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559
제559화. 의견을 나누면
북쪽 지대의 밤은 생각보다 더 추웠다.
눈이 내리거나, 바람이 거센 것도 아니건만 해가 지면서 빠르게 식어 내린 돌산 탓에 곳곳에서 앓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특히, 온종일 행군한 병사들에게서.
“아이고, 죽겠다! 허리 부러지겠네.”
“나는 발바닥에 물집 잡혔어. 이런 길을 사흘 동안 가면 된다, 이거지? 으흠.”
“내일 오전 중에는 버고스 국경선 넘을 수 있고, 사흘째 되는 날이 저기, 어디더라? 아무튼, 그 적군 있는 데 도착하는 날이래.”
“그래도 밥은 든든하게 나와서 좋군. 그거라도 아니었으면 못 버텼을 것 같은데.”
“마법사님들이 좀 어떻게 못 하나? 뾰로롱 해서 바로 떨구어주면 얼마나 좋아? 저번에 보니까 할 수 있을 것 같더구먼!”
“아, 대단했지. 대단했어.”
“나이도 어려 보이는데, 장관이라며? 역시 출세하려면 마법사가 되는 길밖에 없나 봐.”
병사들이 삼삼오오 모여 휴식을 취하는 와중, 트웰러는 언덕 위에서 그 모습을 두루 지켜봤다.
아직 전투는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행군으로 인한 체력 소모가 상당해 보였다. 바리엘과는 완전히 다른 기후, 환경 따위가 생각보다 더한 변수를 만들어 냈다.
“아, 장관님.”
“좋은 저녁이오. 헤일 대장.”
“실례하겠습니다.”
헤일 대장이 궐련을 태우기 위해 적당한 장소를 찾다가 트웰러와 마주했다.
그들은 짤막한 인사를 나누었고, 이내 말없이 궐련 연기만 뱉어냈다. 찬 바람에 흐트러지는 두 사람의 흔적이 유독 짙은 밤이었다.
“헤일 대장. 이안 장관 말일세.”
침묵을 가볍게 깰 겸, 그리고 의문도 해소할 겸. 트웰러는 나지막이 입을 뗐다.
“평소 검술 훈련을 하셨는가?”
“그럴 리가요. 저는 본 적 없습니다. 그럴 시간도 없으셨을 거고요.”
“그렇다면 정말 대단하군. 마법부에 인재를 빼앗겼다 생각될 정도로.”
진담 섞인 농담이었다. 정형화된 훈련에서는 절대 익힐 수 없는 자세와 상대를 베는 흐름. 아무리 마법으로 불러내었다 하지만, 제 몸처럼 다루는 자연스러움이라니.
“마법부에서도 이안 님은 규격 외입니다.”
“규격 외라.”
“그런 천재를 본 적 없습니다. 지금껏, 그러니까 이안 님이 나타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웨슬리 전 장관을 세기의 인재라 여겼는데, 감히 비교조차 불가하지요.”
“이안 경이 사용하는 마법들이 모두 상위 수준이라는 건 전해 들었는데.”
“상위 수준이라는 말로는 부족합니다. 그런 걸 한꺼번에, 그리고 연달아 구사할 수 있는 마법사는 세상에 없습니다.”
흐음. 트웰러는 궐련을 질겅거렸다.
생모가 버젓이 살아 있는 터라 그 출신에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한데, 어찌 브라츠에서 어린 시절 내내 묻혀 있었는지가 의아했다.
검술이면 검술, 마력이면 마력, 모든 게 불세출인 데 반해 황궁에 알려진 시기가 너무 늦다. 그 황궁 출신 스승이라는 자가 제대로 정신 박힌 자라면, 이안을 그리 두지 않았을 터인데.
“가끔은-”
헤일이 트웰러의 시선을 따라 밤하늘을 바라봤다. 반짝반짝, 쏟아질 것처럼 화사한 은하수가 그득했다.
“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마법사는 신의 사랑을 받는 자라고 하였지.”
“너무하지 않습니까? 솔직히.”
“하하. 그래그래.”
“저로서는 이해하지 못할 부분이 너무 많아서…….”
헤일이 연기와 함께 말끝을 흐리자, 트웰러가 놓치지 않고 되물었다.
“이해 못 할 부분이라니?”
“아. 그것이, 말 그대로 정말 모든 걸 알고 계십니다. 이안 님이 황궁에 올라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부터, 업무 체계나 특수 마법 발동 방법, 지리 등을 모두 꿰고 계셔서 놀랐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10년 전이었지만, 어찌 잊겠나?
특히 아코렐라가 드래곤 각린 전염병으로 쓰러졌을 때, 황궁 비밀 통로를 사용했던 건 지금도 의문이다. 눈치로 보아 로만드로 님도 모르고 있었던 듯싶거늘.
“흐음.”
트웰러는 수염을 가만 쓰다듬으며 복잡한 머리를 진정시켰다.
