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549
제549화. 균열의 틈
“안 돼!”
베릭이 제이럿 앞을 가로막았다. 복부를 꽁꽁 묶었던 천이 반쯤 풀어진 채 흘러내렸다. 덩달아 피도 왈칵 쏟아졌으나, 베릭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되레 제이럿의 시선만 상처에 걸렸다.
“출혈이 심하다, 베릭.”
“씨발, 영감탱이 가서 뭘 할 수 있는데?”
“뭘 하겠다기보다, 하기 위해 가는 것이다. 이안 경도 그렇고, 마법사 중 그 누구도 균열의 틈을 예상하지 못했지. 이는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 아탄의 어떠한 수작으로 인해 일어난 일이다. 저들이 했듯, 우리도 막을 수 있다는 뜻.”
“몰라! 재수 없으면 뒤진다고! 뒤진다는 말 몰라?”
제이럿이 낮게 웃었다. 세월이 많이 흐르긴 흘렀나 보다. 죽을지도 모른다며, 베릭이 이렇게 길길이 날뛰는 모습을 보다니. 감회가 새롭다.
“왜, 언제는 좋다며?”
“뭐?”
“대장직이 비면 아랫사람이 올라갈 수 있으니까.”
“그건-!”
기가 차서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저를 죽이고 대장직이 되겠다며, 선발전에서 길길이 날뛰던 천방지축 망나니의 모습을.
제이럿은 천천히 자세를 낮췄고, 곧 달려나갈 것처럼 대지를 손으로 짚었다.
“누구 좋아하라고 내가 죽을까.”
“영감탱! 아 진짜, 씨발! 가지 말라고! 제발!”
“닥치고 수습이나 하고 있거라. 그리고-”
지이잉!
제이럿의 주위로 마력이 팽창했다. 황궁친위대원들 모두 그 모습을 경건하게 지켜봤고, 보니타는 경외한다는 뜻으로 가슴팍에 손을 올렸다.
“베릭. 잘했다. 너만의 검을 쥐는 것이 마검사로서의 첫걸음이니. 앞으로 볼만하겠구나.”
“젠장! 아, 누가 좀 말려봐! 어금니!”
“베릭, 비켜. 대장님의 결의다.”
베릭이 바르사베 쪽을 돌아보며 도움을 청했으나,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쩔 수 없이, 베릭 혼자서 제이럿을 붙들려는 순간-
콰아앙!
번쩍!
제이럿이 포효하며 대지를 내려쳤다.
일순간 사방에서 번개가 번쩍였고, 세상은 어두워졌다 밝아지기를 반복했다. 빗줄기처럼 쏟아지는 우레에, 마물 떼가 속절없이 타들며 사그라들었다.
어느 정도 길이 트이자, 제이럿은 단숨에 그 틈으로 날아들어 북쪽 언덕 위쪽까지 내달렸다.
촤아악!
“영감!”
“베릭, 그만하고 검 들어.”
“보니타! 이 씨발, 너-!”
“제이럿 대장의 명령을 잊지 마.”
‘황제 폐하의 명이다. 바리엘의 앞길을 막아서는 자들은 단호하게 처단할 것이다. 명심하라. 우리가 바리엘의 심장이다.’
보니타는 대원들을 돌아보며 차분히 일렀다. 여전히 그녀의 뒤로는 크고 강한 번개가 내려치고 있었다.
쿠구궁!
쿠웅!
“검을 들고, 우리는 우리의 책무를 다할 것이다.”
“명 받들겠습니다.”
“명 받들겠습니다.”
처억!
그들은 보니타를 보며 경례했지만, 알고 있었다. 모두의 마음은 북쪽으로 가 있다는 걸 말이다.
콰아앙!
키악!
제이럿은 마물 떼를 헤치며 북쪽으로 계속 나아갔다. 심상치 않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막상 안쪽을 보니 말문이 막힐 정도다.
마법사들이 근무했던 장벽은 무너져서 형체조차 보이지 않았고, 세상은 온통 검은 물로 가득 찬 것 같았다. 마물이라는 더럽고 구역질 나는 물.
우우웅-
퍼엉! 퍼엉!
제이럿은 균열 틈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번개를 내리꽂았다. 마물들의 흐름이 보이긴 했으나, 거슬러 올라가 근원을 식별하는 건 불가능했다. 혼돈 그 자체, 질서가 워낙에 엉망인지라.
콰앙!
끼이이익!
그때, 마물들 사이로 희미한 기척을 느꼈다. 아주 익숙한 기운이다. 베릭 덕분에.
‘흑검.’
그는 강한 중력을 느끼며 천천히 다가갔다. 아탄의 흑검 수십 자루가 무덤 위 묘비처럼 곳곳에 꽂혀있었다.
균열이 어찌하여 열렸는지는 차치하고, 바깥으로 마물을 유인하는 용도로 사용한 듯싶었다. 제이럿은 단박에 하나둘, 흑검들을 박살 내기 시작했다.
번쩍! 콰아앙!
