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529
제529화. 귀빈들의 입장
“이안 님, 여기 술식 좀 봐주십시오.”
“응. 내가 봐도 그건 좀 아닌 듯.”
“닥치고 비켜, 너나 잘해.”
“이안 님! 이쪽도 다 그렸습니다.”
마법부의 드넓은 정원 뒤쪽.
마법사들은 각기로 흩어져 포탈 술식을 빼곡하게 그려 넣었다. 대부분이 이안의 손을 거치며 새로운 주문으로 재탄생했지만 말이다.
이안은 한자리에 쪼그려 앉아, 알 수 없는 기이한 문양을 정갈한 글씨로 새겨 넣었다.
그 뒤로 옹기종기 모여 고개를 쭉 빼내고 있는 마법사들. 동시다발적인 포탈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아니 심지어는 상상한 적도 없는지라 다들 호기심 어린 낯으로 이안을 지켜봤다.
“이게 될까?”
“쓰읍. 글쎄. 이안 님도 처음 해보시는 것 같은데.”
“좌표 고정은 끝났나?”
전체적으로 술식을 살펴보던 이안이 그리 이르자, 마법사가 종이를 휙휙 넘기며 보고했다.
“아, 네네! 북쪽 마물 지대에 하나, 루스웨나, 하완, 그리고 클리포포드 설정했습니다.”
“고생했다. 다들 물러나 있도록.”
“이안 님, 마력 안 모자라시겠습니까?”
누군가의 걱정에 이안이 미소 짓자, 다른 동료들이 그를 이리저리 끌어대며 혼냈다. 지금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거냐고, 포탈이 아니라 즉위식 준비만으로도 마력 바닥 치게 생긴 저들이나 걱정하라면서 말이다.
이안은 광활한 정원 한가운데 서서는 발밑의 어지러운 주문진을 가만 쳐다봤다.
솨아아-
바람이 불며 풀이 누워대자, 마치 마법진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파도치기 시작했다. 짙은 녹색에서 금빛으로, 조금씩 변하는 이안의 눈동자. 이어서 그의 손끝을 따라 떠오르는 검은 달.
마법사들은 육포 따위를 질겅거리며 그 광경을 지켜봤다. 아무리 자신들이 마법사라고 하지만, 이건 쉽게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하나 떴다.”
“어, 저기! 뒤에 또 뜬다.”
“와, 미치겠네. 진짜.”
솨아아악!
크기는 좀 작지만, 분명한 포탈이었다. 이안은 조금 어지럽다는 듯 눈썹을 찌푸렸지만, 찰나였다. 그렇게 네 개의 검은 달을 만들어낸 이안은 마법사들에게 손짓하여 다가오라 명했다.
“중심축은 내가 잡아둘 것이니, 교대로 돌아가며 지켜보도록 하라. 크기가 작아진다거나 기울면 마력을 주입해.”
“네. 이안 님. 근데 정말 괜찮으신 거 맞지요? 귀빈들이 올 때까지 이대로 계속 열어두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래봤자 하루다. 괜찮아.”
“하루…….”
마법사들이 눈을 도르륵 굴려대며 입술을 오므렸다. 저기, 이안 님. 우리는요. 다 같이 포탈 하나 만들어도 수십 분 유지하기가 힘들거든요. 범재의 애환을 알랑가 몰라. 흐음.
“어? 저기, 이안 님!”
“좌측 두 번째 포탈에서 움직임이 보입니다!”
한 마법사의 외침에 모두가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좌측 두 번째라고 하면, 북쪽 지대와 연결된 포탈이다. 그 말인즉슨-
“하샤-!”
로만드로가 반가움에 소리쳤다. 어둠 속에서 천천히 모습을 보이는 마차 앞부분. 마법사들이 다급하게 움직이며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타앗!
지이이잉! 지잉!
마법사들이 중력을 거스르자, 수직으로 하강할 것 같던 마차가 슬그머니 제 각도를 찾았다. 이내 마치 하늘을 걷는 것처럼 천천히, 안전한 궤도로 황궁에 착지했다.
수십 대의 마차 행렬. 곳곳에서 지켜보고 있던 황궁 직원들이 손을 흔들며 반가워했다.
히이잉!
“아이고, 그래그래. 이놈 놀랬네. 괜찮다. 워워!”
“안녕하십니까, 아스타나 사절단입니다!”
“반갑습니다. 어서 오세요!”
“이거, 떨어져 죽는 줄 알았습니다. 하핫!”
놀라서 콧김을 씩씩 뿜어대는 말들을 다독이며, 사절단이 환한 미소를 보였다. 하나같이 푸른색 머리칼에 귀가 뾰족뾰족했다.
이윽고, 가운데 마차 문이 열리며 모습을 보이는 이.
“이안 경!”
“하샤?”
백발의 노인, 하샤였다.
