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554
제554화. 아스타나의 귀환자들
사실상 무역업에 종사했던 자를 제외하면, 대부분 바리엘 국경선을 처음 넘는 것이었다. 심지어는 황제인 진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마리브는 어릴 적 황태자 신분으로 그랜드 투어를 다녀온 적 있다지만, 진은 그럴 만한 기회가 전혀 없었다.
바리엘을 떠나왔다는 긴장과 흥분 그리고 감탄 따위의 낯선 감정을 느끼며, 모두가 힘차게 걸음 했다.
“뭐 씨, 보이는 거라고는 돌산밖에 없네.”
베릭은 마차 창문에 몸을 반쯤 걸친 채 지루하다는 시선으로 바깥을 구경했다. 정말 풀 한 포기 찾아볼 수 없는 광경이다.
아스타나 사절단원 하나가 마차 옆으로 말을 가까이 붙이며 다가왔다.
“몸은 좀 괜찮으시오?”
“대충. 밥을 제대로 못 먹어서 예전같지는 않고.”
“곧 있으면 아스타나군과 합류하기로 한 지점이니, 조금만 참아주시오. 그리고 이안 경.”
그들은 마차 안을 들여다보며 이안을 불렀다. 보고서에 집중하고 있던 이안이 고개를 틀자, 그들은 은밀하게 눈짓했다.
“국왕께서 독대를 원하십니다.”
“알겠습니다. 마차가 멈추면 찾아뵙도록 하지요.”
“예, 그럼.”
하샤가 독대를 원한다니, 무슨 일일까?
이안은 잠시 짐작하듯 고개를 까딱거렸으나, 그뿐이었다. 다시금 펜을 잡으려는 순간-
부우우-
부우-
저 멀리서 물소뿔이 시원하게 울렸다. 아스타나의 지원군이 보인다는 신호였다.
병사들은 국경을 넘어온 뒤 제대로 쉬질 못한 터라 일제히 작은 환호성을 터트렸고, 아스타나 사절단 역시 반가움에 탄성을 내질렀다.
“아이고, 드디어 발 뻗고 자겠네!”
“그러게나 말일세. 며칠 동안 죽는 줄 알았어.”
“에구구. 버고스 처들어가기 전에 골병 먼저 나는 거 아닌가 몰라. 으하하!”
“그나저나, 설마 저게 아스타나 지원군인가?”
“음? 에잇! 장난하나?”
어림잡아 백 명이었다. 대부분 비무장 상태였으며, 간간이 어린이도 섞여 있는 것 같았다.
카티마코처럼 외형만 그럴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첫 인상이 그리 대단하지는 않은 모습이다. 지원군이라기보다 피난민에 가까워 보였으니. 실망한 병사들의 수군거림이 곳곳에서 피어났다.
“아스타나 사절단을 불러 지원군이 맞는지 확인하라!”
장교들 또한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 하지만 그들은 침착하게 행렬을 지휘했고, 아스타나 지원군으로 보이는 무리를 면밀히 주시했다.
펄럭! 그들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아스타나 국기를 크게 휘둘러 반응했다.
두두두!
쿠웅!
“뭐, 뭐지?”
“지진이다! 지진!”
그리고 그때, 대지가 흔들렸다.
북쪽에서 이미 균열을 겪었던 터라, 마법사와 황궁친위대는 반사적으로 마력을 개방하여 경계했다. 하지만 곧이어 모습을 보이는 것들은-
“우, 우와!”
“마물인가?”
거대한 골렘이다.
돌산의 일부라 여겼던 부분이 그들의 머리였고, 곧 숨겨져 있던 손과 발이 뻗어났다.
도합 다섯 마리. 백여 명에 달하는 사령술사들이 동시에 주술을 걸고 있는 것인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움직이는 모습이다.
“아스타나 절벽 아래에 사는 놈들인데, 토벌에 성공하여 길들였습니다. 특성상 주술이 아주 잘 먹혔지요. 수는 다섯에 불과하지만, 바리엘 병사들의 앞과 뒤를 든든히 지켜줄 수 있을 것입니다.”
아스타나 사절이 자랑스럽게 덧붙였다.
사실, 백여 명에 달하는 저 인원도 아스타나로서는 징병 가능한 자를 모두 동원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부족 국가였으니까 말이다.
히이잉!
“멈춰라!”
“일동, 멈추어라!”
깃발이 올라가자, 행렬이 천천히 멈추기 시작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골렘의 크기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병사들은 넋 놓고 멍하니 그것을 올려다보았고, 아스타나 사령술사들은 반갑게 다가와 인사했다.
“어서 오십시오! 여기는 아스타나입니다!”
“오, 페쿠리렌!”
“카티마코 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늦지 않게 잘 왔군. 잘했네.”
“예, 당연한 말씀이십니다. 전하께서는요?”
