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555
제555화. 북쪽의 타 부족들
“에효오.”
적요한 황궁 집무실.
서류에 도장을 찍어대던 직원들이 일제히 로만드로를 힐끔거렸다. 그는 턱을 괸 채로 펜대만 딸깍딸깍, 정신을 반쯤 놓고 있었다.
“에흐어라.”
“저기, 로만드로 님?”
“응? 왜? 벌써 다 했어?”
“아니요, 그게 아니라… 바닥 꺼지겠습니다. 무슨 일 있으세요? 지금 열댓 번 연속으로 쉬셨어요.”
로만드로는 그 말을 듣자마자 눈시울을 적시더니 철퍼벅, 책상에 엎드렸다. 직원들은 결국 도장을 내려놓고는 로만드로 쪽으로 의자를 틀었다.
“아니이-!”
“예예, 무슨 일이십니까?”
“다들 떠난 지 열흘 가까이 됐는데, 어떠한 서신도 없잖아! 사고뭉치 똥강아지는 그렇다 쳐도. 이안이, 아니, 장관께서는 연락을 주셔야 할 것 아닌가? 응?”
“아.”
뭐야. 별거 아니었네.
다들 의자를 바로 했고, 제일 가까이 앉아 있던 직원만이 그를 위로했다. 어깨를 토닥이며 말이다.
“저기, 로만드로 님. 군대가 라자산에 도착했으니 데라족을 이주시키라는 전서구 받았잖습니까?”
“그건 그거고!”
“무소식이 희소식입니다. 국경 넘으면 또 전서구가 올 것이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크흑, 허으엉.”
아니, 그리고 솔직히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 마법부 장관 걱정을 누가 한단 말인가? 심연에서도 살아 돌아온 자인데, 그깟 전쟁 따위. 직원은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말을 삼키며 애써 웃었다.
콰앙!
그때, 집무실로 들어서는 황궁 직원 한 명. 그는 다급하게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로만드로를 찾았다.
“로만드로 님! 여기 계십니까?”
“으엉? 나 여기 있소.”
“마법부 장관님 전언입니다. 방금 수상께도 전서구가 따로 올라갔습니다. 북쪽 균열 지대에 문제가 있었다고 하네요. 틈이 벌어져 마물이 범람했다고 하는데, 다행히 황궁친위대가 막아냈다고 합니다.”
“뭐, 뭐라고? 마물 범람? 북쪽에서?”
“사달의 근원인 아탄족은 궤멸. 수색대가 인근을 살피고 있지만, 본대에 합류해야 하는 터라 황궁 지원군을 따로 보내달라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뒷장은 로만드로 님만 따로 확인하라는 명령이고요.”
“이리 주시게나!”
로만드로가 서신을 확인하는 동안, 직원들도 다급해졌다. 전시 중에 마물 범람이라니! 긴급회의가 필요했다.
“자세한 내용은 수상께서 확인 중이신가요?”
“예. 곧 행정부에서 공문이 내려올 것입니다.”
“세상에, 갑자기 거기서 마물이, 잠깐만요! 그럼 선발대는 어찌 되었답니까?”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예상하기로는 문제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이고 이런. 다들 입단속 제대로 하십시오. 제국민들이 알아서 좋을 것 하나 없습니다.”
“물론입니다. 사태 파악이 우선이니.”
다들 바쁘게 오갔지만, 로만드로는 제자리에 서서 이안의 서신을 읽어내렸다. 그리고 이내 후다닥 밖으로 뛰어나가는 것 아닌가?
“로만드로 님! 잠시만요! 결재 거의 다 됐습니다!”
“마법부로 보내줘! 부탁하네!”
타닥타닥!
때가 되었다. 로만드로는 망설임 없이 마차 쪽으로 뛰어갔고, 마부를 닦달했다.
“마탑! 마탑 쪽으로 갑세!”
“다몬 왕 있는 곳 말씀이십니까?”
“응응. 그리고, 자네! 자네는 티모시에게 연락 좀 주어. 주소는 여기일세.”
로만드로는 외우고 있었는지, 주소를 막힘없이 써댔다. 시종은 종이를 받아든 다음 의아하게 물었다.
“티모시라 하시면?”
“왜에, 별채 건설 담당하다가 작년에 그만둔, 그, 버고스 출신 사내! 얼굴 막 이렇게 와그작와그작 생기고, 덩치 우락부락한!”
“아아. 예, 알겠습니다.”
마부는 채찍을 크게 휘둘렀고, 로만드로는 연신 이안의 당부만 연달아 살폈다.
-로만드로 님. 잘 계십니까?
북쪽 균열에 문제가 생겼습니다만, 다행히 잘 막아내어 북진하는 중입니다.
