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558
제558화. 가족의 복수
“워워. 멈추시오.”
황궁경비대의 손짓에 마부가 말고삐를 천천히 잡아당겼다. 수레 뒤쪽에는 큼지막한 상자 열댓 개가 쌓여 있었는데, 하나같이 쿰쿰한 냄새를 풍겨댔다.
경비대는 코를 찡그리며 장부를 가져왔다.
“어디 소속입니까?”
“락컨 식품입니다. 황궁 식자재 납품 건으로 들어가려 합니다.”
“아아, 오리고기 전문으로 하는? 근데 냄새가 좀 심하군요. 상한 것 아닙니까?”
“날이 더워지니 고기가 금방 썩더라고요. 며칠 전에 마차 틈으로 썩은 고기를 쏟아버렸습니다. 그 냄새인가 봅니다.”
“동행인은요?”
“저 말고 잡부 다섯입니다. 뒤에 마차가 한 대 더 있어요.”
스윽.
식품 책임자가 신분증을 보여주자, 경비대원은 서둘러 기록하고서 크게 손짓했다. 문을 서둘러 열라는 뜻이다.
마부가 모자를 벗으며 인사했고, 마차 두 대가 연달아 들어섰다.
타닥타닥!
식품 창고 쪽으로 간 마차. 마부와 잡부들은 상자를 하나둘씩 내렸지만, 개중 한 남자는 주위 눈치만 보며 로브를 뒤집어썼다. 썩은 냄새의 근원이 바로 그자였으니.
남자는 제 목에 걸린 짐승 뼈 목걸이를 바로잡았다.
잘그락.
이어서 아무런 말 없이 앉았던 자리에 금화 주머니를 놓았고, 마부는 자연스레 그걸 제 품에 챙겼다.
홀연히 사라지는 남자에 대하여,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의 계약은 그저 남자를 황궁 안으로 들여주는 것이었으니까.
타닥타닥!
남자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몸을 최대한 낮게 숙였다. 이내 수풀 속으로 숨어든 그가 로브를 벗고, 작은 횃불 하나를 들자, 그림자가 점차 길게 늘어졌다. 비현실적인 광경이었으나, 남자의 입가에는 웃음이 걸렸다.
“크크. 다들 나오시게!”
쉬이익!
그림자에서 쑤욱 뻗어나는 머리들. 그들은 주위를 경계하며 천천히 그림자에서 벗어났다. 생각보다 영 불쾌한 감각인지라, 조금 서두르는 기색이 역력했다.
“으윽, 좀 그렇군그래.”
“뭐, 어디 침대 같을 줄 아셨나?”
“닥쳐라. 건방지게.”
“흐응. 나 아니면 어떻게 나가시려고? 다몬 왕이랑 같이 껴안고 죽을 거면 또 몰라.”
나탄족 사내의 비아냥에 나카스타가 살벌하게 노려봤다. 감히 북쪽의 소수민족 주제에 건방진 작태라니.
나카스타는 버고스가 몰락하기 전, 다몬 왕을 곁에서 모셨던 최측근이었다. 즉 버고스의 기득권자였고, 북쪽 소수민족 따위 손짓 하나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비록 지금에야 빛바랜 영광이 되어버렸지만.
“됐고, 난 여기 있을 거니까 알아서들 일 보고 오셔. 납품 마차가 나가기까지 딱 두 시간 걸리니까. 아이고, 황궁이 좋긴 좋네. 푸릇푸릇해.”
벌러덩! 나탄족 사내가 드러누웠다.
나탄족은 그림자를 다루는 부족이고, 그것을 이공간처럼 다룰 수 있었으나, 밤이 되면 전투력이 0에 가깝다는 단점이 존재했다. 짐승 뼈 장신구로 인한 썩은 냄새는 덤이고.
이에 나카스타와 부하들은 혀를 끌끌 차며 암살 준비에 들어섰다.
“가자.”
“예, 나카스타 님.”
나카스타는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채 부하들과 함께 어둠 속으로 잠입했다. 목적지는 단 한 곳!
“마탑은?”
“저쪽입니다!”
다몬 왕이 갇힌 마탑이었다.
나카스타는 왕궁 소속으로 자연스레 왕당파로 활동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곳에는 희망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늘어지는 전쟁이 과연 누구 탓인가? 힘의 균형을 운운하는 바리엘의 대외적 명분이, 계속 부채질해댄 탓 아닌가?
결국 나라를 좀먹는 적국과 그에 힘입어 존재하는 왕당파라니. 나카스타는 일찌감치 반왕당파 쪽으로 노선을 틀어 나라의 통합을 갈망했다.
“한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무엇이?”
과거에 모셨던 주군을 직접 죽이러 가는 것? 그게 왜? 부하의 걱정에, 나카스타가 슬쩍 웃었다.
“왕께서도 이해하실 것이다. 대의를 위한 일이거늘!”
