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564
제564화. 전쟁의 막이 오르다
“움직여라! 서둘러! 해가 뜨면 바리엘 놈들이 쳐들어올 것이다! 아기아르를 지켜내야 한다!”
“이쪽입니다! 루스웨나에서 온 흑갑옷 불출을 시작합니다! 서둘러 받아 가십시오!”
“입고 있던 갑옷은 한데 모았다가 장벽 안쪽으로 옮겨라! 3관문이 뚫리면 주민들을 동원할 것이다! 그들에게 보급할 것이니, 정렬하라!”
“자, 받으십시오! 결전을 앞둔 마지막 식사입니다!”
“조금만 더 주시오, 응?”
“어허, 아니 됩니다! 다음!”
아기아르 장벽 안쪽 또한 바리엘 진영과 마찬가지로 상당히 혼잡했다.
수성전에 앞장설 병사들은 루스웨나가 지원한 흑갑옷으로 갈아입었고, 무기를 단단히 쥔 채 각각의 장벽 위에서 대기했다.
그들은 모두 아기아르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었다. 버고스는 반쯤 망했어도, 그들의 터전만큼은 마지막까지 지켜내겠다는 마음가짐이 단단했다.
“이안 히엘로, 마법부 장관이 선봉에 설 것이오.”
타악.
러더포드는 지도 위에 작은 돌을 올리며 일렀다.
버고스 측 작전 회의실. 러더포드를 중심으로, 루스웨나 마법사들과 북쪽의 부족장들, 그리고-
“토올룬에서 맡으실 수 있겠소?”
토올룬에서 온 지원군이 자리했다.
루스웨나 마법사들과 북쪽 족장들이 힐끔, 그쪽을 쳐다봤다.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바그반’이라는 이름 하나. 어떠한 목적과 능력을 지녔는지 알 수 없었다.
‘체격이나 옷차림으로 보아 무인(武人)은 아닌 것 같은데.’
다들 속으로 미루어 짐작하는 와중, 바그반은 킬킬 웃으며 고개를 작게 가로저었다. 길게 찢어진 눈매와 유독 도드라진 앞니. 그가 웃을 때마다 입가가 기이하게 씰룩거렸다.
“마법사는 마법사가 상대하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저는 장벽쪽을 맡겠습니다. 진 황제를 비롯하여 바리엘 전군이 장벽에 달라붙을 것인데, 그쪽이 제가 움직이기에도 수월합니다. 루스웨나 마법사님들, 어떻습니까?”
“뭐, 상관없지요. 말씀하신 대로 마법사끼리 붙는 게 편합니다. 괜히 휩쓸리면 귀찮으니까요.”
“그런데요. 바리엘 쪽에는 마력 증폭을 지원하는 재원이 따로 있다 하던데, 루스웨나도 그러합니까? 클리포포드-버고스 전쟁에서 한 차례 발린, 아니 패배한 경험이 있지 않으십니까. 왕께서도 걱정 많으실 것 같은데. 킬킬.”
걱정과 모멸이 적절하게 섞인 발언이었다.
루스웨나 마법사 대표가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며 대꾸했다.
“그때와 지금은 다릅니다. 마법사 전체가 갈음되었고, 우리 또한 증폭을 담당하는 인재가 있습니다.”
“갈음되었다기보다, 완전히 들어낸 것 아닙니까?”
“지금 뭐 하자는 태도인지 모르겠네요.”
“바그반.”
안 그래도 전투를 앞둔 터라 예민한데, 바그반의 태도가 상당히 불손했다. 러더포드는 자중하라는 듯 중재했고, 바그반은 웃음기를 머금은 채 고개를 숙였다.
“그럼 바리엘 마법부 쪽은 루스웨나 측과 북쪽의 부족들이 합심하시오. 장벽은 바그반이 맡겠소, 단, 진 베로시온 황제 ‘위치’가 파악되면 바그반이 처리하는 것으로.”
“좋습니다. 그리하지요.”
“알겠습니다. 황제를 노리되, 상황 따라 적절히 대응하도록 하지요. 그런데요.”
바그반이 수긍하는가 싶더니 가볍게 되물었다.
