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548
제548화. 각자의 책무
콰아아앙!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이 쉴 새 없이 터졌다. 완연한 낮이었음에도 주위에서 번쩍이는 빛 때문에 하늘이 어두워 보일 정도였다.
황궁친위대 신입 마검사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뒤로 돌리려 하자, 바르사베가 소리쳤다.
“뒤를 보지 마라! 앞에만 집중해!”
“앗, 죄, 죄송합니다!”
촤아악!
끼익!
그녀의 검 끝으로 마물의 피가 뚝뚝 떨어졌다. 베고, 베고, 또 베었지만 연신 쏟아지는 마물 수를 감당하기에는 무리였다.
몇 마리나 될까? 수천? 아니, 수만? 균열을 막지 않는다면 무한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바르사베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서 마력검을 휘둘렀다.
퍼어엉!
검을 통해 발현된 마력이 세 갈래로 뻗어나며 폭발했고, 마물이 잿더미처럼 사그라들며 사라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다른 놈들이 꾸역꾸역 밀고 들어오며 공백을 메웠다.
“저쪽! 저 아탄 마검사입니다!”
“바르사베!”
“예, 대장! 지원하겠습니다!”
“신입은 뒤로 물러나라! 마물 저지에 집중해!”
삼대장 보니타의 외침에 바르사베가 빠르게 반응했다. 그녀는 몸을 낮추고서 마물 틈으로 돌진했다. 흑검을 든 아탄 근처에는 유독 그 개체가 많았다.
채앵! 챙!
“으하하! 황궁 마검사도 별거 없구먼?”
“닥쳐라!”
지이잉! 지잉!
단순히 개인 대 개인의 격돌이 아니었다. 아탄을 둘러싸고 있는 마물들은 흡사 흑검에 홀린 듯 움직였으니까 말이다.
마물들이 친위대원의 사지를 단단히 붙들었고, 쳐내면 쳐낼수록 그 수가 증식됐다.
“잘 가라! 으흐흐하!”
촤아악!
채앵!
아탄이 친위대원의 심장에 검을 꽂아 넣으려는 순간, 바르사베가 날아들어 그 앞을 막아섰다. 흐트러지는 머리칼 사이로 살기 어린 홍채가 번뜩였다.
“감히 황궁을 입에 올려?”
그녀는 단번에 공격을 쳐냈고, 무방비 상태인 놈의 상체에 검을 찔러넣었다. 피가 주르륵 흘러내리며 바르사베의 손을 뜨겁게 적셨다.
이에 아탄이 꺽꺽 웃으며 손을 휘저었고, 바르사베는 놈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챘다.
“마물? 마물이 먹고 싶어?”
촤아악!
바르사베는 검을 뽑아냄과 동시에 그 목을 베어냈다. 데구루루, 잘린 머리통이 어디론가로 굴러가 사라졌다.
“먹고 싶으면 마음껏 처먹어.”
“가, 감사합니다. 선배님.”
“신입은 뒤로 물러나서 지원해.”
“예, 알겠습니다.”
채앵! 챙!
숨 돌릴 틈조차 없다. 바르사베는 가까이 있는 아탄을 표적하여 다시금 돌진했고, 비처럼 쏟아지는 핏물을 그대로 뒤집어썼다.
“대장! 마검사 아탄이 총 셋입니다!”
“마법사는?”
“아직 보이지 않습니다!”
촤아악!
한편, 삼대장 보니타는 상황을 전반적으로 살폈다.
아탄 자체를 처치하는 건 꽤 순조로웠다. 간간이 마검사가 섞여 있긴 했으나, 체계적인 훈련을 거친 황궁친위대와 비견할 바가 못 되었다.
문제는 마법사의 유무와 균열 봉쇄다. 마법사가 존재한다면 파급력이 어느 정도일지, 그리고 아탄을 궤멸한 다음 대체 어떻게 균열을 봉쇄할지가 관건이었다.
콰아아앙!
그때, 뒤에서 다시 거대한 굉음이 터졌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제이럿 대장의 번개가 일으킨 흔들림이라는 걸.
보니타는 우선 그가 명령한 것을 이행하기 위해 마력을 최대치로 개방했다.
지이잉. 지잉.
촤아아악!
보니타는 있는 힘껏 창공으로 도약했고, 황궁친위대원은 동시에 고개를 틀어 위를 올려다봤다.
은빛 머리칼을 휘날리는 우아한 몸태. 하지만 그들은 알고 있었다. 저 가녀린 몸에서 얼마나 파괴적인 힘이 나오는지.
“다들 조심해!”
“정신 놓고 있으면 죽는다!”
“서, 선배. 대체 무슨-”
“이쪽으로 와! 이쪽!”
우우우웅.
보니타는 백색의 거대한 창검(槍劍)을 불러냈다. 그러곤 재단하듯 한쪽 눈을 감은 채 광활한 대지를 둘러봤다. 이어서, 어느 한 지점을 정하여 창검을 내리꽂았다.
콰아앙! 쾅! 콰앙!
