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545
제545화. 북쪽으로 간 선발대
북쪽 국경선 인근.
대관식 때 먼저 출발했던 소규모 선발대는 드넓은 대지 위를 묵묵히 걷고 있었다.
대부분이 평생을 중앙에서만 살았던 자들이다. 아무것도 없는 광활한 풍경은 그들이 삶의 터전을 떠나왔음을 실감하게 했다.
하나 한편으로는 설레기도 했다. 그들이 나아가고 있는 이 길이, 새로운 시대의 시작점임을 상징하는 것 같아서.
“이봐.”
묵묵히 걷던 중년의 병사가 옆 동료에게 말을 붙였다.
“에이린이라고 했지?”
“예, 그쪽은 토보 님이고요.”
“님은 무슨, 같은 병사끼리. 괜찮은가?”
에이린은 과장 조금 보태어 자기 몸만 한 군장을 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문제없다는 듯,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습니다. 이제 시작인데요.”
“저기 흑암 지대 보이지? 돌산 앞쪽에.”
“예, 보입니다.”
그들이 지나가고 있는 싱그러운 들판과 달리, 죽음이 서려 있는 듯한 검은 지대. 에이린은 턱 끝으로 떨어지는 땀을 대충 훔쳐냈다.
“그쯤에서는 아마 쉬었다 갈 것일세. 균열 지대 진입 직전이라 정비해야 하거든. 얼마 전까지 황궁 마법사들이 상주하던 장벽도 있고. 쉬기에 아주 적합하지.”
“잘 아시네요. 이쪽에 자주 오셨어요?”
“북쪽 출신인데, 중앙으로 와 제국군에 입대했다네. 너무 옛날 일이야. 하하. 아마 에이린 태어나기도 전일걸?”
드문드문 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마을이라 하기에는 다 쓰러져가는, 나무 판자때기로 엮인 건물 몇 개가 다였지만 말이다.
선발대는 이내 마을로 진입, 주변을 살폈다.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오직 ‘주점’이라 적힌 건물에서만 인기척이 느껴졌다.
“어머. 중앙에서 오셨나 보네.”
“사람도 없는데 여기서 장사를 하시오?”
“장사는 아니고, 터전 지키고 있는 거죠.”
병사들이 지나가면서 한마디씩 던질 때마다, 젊은 여인은 턱을 괸 채 싱긋거리며 웃었다. 이따금 손을 흔들며, 보란 듯이 시원한 맥주를 들이켜기도 했다.
“혼자서만 맛있는 걸 먹고!”
“주점 주인이 이거 말고 낙이 있나요. 바로 국경 넘어가세요? 아니면 술 배달 좀 해드릴까?”
“되었네! 출정 중에 술이라니, 군법이 엄해!”
“그렇구나. 아쉽네요.”
긴장이 풀린 병사들이 왁자지껄 떠드는 와중, 토보는 주점에 가까워질수록 의아한 낯이 되었다. 건물을 지나치고 나서는 구태여 뒤까지 돌아보며 주점을 살피는 게 아닌가.
에이린은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그의 어깨를 툭 쳤다.
“왜 그러십니까?”
“으응. 아닐세. 예전에 저길 간 적 있는데, 그때 주인장이랑 좀 다른 거 같아서. 어찌나 수다스럽고 산만하던지. 술 한잔 못 먹을 정도였는데. 내 워낙 인상 깊어 잊지를 못해.”
“따님일까요?”
“글쎄. 나이가 비슷해 보여서 그런 것 같지는 않네.”
토보는 무슨 일이 있었나 보다 하고 넘어갔지만, 에이린은 뭔가 꺼림칙한 기운을 떨치지 못했다.
손님 하나 없는 외지에서 어찌 생계를 잇는 걸까? 주점을 인수한 것일까? 가족이라면 말이 또 다르겠으나, 아무래도 수상했다.
에이린 또한 뒤를 돌아보며 눈에 주점을 담았으나, 그뿐이다. 별일 없이 선발대는 주점과 조금씩 멀어져갔다.
촤아악!
“정지!”
“정지!”
맨 앞에서 깃발이 크게 올라갔다. 행진하던 병사들이 걸음을 멈추었고, 무슨 일인지 확인하려 빼꼼 고개를 내밀었으나 앞이 보이지 않았다.
“왜 그러지? 무슨 문제 있나?”
“아이고, 이참에 앉았다 가면 좋겠다!”
“주점에서 술도 한잔하고. 크하하!”
“소풍 왔나? 별 시답잖은.”
주위 병사들이 낄낄대며 수군댔지만, 에이린은 묵묵히 앞만 바라보았다. 그리고 찰나, 깃발이 오른쪽으로 기운다 싶은 순간-
“마, 마물이다-!”