“황제의 시체는 어디 소유입니까?”
“상황을 판단하여 가릴 것이다. 섣부른 생각 말라.”
“예예. 혹시나 다른 곳에서 엄한 생각을 하고 있는가 싶어서요.”
“이보시오, 그런 엄한 생각은 그쪽이나 하겠지요.”
“북쪽 부족 중에는 사령술사도 섞여 있으니, 모를 일 아닙니까?”
타악.
러더포드가 다시금 작은 돌을 테이블 위로 올리며 사담을 그만두라 경고했다.
“우리는 아기아르를 지켜내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적들의 목을 베고, 나아가 바리엘로 진격해야 할 것이오. 그것만이 우리가 한데 모인 목적일 터. 잊지 마시게. 적은 여기 있지 않아. 밖에 있어.”
바리엘을 꺾지 못하면, 죽는다.
아니, 오히려 죽는 자들은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 거대한 대가는 살아남은 자들의 몫이었으니까.
루스웨나는 클리포포드-버고스 전쟁에 이어 두 번 연속된 패전으로 필시 멸망의 길에 들어설 것이고, 버고스 측 반왕당파 세력은 궤멸과 함께 나라 전체가 바리엘에 흡수될 것이다.
그뿐인가?
아스타나를 제외한 북쪽의 타 부족들 역시, 바리엘에 맞선 대가를 뼈저리게 치를 터.
“골렘에 대한 대책은?”
“핵이 없는 놈들이라, 무작정 퍼붓는 공격은 비효율적입니다. 아스타나인들을 죽이는 게 제일 편리하고 깔끔합니다.”
“바그반.”
“예예. 알겠습니다. 마찬가지로, 위치만 파악되면요.”
그놈의 위치. 대체 어떤 식으로 이용하려 하기에 저리 운운하는가? 마법사들이 의아해했지만, 워낙 태도가 재수 없는 터라 말을 붙이진 않았다.
바그반은 히죽거리며 덧붙였다.
“걱정 마시고 싸우십시오. 제 부하들이 여럿입니다. 제일 믿을 만한 놈은 바리엘에 가 있지만, 그래도 여러분을 보호하기에는 무리가 없지요. 이는 우리의 왕께서도 바라시는 바이니, 제가 최선을 다하여 도울 것입니다.”
“바리엘에요?”
마법사들이 반사적으로 되묻는 순간이었다.
부우우-
부우-
동이 터오고 있음을 알리는 물소뿔이 사방 천지에서 크게 울려댔다. 시간이 된 것이다. 아마 바리엘 진영도 같은 반응이겠지.
“그럼, 건투를.”
“건투를.”
러더포드의 고갯짓을 마지막으로, 모두가 회의실 밖으로 나갔다.
동시에 그의 부하가 잰걸음으로 다가와 러더포드에게 무언가를 속삭였다.
“…누구라고?”
“만나보시겠습니까? 동이 트고 있긴 합니다만.”
“만나는 데 하루 이틀이 걸리는 것도 아닌데, 무얼. 데려오도록 하라. 뜻밖의 반가운 인연이 아닌가. 내 기꺼이 맞이하지.”
“예, 러더포드 님.”
촤악!
러더포드는 그리 이르면서 커튼을 거칠게 걷어냈다. 어두웠던 회의실이 단박에 밝아지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병사들의 움직임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저 멀리-
떠오르는 해를 등지고 선, 금발의 소년.
꽈악.
그는 자신도 모르게 커튼을 세게 붙잡았다. 어째서 신께서는 이리 긴박한 상황에서 응답이 없으실까? 저것을 즈려밟고 나아갈 길이 멀고 험하거늘.
러더포드는 뒤에서 들리는 인기척에 고개를 틀었다.
“러더포드 님.”
“아아, 그래.”
그러고는 참으로 반갑다며, 환한 미소로 손님을 맞이했다. 한껏 바닥에 엎드린 상태라 얼굴을 제대로 볼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 * *
“해가 완전히 떴습니다.”
