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542
제542화. 더러운 콧수염 보고서
이안의 눈짓에 시종이 문을 좌우로 젖혔다. 순간, 훅 끼쳐 올라오는 피비린내. 탁상에 대충 걸터앉아 있던 아코렐라가 이안을 발견하고는 반갑게 손 흔들었다.
“아아, 오셨어요?”
궐련을 물고서, 다리는 까딱까딱. 자세가 꼭, 어디 뒷골목 주점에 상주하는 시정잡배와 다를 바가 없다. 함께 들어오던 로만드로가 못마땅한 시선으로 물었다.
“왜 그러고 앉아 있어?”
“어우, 말도 말아요. 졸라 힘들었으니까. 대관식은요? 다 끝났어요? 사람들 슬슬 나가는 것 같긴 하던데.”
“대충 정리하고, 폐하께서는 침실로 드셨다.”
“오, 폐하라. 실감이 확 나긴 나네요.”
“레핀은? 죽이진 않았지?”
“물론. 저 아마추어 아닙니다. 죽은 거랑 상태가 비슷하긴 한데, 그래도 숨은 붙어있어요. 저기.”
아코렐라는 궐련을 까딱거리며 침대 쪽을 가리켰다. 거의 탈진한 레핀이 시체처럼 누워있었다. 입가에는 말라버린 핏자국이 여실했는데, 자세히 보니 앞니 몇 개가 나가 있었다.
로만드로가 기함하며 아코렐라를 돌아보자, 그녀는 결백하다는 듯 어깨만 으쓱거렸다.
“그거, 제가 한 거 아니에요. 자기 혼자 지랄 떨다가 넘어져서 깨진 거라고요.”
진짜인지는 모를 일이다.
로만드로는 조심조심 윗입술을 들어 올리며 상처를 확인했고, 이안은 그녀 앞에 놓여있는 보고서를 집어 들었다. 생생하게 기록된 고문, 아니 심문 흔적이다.
“그래서, 뭐라고 하던가?”
“제 생각에는 레핀 말고 다른 놈들도 똑같이 족쳐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워낙 믿을 수 없는 말을 지껄여서.”
그녀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더니, 레핀 쪽으로 연기를 후우, 내뱉었다.
“불법으로 이종교배 한 드래곤은 총 오십여 마리.”
“뭐어어? 현재 루스웨나에서 공식으로 관리하는 게 열다섯 마리 남짓하지 않나?”
“네. 십 년 전, 하이만 사건 때만 해도 고작 몇 마리에 달할 것이라 예상했었는데, 생각 외로 수가 너무 많습니다. 당국 주도로 교배를 적극적으로 진행한 듯 보여요. 레핀 저 새끼의 말대로라면요. 그 담당이 당숙이라네요.”
“잠깐만. 드래곤 한 마리로 흑갑옷 몇 기 정도 만들 수 있을까? 이안, 알고 있나?”
이안은 로만드로의 물음에 잠시 멈칫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전에 읽었던 보고 내용을 떠올린 것이었다.
사실 한 마리로 몇 기를 만들 수 있는지는 크게 중요한 사안이 아니다. 그들에게는 십 년이라는 시간이 있었으니까.
“드래곤의 크기나 제조 방법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겠지만, 일 년 단위로 마리당 흑갑옷 열 기 정도는 능히 제작 가능합니다. 오십 마리라고 했으니, 일 년이면 5백 기, 그게 십 년 동안 이어진 거라면 총 5천 기입니다.”
“흐, 흑갑옷이 5천 기.”
로만드로는 흑갑옷의 위력을 아주 생생히 기억했다. 내란 당시, 그로 인해 황궁친위대장이 죽었고 비비안나와 베릭이 또한 죽음의 고비를 넘기지 않았던가?
이안은 조용히 덧붙였다.
“드래곤 각린의 재생에 일 년이 걸린다는 가정 아래 오천 기 정도일 것입니다. 재생 주기가 몇 개월로 줄어든다면, 그 수는 더욱 늘어나겠지요.”