흑검이 있다는 걸 인지하니, 마물의 흐름 또한 더욱 확실히 보였다. 검이 차갑게 식어 나뒹굴수록 균열에서 쏟아지는 마물 수가 조금씩 줄어든 것이다.
구멍을 완전히 막지는 못하더라도 유의미했다. 이 정도라면, 마법부가 당도할 때까지 황궁친위대가 막아설 수 있다.
-인간아
“……?!”
쉼 없이 흑검들을 파괴하고 있는데, 귓가에서 불쾌한 음성이 들려왔다.
멈칫한 것도 잠시, 제이럿은 자신의 발치에서 일렁이는 그림자를 발견했다.
* * *
뀨우우우!
“저기, 드래곤입니다! 드래곤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상당히 빠른데, 역시 날개 달린 건 못 이겨.”
“어라? 그런데 누가 등에 타고 있는데요?”
“바, 바리엘 갑옷입니다! 선발대인 것 같습니다!”
“드래곤이 착지한다! 다들 뒤로 물러서라!”
촤아악!
드래곤은 넓게 펼쳐진 들판에 슬라이딩하듯 미끄러져 착지했고, 병사들은 자욱한 흙먼지에 눈을 뜰 수 없었다.
상당히 만족스러운 착지였는지, 뀨는 작은 불을 내뿜으며 골골 웃어댔다.
“이봐, 괜찮나?”
“세상에, 이 피가 전부-”
병사들은 드래곤 등에 엎어진 사람들을 하나씩 내렸다. 몸통에 밧줄이 묶여있는 것으로 봐서는 스스로 동여맨 것 같은데, 비행 중 정신을 잃은 것 같다.
“죽었습니까?”
“아니, 숨이 붙어있다.”
“정신 차려! 의무관! 의무관을 데려와라!”
핏물에 몸 전체를 담갔다 꺼낸 것도 아니고,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런 상태인가. 수백에 달하는 선발대 중에 살아 돌아온 자는 겨우 여섯이다.
“시아오시 님. 이쪽입니다.”
“…의식이 있는 자는?”
“으, 으어…….”
“여깁니다! 이쪽 병사, 정신을 차렸습니다!”
끝쪽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중년 사내였는데, 그는 숨을 껄떡이며 겨우 중얼거렸다. 어딘가 큰 외상이 있어서라기보단 정신적인 충격이 심해 보였다.
“마물이, 마물이 쏟아졌습니다. 여인이 뒤에서 병사들을 전부… 죽이고, 앞에서는, 마물이 주, 주, 죽는가 했을 때 신께서 살려주셨습니다. 황궁친위대, 저는 그때 정말 죽는 줄로만…….”
시아오시는 미간을 찌푸렸다. 균열에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 여기긴 했지만, 진짜로 사달이 난 것이다.
“여인은 누구인가?”
“모, 모르겠습니다. 힘이 초인적이었고, 사람을 베는 데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마, 마법사인 것 같았는데 저는 잘 모릅니다.”
“마법사.”
“마물을 데려온 게 그 여인과 작당들인 것 같습니다. 대지가 흔들리고, 저 멀리서 언덕을 타고 내려오는데… 전우들은 모두 죽고, 저, 저, 저는 정신을 차려보니 달리고 있었습니다. 십자가를 새긴 채로요. 아마 먼저 달린 병사가 아니었다면, 저도 거기서 죽었겠지요.”
십자가.
남자가 손끝을 힘겹게 까딱거리며 이르자, 시아오시가 몸체를 살폈다. 그의 목덜미 왼쪽에 칼로 그어낸 듯한 십자가가 새겨져 있었다. 마물에 대항하기 위해, 신의 가호를 기도한 흔적이다.
“알겠다. 우선 치료에 전념하라.”
다른 자들은 모두 어떤가? 시아오시는 눈대중으로 병사들을 둘러봤다. 여자 하나와 남자 다섯. 의식이 있는 자는 한 명. 보고할 거리를 머리에 새기며 등을 돌렸다.
“…….”
그러다 문득, 고개 돌린 채 기절해있는 여자 병사 쪽으로 시선이 한 번 더 갔다.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다.
하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죄다 피로 젖었고 상태가 엉망인지라 이목구비를 구분하기 어려웠다.
“치료 후 의식을 찾으면 위로 올려라.”
“예, 알겠습니다.”
“드래곤에게 목줄을 채우도록.”
뀨우우우!
드래곤이 꼬리로 땅을 팡팡 두드리며 기분 좋은 소리를 냈다. 막상 병사들은 무서워서 주저했지만.
타닥타닥!
“폐하. 시아오시입니다. 드래곤이 선발대와 함께 돌아왔습니다.”
“들라.”
어수선해진 군 분위기를 느껴서일까. 회의장 안쪽 공기는 상당히 무거웠다. 시아오시는 고개를 숙이며 진에게 보고했다.
“클리포포드가 아닌, 북쪽 지대 균열에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마물이 범람하여 황궁친위대가 우선 막아서는 중입니다. 다만, 마물과 함께하는 세력이 있다고 하는데 추측으로는 아탄이 아닐까 싶습니다.”
