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571
제571화. 그대의 바리엘
베로시온.
신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나 가이아의 혼란을 잠재우고, 바리엘을 건국하였으며, 300년 넘는 기간 동안 굳건한 권력으로 제국을 통치했다 여겨지는 전설적인 존재.
바리엘의 황제라면 응당 베로시온의 이름을 지니고 있어야 할 것이며, 이는 바리엘에게 선택되었다는 증표이자 영광이었다.
베로시온.
바리엘의 황제.
가이아의 중심이자, 제국의 정점.
“…이안 베로시온.”
진은 자신도 모르게 이안의 말을 따라 혀끝을 굴렸다. 부드럽게 흘러가는 음절이 참으로 어여쁘고 서글프다.
이안의 눈매에 기쁨이 맺힌 것과 같이, 진의 눈매에도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맺혔다. 이안은 희게 웃으며 그의 손을 맞잡았다.
“폐하. 감정을 거두십시오.”
이곳은 전장입니다. 여기 있는 자들의 주군이신 폐하께서, 어찌하여 날것 그대로의 감정을 보이신단 말입니까? 이것은 제가 일러드린 것이요, 사실상 그대가 제게 일러주신 것입니다. 폐하의 의지가 흐르고 흘러, 100년 후의 저에게 닿지 않았습니까.
“어떻게, 대체 어떻게-”
“자세히 이를 것이 산더미라 당장 자세히 말씀드릴 수는 없겠습니다. 하지만, 간단히 이르라고 하시면…….”
이안은 말끝을 흐리며 주위 사람을 둘러봤다. 제각각의 반응이 너무 뚜렷했다. 대부분 놀라서 숨소리조차 못 내는 건 비슷하다만.
“…….”
“……!”
헤일은 마른 궐련을 툭 떨어트렸고, 아코렐라는 침묵 어린 비명을 내지르며 양옆 마법사들의 머리채를 쥐어뜯고 있었다. 머리채 뜯긴 마법사들도 그대로 굳어서 멈춘 상태.
이안은 진정하라는 뜻으로 작게 손짓하며 말을 이었다.
“100년 후, 저는 소년의 나이로 황제가 되었고, 성년이 되기 전 반란을 맞았습니다. 상대는 어린 시절부터 제 삶을 지배했던 나이 많은 조카입니다. 유폐되어 죽임을 당하려는 순간, 당시 제 친우이자 마법부 장관인 나움 오비아에 의하여 이곳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런 마법도 존재하는가?”
“금기의 마법이었지요.”
그가 그토록 심연에 관심 가졌던 이유.
이안의 대답에 모두가 이해했다. 특히, 자이라는 놀라서 입가를 손으로 가렸는데, 이안이 자신과 같은 목적이 있을 것이라 여기지 못했던 게다.
“이는 결국 신께 닿았습니다. 신께서는 그림자가 가이아를 어지럽히는 걸 걱정하시어 서자 이안의 몸으로 안배를 진행하셨고, 그 과정에서 제가 들어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안배라니?”
“지금까지 우리가 걸어왔던 길이자, 앞으로 나아갈 길입니다.”
이드갈을 생성하고자 러더포드를 이용하였던 것, 하여 범람하는 균열에 균형을 이루고자 한 것, 황실의 축복을 받은 자가 아르센이라는 삿된 마물을 처리하게 한 것 그리고 본 순리대로 진이 황좌에 오른 것 등등.
모든 게 ‘이안’이라는 신의 개입으로 이루어진 일이었다. 그것이 서자 이안이든, 황제 이안이든.
“신께서 저를 하나의 장치로 쓰셨듯, 그림자 또한 러더포드를 하나의 장치로 썼습니다. 영혼을 풍화하여 깎아낸 것이지만요.”
황실의 축복 없인 쉽게 벗어날 수 없는 마물의 세뇌.
진은 자신의 어머니 딜라이나를 떠올리며,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 가이아와 바리엘을 무너트리고자 심장 깊이 침투한 기생충 같은 놈이었던 게다. 자신의 얼굴을 한.
“간단하게는, 이것이 다입니다. 다만 말씀드린 것처럼 이곳은 폐하의 바리엘이고, 저는 신의 장치로서 존재하는 자이니, 이전과 같이 계속해서 이안 히엘로입니다. 마법부 장관, 이안 히엘로요.”
이안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답이 내려지자, 모두의 머릿속에서 동시에 풀이가 떠올랐다.
“…그래서 ‘그 통로’를 알고 계셨던 거군.”
“예? 헤일 대장, 뭐라고요? 그 통로가 뭔데요?”
