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556
. 이안의 전투
한데 섞여 내달리고 있었으나, 각 부족의 색이 워낙 강렬한 터라 구분하기에는 문제가 없었다.
우선 선두를 내달리고 있는 나탄족. 그들은 하나같이 짐승 해골을 머리에 이고, 잿빛 로브를 걸쳤으며, 단검으로 무장한 상태였다. 더하여, 모두 흑우(黑牛)와 비슷한 짐승의 등에 올라타 있었다.
“우리가 먼저 간다! 으하하!”
“달려라, 달려!”
대지를 흔들던 게 바로 저것들의 움직임이었던 게다. 집채만 한 짐승들이 떼거리로 몰려드니 천지가 흔들리는 것도 당연했다.
바로 옆에 바짝 붙어 있던 메게투족이 인상을 찡그리며 간격을 넓혔다. 모래바람이 너무 거센 탓이다.
“비켜! 전투가 무엇인지 보여주마!”
“단검으로 뭘 어쩌겠다고, 등신들!”
짜악!
메게투족은 말 옆구리를 채찍으로 휘갈기며 소리쳤다. 녹색 안감을 얼굴과 몸 전체에 퍼 발라, 멀리서 보면 저게 사람인지 아닌지 구분하기 힘들었다. 그들이 사용하는 채찍 또한 일반적인 것과 다르게 식물의 줄기를 꼬아 만든 것이었다.
“시간 맞춰서들 왔군!”
“나탄족과 메게투족이 저 앞에 있다! 우리도 가자!”
“상대는 바리엘! 제국의 콧대를 꺾어버려!”
“크허허헛! 아스타나는 우리의 것이다!”
그리고 반대쪽에서 다가오는 엥자르갈족. 팔척장신에 근육이 도드라진 자들이다. 하나같이 긴 머리칼을 땋아 뒤로 넘겼는데, 양손에는 제 상반신만 한 도끼를 들고 있었다.
“이게 무슨 소란인가?”
“폐하! 북쪽 타 부족들의 습격입니다!”
“버고스로 진입 전, 마지막 저항선일 것입니다.”
호각 소리를 듣고 나온 진이 주위를 둘러보며 묻자, 맥심 트웰러 장관이 담담하게 보고했다. 진은 반사적으로 검을 다잡았고, 좌측과 우측을 번갈아 봤다.
어느 쪽을 먼저 막아내는 게 맞는가? 상대 전력은 어느 정도지? 북쪽 부족들이라 하면 술사들이라는 건데, 그들의 능력은 또 무엇이고? 아스타나의 귀띔이 필요한데.
“트웰러 장관.”
“예, 폐하.”
하나, 진은 주위 분위기가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챘다. 병사들이 기상하여 대열을 이루고 있었으나, 긴급함이 없었던 게다. 트웰러 장관 또한 마찬가지.
진은 본능적으로 중얼거렸다.
“이안 경은?”
“저쪽입니다.”
트웰러의 손짓에 따라 진의 시선이 돌아갔다. 나탄족과 메게투족이 오는 쪽이다.
일출에 맞서 홀로 덩그러니 서 있는 이안.
그의 금빛 머리칼이 햇빛을 받아 따스하게 반짝였다.
“상대에 대해 알고서 가는 것인가?”
“아스타나 쪽에서 간단히 일러준 듯합니다.”
“그렇다면 다행인데…….”
“좋은 아침!”
진이 안도의 숨을 내쉬는 순간, 베릭의 음성이 머리 위쪽에서 들렸다. 언제 자리를 선점했는지, 골렘 어깨에 앉아 고기를 뜯고 있는 것 아닌가? 비상 호각이 무색하게 평화로운 태도다.
진은 자신도 모르게 천천히 검을 내렸다.
지이잉!
지잉!
그와 동시에, 이안이 한쪽 무릎을 꿇고서 대지에 손을 올렸다. 이내 별도의 마법진 없이 세워지는 이드갈 장벽. 여기를 넘지 못할 것이라고, 상대에게 이르는 선전포고였다.
