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566
제566화. 아가미
굴러들어 온 금은보화.
그렇다. 러더포드에게 있어 집시의 등장을, 그것만큼 잘 설명하는 말이 없을 터였다.
바리엘군의 기세는 하늘을 찌르다 못해 찢을 듯 거셌고, 버고스군 또한 잘 대응하는 듯했지만 왜인지 모를 불안감이 존재했다.
아마, 신께서 응답이 없으신 탓이리라.
“실례합니다. 끌끌끌. 우리, 구면이지요?”
그때, 집시가 러더포드를 찾아왔다.
그녀는 이안 히엘로와 함께 심연을 떠돌았던 자다. 적이라 하기에는 호의적이고, 아군이라 하기에는 신뢰할 수 없는 회색 지대와 같은 여인.
특히 다몬과 인연이 깊은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막상 그 연결고리를 제하고서 얼굴을 마주한 건 이번이 처음인 듯싶었다.
“구면은 구면이지. 그런데 무슨 일로? 이안 히엘로가 보낸 것인가?”
“그럴 리가요! 저는 다만 서로에게 좋은 제안이 있어서 이리 온 것입니다.”
“장벽이 흔들리는 게 느껴지지? 신속하고 알맞은 제안이길 바라네. 그렇지 않으면 장벽 바깥으로 던져버릴 것이니.”
“험하기도 하셔라.”
집시는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로브 아래 꼭꼭 숨긴 얼굴에서 표정을 읽을 수는 없었지만, 단단한 목소리가 그 증거였다.
집시는 조금씩 가까이 다가오더니, 나지막이 속삭였다.
“혹시, 비밀이 있으십니까?”
“비밀?”
“예. 감히 이르건대, 저에게는 세상의 모든 비밀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바깥에서 고군분투하는 저 바리엘 군단의 황제마저도, 제게 비밀을 준 적 있답니다.”
“그건 좀 흥미롭군.”
“이안 히엘로. 바리엘의 마법부 장관인 저자의 근원에 관한 비밀도 갖고 있습니다. 다만, 한번 배에 들어간 것은 더 이상 제게 포만감 이상의 즐거움을 주지 못하니, 러더포드 당신께 그에 준하는 비밀이 있다면, 내주십시오. 나는 이안 히엘로의 것을 드리겠나이다.”
“이안 히엘로의 비밀.”
“그때, 심연에서 보았지요?”
가이아와 심연에서의 이안의 모습은 완전히 달랐다. 금발에 녹안인 어린 소년이 아니라, 백금발의 벽안을 지닌, 보다 성숙한 사내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외형, 체구, 심지어는 분위기조차 조금 다른 듯하였으니, 당시 러더포드는 자신에게 달려들던 그 백금발 남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 보았지. 그게 이안의 비밀이라는 건가?”
“물론입니다! 심연이라고 하여 단순히 의미 없는 환각이라 여기신 건 아니겠지요?”
설마 그런 멍청한 사고를 했는지 묻는 말이었다. 러더포드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긴 담뱃대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당연히 아니다.”
“그러면 기회입니다. 단숨에 진실을 볼 기회.”
“…가까이 오라.”
러더포드는 손짓으로 제안을 받아들이겠다는 뜻을 보였다.
이에 집시의 발걸음에서 즐거움이 묻어났다. 한껏 가까이 다가와 고개를 들이민 집시. 러더포드는 그녀의 귀에 대고서 속삭였다.
“그런데, 그게 진짜인가?”
“무엇이요?”
“그대 배를 가르면 세상이 혼란에 빠진다는 것.”
서늘한 말투에 집시가 살짝 멈칫거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저 질문이지 않은가. 집시는 온몸의 감각을 즐겁게 해줄 거대한 비밀이 필요했고, 러더포드는 금방이라도 내어줄 기세였다.
“그렇습니다. 아직 남아 있는 비밀이 제 주인들을 찾아가 세상이 어지러워지지요.”