뭔가 미묘하게 현실과 동떨어진 이안 히엘로. 대단하다, 위대하다, 천재다 등의 수식어로는 당최 설명 안 되는 부분이 여럿이었다. 필시 이를 말끔하게 관통하는, 하나의 무언가가 있을 터인데.
“헤일 대장. 여기 있어요?”
“아, 자이라.”
“트웰러 장관님. 안녕하십니까.”
그때, 자이라가 불쑥 모습을 보이더니 헤일에게 손짓했다. 무슨 일이 생긴 듯싶다. 헤일은 궐련을 탁탁 튕겨 끄며 인사했고, 트웰러는 어서 가보라는 듯 손짓했다.
“그럼, 들어가 보겠습니다.”
“수고하시게.”
다시 혼자 남은 트웰러. 그는 새로운 궐련을 꺼내 물며 가만히 허공을 응시했다.
자이라, 저 마법사는 루스웨나 출신으로 그 할머니 되는 자가 심연에 떨어졌다지? 이안 경과 마찬가지로.
‘심연.’
그게 정확히 무엇일까?
이안 경의 열흘과 우리의 10년을 동시에 흐르게 한, 거대한 힘? 시간의 일그러짐? 시간의…….
‘혹시, 이안 경이 우리와 다른 시간을 살고 있나?’
문득 떠오르는 망상 아닌 망상에, 트웰러는 피식 웃고 말았다. 늙으니 별 잡생각이 다 드는구나.
사실상, 서로 다른 시간선을 달리고 있는 건 맞지. 그는 여전히 십 대의 어린 소년이었고, 우리는 그보다 10년이라는 시간만큼 앞서가고 있으니.
“참나.”
그는 고개를 가볍게 떨치며 웃기만 했다. 지워내자. 전시(戰時)에 아무런 도움 되지 않는 생각이다. 그리 여기며 마음을 비웠지만, 어쩐지 발자국처럼 흔적이 남아버린 기분이다. 이안에 대한 깊은 의구심이.
* * *
“침입자인가?!”
마탑 입구에서 쓰러진 병사들과 마부들이 지나가던 시종들에게 발견된 건, 오래 지나지 않아서였다.
병사들은 단번에 경계 태세를 취했고, 당직 중인 마법사 또한 한걸음에 내달려왔다.
“로만드로 님!”
어두컴컴한 마탑의 횃불이란 횃불은 모조리 꺼져 있는 상태. 마법사는 작은 마력구로 계단을 밝히며 앞장서 걸었다. 그 뒤로는 병사들이 무기를 단단히 든 채 따랐다.
그렇게 거의 끄트머리까지 올라갔을 때쯤-
“어어, 나 여깄어.”
“세상에! 괜찮으세요?”
로만드로가 비틀거리며 내려왔다. 마법사는 그의 몰골을 보고서 경악했는데, 여기저기가 피로 절어 있고 얼굴은 퀭하니 당장이라도 죽을 낯이다.
마법사가 달려와 로만드로를 부축했고, 병사들은 현장을 살피려 스쳐 지나가려는 때.
“아아, 안 돼.”
“예? 뭐가요?”
“그, 티모시 경이 와, 와 있거든.”
“티모시 님이요? 그분이 여기 왜 계십니까? 마법부 별채 건설은 중지됐는데.”
“자세한 건 나중에 얘기할게. 다몬 왕의 암살 시도가 있었는데, 일단락되었으니 입단속이 중요하네. 뒤처리할 최소한의 인원만 투입하고, 나머지는 제자리로 돌려보내지.”
“그게 무슨, 아이고. 로만드로 님. 괜찮으세요?”
로만드로는 그대로 주저앉아 이마를 감쌌다. 나름 크고 작은 전투에 휘말린 적이 많아 내성이 있다고 여겼는데, 티모시의 복수를 직접 보고 있자니 정신적 충격이 상당한 탓이다.
잔혹하게 난도질당한 상대방의 시체와 가족을 잃은 사내의 슬픔이 거세게 휘몰아쳐, 하나의 비극을 빚어냈다.
“이런, 코피가 계속 나요. 로만드로 님. 지혈 좀 하고 계세요. 이봐! 우선 내가 먼저 들어가겠다. 다들 여기서 대기해!”
“코피? 아아.”
그러고 보니, 코피만 그런 게 아니라 여기저기 넘어지며 살갗이 죄다 까졌다. 로만드로는 멍하니 상처를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힘없이 떨구었다.
스윽.
“헉!”
안으로 진입한 마법사가 참혹함에 멈칫거렸다. 천지가 죄다 피로 물든 것인가? 비릿한 피 냄새가 심각했고, 널브러진 시체들은 더욱 참혹했다.
그 한가운데, 티모시가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는 시체 앞에 가만 서 있었다.
“티, 티모시 님?”