“저게 뭐지?”
“어이고, 마법부 장관이로군! 친히 상대해주려나?”
“영광이옵니다! 으하하하!”
마력 소모가 없다는 게 장점이었지만, 대상 부분과 접촉해야 한다는 것은 아쉬웠다. 장벽에서 솟아난 이드갈이 나탄족 쪽으로 빠르게, 그리고 날카롭게 뻗어나기 시작했다.
촤아악!
“가자! 얘들아!”
우우우!
쿠웅! 쿠웅! 쿵!
나탄족의 명령에 검은 소들이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둥글고 굵직한 뿔 세 개. 놈들은 날아드는 이드갈에 정면으로 머리를 박아댔다. 그로 인해 산산이 파훼된 파편은 나탄족이 직접 단검으로 쳐냈다.
그 모습을 본 이안이 의외라는 듯 한쪽 눈썹을 까딱거렸다. 마물이 아니라, 나탄족에서 사육하는 자연계 짐승이라는 뜻이다.
지이잉! 지잉!
타앗!
이안이 창공으로 날아오르자 나탄족과 메게투족의 시선이 위쪽으로 올라갔다. 두 부족은 마주 고개를 끄덕이더니, 좌우로 갈라져 더욱 크게 속도를 내었다.
“마법부 장관을 먼저 잡고 간다!”
“메게투! 메게투!”
“알겠으니까, 잘 해봐!”
저들끼리 신호를 주고받더니, 메게투족은 채찍을 하늘로 크게 휘둘렀다. 동시다발적으로 수십 개의 줄기가 창공으로, 정확히는 이안 쪽으로 날아들었다. 끝도 없이 길었으며, 말도 안 되게 빠르고,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방향 전환이 자연스럽다.
이안은 집중하며 채찍 사이를 유영했고, 손끝으로 마법진을 그려냈다.
“잡았다!”
하지만 그때, 무언가 발목을 잡아당기는 느낌과 함께 몸이 멈칫거렸다. 이안의 그림자를 나탄족이 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단검을 들어 올리더니, 비열하게 혀를 내밀며 웃었다.
“장관님 발목, 잘 가져갑니다!”
“잘라!”
그림자를 실체화하여 다룰 수 있는 부족, 나탄. 그래서 야간 기습을 포기하고 해가 뜨자마자 돌격한 것이었다.
놈들은 단검으로 이안의 발목 부분 그림자를 베어내려 했고, 이에 이안이 멈칫거리는 찰나, 메게투족의 채찍이 틈 없이 파고들었다.
“이안아!”
고기 뜯던 베릭이 놀라서 벌떡 일어난 것도 잠시. 이안은 침착하게 불러냈던 마법진을 발동시켰다.
「회록(回祿)」.
퍼어엉!
촤악!
어깻죽지에서 솟아나는 거대한 화염. 메게투족의 채찍 수십 개를 동시에 태워버리는 것은 물론이고, 강렬한 빛으로 그림자를 일순 지워버렸다.
나탄족은 텅 빈 곳을 단검으로 찔렀고, 어리둥절한 얼굴로 위쪽을 쳐다봤다.
“허억!”
이안의 손끝에서 거대한 화염구가 이글거렸다. 마치 태양을 그대로 떼어내 가져온 듯한 위엄이다.
나탄족은 소매로 얼굴을 가리더니, 다급히 저들의 그림자를 살폈다.
“그림자! 그림자!”
“안 보이는데? 다들 어떻게 좀 해봐!”
“잠깐만! 이쪽으로! 이쪽으로 움직여!”
자신들의 그림자 속으로 숨어들 요령인 게다. 나탄족들이 허둥지둥하자, 이안은 자비 없이 대지를 향해 손끝의 화염을 내쳤다.
콰아앙!
촤악!
“으아아악!”
“피해! 피해라!”
대지가 움푹 파일 정도로 강한 충격이 몇 번이나 떨어지자, 나탄족은 소들과 이리저리 엉켜들며 나뒹굴었다.
