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535
제535화. 뜻밖의 집중
“잠시.”
대기하라는 이안의 손짓에 레핀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 기다렸건만, 또?
아까부터 바리엘 측에서는 루스웨나가 늦었다며 자꾸 눈치 주는데, 사실 저들은 잘못이 없었다. 엄밀히 따지면 다른 나라들이 일찍 온 것이지, 루스웨나는 제시간에 맞추어 제대로 입궁했으니까.
그런 관점에서, 오히려 화가 나는 쪽은 루스웨나였다. 손님이 다 오지도 않았는데 연회를 시작하는 게 무슨 경우인가?
레핀은 콧수염을 만지작거리더니, 수행원들에게 눈짓하며 뒤로 물러섰다.
“대체 언제까지 기다리라는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요. 어기적거리는 것도 정도가 있는데.”
“쯧쯧. 대제국 바리엘도 별것 없어요. 일 처리가 이래서야, 원. 뭐가 제대로 돌아가겠습니까?”
“헉. 들리겠습니다.”
“들으라고 하시오. 시작부터 이러면 끝이 불 보듯 빤합니다. 레핀 님. 저희, 대관식 전에 돌아가는 건 어떻습니까?”
“어허. 엘더트 전하의 명이 있는데 어찌하여.”
“그래도 이런 대우는 아닙니다.”
“예. 아무리 껄끄러운 관계라곤 하지만, 전쟁이 선포된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저쪽에서도 선을 그은 것입니다. 루스웨나와 바리엘은 갈 길이 다르다면서요.”
“자중하게. 자중.”
레핀이 마법사들 쪽을 힐끔거리며 꾸중했다. 허세와 함께 불평불만을 늘어놓았지만, 진짜 마법사들이 들을까 봐 걱정하는 시선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마법사들은 저들끼리 머리를 맞대 숙덕거린다고 이쪽은 신경 안 쓰는 눈치다.
그르릉.
레핀의 머리 위에 드래곤의 턱이 얹어졌다. 아무래도 오랜 시간 한데 매여 있는 터라 지루한 것 같았다. 화들짝 놀란 레핀이 지팡이로 드래곤의 목과 배 부근을 사정없이 내려쳤다.
타앗!
“이놈이, 건방지게 감히!”
“아이고, 레핀 님. 흠집 나면 안 됩니다. 진상품이에요.”
두들겨 맞은 드래곤은 조금의 타격도 입지 않은 듯 여전히 멍청해 보이는 표정을 지어댔다.
머리를 맞대고 있던 마법사들이 이를 힐끔거리며 중얼거렸다.
“이거, 엘더트 왕이 우리한테 암살 청탁한 거 아닙니까? 레핀인지 머핀인지, 저걸 살려서 보내요?”
“살려서 보내자. 그럼 엘더트 속 터져서 뒈질 듯.”
“합리적이고 좋네. 전쟁까지 갈 필요도 없고.”
“비열한 콧수염 새끼. 다 뜯어버릴라, 콱.”
“드래곤도 그렇습니다. 아니, 보내도 뭐 저렇게 멍청해 보이는 애를 보냈답니까?”
“알고 보면 날개 달린 큰 도마뱀 아님?”
“지금 당장은 그렇다 쳐도 알현 끝나면 마법부에서 떠맡게 될 것입니다. 다른 부서에서 저걸 어떻게 감당해요? 대관식 하자마자 출전할 것인데, 문제가 많습니다.”
“국제협약 탓에 전쟁에 동원하지도 못하니, 골칫덩어리입니다. 완전 덩치 큰 베릭이라고요!”
“베릭은 참전하기라도 하지.”
“이안 님, 어떻게 하죠?”
속닥속닥, 미친 듯이 대화를 주고받던 마법사들이 동시에 이안을 쳐다봤다. 해답을 내려달라는 듯이 말이다.
이안은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잡음 따위는 사소한 것이라도 생겨서는 아니 된다.”
“물론입니다. 오늘이 무슨 날인데!”
