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565
제565화. 바늘로 인형을 꿰어라
“진격하라아아!”
에이린은 단전에서 끓어오르는 고함을 내지르며 검을 치켜들었다. 함께 달리던 병사들이 적군의 화살에 맞아 나뒹굴었지만, 그녀의 의지를 꺾진 못했다. 오로지 앞만 보며, 장엄하고 거대한 장벽 앞까지 다다랐다.
우아아!
쿠웅!
골렘이 주먹을 내려칠 때마다 사방에서 모래바람이 휘몰아쳤다.
에이린은 팔로 얼굴을 가린 채 잠시 몸을 숙였고, 이내 3관문 장벽 입구가 조금 틀어진 걸 알아챘다. 다른 병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벌어진다! 조금씩 벌어진다!”
“틈을 공격해라!”
“이야아악!”
안쪽에서 다급히 구멍을 막으려는 움직임이 보였다. 바리엘 병사들은 그 틈으로 검과 창을 찔러 넣으며 버고스의 피를 갈망했다.
“한 번 더!”
“비켜!”
골렘이 두 주먹을 들어올리자, 병사들이 경고하며 뒤로 물러났다. 촤아악! 빼든 검날에 누구의 것인지 모를 피가 진득하게 묻어났다.
쿠웅!
“골렘이 이상합니다!”
“왜 저러지?”
“신경 쓰지 말고 계속 올라가라! 장벽 위로!”
“사다리를 단단히 고정해!”
중심을 잘 잡던 골렘이 기우뚱거리며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 아닌가? 병사들은 잠깐 당황했지만, 상관의 명령에 애써 무시하며 장벽을 기어올랐다.
“꺼져라! 바리엘 놈들!”
“이리 와!”
“으아아악!”
사다리를 타고 오른 바리엘 병사들이 버고스 병사의 머리채를 잡아 아래로 떨어트렸다.
사람 위에 사람이 깔리고, 다시 돌덩이가 내려앉는 것이 반복되는 참극. 하지만 휘몰아치는 격전 속에서는 그 누구도 그것이 참극이라는 걸 알아채지 못했다.
쿠웅!
아까와는 조금 다른 기세로 골렘이 장벽 입구를 내려쳤다. 결국, 반쯤 어그러진 장벽 사이로 버고스 병사들이 개미 떼처럼 쏟아졌고, 에이린은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채앵! 챙!
“시발 새끼들아아아!”
“꺼져! 제발 꺼져!”
“길목을 터라! 그러면 살려주마!”
“으아아악!”
그때였다. 지금껏 잘 움직이던 골렘이 삐거덕거리더니 완전히 멈추고 말았다. 그러더니 균형을 잃은 채, 앞으로 고꾸라졌다.
“어? 어어?”
“피해! 골렘이 쓰러진다!”
콰아앙!
쿠구궁! 쿠웅!
거대한 바위로 이루어진 골렘은 쓰러지면서 버고스 장벽 입구를 완전히 무너트림과 동시에, 새로운 벽을 세웠다. 그 아래 깔린 병사들이 절규 어린 신음을 터트렸고, 속절없이 죽어갔다.
“골렘이!”
왜 저러지? 대체 왜? 무엇 때문에?
에이린은 그제야 뒤를 돌아봤다. 바리엘 진영 쪽, 작지만 혼란스러운 움직임이 있다. 아스타나 출신 주술사들이 죽은 것이다.
‘말도 안 돼.’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마법사들은 모두 창공에서 격전 중이다. 그렇다면 북쪽 술사의 짓인가? 하지만 아스타나인도 북쪽 술사인데? 서로 잘 아는 상황에서 공격을 대비 못 했을 리 없다.
“넘어가라! 골렘을 넘어가!”
“어딜! 죽여라! 다 죽여!”
에이린은 사다리를 타고 오른 다음, 장벽 위에서 주위를 둘러봤다. 있을 것이다. 분명히, 의문의 공격 근원지가.
“네 이노오옴!”
채앵!
버고스 병사들이 에이린에게 달려들었고, 그녀는 상대 발을 걸어 넘어트린 다음 그 몸을 장벽 아래로 밀어버렸다.
그때, 창공에서 터지는 강한 굉음.
퍼어엉!
엄청난 열기 탓에 모두 몸을 숙이며 움츠렸다. 날개를 단 반인반수들과 싸우는 마법사들이 일으킨 폭발이었다.
그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금발의 소년. 마법부 장관은 유려한 몸짓으로 한 놈의 날갯죽지를 잡아 뜯었고, 동시에 강한 마력을 터트렸다.
퍼어엉!
“끼에에엑!”
“이안 님! 계속 옵니다!”
괴상한 비명과 함께 추락하는 반인반수 부족. 그들은 연신 이안에게 달려들며 검을 휘둘렀고, 이안은 차근차근 집중하여 하나씩 공격을 쳐냈다.
촤아악!