그보다, 일전에 말씀드렸던 것을 기억하시지요? 다몬 왕의 생사에 관한 사안 말입니다. 그가 스스로 죽으려 하는 것은 다음 생을 기약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폐하나 저나, 그 어떤 세상에서도 바리엘이 위험에 처하길 원치 않습니다. 하여, 환생 비밀을 풀 때까지 숨을 잡아두려는 것인데, 이를 위해선 버고스 측의 움직임을 단단히 경계하셔야 할 터입니다. 다몬 왕의 개인적 문제 외, 그의 존재는 왕당파 존재 이유이며, 현 버고스 사태를 지탱하고 있는 축이기 때문입니다…….
로만드로는 식은땀을 손등으로 훔쳐내며 종이를 넘겼다.
-…암살 시도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내부 변절자가 시도할 수도 있고, 암살자를 보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절대 외부에 이 사실이 알려지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황제 폐하를 비롯하여 측근들이 모두 나와 있습니다. 쉬쉬하여 일을 조용히 처리하십시오. 틈을 보이면, 제국민이 불안해하고 적국은 더더욱 기세가 등등해집니다…….
“이봐, 좀 더 빨리 못 가겠나?”
“예, 알겠습니다. 이럇!”
-…다몬 왕을 은밀히 지켜내십시오. 바리엘이 버고스를 함락할 때까지만이라도.
조력자로는 티모시가 적당합니다. 황궁 외부와 내부에 걸쳐있되, 버고스 출신이며, 다몬과 적대적이고, 강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거의 다 왔습니다. 로만드로 님.”
“응응. 여기 있게나. 혹시 뭔가 이상하면 바로 불러주고!”
“이상하다니요? 무엇이?”
“대충! 가만있다가 뭔가 느끼면!”
“예예, 알겠습니다.”
왜 저러시는 겐가? 마부는 영문도 모른 채 고개를 꾸벅였다.
로만드로는 탑 위로 올라가는 동안에도 병사들의 얼굴을 빠짐없이, 찬찬히 노려봤다. 혹시 이중에 변절자가 섞여 있을 수도 있으니까!
“로만드로 님 아니십니까?”
“자네! 나를 어떻게 알지!?”
“…당연히 알지요. 여기는 마탑이고, 로만드로 님은 마법부 보좌관이시니.”
“크흠. 별일은 없었고?”
“예, 며칠 동안은 아주 조용합니다.”
“살아는 있는 거지?”
“…당연한 말씀입니다.”
병사들은 이게 대체 무슨 대화인가 싶었다. 다몬 왕이 죽었더라면 그 즉시 보고가 올라갔을 터.
로만드로는 눈매만 가늘게 뜨며 병사들을 지나쳤고, 곧 다몬 왕이 갇힌 방에 당도할 수 있었다.
끼이익.
이중으로 된 철문. 로만드로가 바깥쪽 문을 열며 안으로 들어서자, 다몬이 고개를 틀어 쳐다봤다.
‘아직 멀쩡하군!’
로만드로는 의자를 끌고 와 그 앞에 앉았다. 티모시가 올 때까지 잠시 기다리려는 것이었다.
다몬은 그 뒷모습을 가만 보더니, 희미하게 웃었다. 전쟁이 시작되고, 자신은 어떻게 되는가 싶었는데-
‘드디어.’
드디어 끝을 보게 되는구나.
다몬은 흥분으로 꼼지락거리는 손끝을 맞잡고서 정면만 응시했다. 언제고, 목에 칼이 들어와도 좋다는 듯이.
* * *
여명이 막 터오는 하늘.
이안은 일찍이 일어나 바깥을 살폈다. 사그라든지 오래인 장작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아직 대부분 잠들어 있는 바리엘 사람들과 달리, 아스타나인들은 깨어서 하루를 시작하는 중이다.
“일어나셨습니까? 이안 님.”
“다들 일찍이 움직이는군.”
“부지런해서 그런 건 아니고요. 아무래도 주술사다 보니 새벽 기운이 필요할 때가 많아서 그렇습니다.”
그러면서 특이한 손짓으로 무언가를 연신 중얼거렸다. 하샤 또한 그들과 섞여 기도 올리던 차, 이안을 발견하고는 웃었다.
“이안 경. 기침하였는가.”
“예, 전하. 평안하셨습니까.”
“이것 보아. 이자들은 나의 가족이고, 여기엔 우리를 지켜보는 바리엘인도 없다네. 그대는 나의 친우인데 어찌 그래?”
아스타나인들에게 이안은 바리엘 황궁 마법부 장관 이전에, 하샤의 제국민 친우였다. 특별한 인연으로 엮인 친우 말이다.
이안은 답례하듯 웃었고, 그의 맞은편에 걸터앉았다.
“그래. 하샤. 어제 나와 독대하길 원한다 들었다. 시간이 맞지 않아 지금에서야 들른 걸 너그러이 여겨주어.”
“그럼. 어제 정신이 좀 없었나?”
“고맙군. 그래, 무슨 일이지?”
“다른 게 아니라 의논할 게 있어서. 북쪽 소수 민족 세력 중에서 오로지 아스타나만이 바리엘 편에 서 있음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터.”
