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526
제526화. 버고스 혈통
콰앙!
“나와보시오!”
홀린 공작가 앞으로 몰려든 마차들. 다비온 백작은 물론이고, 그의 자식들과 가문의 일원 모두가 무장한 상태였다.
홀린가의 시종들은 다급하게 안쪽으로 피했고, 집사는 경비들을 이끌어 정문을 사수한 채 그들과 마주했다. 살기 어린 분위기가, 아주 날을 잡고 온 게다.
집사는 속으로 한숨을 삼키며 정중하게 물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무슨 일? 지금 무슨 일이라고 했나?”
채앵!
다비온가의 장남이 검으로 정문 철창을 거칠게 내려쳤다.
순간 불꽃이 튀어 오를 만큼 강한 힘. 경비들이 놀라서 멈칫거렸으나, 집사는 되려 침착하게 앞으로 다가갔다.
“저택 안으로 드시기 위해서는 무장을 해제해 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백작님과 그 수행원 두엇 정도만 허락하겠노라고, 공작님께서 전하셨습니다.”
“귀한 남의 가문 여식 얼굴에 그리 상처를 내놓고도 이런 태도라! 공작이 아니라 어디 시정잡배인 줄 알겠다!”
“…언사가 과하십니다.”
“공작께 직접 나오라 전하라. 아니면 친히 들어가겠다. 그 귀한 여식 얼굴에도 클로이와 똑같은 상처가 나기 전에는 절대 못 돌아간다!”
“이런 식으로 나오시면, 저희도 법대로 진행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경비대를 부르고, 정식으로 고발하겠습니다.”
“바라던 바! 하지만 그 전에 카일라에게서, 아니, 홀린 가문에게서 피를 보아야겠다!”
홀딱 젖어 돌아온 카일라 아가씨가 대충 전언하긴 했지만, 이는 예상보다 거센 반응이다.
집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시종에게 눈짓했다. 공작님을 비롯하여 가문 사람들을 모셔오라는 신호였다. 그들이 몸을 돌리려는 순간, 마침 홀린 공작이 로브를 휘날리며 등장했다.
“…소란이 과하오. 정문을 열라.”
“예, 공작님.”
정문이 좌우로 갈라지자, 다비온 가의 일원들이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섰다. 마치 적지를 침범한 전사들처럼.
“오호, 대단하신 공작님. 드디어 납시셨군요. 대체 자식 교육을 어찌 시키셨기에-! 남의 귀한 집 여식 얼굴에 상처를 낸단 말입니까? 카일라 영애도 나오라 하십시오!”
“카일라는 지금 젖은 머리와 옷을 말리고 있네. 마찬가지로, 그쪽 여식 또한 교육을 아주 잘 받은 것 같아. 물 잔을 끼얹는 건, 대체 어디서 배운 천한 짓거리인가?”
공작의 뒤로 하나둘씩, 홀린가의 자식들 또한 모습을 드러냈다.
집사는 슬쩍 뒤로 물러나며 그 모습을 지켜보았는데, 살면서 듣지도 보지도 못한 광경이다. 다른 건 몰라도 가문의 명예 하나만큼은 둘 다 개박살 나겠구나 싶었다.
집사는 속으로 성호를 그으며 기도했다. 제발, 일자리만큼은 보전되게 해주십시오.
“그것은 그쪽이 먼저 실수한 것 아닙니까?”
황궁의 평가 제도를 통하여,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다비온가의 목에 개처럼 목줄이 매였다는 걸. 하지만 품위상 누구도 언급하지 않는 사안이었건만, 카일라가 그 금기를 깨고 이른 것이다.
홀린 공작은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
“그러는 그쪽은, 영애가 친우들을 시켜 카일라의 귀중품을 훔쳐 간 걸 알고 있소? 그러고서 하는 말이, 뭐? 버고스와 내통하고 있다? 이는 반역에 해당하는 중한 죄목이요. 클로이 영애의 혀가 가볍다 못해 어리석어. 그 입을 틀어막지 않고 손찌검 한 번으로 넘어간 걸 감사하게 여기시오.”
객관적으로 봤을 때, 홀린 공작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전쟁을 앞둔 버고스 측과 홀린 공작을 엮어대다니. 이는 단순한 견제를 넘어서, 멸문까지 나아갈 수 있는 중대 사안이었다. 먼저 전쟁을 선포한 것은 다비온 측이었던 게다.
다비온 백작은 비릿하게 웃더니, 고개를 까딱거렸다.
“그리 당당하시면, 보석과 함께 황궁에 조사를 요청하겠습니다. 분해하여 새로 조립하면, 그것이 다른 게 된답니까? 간도 크십니다. 아니면 생각이 짧으시든가.”
“다비온 백작. 지금 언사 또한 모욕죄로 추가 고발하겠네.”