폭발로 인해 마물들이 떼로 죽어 나갔지만, 그건 부수적인 효과였다. 대지 위로 연쇄적인 폭발이 일어나며 거대한 구덩이를 만들어냈고, 결국에는 일종의 경계선을 그어냈다.
끄에에엑!
키익!
앞만 보고 내달리던 마물이 깊은 구덩이로 처박혔다. 예상으로는 딱 오 분. 오 분이 지나면 구덩이가 가득 차서 다시금 마물이 범람할 것이다.
그 안에 모든 걸 해결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마물이 북쪽 지대를 지나, 중앙으로 흘러들어 가겠지.
쿠웅!
“커헉-!”
“대장! 괜찮으십니까?”
“보니타 대장!”
대지를 가르는 거대한 힘이었다. 보니타는 땅을 짚은 채 끝도 없이 각혈했고, 몸을 덜덜 떨어댔다. 대원들이 걱정스레 소리쳤지만, 보니타는 얼굴을 보이지 않은 채 단호히 명령했다.
“제자리로! 검을 내리지 마라!”
자신 또한 피가 멎으면 다시금 뛰어들 것이니.
대원들은 멈칫거리다가 알겠노라 외치며 흩어졌다.
홀로 남은 보니타는 마물 찌꺼기들을 단검으로 찌르며 제이럿 쪽을 쳐다봤다. 저쪽은 어떻게 되어가는가? 마법사가 있는 것 같던데.
콰아앙!
의문이 드는 것과 동시에, 제이럿의 번개가 사방에서 번쩍였다.
* * *
베릭의 거대한 마력검은 뜨거웠고, 이글거렸으며, 강한 기운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그것이 베고 간 자리에는 시뻘건 불꽃이 흔적으로 남았다. 풀에도, 허공에도, 심지어는 베노의 옆구리에도.
촤아악!
“윽!”
“크갸갸학! 아프냐? 얼마나 아프냐? 응?”
단순한 자상이 아니다. 열기를 품은 고통인지라, 베노는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리며 옆구리를 쥐었다.
베릭 저놈은, 물약을 먹고 난 뒤 최상의 상태로 변모한 것 같았다. 구멍 난 배와 출혈은 그대로인데…….
“미친놈.”
“이제 알았어? 너 잘못 걸렸어. 난 내 배에 구멍 낸 새끼, 절대 살려서 안 보내. 너도 예외 없어. 시발아.”
타앗!
베릭은 있는 힘껏 뛰어들어 베노에게 검을 휘둘렀다. 아까와는 확연히 달랐다. 힘이 묵직했고, 속도는 더 가벼워졌으며, 몸놀림은 재빨라졌다.
베노는 베릭의 공격을 겨우 쳐내는 것만으로도 버거워 식은땀을 흘려댔다. 죽음의 문턱을 느낀 것이다. ‘찰나’, ‘단 한 번’, 혹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등의 작은 시간적 틈이 생긴다면, 저 붉은 검이 자신의 목을 벨 것이라는 공포.
“아까처럼 또 씨불여봐!”
“크흑-!”
“아까처럼 또! 나를 그렇게 쳐다보라고!”
퍼엉! 펑!
검날끼리 맞부딪치는 소리가 확연히 둔탁해졌다.
베노는 붉은 기운으로 이글거리는 베릭의 어깨 너머로 에프디람과 눈이 마주쳤고, 물러서던 자세를 바로 해 몸을 바짝 붙였다.
갑작스러운 방향 전환에 베릭이 고개를 틀자, 에프디람의 마력구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아씨!”
촤아아악!
하지만 그걸 꿰어버리는 제이럿의 번개.
순식간에 사위가 번쩍거리며 시야가 희게 변했다. 제이럿은 번개를 크게 휘둘러 에프디람의 급소를 노렸고, 그녀의 보호막은 생성되는 족족 파훼됐다.
파앗!
채앵! 챙!
“윽, 젠장!”
“에프디람 님!”
“어딜, 시발! 네 상대는 나거든?!”
“베릭! 오른쪽!”
네 사람이 서로를 공격하고 보호하며 끝없는 격전을 이어갔다.
‘에프디람은 마법사. 금기의 마법을 쓰기 전, 죽인다.’
‘대장이든 뭐든 어쨌거나 본질은 마검사니까, 마력이 제한적일 것이다. 버티면 돼.’
‘시발새끼! 몸에 구멍 두 배로 뚫어준다!’
‘에프디람 님만 살려서 보내도, 승산 있다!’
각자의 목적을 지닌 채 말이다.
하지만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공격들이 어느 순간 멈췄다.
촤아악!
솨악!
“……!”
“……!”
제이럿의 번개가 에프디람의 심장을, 베릭의 마력검이 베노의 복부를 꿰어버린 것이다.
넷은 그대로 멈춰서 거친 숨만 쉬어댔다. 끝났음에도 끝나지 않은 것 같은 긴장감이 연신 이어졌다. 그걸 깨트린 건, 에프디람의 신음.
“…아, 시발.”
“커헉!”
그리고 베노의 각혈.