누군가의 중얼거림에 이안이 장벽 쪽을 쳐다봤다. 여전히 버고스 국기가 굳건히 걸려 있었다. 그는 마법사들에게 손짓했고, 제일 먼저 창공으로 날아올랐다.
지이잉! 지잉!
타앗!
마법사들 역시 마찬가지. 로브를 모두 벗어두고서 이안의 뒤를 따랐다. 때마침 햇빛이 들면서 아기아르 전경이 눈에 훤히 들어왔다.
개중엔 드래곤의 등에 단단히 묶여 함께 날아오른 기록관도 둘 있었는데, 그들은 현기증을 느낄 새도 없이, 펄럭이는 종이를 단단히 붙들고는 기록하는 데 여념 없었다.
“조금만 더, 위, 위쪽으로 가주시게!”
“말을 알아듣나?”
-뀨우우!
“흐이이익!”
휘익! 고도를 급격하게 높이는 바람에 기록관들의 몸이 크게 휘청였다. 그들 사이를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마법사들. 이어서 전투 개시를 알리는 선제 공습이 이어졌다.
“가자, 얘들아!”
“이안 님을 호위해!”
촤아아악!
물결을 헤치듯 빠르게 장벽으로 다가가는 이안. 정체 모를 어떤 공격이 날아들지 몰라 신경이 팽배해졌다.
서로를 육안으로 파악 가능할 정도로 거리가 좁혀지자, 버고스군 궁수들의 공격이 이어졌다.
“일제-!”
처억!
화살 끝에서 반짝이는 호박색. 이드갈을 묻힌 것이다. 클리포포드-버고스 전쟁 때와 마찬가지로, 전장을 가르는 마법사들을 저지할 일차적 수단이다.
“공격!”
촤아아악!
버고스 병사들이 쏘아 올린 수백 발의 화살이 완만한 곡선을 이루며 날아들었다. 장관이었다. 마치 호박빛 물결이 살아 움직이며 덮쳐오는 듯한.
“이드갈 화살이다!”
“대비하라!”
작은 동요가 일었으나, 이내 잠잠해졌다. 이안이 한 손을 가볍게 들어 올린 것이다. 이내 마법사들 앞으로 거대한 이드갈 장벽이 생성되었다.
타다다닥!
타닥! 파앗!
화살들은 이드갈 장벽에 막혀 힘없이 바그라졌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이드갈 화살에 파훼되어 산산이 조각나 아래로 떨어지는 이안의 장벽.
이에 아코렐라가 침을 뚝뚝 흘리며 앞서 날아가자, 헤일과 마법사들이 지겹다는 낯으로 그녀를 따랐다.
“미친 것들아아! 이게 얼마나 귀한 건데에!”
“대장, 알았으니까 조금만 천천히 해요. 이안 님보다 앞장서지 마시라구요. 네?”
“이안 님! 콱 다 아래로 떨구세요! 새끼들 다 깔려서 뒤지게에!”
이안이 왼손으로 오른쪽 손목을 잡고서 몸을 틀었다. 그의 손안에서 거대한 불길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장벽이고 뭐고, 통째로 녹여 주마.’
그의 시선이 펄럭이는 버고스 깃발에 고정되는 순간-
촤아악!
지이이잉! 지잉!
장벽 곳곳에서 대기하고 있던 루스웨나 마법사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날아올랐다.
그들은 이안의 공격에 대항하여 보호막을 생성해냈고, 이안의 불길은 보이지 않은 구에 가로막힌 것처럼 장벽에 닿지 못한 채 사그라들었다.
곡선을 그리며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열기. 마법사들이 소리쳤다.
“루스웨나 마법사입니다!”
“이안 님! 조심하십시오!”
지잉.
이안이 손끝으로 보호막을 지그시 눌렀다. 깊이가 단단하고, 그 결이 곧다. 수준만 보자면 상당하긴 하다만-
파지직!
쩌억!
이안이 만들어내는 이드갈과 접한 부분이 균열을 일으키며 깨지기 시작했다. 시간문제였다. 제아무리 마력을 때려 붓는다고 한들, 이드갈 자체가 지닌 힘을 마법사가 어찌 이겨내겠는가?
부우우-
부우-
“진격하라!”