메게투족도 다를 것 없었다. 그들의 채찍은 잘리는 순간 날카로운 나뭇잎 칼날로 변해 적에게 날아들게끔 되어 있었지만, 강한 화력 앞에서 무용지물이었다.
“채찍을 올리지 마라!”
메게투 족장이 다급하게 외쳤다. 공격해봤자, 그리고 채찍이 잘려봤자 상대에게 피해가 없으니, 괜히 헛되게 무기를 버리지 말란 뜻이었다.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잠시 물러나! 마법사의 마력은 한계가 있다! 이만한 힘이라면 금방 바닥을 보일 것이니, 틈을 노린다!”
“알겠습니다!”
“퇴각하라! 퇴각!”
휘이익!
메게투족의 결정에 나탄족 또한 허둥지둥 소 등에 올라탔다.
그들의 움직임을 가만 지켜보던 이안의 금안이 서늘하게 반짝였다. 빛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건만, 온기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와아아아!”
“진격하라!”
저 멀리, 다른 부족들 또한 접근하는 중이었다. 개중에는 필시 사령술을 비롯하여 힘과 체력을 회복해줄 부족도 섞여 있을 터.
이안은 번거로워지기 전에 모든 걸 녹이고자 결심했다. 그는 손바닥에서 뚝뚝 흘러내리는 화염을 갈무리하지 않은 채 웃었다.
솨아악!
지이잉! 지잉!
“온다! 또 온다!”
“화염 비입니다! 으아아악!”
“모두 소 아래에 매달려!”
“미친놈인가? 대체 마력은 언제 줄어드는데?”
“몰라, 시발! 뛰어!”
두두두!
비처럼 떨어지는 불길에, 다들 괴로워하며 몸부림쳐댔다. 풀 한 포기 없는 돌산인지라 오로지 그들의 육신만을 매개로 하여 발화했다.
놀라 일어났던 베릭이 엄지를 치켜들며 고기를 마저 뜯었다.
“좋다! 이안아아아! 다 죽여버려! 근데 뒤에 근육쟁이들 오는 거, 알지?”
왁왁거리는 베릭의 외침에 이안이 고개를 틀었다.
엥자르갈족의 전사들. 거대한 도끼를 두 손으로 든 자들이 진영 가까이 접근하는 중이었다.
혹시 몰라 병사들이 대치하기 위해 도열했고, 맥심 트웰러 장관 역시 도끼를 쥔 채 의연히 그들을 주시했다.
촤아악!
이안은 빛처럼 빠른 속도로 날아들었고, 순식간에 엥자르갈족 선두와 마주했다. 말을 타고 달려들던 놈은 갑자기 나타난 상대에 당황해서 고삐를 잡아당겼고, 찰나, 오른쪽 옆구리가 무방비 상태로 드러났다.
지이잉! 지잉!
촤악!
“크허억!”
이안은 검 형태로 만들어낸 이드갈로 그 살을 베었다. 그리고 망설이지 않고 무리 틈으로 파고들었으며, 자유롭게 날아들어 상대의 목과 가슴팍을 노려댔다.
“마법사다! 제국의 마법사다!”
“계속 전진하며 막아내!”
엥자르갈족은 거대한 도끼를 가볍게 휘두르며 이안을 공격했으나, 범위가 너무 한정적이었다. 그들은 말 위에 있었고, 이안은 창공을 물속처럼 누비고 있었으니.
히이잉!
촤악! 채앵! 챙!
대열 끝까지 파고들었던 이안은 몸을 반대로 틀어서 다시금 공격을 이어갔다. 도끼에 부딪친 이드갈 검이 부서진다 한들, 순식간에 새로운 검이 쥐어져 공격에 쉬는 틈 따위 없었다.
“으아악! 뒤에서 또 온다!”
“모두 대열 간격을 좁혀라! 접근하지 못하게 해!”
이안의 검에 맞서던 자들이 하나둘, 피를 터트리며 낙마했다. 주인을 잃은 말들이 사위로 흩어졌고, 그럴수록 이안은 접근이 쉬워졌다.
채앵! 챙!