부우우-
부우-
느닷없는 경고와 함께 물소뿔이 울어댔다. 다들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했고, 선두에서는 돌연 검붉은 피가 솟구쳤다. 대열이 흐트러지기 직전이라는 걸, 에이린은 감지했다.
촤아악!
“무, 무슨!”
“정신 차려! 다들, 전투태세!”
“저, 전투태세!”
“으아아악!”
앞쪽만 경계하고 있었는데, 또 다른 비명이 뒤에서도 들려왔다.
마찬가지 허공으로 치솟는 붉은 피. 화창한 하늘 아래 흩뿌려졌다가 투욱, 에이린의 볼 위로 튀었다. 에이린은 저의 동공이 점점 커지는 것도 모른 채, 본능적으로 검 손잡이를 붙잡았다.
꽈악.
“저쪽이다! 저기!”
“가까이 가지 마라! 창병, 창병 분대! 선두로!”
“젠장, 밀어어어!”
어떻게 된 것일까? 적이 선발대에 대비하여 미리 함정을 쳐놓은 것일까? 아니면, 마법사들이 부재한 틈에 일어난 균열 문제?
에이린은 병사들과 함께 기합을 넣으며 그나마 가까운 뒤쪽으로 뛰어들었고, 이내 피를 잔뜩 뒤집어쓴 주점 여인을 발견했다.
‘이런.’
부상인가? 저쪽을 먼저 보호…….
“……!”
걱정한 것이 무색하게, 그녀는 피를 뒤집어쓴 채 웃고 있었다. 손에 들린 것은 바리엘 병사의 머리.
경우의 수는 적었다.
마법사이거나 마검사. 아니면…….
‘마물이다.’
* * *
한편, 중앙을 벗어난 황제의 정규군은 느리지만 꾸준하게 라자산 북쪽으로 진군 중이었다.
병사 수만 해도 수만에 달했고 보급품 또한 산더미와 같았으니, 앞서간 선발대와는 거리 차이가 크게 나고 있으리라.
“아이고, 힘들어 죽겠다!”
“첫날부터 그러면 어떡하려고?”
“아니, 힘들다는 말도 못 하나? 밥이나 든든하게 먹었으면 좋겠네! 버고스까지는 며칠이나 더 걸리려나?”
“마법사들이 이럴 때 힘 좀 써주면 좋겠구먼.”
“그러니까. 왜 그, 검은 달인지 구멍인지 그거면 바로 버고스로 갈 수 있다며? 근데 왜 안 해주는 거지?”
“그게 어디 날로 먹는 마법인 줄 알아? 그리고 다 윗분들 뜻이 있어! 응. 난 그렇게 믿어!”
“염병. 피곤하니 별 잡소리를.”
날이 저물고 있었다.
먼 거리를 행군한 병사들은 제각각 자리를 잡고 앉아 휴식을 취했고, 여기저기서 천막 치느라 소란이 일었다.
개중에는 물론, 클로이의 한숨도 포함이다.
“에고.”
온종일 말을 몰았더니, 허리와 허벅지가 뻐근해 제대로 서 있을 수 없었다.
그녀가 휘청거리며 주저앉자, 주위 병사들은 말소리를 줄이며 슬그머니 자리를 비켰다. 귀한 귀족 가문의 여식이라, 왜 여기까지 와서 이러는지는 몰라도 영 불편한 것이었다.
클로이는 새초롬하게 눈을 흘기다가, 저 멀리 지나가는 낯익은 자를 발견했다.
“시아오시 경!”
“…클로이 영애.”
“폐하는 어디 계십니까?”
“왜 그러시지요?”
“고된 일정에 문제가 없으신지, 제가 걱정되어 그렇습니다. 잠깐이라도 대화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시아오시는 클로이를 빤히 내려다봤다. 하나로 묶은 머리와 간소한 옷차림은 어느 정도 결의에 찬 듯 보이지만, 분칠된 피부와 붉은 입술은 저의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송구합니다. 대화 같은 것은, 폐하께서 원하실 때만 하실 수 있습니다.”
“야박하게 굴지 마십시오.”
“영애. 하나 충고를 드리자면-”
스윽.
시아오시는 클로이의 머리 장신구를 빼내어 살짝 흔들었다.
“무기로 쓸 것이 아니면 몸에는 어떠한 장신구도 달지 마십시오. 전장에서는 되레 영애를… 위험하게 할 것입니다.”
클로이는 눈을 세모나게 뜬 다음, 말없이 시아오시의 손에서 장신구를 뺏어 들었다. 재수 없기는!
타닥타닥!
시아오시는 쫄쫄 사라지는 클로이의 뒷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진이 휴식 중인 언덕 위쪽으로 올라섰다.
병사들이 틈 없이 빼곡하게 호위하고 있었으나, 그 긴장감과 달리 진은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정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아래로 펼쳐진 풍경을 보고 있다는 게 맞을 터.