“이거, 크, 큰일 아닌가? 황궁친위대 대장들도 섣불리 맞서지 못했던 갑옷일세. 그런데 몇천 단위로 준비되어 있다면, 어허.”
큰일이다! 큰일이야!
로만드로가 좌우 관자놀이 쪽을 부여잡으며 절망하자, 아코렐라가 새로운 궐련을 꺼냈다. 아직 안 끝났으니까, 진정하고서 계속 들어보라는 듯.
“더 큰 문제가 있어요.”
“또, 또 뭐가 남아있는데?”
“이종교배 과정에서 가끔 살생 능력을 각성한 드래곤이 태어난다고 해요. 뀨처럼.”
“뀨, 뀨처럼?”
“근데 막상 뀨가 그런 애인 줄은 모르고 있더라고요. 적당히 각린 벗겨먹다가 죽어가는 거 골라 던져줬는데, 완전 골 때리는 상황인 거죠. 루스웨나 입장에서는.”
이안은 아코렐라의 보고서를 읽으며 나지막이 되물었다.
“그쪽에서 그 드래곤들을 전쟁에 동원할 가능성은?”
“상당합니다. 제 생각으로는 바리엘이 뀨를 선전용으로 사용하면, 그걸 빌미로 루스웨나도 드래곤을 끌어들이려 했던 것 같아요.”
“잠깐! 그러니까, 루스웨나가 우리 반응을 예상했다는 건가?”
“뀨가 순혈 드래곤이 아니라는 협약 맹점을, 우리가 이용할 수도 있단 것까지 염두에 뒀더라고요. 대신 그쪽은 살상 능력이 있고, 우리는 없는 것으로 그림을 그린 것 같던데. 뀨 때문에 그건 망했죠.”
“이, 이안! 이러면 드래곤, 전장에 데리고 가면 안 되겠는데?”
이안은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미 루스웨나는 흑갑옷을 비롯하여 살상 능력이 있는 드래곤을 전쟁터에 끌어들일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뀨가 있든 없든, 승리의 기울기에 따라 살상용 드래곤은 필시 투입될 터.
“루스웨나 국운이 달린 일이니, 밀린다 싶으면 온갖 수를 다 동원하여 상황을 반전하고자 할 것입니다. 마법사 없는 루스웨나에서는 포기할 수 없는 무기겠지요.”
“아이고, 우리 병사들 어째. 진짜 큰일 났네.”
땅에서는 흑갑옷이, 하늘에서는 드래곤이 활개 치게 생겼다. 이안은 아코렐라의 보고서를 고이 접어 안주머니에 챙겨 넣었고, 서둘러 나가자며 고갯짓했다.
“로만드로 님. 황궁친위대장들을 만나야겠습니다. 흑갑옷에 관해 의견을 나눌 필요가 있어요.”
“아, 그러지! 바로 전언 보내겠네.”
“아코렐라는 여길 정리하고, 다른 루스웨나 사절단을 담당하라.”
“예, 분부하신 대로.”
아코렐라는 가슴팍 쪽으로 장난스레 손을 올려붙이며 인사했다.
“근데 우리 내일 떠나는 거 아니에요? 폐하랑 함께 움직이는 거잖습니까.”
“그렇다.”
“아. 그때까지 일 마무리해 놔라? 예예. 제가 순간 느슨하게 생각할 뻔했네요. 금방 다시 보고서 작성해서 가겠습니다.”
“아코렐라.”
“예?”
밖으로 나서려던 이안이 잠시 멈추어서 그녀를 돌아봤다. 혹시 몰라 다시금 당부하려는 것이었다.
“마력증폭제와 회복제를 충분히 챙기도록.”
“걱정 마세요. 먹다 뒤질 만큼 많으니까.”
대관식으로 인해 마법사들의 체력이 이전과 같지 않았다. 아마 며칠 동안은 행렬에 몸을 맡기고서 휴식을 취하는 게 전부일 터.
아코렐라는 걱정하지 말라며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려냈다. 이안과 로만드로가 자리를 떠나자, 그녀는 남은 궐련을 다 털어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그럼-”
기지개 쭈욱! 다친 발목 때문에 균형이 맞지 않아 잠깐 휘청였지만, 그녀는 상쾌하게 소리쳤다.
