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553
제553화. 국경을 넘다
제이럿과 베릭이 있다는 의무실 앞.
진은 유독 안쪽이 소란스럽다는 걸 알아챘다. 하여 행차를 이르려는 시종을 옆으로 물리고 친히 천막을 걷어 안으로 들어섰다.
혹시 상처가 너무 깊어 발작이라도 하는 것일까? 아니면 지켜보는 자들의 안타까운 탄성? 진은 조심스레 숨 죽였고, 이내 눈썹을 까딱거렸다.
“와, 진짜 새삼 개 못생겼다.”
“베릭, 듣고 있어? 얘가 너 못생겼대.”
“응. 괜찮아. 평소에도 자주 말해준 거라.”
“아니, 근데 이놈은 제 몸을 대체 뭐라고 생각하는 거지? 내장이 남아나는 게 신기해.”
“많이 처먹는 게 보상으로 작용한 거 아닐까? 하도 구멍 나니까 위장이 ‘이렇게는 못 살겠다’ 하고, 계속 먹을 거 보내라 지랄하는 거지.”
“시끄러우니까, 저리 좀 가서 떠들어라!”
“교대할 사람?”
“얼마나 했다고 벌써? 조금 더 해.”
“아, 나 진짜 힘없다고!”
지이잉! 지잉!
베릭을 중심으로 마법사들이 둥글게 모여 앉아 마력을 주입하는 중이었고, 이안은 그 옆의 제이럿을 돌보고 있었다.
그럼, 다른 마검사들은?
“밥 좀 더 주십시오.”
“예, 꺼억. 아직 많이 모자랍니다.”
마찬가지로 아코렐라의 마력회복제를 복용한 뒤, 식사로 기운을 보충 중이다. 다행히 두 사람 외 큰 부상자는 없어 보이는 터라, 진은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낯선 기척을 제일 먼저 느낀 건 바르사베. 그녀는 고기를 한 움큼 집어 먹다가 놀라서 멈칫거렸다.
“폐, 폐하!”
“뭐? 어디?”
“으아아악!”
“커헉. 목, 목 막혔다.”
“등신아. 대충 넘겨!”
언제 오셨지?
갑자기 등장한 진의 모습에 다들 화들짝 놀라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이안은 제이럿의 복부에 손을 올린 채로 그를 맞이했다.
“오셨습니까? 폐하.”
“제이럿 대장과 베릭의 상태를 확인하고자 온 것이니, 다들 회복에 집중하라.”
“소, 송구합니다아.”
마검사들이 입가에 음식물을 잔뜩 문 채로 웅얼거렸다. 허겁지겁 대충 갈무리하긴 했지만, 황제 앞에서 보일 만한 몸가짐은 아니지 않나?
진은 이안 옆에 의자를 끌어 앉으며 물었다.
“그래, 두 사람 다 무사한가?”
“예, 생명에는 지장 없습니다.”
“그대는?”
“저 또한 온전합니다.”
“다행이다. 모두 무사히 돌아와서.”
진은 무기력하게 누워 있는 제이럿을 눈에 담았다.
조금 놀라웠다. 대장은 언제나 강하고 굳건하여 이리 쓰러질 리 없다고 은연중에 생각했었나 보다. 혹은, 선황의 사태에서 보았던 삼대장의 패배가 황궁에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잘 아는 입장이라, 두려운 것일 수도 있다.
진이 제이럿을 가만 내려다보자, 이안이 차분하게 덧붙였다.
“너무 심려치 마십시오. 대장이 이리된 것은 바리엘의 행운입니다. 신께서 도와주신 일이지요.”
세뇌가 풀리지 않았더라면, 부상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죽음을 맞이했을 터이니. 이안의 금안이 그를 똑바로 바라봤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이럿의 공백을 메울 인재가 많지 않습니까.”
삼대장 보니타와 사이먼이 있었고, 베릭도 지금은 저 상태였지만 괴물 같은 회복력을 보여줄 터였다.
선황이 그러했듯 이안 자신도 삼대장의 검 끝에 맞선 적이 있었지만, 진은 그럴 일 없을 것이다. 신이 원하고, 자신이 저지할 것이니.
“이드갈과 관련된 사안도 보고받았다.”
“예, 의도치 않게 기억해 냈습니다.”
희미한 기억이었지만, 계시를 받은 것처럼 머리가 맑아지는 경험이었다. 이안은 따뜻했던 그 온기를 떠올리며 작게 웃었다.
“이드갈 공급에 대해서는 한 시름 놓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마력 제한도 없고, 몸에도 문제가 없습니다.”
그의 말에 마법사들이 동시에 움찔거렸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자제하라 이르고 싶었지만, 황제와 대화하는 와중 끼어들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나? 다들 끙끙 앓으며 애꿎은 베릭 머리카락만 쥐어뜯었다.
“…폐하.”
그때, 제이럿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황궁친위대 모두 무례함도 잊고서 그에게 달려가 붙들었다.
“대장! 정신이 좀 듭니까?”
“어때요? 저희 제대로 알아보겠어요?”
“어디 문제 있으면 바로 말하십시오. 예?”