이미 루스웨나는, 드래곤을 연회장으로 들이지 못하면 성의를 무시하는 것으로 간주하겠다 언질을 깔아놓았다. 즉, 드래곤을 안으로 들여 알현 절차를 지키되, 안전상으로 문제가 없도록 하는 게 지금을 해결하는 방법이다.
“근데 드래곤이 좀 어벙해 보이는 게, 가만있으라고 하면 괜찮지 않을까요?”
“쟤가 개도 아니고 뭔 개소리야? 루스웨나 새끼들이 무슨 장치를 해놨을지 어떻게 알아. 갑자기 흥분해서 다 때려 부수면? 전하 신변에 문제라도 생겨봐. 골치 아파진다.”
“그때는 머핀 대가리 따는 거지.”
“레핀. 저놈 죽는 거 제일 바라는 게 엘더트-”
“아코렐라. 크기를 줄일 수 있겠나?”
“예?”
이안의 물음에 마법사들이 멈칫했다. 지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저 집채만 한 것을 어떻게? 다들 빤히 이안만 바라보다가, 아코렐라를 돌아봤다. 그녀는 평소답지 않게 머뭇거리며 코끝만 긁어대고 있다.
“관련 물약이 있을 것 같은데.”
“…어, 있긴 한데요.”
“있어요? 그런 게 있어요? 왜, 왜 만들었어요?”
“아직 실험 단계라 사용 불가입니다. 사람을 대상으로 만든 거라, 특히 드래곤에게는 어떤 반응이 나올지 전혀, 전혀 예상할 수 없어요.”
“아니, 대장. 그딴 걸 왜 만들었냐고요.”
“닥쳐 이것들아, 내가 뭐! 어? 이안 님 골탕 먹이려고 그랬을까 봐?”
“와, 미쳤네. 돌았어.”
마법사들은 질린다는 낯으로 고개를 설레설레 저어댔고, 이안은 턱을 매만졌다. 직접 안으로 들이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긴 하다만, 그게 불가능하다면 어쩔 수 없지.
“그렇다면 평사(平射)로 진행하겠다.”
평사요? 그게 뭔데요?
다들 갈피를 못 잡는 듯 보여 설명을 덧붙이려는 순간이었다. 계속 드래곤을 두들겨 패던 레핀이 제 분을 못 이겨 소리쳤다.
“언제까지 대기하고 있으면 됩니까? 혹시 초대장이 잘못된 것이라면 편히 말하시오! 너그러운 마음으로 그대들을 탓하지는 않으리라!”
고함을 빽빽 질러대는 탓에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다.
이에 아코렐라가 무표정으로 경비병의 허리춤에 들린 검을 붙잡았으나, 화들짝 놀란 마법사들에 의해 무마되었다. 막 분위기가 어수선해지려는 그때-
“예. 드래곤은 두고 입장하십시오.”
길길이 날뛰던 레핀이 뒤를 돌며 언질한 이의 낯을 살폈다. 이안이었다. 차분히 이르는 어투에, 루스웨나 측 사절들은 금세 잠잠해졌다.
“드래곤은 두고? 그리하면 되겠소?”
“마법부가 맡아 이동시킬 것입니다. 알현 시 함께하도록 할 것이니, 루스웨나에서는 준비한 성의를 못다 보일까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전문가도 없는 마당에, 그쪽에서 하나 이쪽에서 하나 문제 될 것 없다. 이안은 더한 질문은 사절하겠다며 고개를 돌렸고, 이내 경비병들이 길을 터주었다.
“크흠. 짐을 옮겨라.”
“예. 알겠습니다.”
“똑바로 올려! 귀한 것들이니!”
레핀은 신경질적으로 명령한 다음, 수행원들과 계단을 올랐다. 이안 역시 마법사들에게 명령하며 드래곤 목에 걸린 줄을 손수 쥐었다. 직접 옮기시려나? 싶은 것도 잠시. 이안은 줄을 로만드로에게 건넸다.
“다들 본 위치로.”
“예, 위치로!”