곧 죽어도 이상할 것 없는 노인이 어린이 외형을 한 카티마코에게 깍듯이 인사했다. 인지부조화가 오는 터라, 병사들은 애써 시선을 돌려 골렘에만 집중했다.
“페쿠리렌.”
“전하!”
“예를 갖추어라. 이분이 대제국 바리엘의 황제 폐하이시다.”
하샤가 진을 소개하자, 다들 경건한 투로 무릎 꿇으며 예를 다했다. 끼긱. 골렘의 머리통 역시 작게나마 돌아가며 까딱거렸다.
“대단하군.”
진이 골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짐작건대, 탑 허리까지는 무난하게 닿을 크기였다. 이런 병기를 아스타나가 지니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나아가 북쪽 술사들의 가능성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다른 북쪽 술사들 또한 이만한 것들을 조종할 수 있다는 뜻이겠지?”
“골렘 정도 되는 것들은 찾기 힘들 것입니다. 폐하.”
“예, 자신합니다. 북쪽 지대에서는 아스타나만큼 위대한 술사 부족이 없습니다.”
“그리들 자신하니, 내 마음이 든든하여 좋다.”
진은 그리 이르면서도 이안을 쳐다봤다. 다른 마물 동원 가능성에 대해 짐작하여 대비하라는 시선이었다.
“이쪽이 이, 이안 님?”
“예. 마법부 장관, 이안 히엘로입니다.”
“아이고! 세상에나!”
이안이 정중하게 손을 내민 것과 달리, 그들은 무례를 무릅쓰고 그를 껴안았다. 반가워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말이다.
마법사들이 놀라서 입을 떡 벌렸고, 손으로 직접 그들을 떼어냈다.
“뭣들 하십니까? 이안 님 놀라시게?”
“아스타나에서는 인사를 그렇게 합니까?”
“아, 죄송합니다. 너무 반가운 나머지 그만.”
“…그대들과 인연이 있었던가?”
이안은 기억을 더듬었지만,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서운해하는 기색 없이 다시금 이안의 손을 맞잡았다.
“그때, 제 가족이 전하… 그러니까 하샤 님과 함께 상단에서 구출되어 아스타나로 돌아왔습니다. 언젠가 꼭 인사를 드리고 싶다 했는데, 이리 이루어지니 참으로 감격스럽습니다.”
“제 동생도 함께였습니다!”
“구해주신 것으로도 모자라, 여비까지 주시지 않았습니까? 하여, 다들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하샤도 하샤지만, 함께 아스타나로 돌아갔던 이들의 수가 적지 않았다. 다들 직간접적으로 이안에게 은혜를 입은 게다.
이안은 그들의 손등을 가볍게 토닥이며 대꾸했다.
“가당치도 않습니다. 저는 지금 바리엘 황궁 소속이니, 저에 대한 마음은 모두 그쪽으로 돌리십시오. 그리하면 저 또한 온전히 기쁘겠습니다.”
“예! 물론입니다!”
꽈악. 서로 맞잡은 손이 든든했다.
그때, 베릭이 마차 문을 열어젖혔다. 그는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를 붙잡고서 골렘 쪽으로 걸어갔고, 이내 그 발치에 대고 코를 킁킁거렸다.
“산 것 냄새가 안 나는데. 마물 맞아?”
“인형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자아 없이 의지만 있는 존재라, 한번 술법을 걸어두면 어지간해서는 풀리지 않아 쉽게 조종할 수 있지요. 근데, 누구십니까?”
“나? 베릭.”
“베릭! 오오! 베릭 님!”
“누구라고? 베릭 님?”
뜻밖의 반응에 베릭이 슬쩍 웃었다. 그러고 보니, 이안이 아스타나인들을 구할 때 자신 또한 옆에 있지 않았나?
“하샤 님 찾으러 와서는 같이 잡혔던, 그 베릭 님?”
“맞아. 그분이셔. 글씨를 못 써서 하샤 님이 불러준 대로 서신을 보냈었다지?”
“이런 미친! 아니거든! 잡힌 게 아니라 그냥 거기 있어준 거라고! 이안이 올 때까지!”
“예예. 그럼요. 알고 있습니다.”
“근데 표정이 왜 그래? 나한테도 고맙다고 해!”
“이런… 송구하오나, 입에 발린 말은 못 해서.”
베릭이 왈왈 날뛰는 것으로 보아, 배에 난 상처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아스타나인들은 베릭 쪽에서 시선을 거두며 물었다.
“한데, 선발대에 무슨 일 있었습니까? 분명히 이쪽 길목을 지난다고 하였는데, 보이질 않아 놓친 줄 알았습니다. 전서구를 보내주시지 않았더라면 혼란스러울 뻔했어요.”
“사정이 있었습니다. 우선-”
이안은 일단 주위를 정리하자는 뜻으로 손짓했다.
