립니다. 종전 후, 축포와 함께 국혼을 성대하게 진행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만.”
진은 이럴 줄 알았다는 듯, 심드렁하게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한 번쯤은 정확하게 짚고 넘어갈 부분이긴 했다. 그의 옆자리는 자신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라, 바리엘에게도 중요한 자리였으니.
“내 나름대로 기준을 몇 세워두려고 하는데.”
“예. 이르십시오. 전하.”
“가문의 재화를 8할 이상 방위 사업금 명목으로 내놓거나-”
엥? 저게 무슨 말인고? 세상에 어느 미친 가문이?
관료들의 눈이 동그래지면서 동시에 커졌다.
“아니면 나와 함께 전장을 누빌 여인이 좋겠는데.”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