“로만드로 님은 뒤쪽 공원으로 드래곤을 이동시켜 주십시오. 연회장과 인근 마법진을 수정한 다음 바로 따라가겠습니다.”
“아니, 나, 나, 혼자 가라고? 얘랑?”
“서둘러 주십시오. 마법사들은 역할이 있는지라 어쩔 수 없습니다. 저들도 전문가 없이 여기까지 끌고 왔으니, 훈련이 어느 정도 되어 있다는 뜻이겠지요. 자, 포탈을 닫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마법부로 가서 문제가 없다는 걸 확인하라!”
“예, 이안 님! 날아갔다 오겠슴다!”
“잠깐마안! 이안!”
지이잉! 지잉!
타다타닥!
마법사들은 샅샅이 흩어졌고, 이안마저 냉정하게 연회장으로 들어섰다. 로만드로와 경비병 그리고 드래곤만 남은 상황.
“이, 이걸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오.”
로만드로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병사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그들은 시선을 피하는 것으로 거절했다. 자리 이탈 권한은 물론, 나서서 드래곤과 함께할 용기도 없었던 게다.
사아악.
그때, 로만드로 뒤에서 들리는 낯선 울음. 그가 훌쩍이며 돌아보자, 드래곤이 빤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쩌어억, 조금씩 벌어지는 주둥이를 따라 짙게 드리우는 그림자. 날카로운 송곳니를 타고서 끈적한 침이 뚝뚝 흘러내리자, 로만드로는 현기증을 느끼며 비틀거렸다.
아아. 바리엘의 충신이자 소시민 가장, 로만드로.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남겨둔 채, 황궁에 몸 바쳐 여기서 죽다……?
“뭐여? 춤을 왜 여기서 춰요?”
“…베릭!”
그때, 비틀거리는 로만드로의 머리통 옆 부분을 단단히 붙잡아주며 등장하는 베릭. 이 순간만큼은 똥강아지가 아니라 든든한 황궁친위대원 마검사였다!
로만드로가 눈물을 글썽이며 베릭에게 안겨들자, 베릭은 괜히 알은체했다며 질색했다.
“아오, 좀 놔봐요. 미쳤나 봐, 징그럽게.”
“이거, 드래곤, 크흡. 나는 마력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데에… 이안이가, 커허어억…….”
“오, 드래곤.”
콰악!
“……!”
베릭은 굉장히 흥미로운 걸 발견했다는 듯 드래곤을 샅샅이 살피다가, 이내 입을 크게 벌려 콱, 목덜미를 물어버렸다. 이놈은 무슨 맛인가 싶어서.
* * *
“소란이 들리는데.”
귀족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진이 이안에게 손짓했다.
하하호호 떠들던 자들이 황태자의 눈치를 보며 목소리를 낮췄고, 주도하여 발언하던 자는 갑작스레 와인 잔에 입을 갖다 대며 이야기하기를 미루었다. 황태자 눈에 들기 위한 자리건만, 그가 집중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지 않나?
“송구합니다. 루스웨나에서 사절단이 도착했습니다.”
“일찍도 오셨군.”
비꼬는 게 아니라 진심이었다. 내일이나 지나서 올 줄 알았더니, 얼추 시간은 잘 맞췄다.
“진상품으로 드래곤이 올라왔는데, 곧이곧대로 들일 수 없어 조치하는 중입니다. 전하께서는 우려하실 바가 없습니다.”
짤막한 보고였지만, 그 안에는 많은 것이 함축되어 있었다. 루스웨나의 기만, 성의라는 명분, 소란의 원인 등등 말이다. 진은 아예 자리에서 일어났고, 귀족들은 낭패라는 듯 부채로 얼굴을 가렸다.
“엘더트가 머리를 좀 썼나 봐.”
“예. 하는 짓이 에리포니와 똑 닮아있습니다.”
“해결 방안은?”
“제일 좋은 건, 드래곤이 날뛰어 루스웨나 사절단을 처리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저희 쪽에서는 책임질 사안이 없고, 흉포한 짐승을 올리려 했다는 명분을 역으로 잡을 수 있습니다. 반갑지 않은 손님 처리는 둘째 치고서라도, 루스웨나에 간접적으로 의사 표현을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할 만하지 않은가?”
