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551
제551화. 상대를 보다
마물 특유의 끈적하고 불쾌한 냄새가 가득한 터라, 이안은 소매로 하관을 가렸다. 오물로 이루어진 거대한 폭포수를 보는 것 같다.
그는 상공을 부드럽게 유영하며 문제의 틈이 어디인지 살폈다. 필시 마물들의 흐름 속에 그 흔적이 있을 것인데…….
솨아아악!
이안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마물들이 고개를 쳐들며 따라 붙었다. 이안에게 놈들은 악취의 대상이었지만, 놈들에게 이안은 달콤하고 순수한 마력 결정체처럼 느껴진 것이다.
“아.”
저기다.
마물들 틈으로 부러진 흑검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아무래도 아탄족이 마물을 유인하기 위해 사용했고, 그것을 제이럿이 저지한 듯싶다. 그 말인즉슨, 균열의 틈이 인근에 존재한다는 뜻.
이안은 고도를 낮췄고, 이내 익숙한 목소리를 들었다.
“이안.”
지하신이다. 생각보다 틈이 더 크게 벌어졌나 보다. 감히 가이아 대지 위에서 그 존재를 보이다니.
‘…건방진.’
이안은 인상을 찌푸리며 주위를 둘러봤고, 이내 손을 가볍게 들었다. 그 끝에서 빛줄기가 환하게 빛나며 흩어졌다.
그것들은 동심원을 그려냈고, 기하하적인 무늬를 터트렸으며, 나아가 스스로 살아 움직이듯 돌아갔다.
「만엽(萬葉)」.
균열을 자극할 수 있었기에, 가능한 단 한 번에 사태를 수습하는 게 목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욱 강하고 정교한 힘이 필요했으니. 이안은 세심하게 마법진을 조정하며 두 손을 마주했다.
쿠구궁!
쿠웅!
그의 오른손은 오른쪽 땅이었고, 왼손은 왼쪽 땅이었다. 틈이 있다면 그걸 다시 붙이면 되지 않을까?
세계수가 뻗어남과 동시에 지각이 움직였으나, 이안은 얼마 안 가서 멈칫거렸다. 뭔가에 걸려 막히고 만 것이다.
“가까이 오라.”
“시끄럽다. 네놈의 자리로 돌아가라.”
이안은 그것이 지하신의 힘이라는 걸 바로 알아챘다. 껄껄거리는 웃음이 사방에서 울리고, 그에 화답하듯 마물들이 울부짖었다.
“보아라. 신은 나를 막고자 하였지만, 나는 이렇게 살아서 너에게 말을 건네고 있지 않은가? 내가 온전히 균열 밖으로 나가는 순간, 나는 더 이상 신의 그림자가 아니라 그 자체로 존재하게 될 것이니.”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안은 마법을 거두며 고민했다. 신께서는 분명히 방법을 알고 계실 것이고, 자신 또한 그럴 가능성이 컸다.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 흘러가는 운명의 한순간.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선 것 자체가 그러했다.
‘무엇일까. 신께서 내게 무엇을 알려주셨을까.’
속절없이 바람이 불어왔다. 그럴수록 더욱 거세지는 마물들의 기세. 이안은 문득, 제 손바닥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이드갈.”
이드갈을 생성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거대한 틈을 메울 수만 있다면 될 일 아닌가? 서자 이안은 그 방법을 알고 있었고, 이미 해낸 전적이 있었다.
‘생각해. 서자 이안, 신께서 남긴 단서를.’
이안의 머릿속으로 수많은 기억이 뒤섞였다. 브라츠에서 눈떴던 그 순간부터, 심연에서 만나 신과 온기를 나눴던 순간까지.
그리고 문득, 서자 이안의 방에서 봤던 종이들이 떠올랐다. 처음에는 글자 연습을 한 건가 싶었지만, 분명히 낯선 언어들이었다.
그걸 보고 무어라 생각했더라?
‘글자는 맞지? 패턴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뭔가를 쓰긴 했는데…….’
패턴!
이안은 다시금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동심원 바깥쪽, 해당 마법 발동 진언 부분에 그 패턴을 최대한 떠올려서 그려냈다.
마법진이 조금씩 발하는가 싶더니, 회전을 시작했다.
‘여기가 아닌가?’
그렇다면 반대쪽.
마법진이 조금 더 밝게 빛났다.
스윽.
이안은 연신 기억을 더듬으며 패턴을 고치고 또 고쳐냈고, 그럴수록 마법진의 빛은 금빛으로 빛났다. 옳은 길을 가고 있노라, 일러주는 일정의 이정표였다.
어느덧, 이안은 손끝에 패턴이 익었음을 깨달았고, 마법진은 발동 준비를 마친 채 빙글빙글 돌아 흩어졌다.
지이잉!
