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536
제536화. 소 뒷발로 쥐잡기
“베릭, 이놈아아! 내려와아아!”
로만드로가 목청 터지라 소리쳤으나, 베릭에게 닿을 리 만무했다. 베릭은 아래를 힐끔 내려다보더니 드래곤 목덜미를 이리저리 잡아당기며 짜증 냈다.
“이거 은근히 고집 있네. 인마! 말 좀 들어라!”
“내려오라고오! 미친놈아!”
“얘가 안 내려가는데 어쩌라고요! 내가 마법사도 아니고, 여기서 뛰어내리면 뒤지는데?”
“너 안 죽는 거 다 알아, 인마! 내려와! 안쪽 사람들 다 보고 있을 건데, 그만 안 하면 이안이한테 혼날 거다! 밥 먹고 안 먹고의 문제가 아니란 말이다!”
“에효, 내 취급이 이렇다. 이래.”
베릭은 귀를 후비적거리면서도 이안이 혼낼 거라는 말을 흘려듣지는 못했다. 그러고는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가 싶더니, 드래곤 이마를 팡팡 쳐댔다. 아래로 내려가자는 신호였다.
“아잇, 그만 내려가자고!”
크아앙!
“어쭈, 말대꾸를 하네? 목덜미 좀 물었다고 이러기 있어? 엉? 꼬우면 너도 나 물든가.”
드래곤이 꼬리를 거칠게 휘두르자, 베릭이 요리조리 피하며 다시금 목덜미를 깨물었다. 드래곤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지고, 소름이라도 돋았는지 날개가 쫘악 펴졌다. 또 한바탕 시작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놈이 정원 밖으로 나가지는 않는다는 것. 마법사들의 마법 덕인지, 아니면 적당히 눈치가 있어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나 뭐가 됐든 골치는 골치. 로만드로는 손날로 그늘막을 만든 다음, 하릴없이 먼 하늘을 올려다봤다. 저 망아지 새끼를 어떻게 하면 좋으려나.
“로만드로 님!”
“아, 어서 와봐! 베릭이 미쳤어. 드디어 미쳤다고!”
“베릭, 오늘이 무슨 날인지 몰라?”
“알아! 아니까 고기 먹으려고 연회장 왔지!”
“내려와! 받아줄 테니까!”
“널 믿으라고? 에라이, 내가 빡대가린 줄 알아?”
“하아. 하는 꼴 보니까 빡대가리 맞네!”
지이잉! 지잉!
타앗!
사태를 파악한 마법사들이 다급하게 뒤뜰로 들이닥쳤고, 이내 동시에 창공으로 날아올랐다. 마지막으로 헤일. 그는 궐련을 바닥으로 내동댕이친 다음, 소매를 걷으며 마법을 발동했다.
「기속(羈束)」.
촤아악!
별생각 없이 옆에 있던 로만드로가 멈칫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워낙 많이 보았던 마법인지라, 그 형체와 아우라를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헤일의 기속(羈束)은 이안의 것과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밧줄이네?”
바닥과 벽을 타고서 하늘에서 빛기둥이 떨어졌던 이안의 것과 달리, 헤일은 밧줄 형태의 것을 형상화하여 쏘아냈다. 공중에 있던 마법사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드래곤의 목과 다리, 날개, 꼬리 등에 줄을 감아냈고, 이내 있는 힘껏 끌어내렸다. 워낙에 무거운 터라 쉽지 않았지만.
촤아악!
“뭔데, 이거 원래 이런 마법 아니었잖아.”
“십 년 동안 놀고먹지 않았습니다. 로만드로 님.”
“변형한 것인가? 대단하네, 응. 아이고, 북쪽 가서 고생을 많이 하긴 했어! 도와줄까?”
“드래곤이 내려오면 베릭 머리털이나 쥐어뜯어 주십시오.”
“응! 그건 걱정하지 말아! 내 단단히 해내지!”
“하나, 둘, 셋에 맞춰서 힘을 싣는다!”
“알겠습니다. 대장!”
“토미가 좌익, 나키나가 우익을 맡고 있나?”
“예! 근데 드래곤 아니랄까 봐 장난 아닌데요.”
“셋에 맞춰서 날개를 각자 반대쪽으로 당겨! 무게만으로는 감당 못 한다!”
지이잉!
인생 대부분을 함께 동고동락한 자들이라 척하면 척이다. 헤일 대장의 명령에, 마법사들이 제자리에서 대기하여 자세를 바로 했다.
“하나, 둘, 셋!”
카앙!
드래곤이 힘을 주며 버텼지만, 날개가 묶인 탓에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조금씩 그리고 천천히 아래로 내려온 드래곤은 결국 졌다는 듯 배를 까며 벌러덩 드러누웠다.
쿠웅!
“으억! 나, 나 깔렸다!”
등에 매달려 있던 베릭이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발버둥 쳤다. 겨우겨우 얼굴만 밖으로 빼내 숨을 내쉬는데, 그 위로 그림자들이 드리웠다. 사악하게 웃고 있는 마법사들이었다.
“여. 안녕.”
“안녕? 안녀어엉?”
