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538
제538화. 술을 조심하라
-뀨우?
아코렐라는 허리에 손을 올리고서 드래곤을 올려다봤다. 가만 앉아서 고개만 까딱까딱하는 녀석. 성격은 비교적 온순해 보이는데 덩치가 덩치인 터라 보기만 해도 막막했다. 이걸 대체 뭐 어떻게 관리하라는 건지, 원.
아코렐라가 차분하게 머리를 쥐어뜯자, 마법사들이 펜대로 드래곤을 툭툭 건드렸다.
“베릭이랑 우리 대하는 게 좀 다른 것 같지?”
“얘도 아는 거 아닐까? 베릭이 자기랑 동급인 걸.”
“드래곤 성격이 원래 이럴까요?”
“개거지 같은 놈들도 있겠지. 근데 그런 애들은 전문가 없인 못 데려오니까.”
“하긴. 국경 넘기 전에 머핀 새끼 뒤졌을 겁니다.”
“그나마 제어 가능하고 적당히 우리 쪽에 엿 먹일 만한 놈으로 고르고 고른 게 이놈일 터인데, 흐음. 각린 분석 먼저 시작하자.”
“각린이요? 그거요?”
“어. 그거.”
“괜찮으시겠어요? 대장?”
오래전의 일이긴 하지만, 아코렐라는 드래곤 각린 감염병으로 죽다 살아난 적이 있다. 그녀는 위생 장갑을 단단히 끼며 돌아봤다.
“나 아니면, 할 만한 사람 있어? 여기서 드래곤 각린 만져본 사람? 아니, 어떻게 다루는지 아는 사람?”
“…없습니다.”
“그러니까 평소 여러 방면에 관심 두고, 엉? 연구도 좀 하면서, 준비 좀 해놔라. 이것들아.”
“참나. 대장도 감염병 걸려서 그런 거였잖아요.”
“꼬우면 걸리시든가.”
아코렐라는 드래곤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 비늘을 한 꺼풀 들어 올렸다.
뭔가 느낌이 이상했는지 드래곤이 고개를 기울이자, 마법사들이 경계 태세를 취했다. 놈을 묶고 있는 쇠사슬이 얼마나 볼품없는 제어 장치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혹시나 돌변하여 날뛴다면, 즉시 제압해야만 했다.
“워워. 분위기 풀어. 애 긴장한다.”
“그러다 대장 목 날아갑니다.”
“옴마. 언제부터 날 걱정했다고?”
“똑바로 하세요. 비늘 꺾이잖습니까.”
“누가 대장인지, 참나.”
또독! 아코렐라가 비늘을 뜯어내자, 드래곤의 눈이 커졌다. 크릉크릉, 콧김이 거세졌고 입가로 침이 뚝뚝 흘러내렸다. 심상치 않은 반응이라.
마법사들이 긴장하는 사이, 아코렐라가 다시 비늘을 잡아당겼다.
“…대, 대장!”
“왜 자꾸 쳐 부르세요오.”
“얘 우는데요.”
“뭐?”
아코렐라가 어이없어하며 고개를 틀었다. 침인 줄 알았는데, 그게 눈물이었던 게다. 그녀는 드래곤이 달달 떨고 있다는 것 또한 알아챘고, 똑 떼인 비늘 두 개만 손에 쥐고서 한숨 쉬었다.
“됐다. 이걸로 검사하지, 뭐.”
“울지 마, 이놈아. 왜 울어?!”
-뀨우우!
“미치겠네. 울지마. 너 뭐 먹니? 고기? 과일?”
“베릭 주려던 거 얘 주자.”
금방이라도 제압할 것처럼 경계하던 마법사들이 하나둘 다가와 드래곤의 이마를 매만져줬다. 그러자 이때다 싶어 벌러덩 배를 까며 드러눕는 녀석. 마법사들은 신기하다며 여기저기 만져줬고, 아코렐라는 경고했다.
“손 떼라. 각린 조사하기 전에는 접근하지 마.”
“우우. 매정한 사람 같으니.”
“꼬우면 뭐다? 뒤지는 거다.”