“폐하, 고되지는 않으십니까?”
시아오시가 조심스레 물었으나, 진은 돌아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아직 바리엘을 벗어나지도 않았는데, 그럴 리가.”
“하면, 무슨 문제가 있으신지요?”
“…놀라워서. 여기도 바리엘, 나의 나라라는 게 새삼 놀라워서 믿기지 않는구나.”
일생 대부분은 황궁에서 지냈고 가끔 시내로 나오긴 했어도, 중앙을 벗어난 적은 없었다.
그러니 끝없이 이어진 산맥이 신기하고, 짚단을 지붕 위로 묶어 올린 농가가 재밌었으며, 가축이 자유로이 움직이는 들판이 보기 좋았다.
저것들도 다 나의 바리엘이로구나. 진은 감격 비슷한 감정 탓에 쉽게 눈을 떼지 못했다.
“…회의 준비는 끝났는가?”
“예, 폐하.”
“그래. 가도록 하지.”
그래서 시아오시가 왜 자신을 불렀는지 알면서도, 쉽게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 그는 겨우 마음을 추슬렀고, 이내 회의실 겸 황제의 처소로 세워진 막사에 들어섰다.
“오셨습니까?”
“그래. 다들 앉으시게.”
하샤, 이안, 맥심 트웰러, 제이럿. 그리고 마지막에는 데라족의 핌까지. 각 분야의 책임자들이 모두 모여있었다.
진이 자리에 앉자, 이안이 제일 먼저 서두를 뗐다.
“내일 오후 중, 라자산 인근에 당도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폐하.”
이안은 라자산을 중심으로 그려진 지도를 활짝 펼쳤다.
“데라족 일부는 라자산에 있는 그들의 터전으로 돌아가 중간 물품 공급처를 마련할 것이고, 이는 버고스에 있는 바리엘군과 중앙을 잇는 일종의 가교 역할을 맡게 될 것입니다.”
“산세가 험하다고 하던데, 괜찮겠나?”
“움직이는 길은 지하로 나 있으므로 큰 문제 없습니다. 그리고 중앙군이 거점으로 삼을 곳은 라자산 옆의 평지인지라. 다만 한 가지 우려되는 것은, ‘드라이어드’라는 특이종입니다.”
“드라이어드?”
“나무 요정인데, 공격성이 있는지라 주둔에 앞서 드라이어드 토벌을 진행하는 게 좋겠습니다. 인력을 많이 투입할 건 아니고, 데라족과 함께 작은 토벌대 편성을 제안합니다. 드라이어드 나무는 불에 오래 타는 성질이 있으니, 필시 전쟁에서 요긴하게 쓰일 것입니다.”
“그래. 날이 더워지고 있긴 하나, 땔감은 군수품으로써 필수다. 계속 수급하도록 하여라. 트웰러 경.”
“예, 폐하. 염려 없도록 진행하겠습니다.”
핌 역시 문제없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막 시작인 터라, 아직 이렇다 할 문제 없이 모든 게 순조로워 보였다. 회의를 계속 이어나가려는 순간. 바깥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송구합니다. 마법부의 자이라입니다.”
“자이라?”
진이 이안을 돌아봤다. 무슨 일인지 묻는 시선이었으나, 이안 역시 모르는 눈치였다.
“들라.”
“실례하겠습니다.”
“안 자고 있었니, 자이라?”
이안의 물음에 자이라가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중앙을 나선 직후부터, 마법부 전원 마차에 켜켜이 누워 곯아떨어진 상태였다. 아코렐라의 회복제를 한 모금씩 나눠마시고는 기절한 듯 쓰러진 게다. 대관식 내내 이어진 마법 탓에, 모두 한계치에 다다른 까닭이었다.
스윽.
“이전에 제가 올렸던 보고서 기억하십니까? 클리포포드에서 썼던 것인데, 라자산 인근에 또 다른 균열이 있을 것 같다고요.”
“그럼. 기억한다.”
그리고 아마, 이안이 라자산 인근에서 처음 눈을 떴던 것도 그와 관련이 있을 것이었다.
“라자산 인근인지라, 마력이상반응을 다시 측정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예상 밖의 결과입니다.”
“어떤?”
“수치가 정상이에요. 정상이다 못해, 예상을 훨씬 밑돕니다.”
“그럼 다행인 일 아닌가?”
맥심 트웰러가 의아한 듯 묻자, 자이라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균열 자체는 비활성화 수치에 가까워졌지만, 그 과정이 중요하거든요.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건, 다른 균열 지대가 활성화되어 이쪽은 상대적으로 안전해진 것이라 볼 수 있겠네요.”
“다른 균열 지대라 하면……?”
“둘 중 하나일 것인데, 잘 모르겠습니다.”
자이라가 담담하게 안경을 바로 썼다.
“북쪽 지대일지, 아니면 클리포포드일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