“내 잘못 아니다. 저놈이 갑자기 날아오른 거라고.”
“날아오르든 말든, 거기에 왜 올라타는데?!”
“악! 잠깐만, 나 깔렸어! 깔렸어어!”
“닥쳐! 그러니까 패는 거다!”
“우씨! 나 딱 기억한, 으악! 악!”
마법사들이 동시에 달려들어 베릭의 머리채와 볼, 코끝 따위를 사정없이 잡아당기며 분풀이했고, 이에 베릭은 꼼짝 못 한 채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로만드로도 틈으로 끼어들어 힘을 보태려 했지만, 마법사들이 워낙 격렬한 탓에 밀려나고 말았다.
“다들 그만.”
“허억, 허억…….”
“저 아직 베릭 못 때렸는데요.”
“아이고, 힘들다. 이거, 패는 것도 일이네.”
헤일의 지시에 마법사들이 숨을 거칠게 내쉬며 주저앉았다. 안 그래도 백야 유지하느라 몸이 갈리고 있건만, 이런 추가적인 체력 낭비라니. 생각할수록 괘씸했다.
헤일은 새로운 궐련을 입에 물더니, 발라당 누워있는 드래곤을 쳐다봤다.
“얘도 만만치 않은데.”
기절한 것도 아니고, 놀라서 굳어버린 것도 아니다. 자신의 무게로 베릭이 꼼짝 못 한다는 걸 알고, 베릭이 당하게끔 움직이질 않았던 게다. 보통 영물이 아니다.
지금도 마찬가지, 드래곤은 헤일이 자기 얘기 하는 걸 알아채고는 고개를 돌려 눈만 바쁘게 깜빡거렸다. 아주 깜찍하게, 애교를 담아.
-뀨우?
“우엑. 방금 뭔 소리래? 네가 냈어? 덩치는 산만 한 게 어디서 귀여운 척을-”
-뀨우우?
“억! 허리, 허리 부러진다!”
드래곤이 몸을 이리저리 흔들어대며 베릭을 짓눌렀고, 마법사들은 그저 바라만 보다가 벌러덩 뒤로 누워버렸다. 베릭은 로만드로에게 도움을 청하며 손 뻗었으나, 로만드로 또한 못 본 척 몸을 돌렸다. 한번 제대로 당해보는 게 좋겠다며.
아무도 도와주는 이 없음을 깨달은 베릭은, 결국 울먹이며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
“이안아아!”
* * *
한편, 연회장의 분위기는 바깥과 조금 달랐다. 드래곤 환영이 2층과 천장 그리고 발치를 정신없이 드나들며 움직였고, 이는 마치 기획된 공연에 직접 들어선 듯한 느낌을 주었다.
드래곤의 생생한 움직임, 하늘을 나는 경이로움, 낯선 생명체를 가까이서 보는 신비로움 등. 모든 게 한 번에 휘몰아쳐 연회장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그 틈을 다급하게 헤집는 한 마법사.
“이안 님. 마법을 끊을까요?”
계속 보여줘도 되겠는가? 예상치 못한 베릭의 등장에, 마법사들은 당황하여 갈피를 잃은 듯 보였다.
하지만 이안은 손을 가볍게 들어 저지했고, 잠시 기다리라며 침묵했다. 그는 어지럽게 얽힌 연회장 반응을 재빠르게 읽어 내렸다.
“베릭이요? 저자가 그 황궁친위대 마검사입니까?”
“예. 이안 경이 밖에서 데려온.”
“무지막지하게 먹는다는 소문이 있던데, 인상이 생각과 매우 다릅니다. 그런데 뭐라고 하는 걸까요? 무어라 소리치는 것 같긴 한데.”
“글쎄요. 들리지는 않아서.”
“안전장치는 했나 몰라요.”
“에이, 마검사인데 그런 것은 필요 없지요.”
“세상에, 저런 대담함이라니. 무서울 게 없겠네요.”
“대단합니다! 대단해요!”
다행히 정원에서 오가는 상스러운 대화들은 들리지 않았다. 겉모습으로 보건대 황궁친위대 마검사 베릭은 낯선 드래곤을 능숙히 다루며 자유로이 하늘을 누비고 있었고, 이는 관객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안이 입가를 가리며 마법사들에게 속삭였다.
“신호하면 그때 끊을 것이다. 다들 시선을 돌릴 수 있도록 준비하라. 헤일 대장은?”
“바로 대처하기 위해 나갔습니다.”
“그래. 위치로.”
“예, 이안 님.”
귀족들은 하하호호 웃으며 드래곤을 유희 대상으로 삼았으나, 레핀은 못마땅하게 콧수염만 슥슥 긁어댔다. 진상품을 직접 올리지 못했다며 꼬투리를 잡으려 했건만, 완벽하게 물 건너간 것이다.
게다가 이런 연출이라니. 단순하게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드래곤의 위용과 신비함을 가감 없이 올려주고 있었다.
“…쳇.”
“근데 친위대원이 왜 드래곤에 올라탄 겁니까?”
“그러게.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네.”