“와나, 잠깐만. 갑자기 훅 들어온 것치고는 이해가 너무 잘 돼서 놀랍다. 이거, 내 망상 아니지?”
“…허어, 맞네, 맞아.”
“뭐가? 내 망상이라고?”
“아니, 말고 미친놈아. 왜 저번에 이안 님이 행정부도 모르는 범례 찾아서 참조하라고 한 적 있잖아.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었거든?”
“그때가 언제지? 그런 일이 하도 많아서 모르겠네.”
“세상에, 그럼 이안 님, 워, 원래부터 마법사이셨던 건가요?”
“당연히 그렇겠지. 그렇지 않고서 그 마법진을! 그 나이에! 그렇게 그려내는 게 말이나 돼?”
“혹시 당신, 등신이십니까? 이안 님이 방금 말씀하셨잖아. 성년이 되기 전 그렇게 되셨다고.”
“어라. 그, 그러면-”
“원래 나이랑 지금이랑 별반 차이 없어.”
“어…. 그렇군.”
정신 차린 마법사들이 호기심 어린 말들을 끝없이 쏟아내며 이안에게 다가왔다. 신과 가장 가까운 인간들이자, 그의 사랑을 받는다 여겨지는 마법사들. 이안의 몸체가 신의 것이라 하니 놀랍고 감동스러워서 참을 수 없다는 몸짓이었다.
“이안 님은 마법사이면서 황제이신 것입니까?”
“그렇다. 마법사 출신으로는 내가 최초였어.”
지금은 번듯하게 황궁에서 일하며 돈 버는 마법사들이지만, 대부분 낮은 신분 출신들이다. 마법사가 황제도 될 수 있구나, 다들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연신 감탄만 터트렸다.
“원래 마력도 이 정도시고요?”
“아니, 원래는 비교할 수 없이 본 몸이 더 강했지. 하지만 심연에서 신을 뵌 이후로는 그때와 비슷하거나, 지금이 더 강한 것 같다.”
“미친, 그때 그게 약한 거였대.”
“시, 신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따뜻한 분.”
이안이 그날의 온기를 생생히 떠올리며 중얼거리자, 마법사들의 눈빛에 선망이 감돌았다.
이안 히엘로, 아니, 이안 베로시온. 이전에도 위대하고 대단했지만, 지금은 그 한계를 아득히 초월한 기분이다.
마법사들이 떠들썩대는 것과 비슷하게, 황궁친위대와 제국방위부도 발칵 뒤집혀서는 속닥거리는 소리가 가득했다.
“미래의 황제라는 게, 진짜일까요?”
“아까 봤잖아. 백금발에 벽안인 자를.”
“믿을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고서 저자를 어찌 설명해요?”
“이제 하나부터 열까지 다 이해가 됩니다. 일전에, 그러니까 10년 전 하이만이 제기했었지요. 저자가 황가의 피를 잇고 있다고요.”
“다몬 왕도 그랬죠.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터무니 없는 말이 아니었어요. 그들은 대체 어떻게 알게 된 것인지, 원.”
“하이만은 죽어 사라졌지만, 다몬은 남아 있으니 해답을 찾는 데 오래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예, 그리고 그 전에, 이안 경이 답을 내려주실 수도 있고요.”
이래서 아니 뗀 굴뚝에 연기 안 난다는 것인가? 오래전부터 꾸준히, 참으로 허무맹랑하다 여겼던 의혹이 실체화되는 순간. 모두 탄성을 내지르며 경악과 충격 그리고 감탄에 빠져들었다.
“베릭! 너 괜찮아?”
황궁친위대원 중 한 명이 뀨 위에 멍하니 앉아 있는 베릭을 쿡쿡 찔러댔다. 하지만 반응이 없다. 그는 넋 나간 눈으로 이안을 쳐다보다가, 뒤로 발라당 쓰러지고 말았다.
쿠웅!
“베릭! 인마! 이 새끼 눈 뜨고 기절한 건가?”
“그 전에 치료부터 하자. 다리 꼬라지 봐라. 진짜.”
“이러다가 못 걸으면 어쩌려고.”
“그런데 보니타 대장과 바르사베는…….”
그러고 보니, 보니타 대장과 바르사베가 어찌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무너진 아기아르 장벽 아래에 있는 건지, 아니면 몸을 피해 러더포드를 쫓고 있는 건지.
이안이 잠시 고민하며 아기아르 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삽시간에 주위 분위기가 굳어졌다. 왜 그러는 것이지? 의아함을 느낀 이안이 뒤를 돌아보았고, 순간 눈이 살짝 커졌다.
“…폐하.”
무덤덤한 진의 눈가에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본인도 인지하지 못했는지, 이안이 부르자 놀라서 손끝으로 훔쳐내는 것 아닌가.