“물론. 폐하께서도 심히 기뻐하시니 전쟁의 모든 영광은 그대들이 가져갈 것이네.”
하샤는 잠시 시선을 내린 다음, 조심스레 일렀다.
“버고스와의 전쟁에서 우리는 우리의 역할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이후에 대해서는 다시 의견을 나주고자 하는데.”
“자세히 이르자면?”
“토올룬으로 전쟁이 확대되는 시점. 그쯤 되어서는 아스타나를 제외한 다른 북쪽 세력들은 거의 전멸일 터. 아스타나로서는 전쟁에 계속 참전하는 것보다, 그들을 정리하고 흡수하는 데 집중하는 게 옳다 여겨져.”
소모적인 전쟁을 계속 이어나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토올룬은 아스타나가 소화할 만한 대상이 아니었으니, 차라리 그 힘으로 북쪽을 완전히 통합하겠다는 의지였다.
“폐하가 아닌 그대에게 먼저 이르는 것은, 바리엘의 입장을 간접적으로 듣기 위함이고 내가 그대를 믿기 때문일세. 버고스를 함락한 후, 상황을 보아 아스타나는 아스타나의 길을 가도록 하지.”
이안은 잠시 고민했다.
아스타나의 왕으로서는 너무 당연한 결정이었지만, 자신은 바리엘의 장관이지 않나? 그들의 이탈이 얼마나 큰 영향을 줄지, 꼼꼼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었다.
“북쪽을 통합한 다음에는?”
“그다음에는 나라의 안정화가 우선이라네.”
“아스타나가 아니라, 다른 북쪽 술사들을 내어주는 쪽으로 생각해보는 건 어떤가?”
“나쁘지는 않지만, 통합을 위해서 어떤 결정을 내릴지 당장은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음이라. 내가 이르고 싶은 건 이것뿐이지.”
통합 과정에서 탈락되는 세력이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그자들은 수순대로 포로화하여 사회 계급 바닥으로 추락할 것인데, 그럴 바에 바리엘에 넘겨달라는 뜻이다.
하지만 하샤는 그 어떤 것도 확신해주지 않았다.
“일단 아스타나의 의중은 잘 알겠다.”
“분명히 해둘 것은, 아스타나가 언제나 바리엘의 우방이라는 걸세.”
“물론. 그것은 믿어 의심치 않아. 다만, 폐하께 전언할 때는 모두가 만족할 만한 합의점이 있으면 좋겠어. 그리하면 나 또한 아스타나를 도울 수 있으니.”
하샤가 천천히 이안을 껴안았다. 복슬복슬하고 따뜻했던 감촉이 생생한데, 지금은 온기 하나 없는 노인의 몸이다.
이안은 문득 하샤의 시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 말해주어 고마우이.”
쿠궁.
쿠우웅.
그 순간, 아주 희미하게 울리는 진동.
이안과 아스타나인들이 동시에 고개를 틀었다. 저 멀리,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무엇인가가 달려오고 있었다.
“뭘까요? 저게?”
“골렘!”
스으윽.
술사의 손짓에 골렘이 손을 가지런히 펼쳐 내렸다. 주인이 올라타자, 골렘은 있는 힘껏 팔을 올려 고도를 높였다.
“뭐가 보여?”
“어어, 잠깐만. 쟤들-”
멈칫거리는 술사들의 반응에, 이안은 바로 알아챘다.
“버고스 측에서는 이미 내전으로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바리엘과 맞붙는다 한들, 국경 안보다 바깥에서 맞부딪치기를 원할 겁니다.”
“버고스 측 술사들인가?”
“그런 것 같습니다! 나탄족과 메게투족입니다!”
“반대쪽에서는 엥자르갈족이 오고있습니다!”
버고스 쪽에 붙은, 아스타나를 제외한 북쪽 부족들이 결집하고 있는 게다. 버고스가 아닌 아스타나의 땅으로.
“호각을 울려라.”
부우우-
부우-
이안의 명령에 불침병들이 물소뿔을 불어댔다.
마침 배고파서 깼던 베릭이 비틀거리며 천막 밖으로 나왔다.
“흐아암. 뭔데, 아침부터 또 뭔데.”
“타 부족의 습격입니다!”
“아나, 진짜. 버고스 한번 가기 졸라 힘들다잉. 코앞이라며? 고생이란 고생은 씨발! 러더포드 새끼, 머리 다 빡빡이로 밀어버려!”
베릭은 기지개를 쭉 켜며 투덜거렸고, 이안은 그에게 겉옷을 던져주었다.
“원래 집 나오면 고생이다, 베릭. 상처 아물지 않았으면 뒤로 물러나 있어.”
“아물었으면?”
“그래도 물러나 있어라.”
균열 따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곳이었다. 이안은 아스타나인들에게 눈짓하며, 천천히 해가 떠오르는 쪽으로 걸어갔다.
“다 왔는데, 지체할 수는 없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