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528
제528화. 즉위식 준비
여느 때와 같은 오후.
아코렐라는 책상에 두 발을 올린 채로 보고서만 휙휙 넘겨댔다. 재미없고 따분하건만, 이걸 하지 않으면 연구 허가가 나지 않으니 어쩔 수 없다.
아코렐라가 대충 서명을 그려 넣고서 보고서를 덮는 순간-
똑똑.
“대장. 외국으로 나갔던 마력석이 회수되었습니다.”
“들어와. 답신이 다들 빠르네.”
“예. 뭐, 다들 내정하던 바가 있었나 봅니다.”
마법사가 마력석과 서신 따위를 갖고 들어왔다. 전쟁을 앞둔 상태에서 외국으로 오갔던 물건들이다. 혹여 삿된 장치가 되어 있지 않은지 아코렐라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그녀는 눈에 보이는 마력석 하나를 덥석 집어 들어 송곳니로 톡톡 두드려댔다.
“전서구 답신은?”
“여기 있습니다. 이안 님께 바로 올리십니까?”
“그려. 온 김에 저기 마력회복제나 한잔하고 가라.”
“아, 예. 거절하겠습니다.”
“옴마, 부작용 없어! 정말로.”
아코렐라가 어이없다는 듯 책상에서 발을 내렸으나, 마법사는 의지가 굳건했다.
“며칠 전에도 그 소리 하셨잖습니까. 애들 다 코 박고 밥 처먹다가 그대로 잠들었습니다. 안 그래도 즉위식 코앞이라 할 일이 산더미인데, 여기서 잠들면 우리 진짜 죽습니다. 이안 님이 보장하기 전까지는 다들 냄새도 안 맡을 기세입니다.”
“미친놈들. 배가 불렀지, 아주. 즉위식 후에는 마시고 싶어도 못 마셔, 이것들아! 전쟁 통에 한번 제대로 굴러봐라!”
“전장 한복판에서 잠드는 것보다 구르는 게 더 안전할 것 같긴 합니다만.”
“꺼져, 새꺄.”
“수고하십시오.”
마법사는 짤막하게 경례하고는 후다닥 연구실을 나섰다. 그 뒷모습에 아코렐라는 혀를 차댔고, 이내 벽면 가득 채운 약병들을 올려보며 안쓰러운 눈빛을 보냈다.
사랑스러운 내 새끼들…. 저 무지한 것들이 값어치도 모르고 핍박하니, 이게 다 잘난 탓이다! 쯧쯧!
“아 참. 이것도 다시 손봐야 하는데.”
달그락. 아코렐라의 손에 들린 것은 아주 옛날, 드래곤 각린으로 생과 사를 오갈 때 만들었던 망각제였다.
문제는 ‘망각’이라는 특성 탓에 아코렐라 본인이 실험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다른 마법사들 또한 격렬하게 거부하여 연구가 붕 뜬 상태라는 거지만.
아코렐라는 안타깝다는 듯 병을 툭툭 두드린 다음, 서신을 펼쳤다. 각국에서 진의 즉위식 초대에 대한 답장을 보낸 것이었다.
“오호라, 이것들 좀 봐라.”
종이가 넘어갈 때마다 아코렐라의 미간이 깊게 팼다. 마지막 장까지 넘어가자, 그녀는 서신을 모두 주머니에 챙겨 넣고는 연구실 문을 박차며 나갔다.
콰앙!
“대장, 어디 가요?”
“장관실. 보고하러.”
“예. 다녀오십시오.”
‘절뚝대는 것치고, 문 하나는 잘 깐단 말이지.’
‘나는 저번에 베릭한테 날아 차기 하는 것도 봤다.’
마법사들은 조용히 소곤대다가, 자신들 또한 이안에게 결재받을 게 있다는 걸 깨닫고서 후다닥 일어났다. 아코렐라 대장이 직접 움직이는 것으로 보아, 뭔가 중요한 보고가 올라갈 것 같은데, 그리되면 이안이 외근 나갈지도 모를 일이다.
한편, 이안의 집무실.
똑도로독, 똑똑!
“아코렐라인가? 들라.”
“어떻게 아셨대요?”
“그리 인기척 내는 건 그대뿐이다.”
이안은 로만드로와 마주 본 채로 서류를 작성하는 중이었다. 사각사각, 그의 옆에는 반쯤 갈린 펜촉과 빈 커피 잔이 수북하게 쌓여있었다.
즉위식이 다가오고 있으니 대부분의 부서가 이와 비슷한 풍경일 터. 아코렐라는 의자 하나를 끌어와 로만드로 옆에 앉았고, 곧장 주머니에서 서신을 꺼냈다.
“하완과 루스웨나를 비롯한 각국의 답신이에요.”
“이르게 왔군.”
“다들 대리인을 보낸다고 하네요?”
제국 황제의 즉위식에 대리인을 보낸다는 건, 정세상 버고스 측을 지지한다는 뜻과 같았다.
“한 곳도 빠짐없이?”
설마, 그럴 리가.