“다몬 왕에게 들은 바 그대로군.”
꽈악.
러더포드가 그녀의 어깨를 세차게 쥐었다. 반사적으로 몸을 비틀려고 했으나, 노인은 벗어나지 못한 채 더더욱 가까이 러더포드와 붙을 수밖에 없었다.
“미안해서 어떡하지?”
“이것 좀, 놓으시오!”
“나는 내어줄 비밀이 없는데. 수십, 수백 번의 죽음과 삶 속에서 버텨온 나를, 나는 도리어 모두가 알아주었으면 해.”
꽈아악!
러더포드는 그대로 집시의 목을 세게 조였다. 벗겨진 로브 사이로 아가미가 뻐끔거리는 게 보였다. 숨 쉬고자 하는 발악 같은데, 쉽지 않을 것이다.
“나는 줄 것이 없고, 그대는 줄 것이 있어 보이니. 내 기쁜 마음으로 받아도 되겠는가?”
“크허억, 이, 이, 망할!”
쉬이익!
집시의 로브 아래쪽에서 지느러미가 거세게 팔딱거렸다. 순간 러더포드는 그녀의 몸이 진흙처럼 말랑해지는 것 같다 느꼈는데, 그게 심연으로 도망치려는 몸짓임을 바로 알아챘다. 곧장 손아귀에 힘을 주었지만, 집시가 사라지는 속도가 더욱 빨랐다.
“너, 나중에-!”
만나면 두고 보자. 죽여버릴 것이다!
집시가 그리 발악하며 모습을 감추려는 찰나-
“지느러미를 베어라.”
러더포드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신의 음성.
그 목소리를 들은 러더포드가 반사적으로 단검을 빼 들어 반쯤 사라진 지느러미를 찔렀고, 이어 힘을 실어 넣었다.
“배를 가르기 전, 아가미를 째어라.”
콰왁!
“아아아악!”
반쯤 사라지던 모습이 형체를 되찾기 시작했다. 잘린 지느러미에서는 피인지 뭔지 모를 파란 것들이 쏟아졌고, 집시는 위험을 감지하여 두 팔로 기어갔다.
“신께서는 네가 심연에 가는 걸 원치 않으신 듯하구나. 자아, 속을 보자. 이안 히엘로의 비밀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그림자에 속아 넘어간 주제에, 어디서!”
“그림자?”
우당탕!
러더포드는 검을 뺐다가 다시 한번 지느러미를 베어냈다. 집시가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며 몸부림쳤다. 탁자와 의자 따위가 거칠게 나뒹굴었다.
우당탕!
그는 재차 검을 댈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신성모독에 대한 대가로, 이만하면 적당한 값 아니던가? 그리고 무엇보다-
“어디 계속 지껄여 보아. 그럴수록 네놈은 더욱 고통스럽게 죽어갈 것이라.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내 앞에 나타났는지 모르겠군.”
한동안 묵묵부답이던 신께서 응답하셨으니.
방금까지 러더포드 마음 한구석에서 올라오던 불안감이 말끔하게 씻겨졌다. 주기가 달랐을 뿐, 신의 계시가 이어지고 있었던 게다.
신께서는 여전히 저와 함께였고, 자신을 돌보고 계셨다. 장벽이 크게 흔들렸지만, 이제는 이것 또한 도약의 한 과정으로 보일 지경이었으니.
“아무튼, 고맙다. 집시여.”
러더포드는 그녀의 위에 올라타 검을 목 부근에 갖다 대었다.
그때, 문이 열리며 소란을 들은 병사들이 들이닥쳤고, 러더포드는 별거 아니라는 식으로 웃으며 일렀다.
“굴러들어 온 금은보화를 째려는 것이다.”
“아, 그…….”
“나가.”
“러더포드 님.”
병사들 틈을 헤치며 나타난 낯익은 사내.
러더포드의 미간이 잠깐 찌푸려졌다. 이게 누구신가?
“클라크?”
