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53
제53화. 밧줄을 걸어라
하지만 여전히 입에 재갈은 물려있었다. 세상의 마지막을 보며 수치를 느끼고, 마지막 말 한마디 남길 수 없는 답답함을 안고 가라는 처사였다.
데르가는 붉게 터진 눈을 깜빡이더니 차마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죽어어!”
수많은 사람이 그의 죽음을 부르짖었다. 옷을 벗겨놓으니 그저 초라한 인간에 불과하건만, 대체 무엇이 그를 추악하게 만든 것인지 모르겠다.
“밧줄을 걸어라.”
“밧줄을 걸어라!”
데르가의 목에 줄이 걸렸다. 아래에서 단원 다섯 명이 두툼한 밧줄을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조금씩 떠오르는 데르가의 몸뚱이.
“으어어어…….”
“누구든 이자에게 불만이 있는 자는 돌을 던지라. 그대들이 던지는 돌은 바리엘의 중심추가 될 것이며 황궁의 위상을 견고히 쌓는 담이 될 것이다.”
그가 발버둥 치며 몸을 흔들었지만, 그럴수록 더욱 세게 조일 뿐이었다. 공중으로 떠오르는 백작은 마치 잘 벗겨놓은 돼지와 같았다.
사람들이 비웃음을 터트렸고, 카칸티르를 비롯한 천려족 전사들은 무표정으로 그의 마지막을 위해 일어섰다.
“와아아아!”
“던져! 죽여!”
퍼억! 퍽!
돌멩이 수십 개가 한꺼번에 처형대로 날아들었다. 에리카는 조사단원들의 경호를 받으며 뒤로 물러섰고, 공중에 떠올라 돌팔매질 받는 데르가를 지켜봤다.
그때였다.
쉬이익! 푸욱!
창 하나가 번개처럼 날아와 데르가의 옆구리에 박혔다. 천려족 전사 중 한 명이 내던진 것이었다. 사람들은 놀라서 잠시 멈칫거리긴 했으나, 한번 끓어 오른 열기가 쉬이 식지는 않았다.
“데르가!”
쉬익! 쉭!
수십 개의 창이 흔들리는 데르가의 몸뚱이로 날아들었다. 천려 전사의 복수가 담긴 응징이었다. 대부분 그의 허벅다리나 등에 박혔고, 이내 창을 차고 핏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쉬이이익!
그리고 마지막. 날카로운 창끝을 매만지던 카칸티르가 궤적을 확인하며 눈썹을 찡그렸다. 데르가의 몸이 점점 쳐져 가기 시작했다. 카칸티르는 망설임 없이 창을 내던졌고, 그것은 다른 전사들과 비교할 수 없는 소리를 내며 가슴팍을 뚫어버렸다.
정확히 심장일 것이라고, 이안은 생각했다.
“끄억…….”
흰자로 뒤집힌 데르가가 숨을 토해냈다. 이내, 밧줄의 떨림이 완전히 멈춤으로써 데르가의 죽음을 모두가 목격했다.
“데르가 브라츠는 죽었다.”
“데르가 브라츠는 죽었다!”
부우우-
끝을 알리는 물소뿔 소리. 사람들은 환호하며 죽은 데르가의 시체에 모욕적인 말을 뱉어냈다. 그들은 단장의 선언을 선창 삼아 축제를 즐겼다.
이안은 그저 광경을 묘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이안 경은 좀 괜찮소?”
“…네? 저 말씀입니까?”
“아무것도 안 던지던데. 사실 저 밧줄 대신 그대의 손이 데르가의 목을 졸랐어야 맞지 않겠나.”
카칸티르는 넌지시 이안을 힐끔거렸다. 목을 대신 조른다라, 썩 유쾌한 짓이 아니다.
“글쎄요. 하지만 죽었다 하니, 확실히 기분이 이상합니다. 못 했던 말도 생각나고.”
“못 했던 말?”
서자 이안에게 꼭 용서를 빌라는 것.
황제 이안이 아닌, 서자 이안 말이다.
이번 생에서는 역사가 바뀌었지만, 원래대로였다면 이안은 국경을 넘어가서 모래 한 줌이 되었을 터였다. 어린 나이에, 그저 백작의 피를 이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안이 죽고 나서는 아이의 생모인 필리아도 죽었을 것이다. 메리 부인이 가만둘 리 없을 터이니.
“끝나니 시원하지는 않소?”
“그렇긴 합니다만, 이게 시작이란 걸 알아서요.”
이안은 바람에 흔들리는 데르가의 몸뚱이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 순간 부로, 세상에서 브라츠라는 이름은 영영 사라졌다.