“드래곤 성격이 너무 온순합니다.”
그건 의외라며, 진이 눈썹을 까딱거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안은 진과 자신을 주목하고 있는 수많은 눈동자를 살피며 속삭였다.
“‘드래곤의 희생’이 있었던 터라,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없습니다. 송구합니다. 전하.”
태초부터 내려온 설화였다.
이제껏 드래곤은 인간의 무기로써 존재해왔고, 세상을 파괴하는 데 큰 역할을 맡았다. 이를 지켜본 신께서 그들의 힘을 앗아감에 따라, 지금의 드래곤이 된 게다.
‘신성불가침 협약’은 이걸 기리기 위한 인간들끼리의 맹세요, 나아가 더는 인간의 욕심에 그들을 희생시키지 말자는 약속이었다.
“뜻은 잘 알겠다. 나 또한 ‘드래곤의 희생’을 알아. 도의적으로나 외교적으로나 문제가 될 만한 사안이니, 그대의 의견을 따르겠다.”
“감사합니다. 전하.”
“그럼, 루스웨나 사절단만 들이면 되는 건가?”
“예. 준비는 끝났습니다.”
“들라 하라.”
진의 명령에 이안이 고개를 숙이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연회장 문이 열리며 레핀과 그 사절단이 위풍당당한 발걸음으로 들어섰다.
“안녕하십니까, 루스웨나 사절단 대표 레핀입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황태자 전하.”
“아주 대단한 걸 앞세워 왔다던데. 먼 길이라 하기에는 바리엘과 루스웨나가 가까우니, 그저 잘 왔다 이를 수밖에.”
“…무궁한 바리엘의 축복이 드디어 빛을 발하는 듯합니다. 전하께서 이끄시는 미래가 얼마나 대단할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군요!”
레핀이 한쪽 무릎을 꿇으며 인사를 올리자, 바리엘 귀족들이 크게 술렁였다. 지금 저걸 인사라고 하는 것인가? 바리엘의 축복이 드디어 빛을 발한다니? 그렇다면 이전에는?
‘더러운 콧수염이나 단 주제에.’
‘지금 무어라 했습니까?’
‘가시가 있습니다. 시작부터.’
“직접 참석하지 못한 엘더트 전하께서는, 현재 아주 애석한 마음이십니다. 하여 그 마음을 담아 준비했습니다. 바리엘에는 없는 귀한 것인데…….”
수행원들이 보석과 금은보화 따위가 수북이 담긴 상자를 내밀었고, 레핀은 어색한 웃음만 흘려댔다.
“이거, 원. 마법부에서 내어주질 않아서요. 바리엘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도 모두 지켜보고 있거늘, 민망할 따름입니-”
타앗!
레핀이 말을 끝마치기 전. 이안이 손끝을 가볍게 튕기자, 연회장 바닥에 잔디밭이 순식간에 차올랐다.
이에 놀란 사람들은 웅성거리는 것도 잠시, 그게 진짜가 아니라 불투명한 환상이라는 걸 알아챘다.
“전하. 저것이 진상품으로 올라온 드래곤입니다.”
쿠웅.
연회장 한가운데 모습을 보인 붉은 드래곤. 그 생생한 모습에 사람들이 뒷걸음질 쳤지만, 그것 또한 환상이라는 걸 알아채곤 감탄을 터트렸다. 이 모든 게, 바리엘의 마법부 장관, 이안의 솜씨라!
지이잉! 지잉!
이안은 드래곤 형체를 유지하기 위해 집중했다. 하나 오래가지 못했다. 그 등에 뭔가 이상한 게 달려있다는 걸 알아챈 것이다.
“저게 뭐지? 드래곤 등 뒤에요.”
“어디? 어, 어라?”
술렁이는 장내. 모든 이들이 드래곤의 등을 가리키며 수군거렸고, 이내 그것을 알아본 누군가가 소리쳤다.
“…베릭!”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