“혹시 실수 아닐까요? 마법사들 움직임도 심상치 않습니다만.”
“음? 그래?”
레핀은 수행원의 언질에 눈동자를 휙휙 돌렸다. 마법부 장관인 이안 히엘로의 낯에는 어떠한 변화도 없었지만, 각기 흩어진 마법사들의 안면에는 당황한 기색이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저대로 떨구어서 죽었으면 좋겠군!’
속으로, 제발 저 붉은 머리 사내를 떨어뜨려 달라 빌고 또 빌었다. 그리만 되면 바리엘 체면 또한 바닥으로 떨어져 죽는 것과 다를 바 없지 않겠나? 최우수 전력의 상실은 덤이고 말이다.
이렇듯 드래곤 환영을 지켜보며 저주하던 레핀은 돌연 싸한 시선을 느꼈다. 천천히 뒤를 돌아보자, 진이 턱을 괸 채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
“보기 즐겁지 않은가? 확실히 대단한 진상품이다.”
“…예, 예. 전하. 전하께서 보기에 즐거우시고 대단하다 하시니, 저희는 감읍할 따름입니다.”
그때였다. 드래곤 환영이 연회장 한가운데 위치하는 순간. 사방에서 빛줄기가 뻗어나더니, 이내 드래곤을 포박했다.
이내 등장한 것은 드래곤을 둘러싼 채 날아오른 마법사들이었다. 그들의 손에서 뻗어난 빛줄기들이 연회장 곳곳을 수놓았다. 강렬하고도 아름다운 광경.
“어머, 마법사들입니다!”
“와, 지금 하늘을 날고 있는 건가요?”
“드래곤도 꼼짝 못 하는 모습을 보세요. 역시, 대단해요. 그 어떤 마물이 와도 마법사들 앞에서는 어림도 없습니다. 전쟁에서의 활약이 기대되는군요!”
“예. 전세가 어떨지 눈에 훤합니다! 바리엘에는 승리만 깃들 것입니다!”
마법사들이 일사불란하게 드래곤을 제압하자, 귀족들은 다시 한번 감탄을 터트려댔다.
이는 단순히 마법사 대 드래곤의 구도가 아니었다. 적대국에서 온, 인간과 다른 일종의 마물이다. 드래곤은 루스웨나와 버고스 그리고 나아가 균열을 상징했다. 제아무리 거대한 위험이 들이닥친다 한들 마법사들이 있는 한 문제없다고, 귀족들은 입을 모아 칭찬했다.
“여기까지.”
이안이 손짓으로 연회장 마법사들에게 신호했고, 동시에 모든 마력이 거두어졌다. 아래로 추락하는 드래곤의 형상이 단숨에 사라지며, 그 자리에는 꽃가루만 흩날렸다.
흥미롭게 지켜보던 클리포포드 왕이 보란 듯이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
짝짝짝!
“아주 멋집니다! 바리엘의 저력이 대단합니다!”
그러자 클리포포드 사절단 전원이 뒤따라 일어나며 박수를 보냈고, 옆자리에 있던 하완 왕국 사절단 역시 덩달아 찬사를 더했다. 귀족들 또한 우아하게 손을 들어 올리며 유흥거리에 대한 감사를 표했다.
이안은 가슴팍에 손을 올리며 고개를 까딱했고, 이어 알현을 마무리하기 위해 단상에서 내려왔다.
“레핀 사절.”
“예, 예에. 전하.”
“귀한 진상품, 모두 확인하였네. 그만 물러나 바리엘의 축제를 즐기시게.”
“감사합니다. 전하.”
진은 시간을 더 할애할 것도 없다는 듯 손을 휘휘 내저었고, 알현은 마무리되었다. 루스웨나 사절단이 물품들을 정리해 내리는 동안, 이안은 클리포포드 쪽으로 다가가 가벼이 고개 숙였다.
“전하. 감사합니다.”
잘 마무리하기 위해선, 관객들의 박수와 환호는 필수적이었다. 이안이 유도해도 되지만 제삼자인 클리포포드 측이 나서주어 분위기가 더 자연스러울 수 있었다.
클리포포드 왕은 흥분으로 발그레해진 볼을 내보이며 연신 웃음을 터트렸다.
“멋져, 멋져! 그래, 드래곤이 붉은색이라 붉은 머리칼인 베릭을 올린 것이지? 아주 탁월한 안목이었네. 내 한 가지 건의하겠네. 출정식에도 저 모습을 보이면 병사들 사기가 대단할 것이라.”
“…….”
이안은 잠시 왕의 낯을 살피며 멈칫거렸다. 베릭이 나온 건 실수였는데, 모르는 건가? 클리포포드 왕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이안에게 와인 잔을 건넸고, 이안은 능청스럽게 받아들었다.
“…고심해 보겠습니다.”
“그래, 그래! 하하핫! 아우, 장관이었네! 보기에 아주 즐거웠어.”
“그럼, 이만.”
이안은 걱정스레 자신을 바라보는 마법사들에게 작게 고갯짓하여 문제없음을 알렸다. 그리고 이내 지시했다. 보는 눈이 많으니,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베릭 데려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