* * *
데르가의 시체는 며칠 동안 광장에 걸려 있을 예정이었다. 바리엘에 거스르는 자의 최후를 확실히 알려줄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에리카는 교수형대 뒷정리를 하며 부하에게 물었다.
“중앙지원군에서 연락은?”
“왔습니다. 그게, 근데…….”
“왜, 또 뭔데?”
“메리와 첼의 흔적이 사라졌답니다.”
“하아. X발. 어디서부터?”
“보아하니, 숲에 들어서는 표적을 아예 발견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불 때운 흔적 따위로 수색을 계속하고 있긴 한데, 그게 계곡 인근에서 뚝 떨어진 터라. 난항이라 합니다. 그리고…….”
“그리고?”
제발 거지 같은 소식이 아니길.
에리카의 눈빛을 읽은 부하가 상당히 곤란하게 대답했다.
“그쪽도 총회의 전서구를 받았다고 합니다.”
“…뭐?”
“메리와 첼의 추격이 지체되면 병사들은 중앙으로 올라오라고요. 지방으로 파견된 병사들을 모두 소집한다는 명이 있다고 하는데, 이건 총회의 결정인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마리브 1황자였다. 게일 2황자가 지방 영지에 병사들을 주둔시킨 걸 알아챘으니, 마땅한 대응책이었다. 하지만 이걸 모르는 에리카는 눈만 질끈 감고 중얼거렸다.
“진짜 새됐네.”
중앙지원군을 때려 박아도 찾지 못하는 메리와 첼이거늘, 조사단 인원만으로 그들을 어떻게 뒤쫓는단 말인가? 쫓아간다 한들 천려족 두 놈한테 갈가리 찢길 게 분명했다.
“그런데 에리카 님. 몰린 경에게 서신을 받지 못하셨습니까?”
“뭐가?”
“지원군 대장이 말하기를 몰린 경에게 총회의 결정을 일단 따르라는 지시가 내려왔다는데요. 그러면서 우리는 어떻게 할 건지 물어보는데, 뭐 들은 게 없어서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몰린한테 연락이 왔었다고?”
에리카는 놀라서 고개를 휙 돌렸다. 몰린이 중앙군 대장에게 보냈는데 자신에게 안 보냈을 리가 없다. 에리카는 그제야 전서구에 문제가 생겼음을 알아챘다.
“마력석이 있으니 길을 헤맸을 리는 없고.”
브로치와 같은 원리로, 한 덩어리로 이루어져 있던 마력석끼리는 마성이 생겨 비둘기의 목표 지점을 더욱 세밀하게 이끌었다. 창문 앞까지 와서 꼼짝 않고 기다릴 정도였으니까.
부하는 고민하다가 의견을 내놓았다.
“저택에 매가 많지 않습니까. 혹시 잡아먹힌 건…….”
일리가 있다. 에리카는 인상을 팍 쓰고서 바로 말을 끌고 나왔다. 광장 뒷정리를 하던 부하들이 그녀를 불렀지만, 에리카는 직진해서 저택으로 내달렸다.
콰앙!
“이안! 이안!”
“…무슨 일이십니까?”
“여기 있는 매 새끼들 배를 전부 갈라봐야겠다.”
느닷없이 나타나서 매의 배를 갈라야 한다니. 이안은 서류를 내려놓았고, 천려족 전사들 역시 어이없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이내 진심이라는 걸 알아채고 으름장을 늘어놓았다.
“지랄하지 마라. 매의 배가 갈리기 전에 네놈들 배를 갈라주지.”
“털 하나라도 뽑히면 알아서 해. 데르가 옆에 매달리고 싶나 보지?”
“매들이 전서구를 먹은 것 같다고!”
“아아, 전서구.”
이안은 이제야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난데없이 무슨 말인가 싶었다. 그걸 본 에리카가 멈칫거리며 ‘설마’ 하는 표정을 지었다.
“알고 있었나?”
“정확히는 매가 먹은 게 아니라, 사고가 좀 있었습니다. 전서구는 잘 묻어주었고, 천 안에 마력석도 따로 빼두었습니다.”
“감히 황궁의 전서구를 빼돌려? 중죄다, 이안!”
“황궁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몰린이 개인적으로 보낸 것이던데요?”
그 말을 듣자, 에리카의 심장이 쿵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몰린이 뭐라고 썼을까? 아둔한 자는 아니니 그들의 계획을 글자로 남겼을 리는 없다. 하지만 훗날 돌아봤을 때 모반의 증거로 보일 수도 있다.
에리카의 태도가 누그려졌다.
“돌려주게나.”
“물론입니다. 에리카 님이 브라츠를 떠날 때, 선물로 드리려고 했습니다. 데르가의 시체를 효시하는 건 사흘 안으로 정리하시죠.”
