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550
제550화. 제이럿
‘제이럿. 또 사고를 쳤더구나.’
‘덤비는 걸 어찌합니까. 맞고만 있습니까?’
지방 소도시 하프타운의 어느 저택.
몰락한 귀족이긴 하다만, 체면이라는 게 있거늘. 어찌 하루가 멀다고 밖에서 싸움질이나 하고 다닌단 말인가? 제이럿의 아버지는 결국 아들의 진로를 바꿀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피가 끓어서 못 살겠다 하면, 군사학교에 들어가라. 한심한 것 같으니라고.’
열다섯의 제이럿은 아버지의 꾸중에도 비웃음만 흘려댔다. 한심하다고? 상대가 시비를 걸어오는데, 물러서는 것이 정녕 한심한 자세 아닐까?
제이럿은 아버지가 던진 군사학교 입학 신청서를 가만 내려다보았다.
‘으하하하! 제이럿이라고 했나? 어디 이겨봐!’
‘와, 미친놈이네. 저 상태로 계속하겠다고?’
‘그러다 죽겠어!’
고만고만한 신입생 중, 제이럿은 바로 두각을 보였다. 특출 난 신체 능력 덕은 아니었다. 그저, 지독하다는 말 외에는 설명하지 못할 호승심 때문이었다.
제이럿은 후드득 떨어지는 코피를 대충 닦아내곤 상대에게 덤벼들었다.
퍼억! 퍼억!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상대와 번갈아 가며 서로의 안면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물러설 바에, 차라리 죽여라. 제이럿은 이를 꽉 깨물었다.
결국 상대가 먼저 쓰러졌다. 다들 감탄 어린 박수를 보냈지만, 그는 멈추지 않고 쓰러진 상대 위에 올라탔다.
퍼억!
‘계속해봐! 계속 쳐보라고!’
‘제이럿! 그만, 이미 끝났어!’
예전부터 가슴 한가운데 무언가 막혀있는 기분이었다. 치고받고 싸우면 해소되는 것 같다가도, 상대가 맥없이 쓰러지면 달라지는 게 없었다.
누가 나 좀 어떻게 해보라고 소리치려는 찰나-
‘어찌 쓰러진 상대에게 주먹을 내질러.’
‘하아, 하아. 넌 뭔데.’
누군가 나타났다. 제복 배지로 보아 선배인 것 같은데, 가소롭다. 그래봤자 한두 살밖에 차이 안 나면서.
제이럿은 그를 쳐다봤지만, 역광 탓에 얼굴이 안 보였다. 아니면 방금 싸움의 여파로, 눈이 맛탱이 간 것일 수도 있고.
‘제이럿이라고 했나? 신입생이지? 그렇게 계속 싸우고 싶다면, 내가 상대해주마.’
마침 모자랐으니, 잘 됐다.
제이럿은 대답 대신 몸을 틀어 덤벼들었고-
빠아악!
처음으로 반격 한 번 못 해본 채 기절했다.
완패라는 말로는 조금 부족할 것이다. 넘을 수 없는 벽, 천재라는 존재를 처음 마주한 순간이었으니까.
‘타고났는데, 훈련도 성실히 하네. 대체 누가 따라가? 나중에는 황궁으로 가겠지?’
‘물론. 마검사가 아니더라도 저 정도면 친위대에 들어갈 수도 있어. 강하기만 하면 선발 가능하니까.’
‘어? 제이럿! 또 얻어터지러 왔나?’
하루에도 몇 번씩, 제이럿은 그를 찾아가 덤볐다.
주먹을 뻗고, 검을 휘두르고, 악을 내지르며 넘을 수 없는 벽을 깨고자 발버둥 쳤다. 언젠가는 꼭 이기고 말 것이라 다짐하던 나날-
‘죽었어. 자살.’
‘가정사라고 하던데?’
천재는, 너무 허무하게 사라졌다.
그토록 강한 사람도 결국 이길 수 없는 상대가 있었구나. 스스로 무너질 수도 있는 거였구나. 제이럿은 문득, 자신이 두려워졌다. 가장 강한 적은 바로 자신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제이럿. 다음 주에 황궁에서 마법사가 내려온다. 마검사 반응 검사를 받아보겠니?’
‘황궁친위대 신입 마검사, 제이럿입니다.’
‘대장직에 어울리는 사람은 너밖에 없어, 제이럿.’
긴 세월이 흘렀다. 운 좋게 마검사로서의 능력을 발현할 수 있었고, 황궁친위대에 입단했으며, 대장직까지 올라 황제 옆에 섰다. 이제 그 누구보다 강한 자라고 자부할 수 있었으나-
가끔 두려웠다.
그때, 그 천재가 보여줬듯이-
강한 것과 무너지는 것은 별개의 관계였으니까.
‘대장님! 명령을 거두어 주십시오!’
‘으아아, 죽지 마. 제발 죽지 마!’
‘제이럿 대장. 부하들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는 걸, 인정하시오? 페트레이오 대원이 사직하겠다고 하던데.’
제이럿은 문득, 어둠 속에서 홀로 서 있음을 인지했다. 이곳은 어디지? 나는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지? 방황하던 시선이 정면에 걸렸다.