그렇기에, 자신이 가는 것이다.
러더포드는 다몬이 순순히 죽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언제나 예외는 존재하는 법. 혹여 삶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다면, 그래서 살고자 한다면, 자신이 보호하여 모시는 척 처리하는 수밖에 없다.
“시체 담을 자루는?”
“문제없이 준비했습니다.”
다몬 왕의 죽음을, 바리엘 측에서는 절대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전쟁이 끝난 뒤 수습에 있어 왕당파의 도움을 받을 때까지는.
그러니 부인할 수 없는 증거가 필요했다. 다몬 왕의 시체. 눈으로 죽음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증거.
“음?”
푸욱!
“거기, 무슨 일이오?”
“괜찮으십니까?”
로만드로의 마부가 담배를 피워대다 뒤에서 공격당했다. 쿠웅, 앞으로 둔탁하게 쓰러지는 소리에 마탑 입구 병사들이 의아하게 반응했고, 암살자들은 바로 날렵하게 뛰어들어 전원 목을 베어냈다.
깔끔하고, 정확하게-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촤아악!
“크어억!”
“가자! 서둘러 올라가!”
“창문 쪽은 반응 없나?”
“여기서는 안 보입니다!”
버고스 측의 또 다른 병기가 창문 쪽을 담당하고 있었지만, 사실 성공하리라 기대하지는 않았다. 아니, 실패하길 바라는 걸 수도 있다. 이번 작전은 자신의 손안에서 성공해야 하니까.
난세에 이름을 떨치기 위해서는 굵직한 역사 흐름을 스스로 만들 수밖에 없지 않나?
타닥타닥!
잠입 무리는 열댓 명에 달하는 암살자들이었다. 나카스타를 중심으로 결집한 그들은, 다몬 왕의 숨을 앗는 것과 동시에 황궁을 소란스럽게 만드는 데 목적이 있었다. 그 대단하신 바리엘의 황궁이 적의 공격을 받았노라고, 제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소란 탓에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고 한들 상관없다. 나탄족의 그림자 속으로 숨어버리면 흔적은 완전히 증발돼. 러더포드 쪽에서 방법을 강구할 때까지 그림자 안에서 버티면 되니까!’
“다몬 왕을 확보하여 나가는 즉시, 불을 질러라!”
“예. 알겠습니다!”
치고 올라가는 발걸음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먹잇감 하나만 보고서 내달리는 맹수처럼, 다들 병사들을 베고 또 베며 쉼 없이 뛰어올랐다.
결국-
“네, 네, 이놈! 여기가 어디라고오…….”
당도했다.
암살자들은 숨을 가볍게 내쉬며 바로 몸을 틀었다. 계단 확보에 주력하기 위함이다.
나카스타는 검을 빼 들어 안으로 들어섰고, 달달 떨며 가로막는 로만드로와 마주했다.
“어디라고! 이놈들!”
“무인이 아닌 것 같은데, 지금이라도 엎드려 죽은 척하거라.”
“웃기지 마! 엎드릴 것은 네놈이지!”
“전하!”
나카스타의 외침에 다몬이 고개를 들었다. 병사에게 제압당해 옴짝달싹하지 못했지만, 그의 시선만큼은 자유로웠다.
근 10년 만에 재회한 부하는,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전하! 지금 버고스의 상황을 알고 계십니까!”
“니야아아앗!”
채앵! 챙!
로만드로가 눈을 꽉 감은 채 달려들었고, 나카스타는 어렵지 않게 그 검을 쳐냈다.
어이쿠! 뒤로 나뒹군 로만드로가 반사적으로 일어나 다시 검을 잡았다. 오른쪽 콧구멍에서 코피가 쪼로록 흘러내렸으나, 긴장한 탓에 알아채지 못했다.
“으으! 읍!”
다몬이 마지막으로 발악하며 나카스타에게 도움을 청했다. 자신을 데려가라고. 어서 이 숨을 자유롭게 하여 다음 세상으로 가게 해달라고.
죽음에 대한 의지를 확인한 나카스타가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그래요. 그러셔야지요. 왕 된 자로서, 죽음을 명예롭게 맞이하십시오.
“전하! 제가 모시겠습니다!”
정확히는, 그대의 시체를!
나카스타가 검날을 바짝 세웠다. 이번에는 상대의 공격을 쳐내는 것에서 멈출 게 아니라, 반격을 이어가겠다는 경고다.
로만드로는 콧물인지 코피인지 모를 것을 훌쩍이며 다시금 덤벼들었다.
“이, 이노옴아앙!”
“귀찮다!”
채앵!
휘이익!
로만드로가 눈을 찔끔 떴다. 뭐지? 분명 쇠붙이가 크게 부딪치는 소리는 들렸는데, 자신에게는 어떠한 충격도, 고통도 없다.