“…미안하오.”
무엇에 대한 사과인지 모르겠다. 마법사는 조심스럽게 그의 손에 쥐어져 있던 검을 앗았고, 이내 다몬을 살폈다. 그 역시 피를 뒤집어쓴 채 시체들을 허망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우선, 다몬 왕께서는 거처를 옮기겠습니다.”
타앗!
다몬이 있는 힘껏 마법사를 밀치더니, 티모시에게 가까이 붙었다. 마지막 발악이었다. 그는 어둠 속에서 티모시와 눈 마주치고서 입을 벙긋거렸다.
‘네 가족의 시체는-’
“이러시면 안 됩니다! 다몬 왕!”
‘개들에게 던져주었다.’
“다몬, 아! 티모시 님!”
콰아앙!
티모시가 다몬 왕의 목을 붙잡아 그대로 벽에 밀쳤다. 둔탁한 충격음과 함께 다몬의 시야가 잠깐 흐려졌다.
티모시는 뜨겁고 거센 숨을 씩씩 내쉬며 다몬의 목을 졸랐고, 마법사의 외침에 로만드로 역시 급히 뛰어왔다.
“로만드로 님!”
“티모시 경! 그러면 안 되네! 안 돼!”
“…내가, 내가 무얼 그리 잘못했소? 나는 그대에게 충성한 죄밖에 없는데! 대체 무엇이 그리 못마땅하여 내 처와 자식을! 이리도, 끝까지!”
“티모시 경! 진정하게! 다몬 왕은 죽어선 안 돼! 그자가 죽으면, 그대와 그대의 가족들이 다시금 상처 입을 거란 말일세!”
로만드로의 외침에 티모시가 멈칫거렸다. 그게 무슨 말인가, 대체 이해할 수 없다는 시선이다.
흥분이 한 김 식자, 그는 목 졸린 채 웃고 있는 다몬을 알아챌 수 있었다.
“다몬, 다몬 왕은 자신이 두 번 살았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죽음으로 다음 생을 노리려 하는 걸세. 그 생에는 자네도 있고, 자네의 부인과 자식도 있겠지? 이자가 또 그리… 해코지하면, 어찌해? 응?”
충격적인 발언에 티모시의 손아귀에서 힘이 조금씩 풀렸다. 틈이 생기자, 마법사가 급히 다몬을 빼내어 밖으로 보냈고, 티모시는 주저앉았다.
“대체, 대체-”
“이봐. 티모시 경.”
로만드로는 달달 떨리는 손으로 그의 손등을 덮었다. 끔찍하게 시체를 난도했던, 그리도 사납던 사내가 울고 있다. 길을 잃어서, 두려워하는 짐승처럼.
“나는 그대를 잘 이해하네. 나 또한 목숨을 내놓아도 아깝지 않을 만큼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이 있어. 그 누가 되었든, 제 가족을 해치는 자들이 있다면 깊이 분노하여 그대처럼 상대를 죽이고자 하겠지. 부디 그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이가 있다는 걸 알아주게.”
마법사가 다몬을 옮기자, 병사 둘이 들어와 시체를 처리하기 시작했다. 조각조각 잘린 것들은, 인간의 형체를 잃은 지 오래였다.
“잘했네. 잘했어.”
“…미안합니다.”
“미안할 거 없어! 잘했다니까! 다만, 상대에 따라 복수 방법이 달라진다는 걸, 다시금 생각하게. 잘 알고 있겠지만. 가끔 감정이 이성을 덮으면 판단력이 흐려지는 법.”
다몬에게 선사할 최고의 복수가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필시 이안이 찾아내겠지. 로만드로는 그의 손등을 연신 토닥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생했어. 잠깐이나마 마음의 짐을 내려놓게.”
티모시는 앞으로 엎어지며 절규했다. 하지만 무너진 것은 아니었다. 아직, 아직 그의 복수는 갈 길이 멀었다.
로만드로는 착찹한 얼굴로 엉망이 된 마탑을 한 번 둘러보더니, 이내 병사에게 지시했다.
“전서구 한 마리, 제일 날랜 놈으로 받아오게.”
“전서구 말씀이십니까? 마법부 장관님께 보낼 녀석일까요?”
“으응. 급히 전달할 것이 있어.”
현재 상황을 보고하는 것도 그러했지만, 이 높은 마탑 창문으로 날렵한 공격이 들어온 것. 어떠한 원리인지는 모르겠지만, 버고스 쪽 숨겨진 전력임이 틀림없으니. 이안에게 공유하여 위험을 대비하도록 하는 게 우선이었다.
로만드로는 손등으로 피를 닦아내며 덧붙였다.
“그리고 이자들이 어떻게 황궁으로 침입했는지, 그 경로를 알아내야 한다. 황궁 출입문부터 시작해서 사용인들 드나드는 뒷문까지, 상세히 조사하도록.”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