지잉!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이안은 균열 틈으로 다가갔고, 이어서 두 손을 뻗어냈다. 그를 기점으로, 호박색의 거대한 물결이 일렁였다. 그것은 점차 퍼져나가 마물을 덮고, 균열을 메웠으며, 서서히 굳었다.
…거대한 이드갈이었다.
키아아악!
끼엑! 끼에에엑!
“……!”
지금까지와 다른 마물들의 울부짖음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이드갈로 인해 무력화된 놈들의 단말마다.
이드갈을 피한 놈들은 앞다투어 도망가며 쏟아졌고, 순식간에 틈 주위는 깨끗해졌다.
투욱.
이안은 이드갈 위로 가볍게 착지했다. 그러고는 그대로 굳어버린 마물들을 천천히 지나치며 문제 있는 부분은 없는지 확인했다.
놀랍게도 마력 소모는 거의 없었다. 도리어 따뜻하고 만족스러운 감각이 전신을 지배하는 듯했다.
“들리는가?”
이안은 불투명한 이드갈을 내려다보며, 균열 안쪽을 쳐다봤다.
어두운 공간만이 무한으로 펼쳐져 있고, 이쪽으로 통하려던 마물들은 흔적조차 없다.
“미안해서 어쩌지. 이쪽은 들리지 않아.”
* * *
채애앵! 챙!
퍼어엉!
한편, 베릭과 제이럿의 마력검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타오르며 서로의 목덜미를 노렸다.
눈 깜짝할 사이 두세 번의 합이 오가고, 그 주위는 연신 터지는 굉음과 폭발 때문에 마물들이 속절없이 죽어나갔다.
“영감탱! 정신 좀 차려!”
콰앙!
영감탱이라 부를 때마다 반응이 조금 오네? 마력이 더욱 거세지는 쪽으로 온다는 게 문제지만.
베릭은 하늘에서 내려꽂히는 번개를 검으로 쳐냈고, 이어서 제이럿에게 덤벼들었다.
빠아악!
“억!”
공격이 막히면서, 반대쪽 팔꿈치에 의해 관자놀이가 얻어터졌지만 말이다.
베릭은 비명과 함께 데구루루 굴러서 엎어졌다. 지켜보고 있던 마법사들은 자신들이 맞은 것처럼 인상을 찡그렸다. 일반인이었으면 저 상태 그대로 사망이다.
그들은 드래곤 뿔을 잡아당기며 베릭에게 다가갔다.
“저거 저렇게 둬도 되려나?”
“그러게. 베릭! 도와줄까?”
“마력이 별로 없긴 하지만, 기속으로 잠시 잡아둘 수는 있어!”
-뀨우우!
하지만 베릭은 되었다며 손만 대충 휘저어댔다. 퉤! 구르면서 혀를 씹었는지, 침에 피가 섞여 있다.
“됐으니까 구경이나 해!”
“구경 잘하고 있었는데, 보는 우리가 아파서 그런다! 객기 부리지 말고, 정말 괜찮아?”
“어! 그리고 이런 건 객기가 아니라, 자신감이라고 하지! 나, 언젠가는-!”
퍼엉! 펑!
베릭이 이를 드러내며 대검을 크게 휘둘렀다. 그의 마력검에서 화염 회오리가 솟아나더니, 제이럿의 주위를 완벽하게 포박했다.
“영감탱을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근데! 그게 오늘이었던 거지!”
꺾는다. 무조건 꺾는다.
그렇지 않으면, 제이럿은 이안에게 죽는다.
자신이 고기를 사랑하듯 그는 명예를 사랑하는 사람이란 걸, 베릭은 잘 알고 있었다. 이곳에서 제이럿을 죽게 할 수는 없었다. 이곳에서, 마물에 세뇌되어 조국에 검을 휘두른 변절자로 기록되게 할 수는 없다는 게다.
그의 죽음은 황궁친위대 건물 안쪽, 배지로 기록되어야 했다.
촤아악!
제이럿은 자신이 지금껏 검을 맞부딪친 사람 중 제일 강한 사람이었다.
“영-! 감-! 탱구리-!”
하지만 자신 역시 강한 사람이었다. 언제나 한계를 뛰어넘으며, 전투에서 원하는 바를 지켜왔다.
그러니 지금도 그러할 것이다. 한 단계 도약하여, 제이럿을 꺾어냄과 함께 그를 지켜낼 것이다.
“나중에 정신 차리면 진짜 두고 보자!”
그러니까, 돌아만 와라.
돌아와서, 같이 가자.
“보니타 대장! 마물 수가 좀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예, 이쪽도 마찬가지입니다. 쏟아지는 속도가 좀 더뎌졌습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습니다!”
“다들 마지막까지 검을 놓지 마라! 단 한 마리도 북쪽 지대를 넘어서면 안 될 것이다! 하급 마물이라도 제국민들에게는 치명적인 존재임을 명심해! 여기서 죽을 듯이 하지 않으면, 결국에는 제국민이 죽는다!”