“폐하. 병사들의 피로가 누적되었습니다. 오늘은 여기서 일찍이 주둔하고, 내일 출발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좋다. 아스타나 쪽과 대열을 정리할 필요도 있으니.”
“지금 속도로 본다면, 사흘 안에 버고스 국경선을 넘을 수 있습니다. 예정보다는 늦어졌으나, 적절합니다.”
“식량 보급에 문제가 없는 뜻인가?”
“그렇습니다.”
다들 동의하여 오늘은 더 나아가지 않기로 했다.
골렘 아래로 속속들이 천막이 쳐졌고, 두려워하던 병사들도 금방 익숙해져서는 골렘의 발치에서 서성거렸다.
“근데 쟤는 약점이 뭐래? 대가리?”
“골렘은 무생물로 이루어진 사념의 집합체이기에, 어느 한 부분이 부서진다 한들 움직임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어허. 약점이 없는 상대라, 흥미가 급격하게 땅기는데? 베릭은 가볍게 주먹을 뻗어 골렘의 다리를 때렸고, 놈은 이내 천천히 고개를 틀어 그를 내려다봤다.
끼기긱.
“뭘 봐?”
그러자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는 골렘.
그늘이 크게 지고, 그 어깨에 쌓여있던 흙이 부스스 떨어졌다.
뭐지? 베릭을 비롯하여 병사들이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긴장하는 것도 잠시, 골렘은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올린 채로 멈춰버렸다.
* * *
타닥타닥!
“큰일났습니다!”
갑작스레 들리는 소란에, 반왕당파 주요 인사들은 눈앞의 사내를 힐끗 살폈다.
긴 담뱃대와 하나로 대충 틀어 올린 머리칼. 러더포드가 그들 맞은편에 앉아 지도를 살피는 중이었다.
그런데 저런 경박스러운 기별이라니.
“무슨 일이기에 호들갑을 떨어?”
“아무래도 바리엘로 출격한 아탄족이 궤멸한 것 같습니다. 연락이 닿질 않고, 전서구 또한 돌아오는 게 없습니다.”
“뭐라고? 지금 궤멸이라 하였는가?”
“예, 그리고 북쪽 지대에서 거대한 지각변동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에 관해서는-”
“균열이다.”
러더포드는 담뱃재를 털어대며 나지막이 대꾸했다.
“균열이 틈을 만들어냈다는, 신의 신호, 그에 관해서는 신경 쓸 것 없다. 한데, 아탄족이 궤멸되었으면 그 상대도 만만찮은 피해를 입었을 터인데?”
“파악 중입니다만, 접근이 쉽지 않습니다. 바리엘 대군의 행진에는 문제가 없어 보였습니다.”
“어허! 이것 참. 그렇게 날고 기던 자들이 궤멸이라니. 이거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당최 알 수가 없네. 그자들도 마법사와 마검사 출신들 아닙니까? 뭐 이리 허망하게 죽었는지, 원.”
“애초부터 들짐승 같은 자들이었습니다. 제가 그랬잖습니까. 기대를 걸면 안 된다고요. 되었습니다. 어차피 이는 버고스와 바리엘 간의 문제. 아탄은 그쪽에 명분만 내어준 자들이니, 잘 궤멸되었다 여깁시다.”
“아니, 그래도-”
반왕당파 인사들이 한마디씩 던지는 동안, 러더포드는 연신 담뱃대만 물어댔다. 평온해 보이는 눈빛과 달리, 잇새로 질근거리는 모습이 영 신경질적으로 보였다.
“…다들 괘념치 마시오.”
신께서 아직 어떠한 응답이 없었다. 문제가 있다면 있는 대로 답을 주셨을 터인데 말이다. 이는 자신의 계획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방증이요, 나아가 흔들릴 필요 없음을 이르는 것이다.
“이쪽은 내란으로 영지와 국민들의 피해가 이미 심각하니, 격전이 벌어지더라도 버고스 밖에서 이루어져야 할 터.”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황제와 그 측근들이 모두 황궁을 떠나온 것으로 확인되었으니,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합시다.”
“아, 예예. 안 그래도 적임자를 찾았습니다.”
스윽.
반왕당파 인사 중 하나가 러더포드에게 보고서를 내밀었다.
“암살에 특화된 자이지요. 다몬 왕의 숨 또한 문제없이 거둘 것입니다.”
왕당파의 결집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다몬 왕의 생존 때문이었다. 그가 원하든 원치 않든 그는 버고스 왕가의 핏줄을 잇고 있었고, 나아가 바리엘과의 접점을 이루었으니, 그쪽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다몬이 죽는다면?
‘왕당파의 결속은 무너지고, 바리엘에 버고스 전체가 대항할 것이다.’
러더포드는 보고서를 읽어 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이 정도면 만족스럽다는 듯이.
“이자를 보내도록 합시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