로만드로의 눈이 커지자, 아코렐라는 떨떠름한 얼굴로 종이 두 장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다행인지 아닌지 모르겠다는 듯.
“클리포포드와 아스타나는 왕이 직접 온다 하고요. 특히, 클리포포드는 왕가 모두가 참석할 것 같네요.”
“그렇지! 그래, 그게 맞지! 역시 하샤라니까!”
“근데 이거, 체면이 영 구겨진 것 아닙니까? 이 미친 대가리에 구멍 난 것들이 사리 분별 못 하고, 뭐 하는 짓들인지 모르겠습니다. 다들 깍둑썰기로 뒤지고 싶나.”
로만드로의 두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이거, 원. 언사가 머리카락 긴 베릭과 다름없지 않나?
아코렐라는 각국의 답신을 하나씩 읽어 내렸다.
“하완 왕국 왈. 안녕하십니까, 어쩌구저쩌구. 에… 그러니까, 바리엘의 무궁한 영광을 바라고 기대하는데… 왕이 비실비실 어디가 아파서 직접 참석은 못 하겠고… 대신 왕실에서 잔뼈 굵은 수상을 보내겠습니다? 이 시벌? 우리 수상은 왕이 두 번 바뀔 동안 건재한 놈인지라 슬슬 견제할 때가 된 것 같아서 바리엘로 보냅니다. 죽이든 살리든 알아서 하세요.”
“지, 진짜 그렇게 적혀있나? 아코렐라?”
“미쳤어요? 당연히 아니죠. 근데 그렇게 읽혀요. 다음은 루스웨나.”
사락.
아코렐라가 큰 소리로 글자를 또박또박 읊었다.
“시간이 흐르긴 흘렀나 봅니다. 그 작고 어린것이 제국의 황제라니. 아시겠지만 나는 거기서 안 좋은 추억이 있으니 직접 발걸음 하기 싫습니다. 이해할 거라 생각합니다. 특히나 이안 히엘로, 마법부 장관이 십 년 만에 살아 돌아왔다고 하니 무서워서 바리엘 가겠습니까? 부하를 대신 보내니 이자를 나라 생각하여 인사 잘 받으십시오. 시발!”
로만드로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코렐라가 읽고서 넘긴 것을 집어 들어 다시 확인했다. 공문인지라 정중하고 격식 있는 내용일 터인데, 어찌 저리 읊나?
하지만 이안은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그저 귀를 연 채 다시금 펜대를 놀렸다.
“북쪽 자질구레한 것들은 더합니다. 멀어서 못 오겠답니다! 등신들. 바리엘 국경선까지만 오면 마법사들이 포탈 열어서 안내해 주겠다고까지 했는데, 이런 변명이라니. 이거 대놓고 먹이겠다는 거 아닙니까? 우리가 어떤 나란데!”
“바, 바리엘 제국이지. 아코, 일단 진정 좀 해봐.”
“화가 나서 가만 못 있겠습니다. 대체 러더포드 이놈이 무슨 감언이설로 주변국을 꾄 건지, 직접 만나서 들어야겠어요. 만나면 한쪽 다리만 박살 내려고 했는데, 두 쪽 다 잘라버리는 게 좋겠습니다.”
타앙!
아코렐라가 책상을 거칠게 내려치자, 잉크가 찰랑 하고 튀었다. 이안은 그제야 펜대를 내려놓으며 아코렐라에게 일렀다.
“아코렐라. 마음은 이해하나, 우리가 격하게 반응할수록 바리엘의 국격이 떨어진다. 자중하라.”
특히, 진 전하 앞에서는 더더욱.
“우리가 실수한 것이다. 러더포드와 바리엘의 저울에서, 저들이 감히 러더포드 쪽이 더 무겁다고 판단하게 한, 우리의 실수.”
이안이 희게 웃자, 로만드로는 멈칫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차라리 아코렐라처럼 험한 말로 감정을 터트리는 게 낫지, 지금의 이안은 웃는 낯으로 사람을 찢을 기세였다. 물론, 로만드로 본인이 느끼기에.
“실수는 바로 잡는 것이 옳아. 즉위식을 통하여, 그리고 앞으로의 전쟁을 통하여, 우리는 그들이 얼마나 그른 선택을 한 것인지 일러주어 바로 생각하게 할 것이다. 그러니 사사로운 것은 뒤로하고 준비에 최선을 다하도록.”
아코렐라는 한숨만 내쉬더니 어깨를 으쓱거렸다.
“예. 그럼 조만간 포탈 열 준비 하겠습니다. 그래도 북쪽 제외 아예 불참하는 곳은 없으니 적어도 네 개 이상 포탈을 열어야 합니다. 괜찮으시겠어요?”
“물론. 문제없다.”
“모범적으로다가, 애들 앞에서 회복제 좀 드시죠.”
“아니. 괜찮아. 정말이다.”
이안이 서류를 탁탁 정리하며 웃었다. 장난 섞인 거절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다. 아코렐라는 이안에게 부작용 따위 거의 해결되었다며 질척거렸으나, 이안의 답은 여전했다.