“…다들, 무엄하게.”
“아, 송구합니다.”
제이럿이 눈가를 찌푸리며 중얼거리자, 마검사들이 뒤로 물러섰다. 그는 진 쪽으로 고개를 틀며 작게 한숨 쉬었다.
“이런 모습 보여드려 죄송합니다. 폐하.”
“아니, 되었다. 살아 돌아왔으니 되었어.”
“저도 이제 늙었나 봅니다. 베릭 저런 것에게 당하기나 하고, 하하.”
제이럿의 눈동자가 잠깐 허공에 머물렀다. 그는 무엇을 생각하는지, 입술을 달싹였다 멈췄다.
어떠한 말도 꺼내지 않았지만, 이안과 진은 그 내면에 어떠한 감정이 물들었는지를 알아챘다.
“나중에. 제이럿.”
진은 그의 손을 잡아주며 나지막이 일렀다.
나중에, 종전 후 듣겠노라. 그대가 대장직을 내려놓고 새로운 인생을 맞이하는 걸 진심으로 축복할 수 있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그대의 존재가 모두에게 필요해.
“예, 알겠습니다. 폐하.”
진은 눈빛으로 그리 일렀고, 제이럿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안은 옆에서 입을 떡 벌린 채 곯아떨어진 베릭을 슬쩍 쳐다봤다. 전쟁이 끝나면 황궁친위대에도 새 시대가 열리겠구나. 언젠가 이루어질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막상 눈으로 그 서막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이상했다.
“베릭에게는 별다른 언질 말거라.”
이안은 마법사들과 마검사를 둘러보며 주의를 주었다. 신나서 천지 분간 못 하며 까불어댈지도 모르니.
“무, 물론입니다. 예예, 저놈 까부는 거 늘면 답도 없지요. 입조심하겠습니다.”
“하아, 기회는 지금밖에 없다. 다들 베릭 누워 있을 때 훈련하자. 꺾어서 쳐내야지. 저놈 될 바에 차라리 내가 되는 게 낫지.”
“네가 할 바에는 내가.”
“아니, 내가…….”
마검사들이 고기를 잔뜩 문 채 서로를 노려봤다. 선후배 간의 위계질서가 중요하긴 하다만, 그보다 더 우위로 치는 것이 실력이었다. 다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미친 듯이 고기를 퍼먹기 시작했다.
“폐하.”
바깥에서 맥심 트웰러 장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창병을 중심으로 조직한 분대가 준비되었다는 신호였다. 진은 알겠노라 이르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따라나서려는 마법사와 마검사들을 손짓으로 저지했다.
“다들 푹 쉬고 몸을 회복하라. 국경을 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예, 폐하.”
진은 작은 미소를 건 채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마법사들과 마검사들이 동시에 긴장된 한숨을 터트리며 널브러졌다. 갑자기 나타나서 얼마나 놀랐던지, 원!
이안은 그런 것치고 다들 상당히 편하게 행동한 것 같다 여겼지만, 크게 나무라지 않았다. 이안은 아코렐라에게 손짓하여 마력회복제를 더 내오라 일렀다.
“아코렐라. 제이럿 대장에게 회복제를.”
“예. 알겠습니다.”
그러고는 싱긋 웃는 얼굴. 회복제를 꺼내오는 와중에도 아코렐라의 사랑스러운 시선은 이안에게 계속 걸려 있었다. 이드갈 생성하는 모습을 보여준 이후 줄곧 저 상태다.
이를 본 마법사들은 아코렐라를 경계하며 은근슬쩍 이안 앞을 막아섰다.
“대장. 눈이 맛 갔습니다.”
“내가 뭐? 왜? 나 지금 굉장히 정상인데? 기분도 좋고. 그러니까 꺼져줄래? 이안 님 얼굴이 안 보이네.”
“말투만 곱게 한다고 다 고운 말이 아니에요.”
“으흥. 그래그래. 이안 님. 제이럿 대장 그거 마시면 마력 더 주입 안 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저랑 같이 간이 연구실 가실래요? 궁금한 게 있네요. 호홋.”
“안 됩니다! 이안 님! 아코렐라 대장, 여태 본 것 중에 상태가 제일 이상합니다.”
“으응. 닥쳐닥쳐. 다들 주둥이 닥쳐. 꺄핫!”
홍홍홍. 아코렐라는 기분이 어지간히도 좋은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마력회복제 병을 수거했다.
이안은 회중시계를 잠깐 확인한 다음, 마찬가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이럿 대장과 베릭의 상태가 안정화되었으니, 그대들로 돌아가서 마저 쉬도록. 며칠 내로 마력을 완전히 회복해야 할 것이다. 알겠는가?”
“예, 알겠습니다!”
“문제없습니다!”
“이안 님! 어디 가용!”
“야, 잡아. 대장 잡아!”
스윽.
이안은 천막을 젖혀 밖으로 나섰다.
저 먼 언덕 아래, 주둔지 입구. 잘린 머리 두 개가 나란히 걸려 있었다. 굵은 곱슬머리 에프디람과 그의 부하 베노였다.