“예, 클라크입니다. 무사하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
“어떻게 심연에서 올라왔지?”
“너무 긴 사연이라 천천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클라크가 천천히 다가오며 러더포드의 검을 주시했다. 집시는 두려움에 찬 눈빛으로 클라크를 쳐다봤고, 러더포드는 둘 사이의 묘한 기운을 눈치챘다.
클라크와 집시는 안면이 있군. 평범한 인간인 클라크가 혼자 심연을 나올 수는 없었을 터.
“이자의 도움을 받았나?”
“…예, 그렇습니다.”
“아하. 클라크.”
퍼억!
러더포드가 순식간에 집시의 목덜미를 가격했다. 짧고 강한 충격에 그녀는 그대로 기절했고, 러더포드는 클라크를 향해 단검을 까딱거리며 가까이 오라 일렀다.
“목적이 뭐야? 나를 만나러 온 건가? 아니면 이자를 구하려고?”
“…탈출에 대한 대가는 이미 치렀습니다. 더는 인연 없는 자입니다.”
“그러면 이리 와서 아가미를 좀 째 주겠나?”
“예?”
러더포드가 싱긋 웃으며 집시의 머리채를 붙들었다.
“배를 가르기 전, 아가미를 미리 째 놓으라 하셔서.”
“신께서 말씀이십니까?”
“그래. 방금 계시를 받았다.”
클라크는 잠시 멈칫거렸다.
러더포드의 눈이 먼 것일까? 심연에서 자신 또한 거대한 존재를 목도했다. 하지만 그건 신이라기보다 마물에 가까워 보였는데…….
“싫어?”
러더포드의 시험이다. 여기서 집시를 죽이지 않으면, 자신을 의심하여 배척할 터.
클라크가 한 걸음씩 쓰러진 집시에게 다가갔다.
스릉.
이대로 러더포드를 베면 되지 않을까?
쓰러진 집시를 공격하는 척하고 러더포드를 죽이면, 모든 게 해결될 문제 아니던가? 지금 일어나는 모든 비극의 원인이 바로 저자인데.
“클라크.”
그때, 러더포드가 그를 빤히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이전에도 느낀 건데, 너는 눈빛을 숨길 줄 모르는구나.”
그러니까 메렐로프 여인과 그런 사랑을 했지.
러더포드는 가까이 다가온 클라크를 겨누어 검을 휘둘렀고, 그걸 신호로 하여 병사들 또한 일제히 덤벼들었다.
체앵! 챙!
“놈을 정리한 뒤, 너는 여기서 집시의 아가미와 배를 가르도록.”
“저, 저 말입니까?”
“혓바닥이 길군.”
“죄, 죄송합니다.”
한편, 사방에서 정신없이 쏟아지는 칼날에 클라크는 한발 물러났다. 식은땀이 비 오듯 흘렀다.
공간이 좁다. 집시를 비롯하여 온갖 가구들로 인해 걸리적거리는 장애물이 많았고, 출구는 단 하나. 창문 밖은 수 미터에 달하는 높이라 선택지에 포함되지 못했다.
‘집시를 데리고 갈 수 있을까?’
클라크는 병사들과 마주한 채로 벽에 등을 바짝 붙였다. 그 틈에 명령을 받은 병사가 단검으로 집시의 아가미를 째려 했고, 러더포드는 손을 들어 저지했다.
“나 나가면 해.”
“아, 예예.”
집시를 째는 순간, 어떠한 충격이 급습할지 알고 있는 눈치였다.
클라크는 병사들의 검을 빠르게 쳐내며 소리쳤다.
“아니 된다! 그자를 죽이면 안 돼!”
“닥쳐라! 밀어어!”
“침입자 주제에!”
“크허억!”
클라크의 어깨와 허리 그리고 허벅지를 찌르는 병사들의 공격. 피가 솟구쳤지만, 클라크는 아랑곳하지 않고서 그들을 뚫어내며 집시 쪽으로 내달렸다.