저 멀리, 제이럿 본인이 뛰어오고 있었다.
“……!”
나를 무너트리려는 죽음이다.
제이럿은 반사적으로 검을 잡았고, 그에게 뛰어들었다. 나를 무너트릴 수 있는 건 없다. 나는 나로 인해 죽음을 맞이하지 않을 것이다.
채앵! 챙!
제이럿과 맞붙은 상대가 무덤덤한 낯으로 무어라 중얼거렸다. 잘 들리지 않았다. 뭐라고 하는 거지?
끼기긱!
팽팽한 힘의 균형으로 인해, 검날이 묵직하게 맞물렸다. 얼굴이 가까워진 두 사람. 그제야 제이럿은 상대가 중얼거리는 말을 알아들었고, 이내 미간을 찌푸렸다.
“…영감탱?”
* * *
“하아암. 이안 님. 죄송합니다아.”
“예, 죄송합니다. 저희 아니었으면 뀨 타고 편히 가셨을 건데. 그래도 혼자 보낼 수는 없어서요.”
“맞습니다. 다른 곳도 아니고 균열이라니, 진짜 혼자서는 안 됩니다.”
“아이고, 근데 이놈 빠르네. 쓸모 있고.”
“두어 명 덜 탔으면 더 빨랐겠지? 하아암.”
“너 멀쩡해 보이니까 좀 내려라. 눈치 없어?”
마력 회복이 덜 된 마법사들은 드래곤에게 다닥다닥 매달린 채 하늘을 나는 중이었다. 원래라면 이안이 타고 이동했을 것인데, 괜히 따라가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도리어 수고스러워졌다.
촤아악!
지이잉! 지잉!
이안은 대답 없이 전속력으로 창공을 가로질렀고, 곧 저 멀리 번쩍이는 무엇인가를 발견했다.
이에 더하여-
“와, 미친.”
“저, 저게 다 마물이라고요?”
“잠이 확 깨네, 시발. 대체 어떻게 된 거람.”
온 세상을 까맣게 덮을 기세로 쏟아지고 있는 마물들도.
이안은 북쪽 지대에서 근무했던 마법사들에게 물었다.
“균열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는가?”
“물론입니다. 근 십 년 가까이 먹고 잤는데요.”
“대기하라. 마물부터 부분 처리한 뒤 장벽 지대로 갈 것이다.”
“처리요? 뭐, 어떻게-”
“이안 님!”
이안은 고도를 점점 낮추며 대지 쪽으로 내려갔다. 삼대장 보니타와 그 대원들이 마물 떼 속에서 고전하는 게 보였다. 제아무리 하급 마물이라 해도, 무한에 가까운 수를 어찌 감당하겠나? 체력적으로 무리다.
“이안아아아!”
이안의 기척을 알아챈 베릭이 제일 먼저 소리쳤다. 그는 전선 이탈이나 다름없을 만큼 다른 대원들보다 유독 북쪽으로 치우쳐져 있었는데, 마물 저지보다는 등반하는 것에 가까워 보였다. 그가 있는 힘껏 손을 흔들어대며 신호했다.
“씨이발! 말 안 듣는 영감탱이 균열 보러 갔어!”
“제이럿 대장이?”
“어어! 그 뒤로 마물이 좀 줄어들긴 했는데! 아오, 나이 처먹고 고집은 졸라 세! 하여간!”
촤아악!
베릭은 화풀이하듯 마물들을 베어냈고, 이어서 보니타의 외침이 들려왔다.
“이안 경! 저지선으로 그어둔 구덩이가 곧 가득 찹니다! 마물이 넘쳐흐르면, 더는 수습할 수 없습니다!”
모아둔 마물 떼를 한 번에 처리할 방법이 필요했다. 이안은 마력을 최대치로 개방하며 직접 마법진을 그려냈다.
「만엽(萬葉)」.
평소라면 마법진 없이 전언으로만 마법을 부리던 이안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워낙 그 대상 범위가 넓은지라, 꼼꼼하게 마법진을 손끝으로 지어냈다.
쿠구궁-!
구궁!
보니타가 파 놓은 구덩이를 따라, 이계의 세계수가 솟아났다. 굵은 줄기들은 마물이 벗어나지 못하게 겹겹이 벽을 쌓았고, 이어서 계속 지진을 일으켰다.
황궁친위대는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창공에 떠 있는 작은 소년이, 금빛 눈을 빛내며 우아하게 손짓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이, 이안 경이 대지를 가르고 있습니다!”
“위험하다! 물러나라!”
쩌어억!
쿠구궁! 쿵!
세계수가 솟아나는 틈으로 대지가 쩌억 갈라졌고, 그 틈으로 더 많은 마물 떼가 아래로 떨어졌다.
우선은 된 건가? 보니타가 그리 생각하는 순간.
이안의 어깻죽지에서 거대하고 붉은 날개가 솟구쳤다.
촤아악!
「회록(回祿)」.
날개는 거인의 그것으로 형상화되어 크게 기지개를 뻗어댔다.