그는 이안을 와락 껴안으며 훌쩍댔고, 이안은 의아하다는 듯 그를 쳐다봤다.
“세상에, 진짜군. 살아있다는 게 진짜였느니라! 소문으로 듣긴 했지만, 사실 반쯤 믿을 수 없었거늘!”
“뉘, 뉘시오?”
로만드로가 쭈뼛대며 슬쩍 말을 붙이자, 하샤는 로만드로의 손을 덥석 잡으며 힘차게 흔들어댔다. 맥없는 노인인지라 바람에 팔락거리는 수준이다만.
“로만드로! 그대도 여전해 보이는구려!”
“하, 하샤?”
“이전의 몸은 방부 작업으로도 손쓸 수 없던 터라, 새로운 몸을 얻었네. 이분은 내 숙부이신 분인데, 돌아가신 지 얼마 되지 않았어.”
“아, 음. 그렇군요.”
카렌나에서 만났을 때는 개였다가, 전쟁터에서는 청년, 그리고 다시 노인이라. 흐르는 세월에선 벗어나 있지만, 그래도 나름 그 순리를 따라가려는 모습이었다.
노인은 앞니 빠진 웃음을 보이며 목걸이를 꺼내 보였다. 붉은색 마력 브로치. 이안의 것이었다.
“진실로 오래 기다렸고, 염원했네. 다시 만날 수 있기를.”
이안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하샤는 다시금 깊은 포옹을 청해왔다. 가벼운 인사를 나눈 것도 잠시, 이안은 황궁식 예를 올리며 하샤에게 고개를 숙였다.
“아스타나의 왕이시여,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제국의 축복을 위하여 귀한 발걸음 해주셨으니, 아스타나에도 그와 같은 영광이 내리길 바라겠습니다. 황궁 일원으로 감사 인사를 드리며, 황태자 전하를 뵙기 전 머무를 궁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아이고, 맞다! 로만드로 역시 자세를 바로 갈무리하며 이안을 따라 황궁식 인사를 올렸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우이긴 하지만 그는 일국의 왕이었다. 특히 모두가 등 돌린 지금, 북쪽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바리엘의 편에 선 왕.
하샤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마찬가지 예로써 답했고, 이내 신하들에게 고갯짓했다.
“왕국에서 준비한 작은 선물이 있소.”
“오, 황태자 전하께서 기뻐하실 겁니다. 마법부에서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해주면 고맙지. 저 검은 달 덕분에 먼 거리를 단숨에 왔네. 하나도 피곤하지가 않아. 고맙네.”
이안 역시 마법사와 황궁 직원들에게 손님 안내를 시작하라 눈짓으로 일렀다. 하샤는 다시 마차에 올라타 본궁으로 향했고, 마법사들은 주위를 정리하며 이안에게 물었다.
“이안 님, 북쪽 포탈은 이제 닫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유지하는 데 힘 많이 드시잖아요.”
“음. 잠깐만.”
이안의 손바닥을 중심으로 끝없이 피어오르는 동심원. 톱니바퀴가 맞물리는, 공백 하나 없이 빼곡한 주문진이었다. 이안은 몇 번이나 이를 읽어냈지만, 이내 단념한 것처럼 어깨를 으쓱거렸다.
“동시에 띄운 것이라 개중 하나만 내리기에는 문제가 있다. 시도했다가 자칫 다른 것도 닫히면 곤란하니, 우선 내일 이 시간까지는 계속 유지하겠다.”
“에고, 알겠습니다. 저희도 힘 보태겠습니다.”
“티가 날지는 모르겠지만, 크흠.”
“근데 다른 손님들 말입니다, 이거 일부러 늦게 오는 거 아닙니까? 포탈을 시간 내에 열어두겠다 했으니, 이안 님 힘 빼놓으려고요.”
한 마법사의 투정에 이안은 웃기만 했다. 다소 억측이긴 하나, 일리가 있는 의심이다. 다른 마법사들 또한 아직 감감무소식인 포탈을 올려다보며 꿍얼거렸다.
“솔직히 가능성 있습니다. 시간 정해줬으면 미리 기다리고 있다가 포탈 열리자마자 탔어야지요. 그게 예의 아닙니까? 아스타나처럼요!”
“이게 보통 일 아니라는 건 다들 어느 정도 알고 있을 터인데, 참 사람들이 못되어 처먹어가지고는.”
“본국 떠나기 싫어하는 자들도 섞여 있을 터이니, 발걸음이 안 떨어지는 걸 수도 있지.”
“뭐, 그렇긴 한데, 크흠. 그래도 기본 몸가짐이 안 되어 있습니다. 이안 님, 확 입구 좁혀버리십시오! 아니면 내버려 뒀다가 반쯤 떨어졌을 때 저희가 받을까요?!”
마법사들이 한마디씩 덧붙이는 순간, 이안이 ‘아’ 하며 작게 탄성을 내질렀다. 포탈에서 또다시 마차 끄트머리가 모습을 보인 게다. 이번에는-
“클리포포드입니다!”