“근데 얘, 보면 볼수록 신기해요. 처음 보는 사람들을 왜 이렇게 좋아하지?”
“베릭은 싫어했잖아.”
“걔가 사람은 아니지. 아무튼, 루스웨나 사절단 앞에서도 온순하긴 했는데 이런 느낌은 아니었잖아요. 마물이라 마법사들 좋아하는 건가? 루스웨나도 마법사 한 명 대동했다며?”
따악!
아코렐라가 물러날 생각 없는 마법사들에게 꿀밤을 시원하게 날렸다.
“울타리 세워 놓고 묶어놔. 접근 금지라고 했다잉. 어기면 목숨 여러 개라 생각하고 연구실 초대함.”
“헉! 명심할게요.”
쯧쯧. 진작 그럴 것이지.
아코렐라는 바로 연구실로 올라와 투명한 유리컵에 각린 두 개를 넣었다. 웬만하면 드래곤에게서 결함이 발견되는 편이 좋았다. 그러면 그대로 레핀을 통하여 돌려보낼 수 있고, 문제에 따라 황실의 명분을 확장할 수도 있을 터이니.
‘하지만 이미 각린 소동은 십 년 전에 있었다. 어느 정도 우리도 정보를 갖고 있어. 루스웨나도 이걸 알고 있으니, 혹 전염병이라도 똑같지는 않을 것 같고. 흐음.’
스윽. 아코렐라는 보호경을 내려 쓰며 숨을 가볍게 들이쉬었다. 신성한 연구 전에 하는 하나의 의식이다. 루스웨나가 드래곤을 통해 보내온 엿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중요한 자리이니, 심혈을 기울일 수밖에.
달그락.
퍼어어엉!
“……?!”
실험 시작하고 십 분 뒤.
갑자기 터진 굉음에 마력석연구부 마법사들이 화들짝 놀라며 아코렐라 실험실 쪽을 쳐다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늘 있는 일인지라, 다들 관심을 거두곤 책상에 엎드렸다.
대관식까지 체력 보충은 필수다.
* * *
한편, 연회장 분위기는 꽤 어수선했다.
쏟아진 와인 냄새와 취한 자들의 웃음소리, 거기에 거의 늘어지다시피 한 귀족들은 편한 자세로 궐련을 피워대고 있었으니. 시장통이나 황궁 연회장이나, 파티의 민낯은 그다지 다를 바가 없었다.
“레핀 님.”
“으엉?”
“하완 왕국 수상과 마법부 장관이 보이질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술이 거나하게 취한 레핀. 그는 콧수염을 매만지며 의아한 소리를 내었다.
클리포포드 쪽은 국왕을 비롯, 어린 왕족을 제외한 모두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술을 워낙 좋아하는 민족성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몇 시간 째 알딸딸한 상태 그대로 연회장 분위기를 주도하는 중이었다.
“장관은 쉬러 들어간 것 아닌가? 보니까 마법사들이 교대하여 자주 오가더만.”
“그럴 수도 있는데, 하완의 수상 또한 함께 오리무중이니 걱정입니다. 둘이 밀담하는 게 아닐까 싶은데요.”
“킥! 밀담해봤자 그자가 무얼 할 수 있어? 정쟁에서 밀려나 유배당한 주제에.”
“그래도 확인해보심이 좋겠습니다. 하완과 루스웨나는 가까워서, 사실 바리엘보단 그쪽 동태가 더 중요하지 않습니까. 샤티마가 바리엘의 지원을 등에 업고 귀국한다면, 하완뿐만 아니라 루스웨나에도 큰 골치입니다.”
홀짝! 술잔을 물고 있던 레핀의 낯이 조금씩 일그러졌다. 곰곰이 곱씹을수록 일리 있는 간언이다. 그는 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물었다.
“드래곤은?”
“마법부에서 데리고 갔는데, 그 뒤로는 별 반응 없습니다. ‘아직’ 문제없는 듯합니다.”
“우리 처음 왔을 때 안내했던 분홍 머리 마법사 말일세. 대장이라는, 그 아코디언 뭐시기.”
“아코렐라 대장이요.”