날개를 자르면, 여기 있지 못하겠지. 그들이 이안의 목을 노리듯, 이안은 날개만을 노리며 효율적인 전투를 이어갔다.
보다 못한 루스웨나 마법사들이 두 손을 모으며 마법진을 창공에 그려내기 시작했다.
지이잉! 지잉!
「와선(渦旋)」.
루스웨나 마법사 손끝에서 거대한 물줄기가 몰아치더니, 빙빙 휘돌아 움직였다. 그것들은 조금씩 흩어져 이안을 덮쳤고, 이내 그를 가두었다. 마치 물방울 속에 잠겨버린 것처럼 말이다.
“이안 님!”
촤아악!
마법사들이 놀라 물을 베었지만, 어디 검으로 가를 수 있는 것이던가? 보글보글, 이안의 코와 입으로 작은 공기 방울이 올라왔다. 그는 뒤로 물러나라 손짓했고, ‘회록’을 생성했다.
파앗!
뜨거운 열기를 만난 물이 순식간에 기화했다. 피어오르는 수증기. 흡사 거대한 구름과 같았다. 이안은 축축하게 젖은 머리칼을 뒤로 넘기며 손끝으로 마법진을 그려냈다.
“마법부 장관이 마법진을 그린다!”
“이안 님이 공격하신다!”
“막아! 공격해!”
“보호해라! 이안 님을 호위해!”
루스웨나 마법사들이 달려들었고, 바리엘 마법사들 또한 달려들었다. 이안을 가운데 두고서, 그들은 끝없이 마력을 터트리며 서로를 막아냈다.
퍼어엉!
퍼엉!
날아드는 것을 쳐내고, 틈을 파고들고, 있는 힘껏 버티는 과정이 반복되는 혼전.
이안이 그려낸 마법진에 빛이 들어오며 동심원이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장벽 전체를 한 번에 무너트리겠노라, 그가 손을 뻗는 순간이었다.
피잉!
촤아악!
“……!”
“……!”
이안의 복부를 날카로운 무엇인가가 빠르게 관통했다. 살을 에고 지나가는 듯한 충격에 이안의 허리가 숙여졌고, 펼치던 마법진 역시 사라졌다.
‘어제, 장벽 앞에서 맞았던 그것이로다.’
볼을 스쳐 지나갔던 그것. 확실했다.
이안의 손 틈으로 피가 왈칵 쏟아지자, 마법사들이 기겁하며 보호막을 생성했다. 이미 늦었지만 후속타라도 막아보겠다는 의지였다.
그 틈을 타 루스웨나 마법사들은 다시 한번 힘을 합쳤다.
「와선(渦旋)」.
촤아악!
거대한 물줄기가 이안을 다시금 잡아냈다.
청명하게 하늘을 담아내던 물이 피로 물들고, 이안의 시야가 조금씩 흐려졌다. 의식 탓이 아니라, 핏물 탓에 보이지 않은 게다.
“계속 잡아둬!”
계속 잡아둬?
루스웨나 마법사의 외침이 유독 크게 들려왔다. 이안은, 의문의 적이 ‘위치’를 이용하는 자라는 걸 깨달았다.
* * *
타닥타닥!
아기아르 장벽 안쪽 깊은 곳.
바그반은 어둠 속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거대한 인형극 판을 내려다봤다. 아기아르 장벽과 언덕이 대충 지어져 있고, 그 위에서 천천히 움직이는 솜 인형.
그는 위에서 우다다 뛰어다니는 병사들에게 욕설을 지껄였다.
“조용히 좀 하라고! 씨발! 집중이 안 되잖아아!”
콰앙! 쾅!
제 분을 못 이겨 벽을 내려쳤지만, 생사를 오가는 병사들에게 들릴 리 만무했다.
바그반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다시금 인형을 집어 들었다. 아무런 표식도 없는 솜 인형이다.
“보자, 보자, 다시…….”
바그반이 손을 떼자, 인형이 제자리에서 스스로 섰다.
이제부터가 중요했다. 그는 현실과 이쪽 인형 판을 연결해 상대에세 물리적 가해를 입힐 수 있는 능력자였으니. 상대와 위치만 특정할 수 있다면, 그 어떤 자라도 저항 없이 심장을 꿸 수 있다.
스윽.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자, 아주아주 흐릿하게 장벽 바깥이 보였다. 단춧구멍 대여섯 개를 통하여 보는 것과 같이, 작게 일렁이는 형체가.
바그반은 울렁거리는 속을 겨우 참아내며 인형을 더듬거렸고, 이내 골렘 옆에 서 있는 한 아스타나인을 특정하는 데 성공했다.
“흐흐. 잡혔구나! 아주 잘 보인다, 좋아.”
이놈이다.
그의 손에 거대한 바늘이 들렸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성심성의껏 인형의 심장을 꿰었다.
푸욱!
솜 인형이지만, 주술이 잘 걸렸을 때는 진짜 심장을 찌르는 것 같은 감각이 올라온다. 희열에 찬 바그반이 웃음을 실실 흘렸고, 그대로 꿰뚫어 인형의 등 뒤로 바늘을 빼냈다.