“베릭! 제이럿 대장은 좀 어떤가?”
“몰라, 씨발! 똑같아!”
채앵! 챙!
이안이 균열을 수습한 것일까? 마물의 수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고 하니, 그쪽에서 어떠한 변화가 있긴 한 것 같은데-
“…….”
제이럿 대장은 여전히 눈동자가 죽은 채로 달려들고 있었다.
문득, 베릭은 심장이 내려앉았다. 혹시 이런 상태로 영원히 돌아오지 않으면 어떻게 되지? 세뇌를 떠나, 정신이 완전하게 부서진 거면?
‘아.’
두려움이다. 이런 게 두려움이야.
베릭은 뭔가 깨달은 것처럼 작게 탄성을 내질렀고, 제이럿 가까이 바짝 붙었다. 그의 검이 사납게 움직여 베릭의 급소를 노려댔다.
‘베릭. 잘 느껴보아라. 검에는 감정이 담겨.’
‘뭔 개소리.’
따악!
‘정확히는, 공격에 담긴다. 같은 궤로 휘둘러도 감정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지.’
‘당연한 말을 거창하게도 꾸미네. 당연한 거 아님? 개빡쳐서 휘두르는 거랑, 조금 빡쳐서 휘두르는 거랑은 다르니까.’
‘그럼 이건 어떤 것 같은가?’
촤아악!
베릭은 문득 제이럿과 했던 훈련이 떠올랐다.
제이럿은 자신의 공격에서 두려움을 느꼈을까? 아닐 것이다. 제이럿은 단 한 번도 자신의 검을 두려워한 적이 없다.
그렇다면, 지금 제이럿의 감정은?
채앵!
퍼어엉!
베릭은 그의 공격을 온전히 받아내며 신경을 집중했다. 집요하게 파고드는 공격이 평소와 다르게 거칠고, 무분별했다. 감정이었다. 위력 속에 숨어있던 제이럿의 감정.
‘어라.’
느껴지지 않던 것이 느껴지자 돌연 낯설었다. 마치 낭떠러지에 몰린 것처럼, 꽤 처절하고 날 선 몸짓이었구나.
베릭은 의문스러웠다. 예나 지금이나, 자신을 상대로 제이럿이 이럴 리가 없다.
혹 저를 다른 모습으로 보고 있는 건가?
대체 뭐기에, 제이럿이 이렇게-
촤악!
그때, 베릭의 옆구리가 베였다. 살갗으로 뜨거운 고통이 올라왔고, 베릭은 잡생각을 지우며 단번에 몸을 틀었다.
조금씩 서로의 마력검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내재한 마력이 바닥을 보이는 것이다. 제이럿 또한 그걸 인지했는지,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며 베릭에게 검을 휘둘렀다.
푸욱!
“…베릭!”
“대장님!”
두 사람의 공격이 동시에 서로의 배를 뚫었다. 마법사들은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돌렸고, 황궁친위대들은 기함하며 소리쳤다.
이미 베릭은 배에 상처가 나 있는 상태. 아무리 그라도 감당하기에는 치명상이었다.
촤아악!
두 사람의 몸을 꿰었던 검이 먼지처럼 사그라들며 사라졌다. 마력이 고갈된 것이다.
둘은 비틀거리면서도 간신히 버티어 서 있었고, 베릭은 식은땀을 흘리며 상처를 틀어쥐었다.
“이 씨발…….”
쑤신 데를 또 쑤시네.
베릭은 어금니를 꽉 깨물곤 그에게 주먹을 날렸다.
퍼억!
크게 휘청이던 제이럿 또한 반사적으로 공격했고, 두 사람은 치고받으며 피를 흘려댔다. 엎치락뒤치락한 끝에 베릭은 제이럿 위에 올라타는 데 성공했고, 주먹을 계속 꽂아 넣었다.
퍼억! 퍽!
“이렇게까지 하잖아! 왜 정신을 못 차려!”
이제 이안이 온다고, 망할 영감탱아.
제이럿의 텅 빈 눈동자가 베릭을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순간, 주름을 타고 흐르는 눈물 한 방울. 베릭은 멈칫거렸고, 이내 힘없이 주먹을 떨구었다.
“대체 뭘 보고 있는데.”
뭐가 그렇게 영감을 괴롭혀?
베릭은 그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으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서로의 피가 섞여들며 옷을 한가득 적셨다.
“…돌겠네, 진짜.”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베릭은 그의 목을 감싸 쥐었고, 천천히 힘을 실었다. 손끝에서 그가 살아있음이 느껴졌다. 제이럿이 그러했던 것처럼, 베릭 또한 눈물 한 방울을 흘렸고, 이는 코끝을 따라 떨어졌다.
“한숨 자고 일어난다 생각하자. 응? 그리고 일어나면, 꼭, 꼭 나 혼내. 영감 이렇게 만들었다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