“어어, 그래. 뭔가 싸하지 않아?”
“정보로는, 마법부에서 연구 담당한다고 하던데요.”
“그니까 싸하다는 거지! 드래곤 연구도 그쪽이 할 것 아닌가?”
아마도 적임자가 없다면 그럴 것이다. 수행원이 고개를 끄덕이자, 레핀은 혀를 끌끌 차대며 중얼거렸다.
“알아낼 것 같은데.”
“뭘 말이오?”
그때, 고개를 쑥 들이미는 클리포포드 왕.
헤실헤실 웃는 낯이라, 눈매가 일자로 휘어있었다. 봉긋 솟은 광대는 또 어떻고? 일국의 왕이라 생각할 수 없는, 푸근한 분위기다. 왕은 와인 잔을 흔들며 레핀에게 술을 권했다.
“뭘 알아낸다는 건지, 나도 한번 알아내보겠소!”
“벼, 별것 아닙니다. 그나저나, 전하께서 참 술을 즐기시는 듯합니다.”
“클리포포드 사람이라면 이 정도는 기본이지! 우리는 매 끼니 반주를 든다오. 자자, 빼지 말고 한 잔 더! 진 황태자 전하께서 아주 좋은 술을 내려주셨으니, 한 방울도 남기지 말아야 할 것이라! 쿄쿄쿄!”
“아, 저는 이제 그만-”
“왜? 안 마시게?”
타국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왕이 주는 건데? 안 받게? 클리포포드 왕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레핀을 쳐다봤고, 이어서 그 왕가와 수행원들 또한 시선을 보탰다. 감히, 우리의 왕께서 주시는 술을 거절하는 건가?
레핀은 어쩔 수 없이 어색하게 웃으며 잔을 들이켰다.
“그래그래, 잘 마시니 보기 좋구만! 그런데 궁금한 게 하나 있어.”
“예, 전하. 크허억. 어이고, 쓰다.”
“드래곤 말일세. 예전에 루스웨나에서 문제 된 적 있지 않나? 그, 반역으로 멸문한 귀족이 그쪽 드래곤으로 뭘 했었다고 들었는데.”
“아아. 하이만 가문이요?”
레핀은 저도 모르게 대꾸하고서 주위를 살폈다. 이곳이 바리엘 황궁 한복판이라는 걸 잠시 간과한 것이다. 다행히도 대부분 취해서 제 몸 하나 가누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쪽 부인이 루스웨나 왕실 출신이긴 했지만, 글쎄요. 당국은 그때 일과 전혀 무관합니다.”
“흑갑옷인가 뭔가, 그걸 드래곤으로 만들었다는 소문을 들었어. 그게 정말인지, 내 조심스럽게 묻는 바일세.”
“그것은 협약 위반 아닙니까? 전혀 아닙니다. 루스웨나는 국제적으로 공인된 드래곤 사육장만 운영하고 있을 뿐, 그 외 사안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일입니다. 소문이 뭐 어디서 어떻게 도는지, 참으로 유감스럽군요.”
레핀은 말을 잇지 않기 위해, 자진하여 남은 술을 입에 털어 넣었다. 클리포포드 왕은 주위를 슬쩍 살피며 그런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앉았고, 이내 속삭였다.
“그러면 그대는 흑갑옷에 대하여 그 어떤 것도 모른다는 말인가?”
“예예. 본 적도 없고, 그렇습니다.”
“흐음, 그래? 아쉽군.”
클리포포드 왕의 중얼거림에 레핀의 눈이 가늘어졌다. 아쉽다니? 무엇이? 그는 손끝으로 테이블을 가볍게 두드리며 고민했다. 그리고 이내, 못 참겠다는 듯 왕에게 속삭였다.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으응. 아닐세.”
“루스웨나 사절단으로서, 흑갑옷에 대한 말씀을 쉽게 흘릴 수 없습니다. 전하. 말씀해 주십시오.”
“크흠. 그러면 잠깐.”
왕은 레핀에게 손짓하여 더욱 가까이 붙으라 일렀다. 무언가 있구나! 레핀이 눈을 반짝이며 바라보자, 왕은 자연스럽게 빈 술잔을 채웠다.