“아주 환영입니다. 공작부인께서 버고스에 체류 중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것도 솔직히 의심스럽습니다. 저는 공작부인을 기억하고 있지 않습니까? 외국으로 나가 사업을 주도할 분이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홀린 공작이 입을 꽉 다물었다. 공작부인과 관련된 것은 외부에 알려지면 안 될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잠깐의 침묵이었지만, 다비온은 저것 좀 보라며 검 끝으로 홀린 공작을 가리켰다.
“보석의 유통 과정에서 공작부인을 제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당장 입국하여 조사를 함께 받는 게 좋겠군요. 버고스 측과 거래를 튼 과정 또한 이전에는 사업상의 비밀이라는 이름으로 넘어갔지만, 이제는 명명백백 밝혀야 할 것입니다! 대체 무엇을 대가로 그리하셨는지!”
“다비온 백작님! 지금 홀린 가문이 반역이라도 저질렀다고, 아예 상정하셨군요!”
“자제분은 빠지시오! 건방지게, 감히. 가문의 수장들이 대화하는데, 어딜!”
“백작님!”
“닥쳐라!”
채앵! 채앵!
다비온 측의 장남이 홀린가 쪽으로 검을 겨누었다.
“한마디만 더 보탠다면, 지금 당장 결투를 신청하겠다.”
명예를 지키고, 상대를 합법적으로 죽일 방법. 결투를 거절하는 건 귀족으로서의 자존심과 긍지를 버리는 행위요, 결국에는 상대에게 굴복하는 결과였으니.
홀린 공작가 남자들은 멈칫거리며 침만 삼켜댔다.
“그만.”
그때, 주위를 진정시키는 부드러운 목소리. 카일라였다. 아직 머리끝이 조금 젖어있긴 했으나, 그녀는 새 옷으로 갈아입고서 단정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다들 진정하십시오.”
“카일라 영애, 평소 여기저기 나선 것과 달리, 이번에는 숨어있을 줄 알았습니다.”
“제가 클로이인 줄 아십니까?”
카일라는 조금 피곤하다는 듯, 머리칼을 넘기며 일렀다.
“우선, 클로이 영애에게 손찌검한 건 사과드립니다. 지금까지 했던 헛소리와는 결이 다른지라, 가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반사적으로 나온 행위였습니다.”
“사과인지 모욕인지, 원!”
“말로만 그런다고 무엇이 바뀌나? 다른 자도 아니고, 클로이는 유력한 황후 후보자다! 귀한 몸에 생채기를 내놓고, 뻔뻔하게-!”
“그럼 제 얼굴에도 같은 상처가 나면, 좀 위로가 되시겠습니까?”
“뭐?”
카일라가 천천히 앞으로 다가왔다. 다비온가의 남자들이 위협적으로 쳐다봤으나, 그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치십시오.”
“하!”
“대신, 클로이의 얼굴에 난 것과 조금도 다름없는 상처여야 할 것입니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딱 한 번으로 같은 피를 내십시오.”
“미쳤군, 돌았어!”
“보상안을 드리는 것인데, 어찌하여 거절하십니까? 클로이 영애의 상처에 대해서는 제 피를 바칠 것인데, 가문의 모욕에는 다비온가가 무엇을 바칠 수 있을까요? 제 인생 하나 없는 개들의 삶이건만.”
“감히-!”
채앵! 챙!
다비온가의 장남이 검을 휘두르자, 카일라가 정확하게 쳐냈다. 힘의 차이로 인해 카일라의 검은 나뒹굴었지만, 막아냈다는 사실만으로 모두에게 적잖은 충격을 안겨주었다.
“소란 그만 피우고 돌아가십시오. 법대로 하시려면 원하시는 대로.”
공작부인을 데려오라고? 진짜 공작부인이 바리엘 남쪽, 터스티에 살아있었다. 중간에 바꿔치기하는 건 일도 아닐 터.
버고스에서 온 장신구도 해결할 수 있었다. 황실 보물이었다는 걸 몰랐다고, 고의성만 입증되지 않으면 반납하는 선에서 충분히 무마 가능했다.
카일라가 등을 돌리려고 하자, 다비온 백작이 소리쳤다.
“그래? 좋다. 그렇게 하지! 대신, 공작부인이 귀국하는 즉시 그 안내를 황궁에서 담당할 것이고, 터스티에도 사람을 보낼 것인데. 그래도 괜찮겠나?”
멈칫. 백작의 입에서 터스티라는 말이 나오자, 카일라의 눈이 커졌다.
그녀만 그런 게 아니었다. 홀린 공작과 그의 자식들 또한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몸을 굳혔다.
이내 다비온 백작 뒤쪽에서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
“백작님.”
이안이었다. 마차 창문이 열리며, 그 안에 베릭과 로만드로 또한 자리하고 있음이 보였다.