“장벽을 무너트려라!”
그걸 지켜보고 있던 트웰러가 진격 명령을 내렸다.
그가 뻗은 검을 따라 바리엘의 병사들이 우렁찬 함성을 내지르며 장벽에 달라붙었다. 위에서는 돌이 굴러떨어지고, 화살 비가 쏟아졌지만, 끝없이 달려드는 병사들을 저지할 수는 없었다.
“사다리를 앞으로!”
“와아아아아!”
“달려가라! 계속 달려가라!”
“골렘!”
쿠웅! 쿠웅!
아스타나인들이 정신을 집중하여 골렘을 움직였다. 거대한 돌덩이로 이루어진 놈이라, 다른 무언가를 들 필요 없이 주먹 하나만 있으면 된다.
“문을 뚫어!”
-우어어!
골렘이 거대한 주먹으로 성문을 내려치려는 순간-
아슬아슬한 간격을 둔 채 그대로 멈췄다. 아스타나인이 무슨 일인가 싶어 미간을 찌푸렸고, 이내 제 옆에 있는 동료가 가슴을 움켜쥐고 있는 걸 알아챘다.
“이, 이봐?”
“크헉, 뭐, 뭔가가…….”
손가락 사이로 울컥울컥 치솟는 붉은 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떠한 낌새도 없이 이런 상태라니. 당황한 것도 잠시, 하샤의 명령에 모두가 정신을 차렸다.
“공격을 이어가라!”
“저, 전하!”
“원인은 내가 찾겠다!”
어제 이안 경의 볼에 상처를 내었던, 미지의 공격인가? 하샤의 명에 아스타나인들이 재차 정신을 집중하여 골렘을 움직였다.
쿠우웅!
골렘의 왼손이 성문 옆을 내려쳤고, 그걸 타고서 병사들이 장벽 위로 올라서기 시작했다. 제이럿과 황궁친위대는 아스타나인의 상태를 주시하며, 경계를 강화했다.
“의문스러운 공격이 있다. 다들 각별히 집중하여 밝혀내되, 최우선적으로 폐하를 지켜라.”
“예, 명 받들겠습니다!”
파지지직!
한편, 창공에서 루스웨나 마법사들의 보호막과 맞서고 있던 이안은 이런 흐름을 알아채지 못했다. 조금만 더 하면 깨지겠구나, 힘을 더욱 세게 실으려고 하자, 헤일이 소리쳤다.
“이안 님!”
촤아악!
저 멀리서 이안에게 날아드는 거대한 새. 헤일이 마력을 터트리며 막아냈고, 이내 그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우엑. 저게 뭐야?”
“아코렐라 대장, 제발 체면 좀.”
“북쪽 부족 중 하나인가?”
반인반수(半人半獸). 어깻죽지에 날개를 단 북쪽 소수민족이었다. 그들은 검을 양손으로 든 채 계속해서 이안에게 덤벼들었다.
마법사들이 이안을 보호하기 위해 보호막을 펼쳤지만-
“이런.”
“조심해라! 이드갈 조각이 흩날린다!”
“으앗! 네넵! 알겠습니다!”
반인반수의 검이 닿기도 전에, 이안의 이드갈에 의해 먼저 파훼되고 말았다. 루스웨나 마법사들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 같은 편에게도 상당한 위협이었던 게다.
마법사들은 깨져서 흩어지는 이드갈 조각을 가볍게 쳐내며 소리쳤고, 이안은 소매를 걷었다.
‘이드갈은 루스웨나 마법사를 가까이서 무력화시킬 때 사용해야겠군.’
괜찮다. 문제없다.
방법은 많았다.
“귀찮게 굴지 말고-”
지이잉!
그가 눈빛을 번쩍이며, 금 간 루스웨나 마법사들의 보호막을 향해 달려들었다.
“러더포드를 내놓아라!”
번쩍!
콰아아앙!
창공에서 터지는 거대한 폭발.
바리엘 병사들은 멈칫했지만, 이내 개의치 않고 계속 진격해나갔다.
진은 검을 꽉 다잡은 채, 걱정스레 하늘만 올려다보고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