진의 낯이 어두워짐과 동시에 이안의 시선 또한 가늘어졌다. 문득, 잊고 있었던 역사를 기억해낸 것이다.
‘대마물의 습격.’
바리엘 북쪽, 아탄족이 세력을 크게 불렸음에도 결국 황궁친위대장에게 꺾여 궤멸한 역사. 시기상으로나 정황상으로나 일치했다.
균열의 흔들림은 필시 러더포드의 수작일 터이니, 그 아래 도구로 이용되고 있는 아탄족이 등장하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생존한 선발대 병사 여섯 명 중, 단 한 명만이 의식을 찾아 보고했습니다.”
고작 여섯. 진은 안타까운 마음에 눈을 감았고, 이내 이안을 불렀다.
균열이 열린 것이라면 이제 다른 부서가 움직일 수 없었다. 오로지 마법부, 그중에서도 제일 강하며 몸소 균열을 겪었던 이안만이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 터.
“이안 경.”
“예, 폐하. 제가 가보겠습니다.”
괜찮다. 문제없다.
아탄족과 황궁친위대의 격돌이 역사에 새겨진 것이라면, 그 결과 또한 정해져 있다. 이안은 걱정하지 말라며, 단호히 덧붙였다.
“바리엘은 무사할 것입니다.”
걱정 따위 없는 단호한 태도인지라, 진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바리엘은 무사할 것이다. 마물이 범람한다 한들, 한 줌의 이삭조차 밟지 못하리라.
“트웰러 장관님. 데라족 무기를 보급받은 병사들로 새로이 부대를 편성해 주십시오. 황궁친위대를 믿고 있지만, 그 틈으로 새어 나간 마물이 필시 있을 것입니다.”
“수색하며 북쪽으로 진격하겠네.”
“예. 폐하, 송구하오나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이안 경.”
진이 조심스레 이안을 불렀다.
“모두 무사히 돌아와야 할 것이다.”
이안은 물론이고, 베릭, 황궁친위대 그리고 다른 병사들조차도. 한 사람 한 사람이 귀한 바리엘의 사람이었다. 진의 당부에 이안이 고개를 숙였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어찌 죽음 없는 전쟁을 논하고, 고통 없는 격전을 이를까. 하지만 이안은 진의 마음을 한껏 깊이 이해했다.
자신 또한 그랬으니까.
전장에 나가 사그라지는 수많은 생명을 안타까워했으니까.
먼 훗날, 스스로 깨닫게 될지언정, 지금은 그를 위해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촤악!
이안이 천막을 나서자, 자이라가 다가왔다. 오랫동안 새 소식만 기다리고 있었던 게다. 몇몇 마법사들 또한 일찍이 정신을 차렸지만, 회복한 마력은 턱없이 부족했다.
“이안 님. 무슨 일입니까? 하암.”
“시끄러워서 깼습니다. 근데 안 주무셨어요? 자이라, 너도? 아우, 체력 좋네.”
“그대들은 가서 더 쉬도록 하라. 아코렐라!”
“네?”
해먹에 누워 흔들흔들, 여유를 만끽하던 아코렐라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현재 사용 가능한 마력증폭제 및 회복제의 수가 얼마나 되지?”
“아직 여유 있습니다. 한… 각각 열다섯 병 정도 되나? 애들 이미 충분히 마셨고, 이동 중에도 제조 가능하니 보유량은 유지할 것입니다. 아차. 아까 제이럿 대장이 한 병 받아 갔으니 열네 병이네요.”
이안은 작은 주머니 하나를 건네며 일렀다.
“각 두 병씩 담아서 내오거라.”
“이안 님이 가시게요? 왜요? 진짜 일 났어요?”
“균열이 열렸다. 수습하러 갈 것이다.”
균열.
이안의 말에, 자이라를 제외한 마법사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멈칫거렸다. 지금 이안의 입에서 균열이라는 단어가 나온 건가? 게다가, 뭐? 수습하러 간다고?
십 년 전의 트라우마를 생생히 떠오르게 하는 단어의 조합들이다. 마법사들은 입만 벙긋거리다가 마법사들이 모여 자는 곳으로 내달렸다.
콰앙! 쾅!
마차 문을 부술 듯 열어젖히고, 천막도 찢을 기세로 걷고서, 그들은 단전 밑에서 호흡을 끌어올린 다음 소리쳤다.
“기-상! 기상-! 기상-! 이안 님 균열 보러 가신대!”
“일어나 새끼들아! 자빠져 처자지 말고! 이안 님 균열 간다고오! 빨리 따라붙어!”
“…에, 뭐라고?”
“침 닦아! 눈 비벼! 일어나!”
“이안 님이 균열 간다고? 나 지금 헛것 들었는디.”
“또 혼자 가실라! 후딱 정신 차려!”
이안은 드래곤의 목줄을 살피다가, 뒤에서 내달려오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이, 이안 님. 같이 가요오.”
“…….”
까치집에, 얼굴은 퉁퉁 붓고, 침과 눈곱으로 엉망인 마법사들이 휘적휘적 달려오고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