“다른 게 아니라, 클리포포드 수도가 균열로 파괴된 것이 벌써 십 년째일세. 이제 슬슬 자주적인 복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
“예예. 그렇지요. 왕가에 대한 존엄성과 관련된 문제니까요.”
레핀은 ‘자주적인’이라는 언질에 기민히 반응했다. 지금 클리포포드는 바리엘에 의존하여 국정이 운영되고 있는데, 그걸 타파하여 새로운 형국을 이루겠다는 뜻 아닌가? 이는 국제 정세에 아주 중요한 흐름으로 이어질 터였다.
“예전에 황궁이 하이만 가문으로부터 압수한 흑갑옷 수가 꽤 되는 것으로 알고 있네만, 클리포포드 쪽으로는 지원이 불가하다고 하네.”
“아무래도, 예. 바리엘이 사용하기에도 모자랄 것이니까요.”
“그래서 내 따로 은밀히 묻는 것인데, 혹시 흑갑옷을 구할 방도가 있겠는가? 공식적인 방법 외에 말일세. 대외적인 관계 탓에 루스웨나와 클리포포드 사이에 교역이 불가함은 서로가 아주 잘 알고 있으니, 혹 레핀 대표가 자리를 마련해줄 수 있나 싶어.”
“흑갑옷을요. 흐음.”
“공급처만 연결해준다면, 거래 대금의 1할을 그대에게 주지.”
1할? 레핀이 저도 모르게 눈을 깜빡거렸다. 감히 상상조차 안 되는 금액이었다. 흑갑옷은 한 기당 천문학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었으니. 레핀은 알딸딸한 자신의 볼을 가볍게 내려쳤다.
‘정신 차리자. 이거 함정이다, 함정.’
클리포포드가 그만한 돈을 어디서 마련해 지급하겠다는 건가?
설령 지급한다 한들 클리포포드로 흘러들어 간 흑갑옷은 바리엘로 전해져 루스웨나의 숨통을 조여올 게 분명했다. 이는 아주, 아주 허술한 간계인 것이다!
“실례하오나, 전하. 흑갑옷은-”
“거절의 서두로군. 자, 일단 한잔하고.”
“아, 예예.”
레핀은 핑핑 도는 느낌을 애써 누르며 술잔을 들이켰다. 슬슬 자리를 피하는 게 좋겠다. 그가 젖은 콧수염을 닦아내려고 하자, 클리포포드 왕이 재차 질문했다.
“루스웨나가 흑갑옷을 준비하고는 있나 보군.”
“예.”
어라? 이게 뭔 일이지? 레핀은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대답에 놀라며 입을 틀어막았다. 하지만 클리포포드 왕은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었다.
“흑갑옷 제작엔 드래곤 각린이 필수인데, 꽤 많은 양이 공급되어야 할 것이라. 공식적인 사육장 운영만으로 그게 가능한 일인가?”
“…아니요!?”
이게 뭐지? 레핀은 제멋대로 움직이는 혀를 어금니로 꽉 눌러댔다. 뭔가, 잘못 마신 게 분명했다.
클리포포드 왕은 그럴 줄 알았다며 허허 웃었고, 눈을 찡긋거렸다.
“그럼, 다른 사육장이 있나 봐?”
“저기, 전하?”
“왜 그러시는가? 술에 많이 취한 것 같아.”
술기운을 빙자한 무언가가 레핀의 몸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는 문득, 실담물약이란 존재를 떠올렸지만, 눈앞이 핑핑 도는 탓에 생각하기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젠장. 일어나서 실담물약인 걸 주장하여 이의를 제기해야 하는데…. 아니면 그저 술에 취해 내가 실수했다 여길 것인데…….
쿠웅!
레핀은 결국 앞으로 고꾸라져 테이블에 이마를 박았고, 클리포포드 왕은 꺄앙 웃으며 그의 등을 두드렸다.
“이봐! 루스웨나 측은 레핀 사절대표를 부축하라! 어우, 술도 못 하면서 왜 주는 대로 마셨는지 몰라아!”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