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523
제523화. 보석 장신구
참으로 신기했다. 적막에도 분위기라는 게 느껴졌으니까 말이다. 어느 때는 공포를, 어느 때는 놀라움을, 또 어느 때는 감탄을 그대로 담아내었는데, 지금 회의장의 적막에선 모두가 이견 없이 ‘황당함’을 느끼고 있었다.
제일 먼저 정신 차린 관료들이 하나둘씩 첨언했다.
“전하, 전장을 함께 누비는 황후라니. 말도 안 됩니다. 황후께서는 전하를 대신하여 빈 황궁을 지키셔야지요. 어찌 두 분이 함께 자리를 비우신단 말씀이십니까?”
“예. 바리엘의 국민들이 불안해할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엇보다, 귀족 가문 영애 중 전쟁터에 나가 진과 함께 적진을 누빌 이가 누가 있나?
귀족들의 참전은 검술과 말타기를 꾸준히 훈련받은 영식들에게도 두렵고 버거운 일인지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황후와 마찬가지로, 안쪽에서 바리엘을 지킨다는 명분을 따름이 다인 게다.
‘예전에 세르오 가문이 클리포포드-버고스 전쟁에 참전했다고는 하는데, 소모된 군비가 어마어마했다지 않습니까? 가산(家産)만 탕진하고 별다른 이득도 없었고요.’
‘그건 경우가 좀 다르긴 한데, 크흠.’
‘쉿. 그쪽 가문은 어찌 언급하십니까? 부정 탑니다.’
마지막으로 보여줬던 참전의 결과 또한 처참하니, 정말 벼랑 끝에 몰린 몰락 가문이 아닌 이상 전쟁에 가문 일원이 직접 참여하는 경우는 없다고 보는 게 맞았다.
그런데 또 뭐라고? 재산의 8할을 방위 사업금으로 내?
“전하. 혹… 아직 혼사 생각이 없으신 것입니까?”
반려를 맞이하기 싫다고 돌려 말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대놓고 어깃장을 놓고 있는 것이라.
하지만 진은 영문을 모르겠다며 어깨를 으쓱거리더니, 태연한 투로 대꾸했다.
“황실의 존속이 급한 문제이건만, 내 어찌하여 국혼을 마다하겠는가? 황후는 나의 반려요, 황실의 인원이니, 그녀의 가족 또한 나의 가족이다. 전쟁을 위하여 그만한 성의를 보이는 게 대체 무엇 어려운 일이겠는가? 반대 되는 입장에서, 내가 황후의 가주였다면 모든 것을 내놓았을 것이네. 바리엘의 부흥이 곧 가문의 부흥이니까.”
“전하.”
“또한, 전시에 황후가 궁에 남아있던 것이 관례이긴 하나, 지킬 의무는 없다. 나에게 당장 돌볼 후사가 있는 게 아니니까. 부부는 일심동체라 하였으니, 나는 전장에서 나와 함께 바리엘의 영광을 높이 드높일 자를 원한다.”
“어허, 이것 참.”
다들 수군대며 당황스러운 낯을 숨기지 않았다. 그나마 떠오르는 것이 홀린 가문의 카일라 영애 정도인데, 그녀 역시 검술보다는 무기 제조에 근본을 두고 있는 터라 진의 기준을 충족할지는 미지수였다.
무엇보다, 카일라 본인이 전장으로 나가는 걸 받아들일지부터가 문제지만.
“전하. 일반적이지 않은 기준입니다.”
“내 반려를, 아버지와 어머니도 아닌 그대들이 어찌 첨언하여 기준을 바로 세우려 하는가?”
“하오나 전하, 유수한 가문의 여식들께서는 대부분 검술이나 무술과 거리가 멉니다.”
“그러면 전쟁터에 미리 나가 있을 터이니, 생각 있는 자들은 단련하여 나오라 이르면 되겠군.”
“전하!”
농담하십니까?
관료가 눈을 번쩍 뜨며 소리치자, 진은 싱긋 웃기만 했다. 살벌한 기운이 뚝뚝 떨어지는 시선이라, 그 답은 명확했다.
“왜.”
농담 아니다.
차라리 다른 때였다면 이런저런 말을 붙여보기라도 했을 터였다. 하지만 갚을 대금이 있는 자들은 묵묵히 듣고만 있는 마법부 장관을 따라 침묵했고, 평가 제도에 묶인 다비온 쪽도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이러니 대체 그 누가 말도 안 되는 기준이라 큰소리를 내겠는가? 관료들은 속으로 혀를 차대며, 참담한 심경을 애써 눌러 담았다.
‘이대로 두었다가는 황궁에 큰일이 나도 관료들이 입 하나 벙긋 못 하겠습니다.’
‘예, 그러게 말입니다. 전하께서는 모두의 의견을 귀담아들으실 필요가 있는데요. 허허.’
“전하.”