선발대를 해하고, 바리엘을 막아서려던 자들이 어찌 되었는지 병사들에게 이르는 모습이다.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나아가 치욕스러운 끝을 맞이할 것이라고.
처억! 척!
“일렬!”
그리고 그 앞, 창병 오백 명으로 꾸린 정찰대가 출전 준비에 나서는 게 보였다. 혹 북쪽 지대에서 황궁친위대를 뚫고 새어 나간 마물이 있는지 살펴보기 위한 부대였다.
“앞으로, 가!”
처억처억! 비장하지만 자못 자신 있는 발걸음이 이어졌다. 이안은 가만히 그걸 지켜봤고, 이내 누군가의 인기척을 느꼈다. 클로이였다.
“아, 영애.”
“북쪽에서 큰일을 하고 오셨다고요.”
수수한 옷차림에 장신구 하나 없는 모습. 다만 옷감이나 머릿결에 공을 들인 듯했다.
이안은 고개만 까딱거린 채 다시 정면을 응시했다. 노을 속으로 걸어가는 바리엘 병사들의 행렬만큼 멋있고 아름다운 것은 없었으니.
“별일 아니었습니다.”
“대마물의 습격이었다고, 다들 이르던데요.”
역사에서 지칭하던 명칭이 그녀의 입에서 나오자, 이안은 잠시 웃었다. 이 모든 게 역사 속에 존재한다는 걸 문득 깨달은 것이다.
“무슨 일이십니까?”
“본가에 서신을 보낼 것인데, 혹 필요한 것이 있다면 더 지원해달라 요청하겠습니다. 편하게 일러주십시오. 폐하와 독대할 자리를 마련해 주신다면 더더욱 좋고요.”
그녀가 관리하는 것은 다비온가에서 지원한 개인 물품에 국한되어 있었다. 이안은 잠시 생각하다가 나지막이 입을 떼었다.
“클로이 영애.”
“예, 이안 경.”
“폐하를 마음에 두고 계십니까?”
느닷없는 물음이었으나, 클로이는 단번에 표정을 갈무리하며 대답했다.
“물론이지요. 사모합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회의가 열리면 보급에 관하여 의논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영애. 너무 애쓰지 마세요.”
“…무슨 말씀이신지요?”
이안은 출전하기 전, 로엘이 속삭였던 말을 상기했다.
‘폐하의 인연이 운명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전쟁터에서요.’
클로이도 어쨌거나 전쟁에 참여한 것은 맞으니 자격은 있다만, 글쎄. 이안은 예의 바르게 웃어 보이며 덧붙였다.
“인연은 자연스럽게 닿는 법이니, 무리하시지 말라는 작은 충고입니다. 그럼.”
이안은 클로이를 세워둔 채 돌아섰고, 여인은 붉은 머리칼만 연신 쓸어넘기며 속상한 표정을 지었다.
인연은 자연스럽게 닿는 법이라고? 아니. 마음은 신께서 이어주신다고 하지만, 손은 스스로 뻗어야 하는 법이다.
클로이는 가볍게 두 볼을 매만지며 심기일전했고, 우연히 근처를 지나던 시아오시가 그 모습을 두 눈에 담았다.
* * *
그을린 세상.
푸릇했던 풀들은 타 죽었고, 주위는 형용할 수 없는 시체 냄새로 가득했다. 바리엘의 첫 승리가 남긴 흔적이었다.
병사들은 천천히 걸으며 북쪽 언덕배기를 올랐고, 이내 높다란 제국기를 세워 하늘을 찔렀다.
“저, 저것 봐.”
“와, 세상에. 저게 다 보석인가?”
“마법사님이 만들어낸 거라고?”
그리고 크게 벌어졌던 틈 사이사이 굳어 있는 거대한 호박색 보석. 병사들은 걸으면서도 눈을 떼지 못했고, 그 속에 산 채로 박제된 마물들을 신기하게 구경했다.
저 뒤쪽, 소란이 일어났다.
“꺄아아아!”
“아코렐라 대장! 대장! 잠깐만요!”
“제발, 우리 체통 좀 지킵시다!”
그 시끄러운 목소리에 베릭이 눈을 번쩍 떴다. 이어서 벌떡! 상체에 구멍이 났다는 것도 까먹고서 일어난 것이다.
마차 안, 베릭 맞은편에서 서류를 보던 이안이 눈을 힐끗거렸다.
“일어났는가.”
“이안아! 뭐여!”
“뭐긴. 라자산 인근으로 이송되었다가 다시 올라온 것이지.”
“영감탱은?”
“뒤쪽 마차.”
다행이다. 안 죽었구나.
베릭은 다시 발라당 누우며 천천히 흔들리는 하늘을 쳐다봤다. 오래 자서 그런가, 모든 게 꿈처럼 아득한 것 같다.
그때, 밖에서 들리는 병사의 외침.
“국경을 넘는다!”
“바리엘을 벗어났다! 정신 똑바로 차리도록!”
오, 대박. 베릭은 휘파람을 불어대며 배를 슥슥 문질렀다. 역시, 상처는 잘 아물고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