“이안 님이 안 먹는다고 하니까 다른 애들도 다 입 닫고 빵만 처먹습니다! 걔들 즉위식 때 골골대면, 누구한테 일 시킵니까? 예?”
“포탈은 내가 알아서 열 터이니 다들 몸 잘 챙기라고 전해. 즉위식에서 실수가 있어서는 아니 된다.”
“예? 이안 님이 알아서 연다고요? 혼자서요?”
“그래. 혼자서.”
“술식 쓰고 지우는 것도 일인데.”
“한 번에 열면 될 일.”
아코렐라의 입이 투욱, 하고 벌어졌다. 지금 이안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가? 마법부원들이 증폭제 처맞아가며 겨우겨우 여는 게 포탈이다. 그것도 중앙에서 국경선까지, 그 거리가 얼마나 먼데, 동시다발적으로 포탈을 열겠다니? 혼자서?
“아코, 침 떨어진다.”
이안의 발언이 얼마나 기상천외한 것인지 인지하지 못한 로만드로만이 그녀의 턱을 닫아주며 위로했다.
“아니, 이안 님! 이안 님!”
어째서인지 모르겠다. 이 몸, 그러니까 서자 이안의 몸이 신의 몸이라는 걸 각성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심연의 효과인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신의 축복인 것인지.
무엇이 되었든, 회복제를 먹은 이후로 온몸이 마력으로 가득 차 넘쳐흐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전의 자신은 떠올리지 못할 정도로.
* * *
클로이는 짙게 남은 입가의 흉터를 살피며 인상을 찌푸렸다. 벌써 열흘 가까이 된 일이지만, 아직도 상처를 보고 있자면 문득문득 화가 치밀어 올랐다.
‘클로이 영애. 상처는 좀 괜찮으십니까?’
‘감히 괜찮은지를 물었습니까? 괜찮은 것 같아요?’
‘네. 말하는 모습 보니 문제없어 보이네요. 살갗의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아물지만, 마음의 상처는 쉽게 낫지 않는 법이지요. 영애나 저나, 남들 앞에서 못 볼 꼴을 보여 깊은 아픔을 간직했으니, 이제 이쯤 하여 서로 합의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살을 베어 가라 해도 어쩌지 못하시던데, 그게 서로에게 이득 아닐까요? 저는 사업가인지라 계산이 바로 되는데, 혹 그걸 설명해 주시길 원하는 건 아니시지요?’
‘지금, 그게 사과하는 태도입니까? 내 기필코-!’
‘아, 영애. 저는 사과만 하러 온 것이 아니랍니다.’
그러고는 짐짓 고개를 살짝 틀어 내보이는 머리 장신구. 모든 사달의 원인인 황실의 보석이 박혀 있었다.
숨겨도 성치 않은 참에 대놓고 보여주는 행태라, 클로이는 무언가 일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아채고서 미간을 찌푸렸다.
‘덕분에 황궁으로 초대되어 진 황태자 전하를 뵈었답니다. 가까이서 뵈니 실로 아름다우신 분이라, 말이 제대로 안 나오더군요. 전하께서는 저희 실책을 너그러이 용서해주시고, 그 증표로 이걸 하사해주셨답니다.’
‘뭐, 뭐라고요?’
‘모두 클로이 영애 덕분입니다. 영애가 친우들과 그 괘씸한 짓을 하지 않았다면, 제가 이런 영광을 또 언제 누렸겠습니까? 다음에 전하와 함께 다시 자리할 기회가 있는데, 가능하다면 영애의 안부도 전하겠습니다. 궁금해하실지는 모르겠지만요.’
째앵!
클로이는 저도 모르게 보석함을 내던져 거울을 깨트렸다.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시종들이 움찔거리는 것도 잠시, 이내 신속히 주위를 정리했다. 클로이는 그제야 거울 대신 창밖을 쳐다봤고, 낯선 하늘에 의아해하며 창가로 다가섰다.
“…저게 뭐야?”
“아, 아가씨.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며칠 전, 마법부에서 공문이 내려왔습니다. 외국 손님들 오실 길이라고 하네요. 예전과 다르게 여러 개가 동시에 뜰 수 있다고, 놀라지 말라면서요. 좀 이상하긴 하지요?”
하늘에 뜬 작고 검은 달들. 일전에는 하나 여는 데도 온 마법부가 달려들어 애쓰곤 하였는데, 저런 모습이라.
클로이는 이전과 지금 사이에 존재하는 격차의 원인이 이안이라는 걸 바로 알아챘다. 카일라가 어떠한 저지 없이 보석을 소지한 채 돌아다니는 것도 마법부가 도와준 게 분명했다. 제국은 전쟁을 앞둔 상황이고, 홀린가는 무기 사업을 하고 있으니.
클로이는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어대며 중얼거렸다.
“이안 히엘로…….”
파고들 지점은 하나밖에 없다. 카일라가 도달했다면, 자신도 도달할 수 있다.
“나도 간다.”
“예? 아가씨, 어딜…….”
“전쟁. 여기서 하나 거기서 하나, 뭐가 다르겠어?”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