다비온 백작이 고개를 숙이며 예를 표하자, 이안이 난감하다는 듯 웃었다.
“그걸 그리 이르시면 어찌합니까.”
“미안합니다. 장관.”
“이안 히엘로 장관…….”
이안은 마차에서 내리더니 별것 아니라는 투로 손을 가로저었다.
“마침 오는 길에 만났지 뭡니까. 별다른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닙니다.”
그저 단순히 흘린 것이었다. 터스티에 진짜 공작부인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문을. 백작이 제 분에 못 이겨 먼저 내질러 버렸지만, 이안은 되레 이런 걸 원하기라도 했는지 별다른 반응이 없다.
이안이 마차 문을 열고 내리자, 안에서 굴라 볶은 걸 집어먹던 베릭과 로만드로가 얼굴을 내밀었다. 재밌다는 듯, 눈빛이 초롱초롱했다.
“그게 무슨-”
“말 그대로입니다. 홀린 공작님을 뵙고자 하여 오는 길에, 다비온 백작님을 뵈어 대화를 조금 나누게 되었습니다. 저와 같은 의문을 갖고 계신 것 같아 실언했는데, 이걸 이렇게 공론화하시다니요.”
짐짓 비난하는 투였으나, 말투는 다정하기 그지없었다. 이안은 카일라에게 손을 내밀며 웃었다.
“영애. 아무튼, 상황이 이러하니 깊게 의견 나눌 필요가 있겠습니다. 황궁으로 드시겠습니까? 지금 당장 터스티에 사람을 보낼 것인데요.”
그러자 홀린가의 집사가 몸을 급히 내돌리려고 했다. 이안이 단 한마디로 머리채를 잡아내었지만.
“마법사를 보낼 것입니다. 그 어떤 말이라 하더라도, 마법사보다 이르게 도착할 수는 없겠지요.”
카일라는 이안을 가만 쳐다보다가, 이내 체념했다는 듯 그 손을 맞잡았다. 베릭과 로만드로가 굴라 껍질을 벗겨대며 중얼거렸다.
“재밌네. 결투까지 갔으면 더 재밌었을 듯.”
“그래서 누가 이긴 것 같으냐, 베릭.”
“보기에는 다비온 측이죠. 깽값 제대로 받았잖아요. 그럼 다비온이 우리 편인가? 근데 뭔가 이안이 저렇게 손잡은 거로 봐서, 홀린이 우리 편 같기도 하고.”
“흐음. 나는 홀린이 이긴 것 같은데. 원래 싸움에서는 피 본 사람이 지는 거라며.”
“오, 방금 좀 사나이 같았어요. 로만드로 님.”
“이안이 온다. 자리 비워!”
“엥? 내가요?”
“그럼 내가 가리? 자자, 마부석으로 옮겨라.”
로만드로가 베릭의 등을 떠밀자, 베릭은 마지못해 마부석 옆으로 기어 올라갔다.
곧 이안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마차에 들어선 카일라 홀린 영애. 로만드로가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했으나, 그녀는 침묵한 채 창밖에만 시선을 고정했다.
* * *
“난리났군.”
진은 보고서를 가볍게 내던지며 어이없는 웃음을 터트렸다. 황후 후보자라 여기는 두 여인이 구설에 동시에 오르다니. 그것도 불미스러운 몸싸움으로.
“더는 볼 것 없다. 정리해.”
두 사람 모두, 바리엘을 맡기기에는 자질 부족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진이 들여다볼 가치도 없다며 보고서를 옆으로 치우자, 시아오시가 덧붙였다.
“알겠습니다, 전하. 그리고 카일라 영애는 방금 이안 경과 입궁했습니다. 버고스 측과의 관련성을 조사한다고 하는데, 홀린가의 공작부인이 버고스 왕가와 연관되어 있는 것 같다는 이안 경의 보고입니다.”
“버고스 왕가와, 홀린이?”
이안이 이리 직접 이를 때에는 거의 기정사실이라 여겨도 문제없었다. 진은 손끝으로 책상을 톡톡 두드리더니, 이내 재밌다는 듯 웃었다.
“…신께서 우리를 돕는 것 같군.”
“병사를 미리 결집해 놓을까요?”
“아니. 되었다. 우선은 이안 경의 언질을 기다려. 가능하다면 카일라 홀린 영애를 버고스로 먼저 보내게 될 것 같으니, 그쪽을 준비해두어라.”
“예, 전하.”
“즉위식까지 단 보름도 남지 않았다. 시아, 차질 없도록 제국방위부도 철저히 준비해야 할 것이라.”
“명 받들겠습니다.”
즉위식까지 보름이라는 건, 출정식까지 또한 보름이라는 뜻. 시아오시는 고개를 정중히 숙인 다음, 진의 집무실을 나섰다. 두 거사가 무사히 치러지길 소망하며.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