그때, 이안이 침묵을 깨며 발언했다.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것은 모두가 제 역할을 제대로 해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검과 방패를 들고 나서는 병사와 그들을 지원하는 의무병, 심지어는 조리병까지도요. 현실을 고려하시어, 조건을 조금 완화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관료와 귀족의 반발이 거세질지도 모르겠습니다.
뒷말을 이어붙이진 않았지만, 이안은 진이 저의 의도를 명확히 파악했음을 알아챘다.
“그래. 일리가 있다. 꼭 무기를 잡지 않아도 좋으니, 어떠한 역할이든지 참전하여 제 몫을 다하는 자를, 내 눈여겨보겠다.”
“현명하시옵니다.”
이만하면 되었지? 이안이 고개를 살짝 들어 관료들을 쳐다보자, 다들 어쩔 수 없다는 듯 합창했다.
“예, 전하. 현명하시옵니다.”
“그럼 이어서 바로 다음 사안으로 넘어가지. 외교부는 버고스를 제외한 주요 아홉 개국에 즉위식 초청장을 보내도록 하라.”
클로포포드, 루스웨나, 하완을 제외하고서는 대부분이 북쪽의 작은 나라였다.
아스타나 역시 개중 하나.
이안과 로만드로는 동시에 눈을 마주쳤다. 실로 오랜만에 하샤를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외교부 장관은 받들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관료들은 정확한 날짜와 식의 순서 따위를 상세히 의논했다.
‘이걸 홀린 가문으로.’
‘다비온에 보내.’
그러는 와중에도, 탁자 밑을 오가는 수많은 쪽지. 관료들은 제각각 줄을 댄 가문으로 따끈따끈한 정보를 전했다. 그 부산한 움직임을 진과 이안 모두 눈치챘지만, 모른 척 회의에만 집중했다.
“아니 근데, 재산을 내거나 영애가 전쟁에 참여하거나 둘 중 하나인데, 죄다 우르르 전쟁 나가겠다고 하면 어찌하나? 그건 그거대로 문제인데.”
“그럴 리 있겠습니까. 홀린과 다비온이 떡하니 버티고 있는데. 카일라 영애 아니면 클로이 영애. 둘이서 겨룰 것입니다. 난도질이 낭자한 곳에 분수도 모르고 발 뻗었다가는 잘려 나가지요.”
“그렇겠지? 지금 홀린이 한풀 꺾인 추세라 해도.”
“예, 카일라 영애는 잘하면 출전할 것 같기도 한데, 클로이 영애는 모르겠네요.”
관료들은 앞으로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며 고개만 설레설레 저어댔다. 어수선하게 굴지 말라는 진의 경고성 짙은 시선에 금세 조용해졌지만.
* * *
“클로이. 이것 봐봐. 이번에 새로 들어온 드레스인데, 예쁘지? 근데 나한테는 색이 안 받더라고. 너 입을래?”
“음. 좋네. 화사하고 예뻐.”
“이건 뭔데?”
“저번에 생일 선물로 받았는데, 몇 번 안 찼어.”
“저거, 샬롯 오라버니가 준 거잖아.”
“누가 준 게 뭐 그리 중요하니? 나하고 안 어울린다는 게 중요하지.”
“그러게. 좀 그렇긴 하네. 샬롯 경이 이렇게 안목이 없었나? 클로이는 어지간한 거 다 잘 어울리는데.”
클로이는 어릴 적부터 절친한 영애들과 둘러앉아 옷과 보석 따위를 나누는 중이었다.
거울 앞에 선 클로이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빛나지 않은 곳이 없었다. 찬란한 적발, 귀걸이, 흠결 없이 매끈한 피부, 이어서 목걸이까지.
만족스레 웃는 것도 잠시, 바깥에서 쿵쿵거리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아가씨!”
“유모, 소란 떨지 말라니까 그러네.”
클로이는 거울을 통해 유모를 꾸중했다. 평소라면 바로 죄송하다 일렀을 터인데, 유모는 가쁜 숨을 헉헉 들이쉬며 손을 내저었다.
“이러고 계실 때가, 아, 아닙니다. 헉헉.”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황태자 전하께서 황후 책봉 기준을 이르셨다네요. 지금 황궁에서, 급히 전갈이 왔습니다.”
클로이가 고개를 휙 돌렸고, 소파에 앉아있던 영애들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유모를 쳐다봤다. 드디어, 황태자 전하의 혼사와 관련하여 공식 입장이 나온 것이다.
클로이가 유모에게 성큼성큼 다가가자, 다른 영애들은 쳐다보지 않는 척 귀만 쫑긋거렸다.
‘무슨 기준이려나?’
‘글쎄.’
궁금해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기대가 차오른 눈빛이다. 황후의 재목은 클로이밖에 없다 떠들면서도, 내심 자신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여겼던 자들의 태도였다.
“뭐? 농담이지?”
“노, 농담 아닙니다. 아가씨. 지금 주인님께서도 전언 듣고 급히 귀가 중이시라 합니다. 오늘 저녁에 가문 대회의를 열어 의논할 것 같습니다.”