“밖에!”
“예? 예예!”
“아스타나인이 몇 명 남았는지 확인해보라고 해!”
“아, 알겠습니다!”
인형을 꿴 것은 바늘이지만, 실제 대상에게는 가느다란 칼날이 날아드는 것과 같으니 살상력은 충분했다.
문제는, 대상자가 움직인다면 빗나갈 수 있고, 대상자 하나하나를 특정하기 어렵다는 것. 또 두 명 정도 연달아서 하고 나면 속이 울렁거려 드러눕게 된다는 것이다.
“우에에엑.”
바리엘 마탑으로 간 자신의 부하 역시 같은 방법으로 다몬 왕을 처리했을 터. 그런데 이놈, 어찌 연락이 없어?
바그반은 속을 게워낸 다음 다시금 정신을 집중했다.
콰아앙! 콰앙!
크게 울리는 폭발음으로 보아, 루스웨나 마법사들이 고전하고 있는 게라.
그는 혀를 끌끌 차며 ‘제3의 눈’으로 상황을 살폈다. 워낙 시야가 좁고, 휙휙 돌아가서 하늘 외에는 아무것도 안 보였다.
“으으…….”
옷자락, 번쩍번쩍 빛나는 마력구, 깃털? 뭐야?
정신없는 형상 속에서, 딱 잡히는 것이 있었으니.
“오호라. 이놈, 잘생겼구나.”
이안 히엘로다.
그는 이안의 얼굴을 보자마자 빠르게 인형을 잡았고, 바늘로 배를 꿰었다. 심장을 노렸어야 했는데 급하게 한다고 조금 빗나갔다.
푸욱!
“좋아, 좋아! 크하하핫!”
손맛이 참으로 찰지구나! 바그반이 비틀거리며 넘어지는 와중에도 킬킬 웃으며 환호했다. 바리엘 마법사의 배에 구멍이 뚫렸다! 이만하면 할 만하지?
스윽.
바그반의 웃음이 새어 나오는 복도 모퉁이.
모습을 숨긴 클라크가 의아하게 그쪽을 쳐다봤다. 러더포드의 옛 동료라 하여 접근하려 했는데, 상황이 상황인지라 문지기들을 뚫지 못했다. 하여 갑옷을 입수한 다음 은밀히 침입하고자 했는데, 해가 떠버린 것이다.
‘뭐지?’
클라크는 문틈으로 바그반을 지켜봤다. 인형 놀이? 이런 상황에? 바깥에서는 살고 죽는 사투가 벌어지고 있는데, 설마.
클라크의 시선이 집요하게 바그반을 뜯어보았으나, 그에게는 그저 명상과 인형 꿰기를 반복하는 정신이상자처럼만 보였다.
‘러더포드는 어디 있나?’
스윽.
클라크는 우선 저자를 뒤로 한 채, 러더포드가 있을 만한 곳으로 움직였다.
뛰어다니는 병사들이 클라크를 힐끔거렸지만, 같은 갑옷을 입고 있는 터라 크게 의심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워낙에 바쁘기도 했고.
콰아앙! 콰앙!
타닥타닥!
“젠장! 1소대가 3관문 좌측 입구를 막아라!”
“무기를 옮겨라! 좌측으로!”
“빨리빨리 움직여!”
클라크 또한 임무를 맡은 척, 빠르게 뛰어다니며 장벽 곳곳을 살폈다. 가끔가다 크게 흔들리며 흙먼지가 떨어질 때마다 깔려 죽는 것은 아닐까 싶었으나, 아기아르의 벽은 꽤 단단히 버텨내었다.
그때-
“아.”
매우 급한 다른 병사들과 달리, 문 앞에서 꼼짝하지 않은 자들이 있다. 안에 누군가 호위할 대상이 있는 것이다. 클라크는 조심스럽게 접근하며 그들에게 경례했다.
“실례합니다. 러더포드 님 여기 계십니까?”
“무슨 일이지?”
맞는구나. 클라크는 드디어 찾았다는 안도감을 느끼며 대답했다.
“직접 보고드릴 사안이 있습니다.”
“소속과 이름을 대라.”
소속? 이름? 그런 걸 알 리 없다. 셋 정도는 어떻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클라크가 검을 잡으려는 순간.
쿠당탕탕!
채앵!
안쪽에서 소란이 들리자 병사들이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무슨 일이십니까?”
“괜찮으십니까?”
병사들 어깨 틈으로 보이는 것은 머리를 풀어헤친 러더포드와, 그 밑에 깔린 채 버둥거리는 집시.
“어어. 되었다. 별일 아니니 신경 꺼.”
“그, 러더포드 님…….”
“신경 끄라고. 난 그저-”
러더포드는 단검을 그녀의 목에 바짝 가져다댄 채 웃었다.
“굴러들어 온 금은보화를 째려는 것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