“오잉?”
그는 홀로 서서 허공을 찌르고 있었다.
그럼, 상대는?
“……!”
“오랜만이군.”
나카스타는 어느새 다가온 티모시와 검날을 맞물린 상태다. 로만드로를 공격하려던 찰나, 그가 뒤에서 의자를 던진 것이다.
멀뚱멀뚱, 덩그러니 놓인 로만드로가 서둘러 정신 차리곤 다몬 쪽으로 다가와 그의 앞을 막아섰다. 그래, 싸움은 무슨. 차라리 몸빵이 체질이지!
“티, 티모시 경! 도와주어!”
“늦어서 죄송합니다.”
“괘, 괜찮아, 아직 이쪽 왕 멀쩡해.”
끼기긱!
나카스타가 비릿하게 웃으며, 티모시와 로만드로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바리엘 사람 다 됐군. 티모시.”
“누구 덕분에.”
“나를 원망하나?”
티모시의 손에 힘이 실렸다.
원망하냐고?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것인가? 자신은 오로지 버고스만을 위해 살았고, 다몬만을 위해 일했으며, 한 여자의 남편이자 아이의 아버지로서 살아가고자 했다.
그런데-
“…원망을 넘어 증오한다.”
다몬과 나카스타가 모든 걸 망쳤다.
다몬은 자신을 의심했으며, 나카스타는 그 틈에 음모를 속삭였다.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 다르지 않았을 자신의 운명에, 거대한 폭풍을 몰고 온 것이다. 안타깝게도 쓸려나간 것은 자신의 가족이었지만.
“크흑. 그사이 덩치가 더 커졌어. 바리엘 음식이 입맛에 맞았나 봐? 아내와 자식은 죽어서 흙만 퍼먹는데.”
“…이놈!”
티모시가 격렬하게 몰아붙이며 검을 휘둘렀다.
받아내긴 하였으나 버거웠다. 그간 내전에서 스스로 힘을 갈고 닦았다 생각한 나카스타였으나, 역시 범인(凡人)이 체격 차이를 극복하기에는 무리였나 보다.
그는 부하들을 부르며 도움을 청했다.
“이쪽으로! 젠장!”
“나카스타 님!”
“나 말고, 저쪽! 다몬 왕 쪽을!”
“제가 뒤를 맡겠습니다!”
티모시 쪽과 다몬 쪽으로 갈라지는 암살자들. 로만드로가 다시 질끈 눈을 감은 채 달려들었지만, 주먹 한 방에 속절없이 나뒹굴었다. 다몬을 붙들고 있던 병사 또한 무너졌고, 암살자가 소리쳤다.
“족쇄를 풀 수 없습니다. 여기서 처리하고서 잘라가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그리해!”
다몬은 순순히 목을 보여줬고, 암살자가 검을 치켜들었다.
“영광입니다! 전하!”
죽었다. 다 죽었다.
바리엘이고, 이안 히엘로고, 세 번째 삶에서는 처참하게 짓밟아주마. 지금, 이 순간만을, 장장 10년 동안 버티고 버티며 기다렸다!
쉬이익!
그때, 티모시가 나카스타를 밀어내며 암살자 쪽으로 달려들었다. 크게 검을 휘둘렀고, 이어서 놈의 팔이 단번에 잘려 떨어졌다. 아주 가볍게.
“으아악!”
티모시는 상대의 잘린 팔 부분을 부여잡으며 쓰러진 암살자에게 자비 없이 검을 찔러넣었다.
푸욱!
분노에 찬 공격이 이어질 때마다 검붉은 피가 터져 올랐다. 창백한 다몬의 볼을 적시고, 반짝였던 눈빛 또한 피에 점철되어 어둡게 물들어갔다.
“…전하.”
티모시는 눈가로 흐르는 붉은 피를 손등으로 훔쳐내며 중얼거렸다.
“저를 절망으로 밀어 넣으셨으면서, 어찌 희망을 찾으려 하십니까.”
“…으.”
“안 됩니다. 전하께서는 그 무엇도 선택할 수 없습니다. 죽지 않되, 죽은 채로 살아가십시오.”
로만드로는 머리를 좌우로 털어내어 흐릿한 시야를 바로 했다. 그러고는 다시 다몬 왕을 보호하려 몸으로 껴안았다. 왕을 죽이려거든, 자신 먼저 죽이라며.
“나카스타.”
그의 눈엔, 마치 티모시가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미 죽어 있는 자와 같이.
“내, 인간으로서의 이성을 모두 저버리고서, 너를 도륙할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미 죽은 것일지도.
아내와 자식이 죽은 그 순간부터.
괴이할 만큼 섬뜩한 기세에, 나카스타는 마른침을 삼키며 검을 다잡았다.
“그러니 처절하게 소리 질러. 내 아내와 자식의 비명이… 세상에서 지워지도록.”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