온몸이 화염으로 활활 타오르는 그것은, 대지를 향하여 분노에 찬 괴성을 질러댔다. 입에서 솟구치는 붉은 열기가 순식간에 사위를 덮었고, 마물들을 사멸시켰다.
-뀨우우!
나도 저거 할 수 있다며, 드래곤도 작은 불길을 뿜어냈다. 마법사들은 그런 드래곤 목덜미를 단단히 붙잡고서, 감탄 어린 시선만 보냈다.
“미쳤나 봐, 우리 장관님.”
“가, 가능한 거였네. 저 두 개 동시에 사용하는 거.”
“난 몰랐다. 생각조차 해본 적 없어서.”
“이안 님! 무리하지 마시고 물약 드세요!”
햇빛 탓인지 아니면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이안의 안색이 조금 창백한 것 같았다. 이안이 회록을 수거하듯 손짓하자, 거대한 거인의 형상이 파훼되어 사라졌다.
단 한 번이다. 회록이라는 마법으로 인하여, 전체 마물의 3할이 사라졌다.
“더한 마력은 균열에 자극을 가할 수 있기에 자제하겠습니다. 황궁친위대도 가급적이면 검술로만 마물을 저지하십시오.”
“아, 예예, 알겠습니다!”
“균열의 틈을 금방 확인하고 올 터이니-”
그때까지 조금만 버텨달라 이르려는 순간.
이안은 익숙하면서도 낯선 기운을 감지했다.
“제이럿 대장!”
균열 지대를 탐색하러 갔다던 제이럿이 모습을 보인 것이다.
…하지만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기백이 넘쳤던 눈동자는 탁하게 흐려졌고, 양어깨는 짊어졌던 것을 다 내려놓은 듯 처졌다. 무엇보다, 그의 주위로는 마물이 얼씬도 하지 않았다.
“…영감탱?”
살아 돌아왔구나, 기뻐하던 것도 잠시. 베릭 또한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제이럿은 손을 들어 올려 마력검을 쥐었다.
지이잉! 지잉!
“뭐 해? 영감탱!”
퍼어엉!
퍼엉!
망설임 없이 베릭 쪽으로 내려꽂히는 번개 비.
이안은 그 이상 행동의 원인을 바로 알아챘다.
“베릭! 세뇌다!”
“으아악! 뭐라고?”
“세뇌. 균열 틈으로 지하신의 힘이 새어 나온 것이다. 가까이 다가갔던 제이럿 대장을 잠식했어.”
저게 시발 무슨 말이여!
베릭은 힘겹게 제이럿의 공격을 막아내며, 이를 꽉 물었다. 가까이서 보니까 확실히 동태 눈깔이긴 하다.
“베릭. 틈을 보고 오겠다. 이곳을 맡아 제이럿을 저지해.”
“뭐? 뭘 어떻게 저지해!”
제이럿 대장은 황궁에서도 손꼽히는 전력이다. 그런 자가 지하신의 의지대로 움직인다면, 바리엘 전체에 크나큰 위협.
“균열이 닫히면 해결될 수도 있어. 하지만 그게 불가하다면-”
처치할 수밖에.
그 말에 베릭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채앵! 챙!
“싫어! 난 영감 죽이기 싫어!”
“그럼 온전히 막아내. 바리엘을 위협하지 않도록. 그건 너에게 달렸다. 베릭.”
베릭이 제이럿의 검을 막아내며 재차 미간을 찌푸렸고, 이안은 서둘러 몸을 돌렸다. 드래곤을 타고 있던 마법사들이 가까이 다가오려 했지만, 이번에는 단호하게 손을 들어 거절했다.
“나 혼자 간다.”
“예? 안 됩니다, 이안 님!”
“너무 위험합니다!”
“나 혼자만 갈 수 있어. 그대들은 여기 남는다.”
“이안 님!”
촤아악!
이안은 그리 이르고는 균열 지대로 날아갔다. 마법사들이 뀨 수염을 연신 잡아당기며 출발하라 재촉해댔지만, 뀨는 눈만 깜빡거릴 뿐 꼼짝하지 않았다.
한편, 제이럿과 홀로 맞서고 있는 베릭.
“베릭! 괜찮아?”
“말 걸지 마, 어금니! 그리고 다들!”
마력으로 이루어진 그의 대검이 크고 붉게 타올랐다.
“…마물이나 봐라. 영감은 내가 보려니까.”
“하지만-”
“시끄러워! 솔직히, 시발! 성격이 X같아서 대장은 못 됐지만! 여기서 내가 제일 세잖아!”
채앵! 챙!
베릭은 가까이 붙은 제이럿의 얼굴을 가만 들여다봤다. 뭐라고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다. 개 꼰대 같아도, 눈빛 하나만큼은 존나 멋있었는데.
“그러니까, 내가 가지 말라고 했잖아!”
채앵!
“하여간, 말은 졸라 안 듣지!”
세뇌가 풀릴 때까지 완전한 제압, 그것만이 제이럿을 살리는 길이다. 해내지 못하면, 제이럿은 이안에게 죽는다. 분명했다.
“영감탱!”
채앵!
퍼어엉!
희고 붉은 두 사람의 마력검이, 정면으로 격돌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