“다음 루스웨나 실험체들 들어오라고 하자!”
“예, 금방 데려오겠습니다.”
“산 채로, 싱싱하게. 좋다!”
생체 실험을 거치고 나면, 부작용은 놀라울 정도로 개선되곤 했다. 지금까지는 그 대상이 마땅치 않아서 문제였던 게다. 다들 귀한 몸 사린다고 어찌나 도망쳐대던지, 원!
“참, 마법사도 있던데, 그분은 어떻게 할까요?”
“마법사? 아아.”
“별말 없던가?”
“아, 예. 특별한 언질은 없었습니다.”
“그래? 아쉽네.”
루스웨나 소속이지만 마법사는 마법사. 신의 사랑으로 이어져 있는 존재 아니던가? 자이라를 중심으로 루스웨나 귀화 마법사들이 나서서 그를 설득하겠다 했는데, 실패했나 보다. 아코렐라는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듯, 머리를 헝클어댔다.
“쯧쯧, 같이 데려와. 어찌 보면 잘 됐지. 마법사 상대로는 진짜 오랜만에 한다.”
“예. 알겠습니다.”
시종들이 종종걸음으로 뛰어나갔고, 아코렐라는 침대에 자빠져 있는 레핀을 가만 들여다봤다. 싱긋 웃는 것도 잠시. 그녀는 있는 힘껏 콧수염을 잡아 뜯으며 소리쳤다.
쫘아악!
“일어나! 쳐 누워있지 말고오!”
* * *
밤이었다. 실로 오랜만에 찾아온 밤.
대관식이 끝났다는 걸, 황궁 사람들 모두가 실감하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해가 지지 않던 백야(白夜)도 신기하고 환상적이긴 했지만, 기나긴 낮 끝에 만나는 밤 또한 근사하니 아름다웠다.
타닥타닥!
히이잉!
이안의 마차가 황궁 본관 앞에 도착했다.
진의 처소가 황태자 궁에서 본궁으로 옮겨졌고, 황궁친위대는 원래부터 본궁 근처에 있었으니. 이안은 자연스럽게 계단을 올라 안으로 들어섰다.
“폐하는 주무시는가?”
“아무래도 이틀 가까이 깨어계셨던 터라.”
“그렇다면 제이럿 대장을 먼저 만나도록 하지.”
“예, 이쪽으로 안내하겠습니다.”
본궁 담당 시종이 고개를 살짝 숙인 채로 앞서 걸었다.
당장 내일이 되면, 황제 역시 궁을 떠나 전장으로 출격할 터. 다들 출정 준비하느라 정신없이 분주한 모습이었다.
황궁친위대원들 역시 훈련장이 아닌 본 건물에 모두 모여있다는 것이 그 방증이었다. 그들은 궁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며, 나름의 준비로 바빠 보였다.
“어, 이안 히엘로 장관님 아니십니까? 안녕하세요.”
“그래. 고생이 많다.”
“베릭 찾으러 오셨나요? 걔 지금 뒤쪽에서 얼차려 받고 있는데요.”
“…아니, 제이럿 대장을 만나러 왔네.”
“그러세요? 어차피 그쪽으로 가셔야겠네요, 대장들도 다 그쪽에 계셔서. 여기서부터는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친위대원은 본궁 시종에게 안내를 맡겨달라 눈짓했고, 두 사람은 그를 따라 움직였다. 가만 눈치 보던 로만드로가 참지 못하고 넌지시 말을 붙였다.
“그런데, 오늘은 왜 얼차려 받고 있는 겐가?”
“아아. 아까 제이럿 대장님이랑 가볍게 대련하는데, 무기 쓰지 말자고 해놓고 먼저 검 뽑더라고요. 바로 대가리 깨져서는 머리 박았습니다.”
“허! 거참, 하루가 멀다고 그러니 미치겠구먼. 아마 벌받는 게 일이었으면, 베릭 고것은 훈장감일세.”
“하하하. 맞습니다. 얼마 전에도 호되게 혼났죠?”
“드래곤 그거, 으응. 나 진짜 옆에서 보는데 기절해서 죽는 줄 알았잖아.”