두 사람이 힘을 잃고 쓰러지자, 제이럿과 베릭은 동시에 검을 빼냈다. 꿰뚫었던 자리에서 검붉은 피가 끝없이 솟구쳤다.
촤아악!
작게나마 움찔거리던 손끝이 완전히 멈추자, 베릭은 뒤로 벌러덩 누워버렸다.
“하아, 하아, 존나게 힘드네.”
“…….”
“영감탱. 왜 이렇게 늦었어요? 배에 구멍 뚫렸잖아. 나 이제 임무고 뭐고 못 해. 시발, 소 다섯 마리 잡기 전에는 못 움직여.”
제이럿은 옷깃에 묻은 핏자국과 저 멀리 박살 난 채로 떨어져 있는 베릭의 흑검 잔재를 쳐다봤다. 일단락이다. 당장 이쪽은.
“네놈이 훈련을 게을리해서 다친 걸, 누굴 탓해?”
“아, 몰라! 몰라아!”
“근데 마력검은 대체 어떻게 한 거지?”
“뭐요. 영감탱도 하고, 저기 어금니도 하고, 다 하는데. 나만 하지 말라는 법 있나? 아, 이안이 데려와! 와서 힘 좀 빵빵하게 넣으라고 해.”
“물약 효과가 좋은 것 같던데.”
“미친 아코렐라 앞에서는 그런 말 하지 말아요. 기고만장해서 개지랄 떠니까. 꺼억.”
다른 아탄들과 달리, 에프디람과 베노의 시체는 확보해야 했다. 바리엘을 위협하던 무리가 어떤 최후를 맞이했는지, 모두에게 보일 필요가 있었으니까. 나아가, 훗날의 아탄족들에게도 말이다.
“대장! 아탄족을 모두 궤멸했습니다!”
“현재 수색 중인데, 마물 탓에 쉽지 않습니다!”
“마물의 수가 점점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이쪽은 생존한 아탄 없습니다!”
“여기도 없습니다!”
곳곳에서 전투가 끝났음을 알리는 외침이 들려왔다.
제이럿은 북쪽을 가만 바라보더니, 피로 얼룩진 로브를 벗었다. 저 영감이 갑자기 왜 저래? 베릭이 눈을 가늘게 떴으나, 제이럿은 아랑곳하지 않고 정복 겉옷까지 내려놓았다.
가벼운 셔츠 차림이 되자, 그는 팔을 걷어붙이며 고개를 까딱였다.
“베릭. 저 둘의 시체를 들어라.”
“내가?”
“그럼 내가 하리?”
“뀨 다시 오라고 하든가. 아니, 그 전에 영감탱이 할 수도 있지, 뭐. 나보다 멀쩡하잖아!”
제이럿은 여전히 쏟아지고 있는 마물들 쪽으로 걸어가며 희게 웃었다.
“나는 바쁘다.”
“…뭐 하려고?”
“고장 난 수도꼭지 앞에 그릇만 대어놓는 것은 어리석은 대처다. 고장이 났으면, 고치고 막아야지. 안 그런가?”
“맞는데-”
“보니타 대장!”
제이럿이 우렁찬 목소리로 보니타를 부르자,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땀에 흠뻑 젖은 채로 안색이 파리했다.
“예, 제이럿 대장!”
“균열을 확인하러 갈 것이다. 그대들은 대원을 잘 통솔하여 이곳을 지켜라.”
“대장이 가신다고요?”
“그래. 내가 가서 보겠다.”
황궁친위대원들이 멈칫거리며 제이럿을 돌아봤다. 어느새 가벼워진 옷차림. 안으로 들어설 준비를 마친 것이다.
바르사베가 마물의 머리를 뜯어내며 소리쳤다.
“안 됩니다, 대장! 균열입니다! 심연으로 통하는 길이라고요! 너무 위험합니다! 이안 경이 올 때까지 기다리십시오. 금방 올 것입니다!”
“무엇이 더 먼저일 것 같은가?”
보니타의 구덩이가 가득 차는 것과 이안 히엘로가 당도하는 것. 이안 히엘로가 먼저라 한들 방법을 제시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확실치 않았다.
“걱정하지 마라. 나는 무사히 돌아올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보니타 대장에게 통솔을 맡기셨습니까. 내뱉어지려는 말을, 바르사베는 아랫입술을 깨물어 꾹 삼켰다. 평소와 다른 제이럿의 의지를 느꼈기 때문에.
“제이럿 대장. 차라리 제가 가겠습니다.”
“아니.”
보니타가 이르자, 제이럿은 웃으며 손짓했다.
마른하늘에 천둥이 울렸다. 스산한 바람이 불어와 마물의 피 냄새를 널리 퍼뜨렸다. 이어 제이럿의 손끝에서, 번개 형상의 마력검이 새로이 솟아났다. 그 어느 때보다도 형형히 빛나는 마력검이.
“각자에게 맞는 책무가 있지. 보니타, 그대의 시간은 길다. 그리고 귀중해. 그 시간을 지키며 황궁친위대를 이끄는 것이 그대의 책무이니. 책임을 다하라. 나는 나의 책임을 다하겠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