결국 그들은 속도를 내지 못한 채 돌진을 멈추었다. 앞뒤 사방에서 번쩍이는 마력을 버겁게 막아내며 전투에 돌입할 수밖에 없게 됐다.
“흐아아압!”
“한 방만! 딱 한 방만 먹이면 돼!”
쿠웅!
이안을 스친 도끼가 대지를 찍어 누르자, 돌들이 갈라지며 사방으로 튀었다. 동시에 달려드는 엥자르갈족의 전사들. 넓적한 도끼날이 둥글게 모여 이안을 한데 가두었다.
빠져나갈 틈 따위 없을 것이라. 날아올라 보아라. 그 즉시 상체와 하체가 분리될 것이니! 그들은 속으로 웃음을 흘렸다.
지이잉! 지잉!
퍼어엉!
하지만 이안은 가볍게 이드갈 검을 내던졌고, 마력을 터트렸다.
「교열(咬裂)」.
아우우-!
바람으로 이루어진 늑대들이, 도끼를 부드럽게 스치고 지나며 전사들의 목덜미를 향해 달려들었다.
에프디람이 썼던 마법인지라 베릭은 흥미로워하며 시선을 집중했다. 단, 그녀의 것과 다른 점이 있다면-
솨아아악!
크아앙!
“오메, 시벌거?”
벨 수 없다는 것.
에프디람의 것은 물리적인 공격으로 파훼할 수 있었지만, 이안의 것은 불가했다. 아무리 도끼로 베어내도 늑대들은 어떠한 문제 없이 상대방에 접근했다. 아무래도 마력을 끝없이 생성해내고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으아아악!”
“크헉!”
거대한 몸집에 초월적인 위력을 가졌다고 한들, 살갗은 인간의 것. 수십의 전사들 목덜미에서 동시에 피 분수가 터졌다. 피를 잔뜩 뒤집어쓴 이안이 가쁜 숨을 내쉬며 얼굴을 닦아냈다.
“이안아! 한 놈 더!”
촤아악!
쓰러져 죽은 척하고 있던 놈이 갑자기 일어나 달려들었지만, 이안의 반응은 기민했다. 맥심 트웰러 장관은 필시 베릭의 외침보다 이안이 먼저 움직였노라 확신했다.
“크흑!”
도끼가 이안의 머리에 닿기 전, 그의 이드갈 검이 먼저 상대의 턱을 꿰었다. 피가 스르륵 흘러내리고, 상대는 결국 옆으로 둔탁하게 쓰러졌다.
쿠웅!
“…….”
가쁜 숨을 내쉬며 핏물을 털어낸 이안이 진영 쪽으로 고개를 틀었다. 금안이 형형했다. 마침내 정리되었다는 듯, 그는 이드갈 검을 내던졌다.
“베릭. 시끄러워.”
“웃기시네! 뒤에서 걔들 가까이 오는 거, 나 덕분에 알았지? 혼자 처리한다고 해놓고 병사들 나섰으면, 좀 쪽팔렸을 뻔! 크하핫!”
이안은 피식 웃으며 천천히 걸어왔고, 병사들은 베릭을 경악스럽게 쳐다봤다. 저런 자를 상대로 뭔 망발인가? 돌았나?
“베릭 저 새끼, 지금 보니까 제일 용감한 새끼였네.”
“그러게. 이안 님한테 저렇게 깝치고.”
“나, 나 뭐 잘못한 거 없지?”
“뭐가?”
“몰라. 갑자기 있나 하고 걱정되네.”
“이안 님! 괜찮으십니까? 다친 곳은 없으세요?”
마법사들이 우르르 달려가며 이안을 맞이했고, 맥심 트웰러 장관은 진을 힐끔거렸다. 적잖이 충격받은 모습이 여실했다. 마법부 장관이란 직책이 지닌 의미를 안다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고, 오만이었던 게다.
“…세상에.”
진은 짧게 중얼거리는 것 외에는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고, 나아가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는 확신을 얻었다. 신의 사랑을 가장 가까이서 받는 자가, 바로 옆에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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