클라크가 달려드는 걸 본 병사가 더욱 빠르게 집시의 아가미 쪽으로 검을 집어넣었다.
콰아앙!
째앵! 와장창!
그때, 집시를 중심으로 엄청난 폭발이 터졌다. 창문이 박살 나며 강한 바람이 휘몰아쳤다. 방 안의 가구들이 죄다 쓰러질 정도의 강한 폭발이었다.
병사들이 몸을 낮추는 것도 잠시. 아가미를 짼 병사가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다가 옆으로 털썩, 쓰러졌다.
“이봐! 괜찮은가?”
“윽! 이게 무슨 냄새지?”
“우, 우에엑! 우엑!”
이어서 병사들이 헛구역질하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클라크 역시 피할 방도가 없었다. 그는 부서진 창문 쪽으로 기어가며 신선한 공기를 갈망했고, 아득해지는 정신을 겨우 붙잡았다. 아직 집시의 배가 갈리지 않았으니, 희망은 남아 있는 것 아닐까? 하지만 어떻게?
‘희망은 있는데, 방도가 없군.’
쿠웅!
클라크의 몸이 창틀 너머로 기울었다. 그는 수 미터에 달하는 높이에서 속절없이 떨어졌고, 동시에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보석이 박살 났다.
* * *
“신호가 끊겼습니다!”
보석을 담당하던 병사가 바르사베를 향해 크게 외쳤다. 그러자 멜라니아가 고개를 틀었고, 이어서 삼대장들 역시 심각하게 장벽 쪽을 지켜봤다.
“신호가 끊겼다는 건, 러더포드에게 접근이 불가해졌다는 것이겠군요.”
“접근한 다음, 당한 것일 수도 있고요.”
“무엇이 되었든 우리 쪽에서는 적신호입니다.”
의문의 공격으로 황제의 안위가 위험에 노출된 상황 자체가 특히 문제였다.
삼대장인 보니타는 가만 생각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가만 서서 기다릴 수만은 없지. 특임대를 선발하겠다. 신호가 마지막으로 잡혔던 곳으로 침투해 상황을 파악하고, 공격 주체를 직접 처리한다.”
“하지만 적지 한가운데입니다. 너무 위험합니다.”
“이대로 있으면, 황제 폐하께서 위험하시다.”
아스타나인들이 죽어간 것을 보아라. 가만히 서서 급사했다. 원인을 찾지 못하면, 황궁친위대는 황제를 지킬 틈도 없이 당하고 말 것이다.
“나와 함께 갈 자가 있는가?”
죽으러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친위대원들은 모두 손을 들어 자원했고, 베릭만이 귀를 후비며 가만 앉아 있을 뿐이었다.
보니타는 무기를 점검하며 호명했다.
“좋다. 베릭, 바르사베, 칸나, 와키온이 함께한다.”
“나? 간다고 안 했는데?!”
“클라크인지 뭔지 하는 자의 얼굴을 아는 게 베릭 너밖에 없잖아.”
와, 시발. 할 말이 없네.
베릭이 입을 떡 벌린 채 굳자, 보니타가 바르사베에게 물었다.
“정확한 위치는?”
“1관문으로부터 북쪽으로 백 미터 정도 떨어진 지점입니다.”
“창공으로 침투할 것이다. 마법사들의 전투지를 돌아서 하강한다. 얼마나 걸릴 것 같은가?”
“어, 그게…….”
장벽에서는 병사들의 치열한 전투가 이어지고 있었다. 창공으로 간다 하니 마법사의 도움이 있어야 하는데, 다들 격전 중인지라…….
“30초.”
에효, 시발. 베릭이 갑옷을 단단히 조이며 대꾸했다.
“저기 뀨 오네. 저거 타면 30초 컷이지.”
-뀨우우!
거의 혼절한 기록관 두 명을 태운 뀨가, 꼬리를 빙글빙글 돌리며 바리엘 진영 쪽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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