“이게 대체…….”
“클로이, 왜 그래?”
“무슨 일인데?”
클로이는 멍하니 허공만 응시하다, 영애들의 부름에 고개를 돌렸다. 토파즈와 같은 금안에 알 수 없는 감정이 깃들어있었다.
“왜 그러는데?”
어서 말해봐. 황태자 전하께서 어떤 반려를 찾으신다니? 집안? 미모? 아니면 학식?
“이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
“뭐가아.”
“가문 재산 8할을 방위 사업금으로 내놓거나, 아니면 전쟁에 같이 참여하는 이 중에서 눈여겨보시겠다 하네.”
순간 반짝거리던 영애들의 눈빛이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그게 무슨 미친 조건인가?
“잘못 알려진 거 아닐까?”
“맞아. 혼사는 가끔 와전되는 일도 있으니까-”
“글쎄. 직통으로 떨어진 전언이라.”
클로이가 화장대 앞에 앉으며 단언하자, 영애들은 초라히 눈짓만 주고받았다. 황궁에 연 없는 너희 가문이라면 몰라도, 다비온의 정보는 확실하다 면박 준 것이다.
그들은 소파 등받이에 팔을 기대며 클로이를 돌아봤다.
“어떻게 할 건데?”
“오늘 아버지가 가문 소집령 내리셨어.”
“근데 내용이 조금 묘하긴 하다. 카일라 영애한테 유리한 조건이잖아. 혹시 황태자 전하, 그쪽에 마음 두신 건 아니겠지?”
그 말에, 클로이가 시선을 옆으로 돌리며 영애들을 쳐다봤다. 사람을 잡아먹을 것 같은 눈동자에, 다들 어색한 미소만 흘려댔다.
“아니, 그렇잖아. 카일라 영애는 무기 쪽으로 지식 있고 검술에도 능통하다 하니, 재산 8할 내는 것보다야 직접 전장에 나서는 게 맞지 않겠어? 설마 전하께서 공작가 여식을 전면에 내세울 리는 없고, 카일라 영애도 나가서 조금만 고생하면 될 일이잖아. 헌납할 재산에 비하면 그게 훨씬 낫지.”
“맞아. 게다가 전하 곁에 있으니 사적으로 오가는 말도 있을 것이고.”
“클로이 너, 솔직히 전쟁 나가라고 하면 안 나갈 거잖아. 백작님 돌아오시면 잘 이야기해 봐. 방도가 있을지도 몰라.”
“그래. 여러모로 카일라 영애보단 네가 적합한데, 황태자 전하께서는 대체 왜 이런 조건을 내거셨는지, 원.”
“국혼이 장난도 아니고, 안 그래?”
“조금 어이없기는 해. 차라리 국혼을 미루겠다고 하시든가. 괜히 말만 여럿 나오게.”
타악.
클로이는 귀걸이를 빼내어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싱긋,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말한 대로, 나는 전쟁에 나갈 생각이 없어. 그런데 전하의 뜻을 우리가 감히, 어찌 헤아리겠니? 다들 무례한 발언은 삼가도록 하자.”
앞으로 내 반려가 될 남자니까.
클로이는 진이 혜안을 갖고 있을 거라 여겼고, 그렇다면 분명히 카일라가 아닌 자신을 선택할 것이라 생각했다. 당장 보기에는 자신에게 불리한 조건이지만, 필시 내면에는 다른 뜻이 있을 것이라.
영애들은 알겠다는 듯이 눈만 찡긋거리며 웃었고, 대화는 어색함 속에 멈췄다.
‘가문 재산 내는 것은 선택지가 없다고 생각하는 게 맞아. 이건 최소한의 자격에 불과하니까, 혹여 문제가 생겼을 때 가문의 권력을 쥐고 있는 게 현명해.’
그렇다면 남은 일은 전장에 나가는 것.
하나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에게는 무리였다. 살면서 찻주전자 한번 제대로 들어본 적 없는 자신이, 거기에 가서 대체 무엇을 한단 말인가? 한몫해내는 건 어불성설이고, 민폐를 넘어서 아군을 방해할 수도 있다.
“…내가 못 나가면, 카일라도 못 나가게 하면 되겠네.”
“응? 뭐라고?”
“있잖아, 알아봐줄 게 있어.”
“뭐, 뭔데?”
우리, 친구 맞지? 클로이는 영애들에게 다가와 앉으며 다정하게 속삭였다.
“홀린가로 가서 분위기가 어떤지 봐줄래? 그리고 내가 예전부터 신경 쓰이던 게 있거든. 카일라 영애가 성인식 날 차고 왔던 보석 장신구. 그것 좀 구해다 줘.”
“그, 그걸 어떻게 해. 클로이.”
영애들이 난색을 보이자, 클로이의 안면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능력껏, 잘. 내 친우들이면 그 정도는 문제없는데.”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