“클리포포드에서 귀빈들이 도착했습니다!”
“어이고, 저쪽은 마차부터가 실하네. 가자!”
“예, 저도 가겠습니다!”
지이잉! 타앗!
마법사들은 아까처럼 날아올라 마차를 받아주려고 했다. 하나, 문제가 있었다. 아스타나와 달리, 클리포포드 왕의 마차는 천장이 휑하니 뚫려있다는 것.
“어라.”
아코렐라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마차에서 분리된 무언가를 빤히 쳐다봤다. 빙글빙글, 공중에서 사정없이 돌아대는 퉁퉁한 몸뚱이 하나. 아코렐라는 아무렇지 않게 이안에게 보고했다.
“이안 님. 저거, 클리포포드 왕인 것 같은데요.”
아아아-
하늘에서 청명하면서도 서글픈 비명이 울렸다. 마법사들이 있는 터라 추락 위험은 없었지만, 당사자는 전혀 모르는 듯했다.
왕은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바들바들 떨면서 천천히 대지로 내려왔다.
타앗.
이내 사뿐히 착지하는 클리포포드의 왕. 그는 두 발이 땅에 닿아있음에도 눈을 질끈 감고서 이를 꽉 물고 있었다. 포동포동, 예전과 같이 푸근한 모습이다.
“…오셨습니까.”
“…헉!”
이안의 인사에 겨우 정신을 차리며 주위를 둘러보는 클리포포드의 왕. 사색이 된 것도 잠시, 식은땀을 닦아내며 어색한 웃음을 흘려댔다.
“주, 죽는 줄 알았네.”
“실례했습니다. 좀 더 자세히 전언할 걸 그랬습니다.”
“아니아니, 내가 놀라서 손 놓은 탓인걸. 그나저나 이안 경. 오랜만이네. 노아에게 듣긴 했지만, 하하! 세월이 비껴가는 외모로구만!”
“오랜만에 뵙습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부지!”
“아버지! 괜찮으십니까?”
“전하!”
타닥타닥! 마차 또한 안전하게 착지하자, 노아 왕자와 그 동생들 그리고 신하들이 우르르 달려와 왕의 안위를 살폈다.
“괜찮아, 괜찮아.”
“으아앙. 그니까 왜 마차 위에 앉겠다고 했어요!”
“위엄 하나도 없었어!”
“아니, 크흠, 이런 경로일 줄은 몰랐다…….”
아장아장 걸어 다녔던 노아의 동생들이 어느덧 커서 비비와 로엘만큼이나 성장해있었다. 아이들은 이안이 낯선지, 노아 옆에 바짝 붙어서 경계하는 눈빛만 보냈다.
“안녕하십니까, 공주님. 왕자님. 놀라지는 않으셨는지요?”
“아, 안 놀랬는데…….”
“아부지만 놀랐지, 뭐…….”
솨아악. 하지만 선선한 바람과 함께 다정히 인사하는 이안이라. 공주와 왕자는 저도 모르게 이안의 손을 붙잡으며 멍하니 그를 올려다봤다.
이에 노아는 동생들을 단속하며 마차를 재정비하라 일렀다.
“본궁으로 움직이면 되는가?”
“예, 왕자님. 짐과 여독부터 푸시지요. 그 후 황태자 전하를 뵙도록 하겠습니다. 아스타나 다음으로 도착하셨으니, 두 번째로 알현하게 될 것입니다.”
“서두른다고 서둘렀는데, 조금 늦었군. 알겠네.”
“예, 그럼.”
히이잉!
클리포포드의 마차들 또한 일렬로 정렬해 본궁으로 나아갔다.
일찍이 올 손님들은 다 온 참이라, 마법사들은 한숨 돌리며 잔디밭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그저 공중에서 마차와 짐 따위를 받기만 했을 뿐인데도 힘이 이렇게 들건만, 이안 님은 대체 어떻게 저 포털들을 유지하고 있단 말인가?
“저러고 또 본식에서는 행사 주도하실 거 아녀.”
“그러니까. 나는 젊어서 저러신 거라고 믿고 싶다, 진짜. 안 그러면 이 비루한 몸뚱이가 너무 서글프다.”
“궐련 줄까?”
“아, 헤일 대장! 나 끊었다니까?!”
“줄 게 없어서 자꾸 그런 걸 줘요?”
헤일 역시 철퍼덕 주저앉아 궐련을 입에 물려는 때였다. 이안이 모두에게 일어나라는 듯 손짓하며 일렀다.
“손님 한 분 더 오신다.”
“예? 어디요?”
“정신은 제대로 박혔는디, 아, 타이밍은 영 별로네. 힘들어 죽겠구먼.”
끙차! 마법사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이안의 손끝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이번에는 어느 나라인고?
“…하완인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