다들 일부러 고개를 숙이거나 돌리며 시선을 떨구었다. 황제의 눈물은 감히 보아서도 안 되고, 볼 수도 없으니.
“아.”
딱 한 방울임에도 진이 당황해하는 게 느껴지자, 이안은 가까이 다가가 그의 손을 다시 맞잡았다.
“미안하네. 이안 경.”
“괜찮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지우시면 됩니다.”
“그, 마음속이 너무도 복잡하고 어지러워.”
“예. 이해합니다. 놀라셨을 것이에요.”
“놀란 것도 그러하지만-”
진은 잠시 침묵하며 목을 가다듬었다.
맨 처음 그가 인지한 감정은 기쁨이었다. 자신의 손을 이끌어주었던 이안이, 사실 자신과 베로시온이란 이름을 함께하는 자였다는 게 너무도 기뻐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다음은 그간 이안의 행동이 모두 이해되어, 안타까웠다. 거대한 비밀을 홀로 품은 채 어찌 황궁에서 홀로 버텼단 말인가? 곁에 있어 달라고, 자신과 함께 같은 곳을 보아 바리엘을 이끌자 했던 부탁에 어떠한 답도 할 수 없었을 이안의 심정이, 순식간에 그를 잠식했다.
“그대가 행했던 모든 것이, 정녕 바리엘을 위한 것이었구나. 이는 베로시온의 이름을 떠나 신의 뜻이 함께했던 것이었어.”
“그렇습니다. 폐하. 저는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폐하를 옆에서 모실 수 있었기에, 저는 100년 후의 바리엘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그런 말은 말라. 나 또한 감사하여 대체 어떤 말로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대는 결국 내가 존재하고, 존재할 것이라는 미래의 증표이지 않나.”
“그렇군요. 제가 그러하듯, 폐하께서도 그러시겠군요.”
“100년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잘 모르겠지만, 하나 기억해주어. 그대는 베로시온이다. 바리엘의 베로시온이야. 그리하여, 100년 전의 바리엘을 만들었어.”
이안은 감격하여 그저 웃기만 했다. 황제인 이안 베로시온으로 들을 수 있는 최고의 격려다.
진은 그 모습을 보며 다시금 눈물이 나려는 걸 겨우 참아냈다. 아아. 이제 알겠다. 어째서 기쁨과 안타까움만으로 그치지 않는 것인지.
‘이안의 바리엘…….’
이곳은 자신의 바리엘이니, 이안은 언제고 자신의 바리엘로 돌아가야 한다.
인지하기도 전에 본능적으로 깨달은 것이다. 함께할 수 없다고. 황제의 자리에 오른 이상, 각자의 길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그래도 기쁘다.”
“무엇이 말입니까, 폐하.”
“그대가 나의 가족이라는 것이.”
“그렇습니까. 저도 그러합니다. 폐하와 같은 분이 제 가족이라는 게 놀랍도록 자랑스럽습니다.”
꽈악.
두 사람은 손을 맞잡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긴 대화는 나중에 하시지요.”
“좋다. 내 물을 것도 많고, 들을 것도 많아.”
“다, 모두 다 이르겠습니다.”
이안은 주위 사람들을 둘러보며 그리 대답했다. 그대들도 이제는 놀라움에서 깨어나 각자의 역할을 해내자는 신호였다.
의도치 않게 전투가 소강된 사이, 루스웨나 측은 결집하여 아기아르 장벽 뒤쪽으로 퇴각하는 중이었고, 동시에 이쪽의 동태를 살피고 있었다. 마치…….
“저놈들이 대체 서서 무엇하나, 하는 눈치로군.”
진이 중얼거리며 검을 크게 빼 들었다.
“가자!”
이안의 존재가 새로이 인지되는 순간이다. 100년 후의 바리엘에서 온 존재. 이는, 이번 전쟁을 잘 넘겨 후세에도 제국이 건재하다는 걸 신께서 직접 보여주신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진을 따라 장교들이 무기를 치켜들었고, 연달아 병사들도 전투태세를 갖췄다.
부우우-
부우-
“전군-!”
“전군!”
“돌격하라!”
“돌격!”
촤아악!
진이 검을 휘두르자, 바리엘 병사들이 대열을 맞춰 다시 앞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쌓인 돌만 넘는다면 장벽까지는 그 어떠한 장애물도 없다. 병사들이 사기 어린 기합을 크게 내질렀다.
“으아아악!”
“돌겨어억!”
타닥타닥!
타앗!
모래알처럼 쏟아지는 병사들 틈에서, 검을 치켜든 진이 소리쳤다.
“신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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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