사흘 안에 떠나라, 그러면 편지를 돌려주겠노라 말하는 것이다. 어차피 그것과 별개로 쫓겨나긴 할 건데 에리카가 선택하기 좋게 구실을 만들어 준 참이었다.
“몰린 경께서 꽤 급히 보낸 편지 같더라고요. 사흘이 아니라 당장 떠난다 하면 저희는 더 감사하겠지만요.”
편지 내용이 무엇일지 짐작하는 에리카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사실상 영주 임명에 문제가 생겼고 곧 자문관과 함께 내려간다는 게 전부였지만, 그걸 에리카가 알 리가 없었다. 소식 전달보다는 상심했을 에리카를 달래기 위해 쓴 서신이나 마찬가지였다.
에리카는 손을 부들거리며 한마디, 한마디를 읊조렸다.
“좋다. 당장 내일, 시체를 회수하고 떠나겠다.”
“듣던 중 반가운 결정입니다.”
“이안, 내가 떠나듯 너 역시 자문관이 내려오기 전 떠나야 할 것이다. 네놈이 브라츠의 이름을 잇지 않았다고 해서 자유로울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최대한 간절하게, 염원을 담아 저주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안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는 말이다. 그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에리카는 천려족 전사들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자문관은 공식적으로 영지의 관리를 임명받은 자다. 사창가 출신 서자 놈이 야만족을 등에 업었다고 귀족 놀이할 상대가 아니라는 뜻이지.”
“야만족이라는 말은 취소하는 게 좋겠습니다. 에리카 단장님. 자문관이 와서 그대의 행방을 물을 때, 내가 곤란해질 수도 있어서요.”
깝치면 죽이겠다는 말을 이리도 품격있게 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작위도 빼앗겨, 기한 없이 변경을 돌며 메리와 첼의 뒤를 쫓아야 할 에리카에게는 별로 와닿지 않았다.
“다시 돌아올 것이다. 그때는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대사막의 모래를 싹 다 갈아엎어 줄 테니까.”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만.”
“헛된 꿈 꾸지 마라. 이안. 추하다.”
에리카의 말에 이안이 가슴에 손을 올리며 귀족의 예를 보였다. 그리고 이내 흘러넘치는 마력의 기운. 녹안이 금안으로 물들며 알 수 없는 힘의 흐름이 느껴졌다. 에리카는 벙찐 표정으로 홀린 듯 쳐다볼 뿐이다.
지이잉.
“에리카 님이야말로 돌아올 수 있다는 헛된 희망 품지 마시고, 메리와 첼의 시체나 찾아서 중앙 갈 생각이나 하십시오. 재수 없으면 객사하실 운명입니다.”
“…마력운용자?”
“그럼 가십시오. 멀리 배웅은 못 드리겠습니다.”
“…….”
전사들도 실제로 본 건 처음인지, 흥미롭게 이안을 구경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별것 없이 돌아온 이안의 모습을 보며 김이 팍 새고 말았다.
“마법이라는 게 그런 겁니까? 끝?”
“아아. 그때 베릭이 보여줬던 거 맞네.”
“마법사가 되면 좀 달라진다지요?”
“그게 뭔데. 어떻게 하는 건데.”
“나도 몰라, 그냥 그렇게 주워들었어, 인마.”
서로 떠들어대며 즐거워하는 천려족을 뒤로하고, 에리카는 멍하니 문을 나섰다.
마력운용자.
어떻게 이안이 천려족을 꾀었고, 영주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을지 알 수 있었다.
“에리카 님, 괜찮으십니까? 뭐라 합니까?”
“마력운용자라니.”
노예로 강등은커녕 중앙에서 올라오라고 난리일 터다.
에리카는 브라츠에서 자신이 완벽하게 패배했음을, 처음 깨달았다. 부하가 다가와 안색을 살폈으나 대꾸할 정신이 없다.
“에리카 님?”
“…짐을 싸라.”
“네?”
“영지를 나설 것이다. 가서, 데르가의 시체를 중앙군에게 넘겨주고 우리는 메리와 첼의 뒤를 쫓을 것이다.”
죽은 사람을 쫓는 것만큼 허망한 일이 있던가. 어차피 고생할 거, 최대한 빨리 착수하여 황궁에 성의라도 보이는 편이 나았다.
한편, 전사들의 장난을 들으며 서류를 확인하던 이안. 그는 저 멀리 푸른 숲을 보며 누군가를 떠올렸다.
“이제 슬슬…….”
필리아를 볼 때가 되었다. 숲 어딘가 숨어있을 이안의 생모. 데르가와 일가가 죽고, 아들이 돌아왔으니 계속 숨어있을 필요는 없다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
‘이안이 어찌하여 화분을 갖게 되었는지.’
그 단서를 아는 유일한 자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