저 멀리, 진짜 머리 박고 있는 베릭이 보였다. 그 주위로는 대원들이 자유롭게 모여 앉아 검을 닦고 갑옷을 정비하는 등 출정 준비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대장! 마법부 장관님 오셨습니다.”
“바쁘십니까?”
“아니요. 뭐, 미친 강아지 한 마리 때문에 정신 사나운 거 빼면 괜찮습니다.”
“이안아아아!”
제이럿이 머리 박은 채 겨우 눈알만 굴리는 베릭 쪽을 힐끔 쳐다보며 중얼거렸고, 이안은 무시하자며 싱긋 웃기만 했다.
“앉으십시오. 대관식, 고생하셨습니다.”
“예, 다들 고생하였지요.”
“한데, 무슨 일이십니까?”
“방금 루스웨나 측을 통하여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흑갑옷에 관한 것인데, 그 수가 상당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스윽.
이안은 아코렐라의 보고서를 그대로 넘겨주었다. 흑갑옷이라는 단어에 반사적으로 반응하는 제이럿. 그는 난감하다는 듯 턱을 쓸어내렸다.
“5천 기.”
“일반 병사로는 상대할 수 없음을, 제이럿 대장께서 더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예. 알고 있지요. 그걸 어찌 잊겠습니까.”
“마법사와 마검사들을 주축으로 저지하는 수밖에 없는데, 혹 제안하실 것이 있다면 듣고자 이리 왔습니다. 당장 내일 맞서지는 않겠지만, 국경을 넘으면 언제 마주할지 모르는 위험이니까요.”
“…이전 경험으로 봤을 때, 저와 대원 여섯이 동시에 두 합을 내리치면 투구를 부술 수 있었습니다.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았으나, 그 시간 동안 흑갑옷 역시 개선되었다면 말이 달라지겠으나-”
“진상된 드래곤의 각린이 많이 상해있었습니다. 수급할수록 질이 떨어지는 것이라면, 흑갑옷의 품질 또한 덩달아 떨어질 거라 예상됩니다만. 예, 저 역시 그걸 직접 보기 전에는 말씀을 못 드리겠습니다.”
“진상된 드래곤이라 하면, 베릭이 타고 다녔던 그것 말입니까? 이름이 있나요? 안 그래도 마법부에서 그놈을 담당한다고 하여 건의 드리고자 했습니다. 비행에 능한 마법사들과 달리 마검사들은 도약에 한계가 있는지라-”
“뀨, 라고 하더군요.”
“네?”
제이럿이 놀라서 묻는 동시에, 베릭이 고개를 번쩍 들어 이안을 쳐다봤다. 오가던 황궁친위대원들도 마찬가지다.
“아코렐라가 그리 이름 붙인 듯했습니다.”
“아아, 예에…….”
“이안아아! 너 방금 뭐라 했어? 걔 이름이 뭐라고?”
“…뀨?”
이안은 베릭을 돌아보며 별 시답잖은 걸 묻는다며 눈썹을 까딱거렸다.
베릭이 배를 부여잡은 채 몸을 뒤집었고, 황궁친위대원들은 못 들은 척 가던 길을 지나갔다. 로만드로 역시 손으로 입을 터억 막으며 그대로 굳어버렸다.
“이안아, 뭐라고? 뀨? 뀨우?”
“…….”
“쉬발, 살다 살다 쟤가 뀨뀨거리는 걸 다 보고! 어이고, 다 살았다! 죽어도 여한이 없다! 크하하학!”
“…….”
이안은 베릭에 의해 놀림당했음을 깨달았고, 이내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돌멩이 하나를 투욱 던져줬다.
“엥?”
“하던 것. 계속하거라, 베릭.”
“이건 뭔데?”
영문 모르는 얼굴로 돌멩이와 이안을 번갈아 쳐다보는 베릭을 위하여, 로만드로가 웃음을 참으며 설명해줬다.
“그, 베릭. 땅에 머리 박지 말고, 돌멩이에 박아라. 응응.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으휴, 그러니까 사람이 눈치껏 해야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