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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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2화. 아기아르 함락
‘이게 씨발 지금 무슨 소리야?’
베릭은 아기아르 장벽을 밟고 올라서는 바리엘 병사들 뒷모습만 멍하니 쳐다보며 연신 이 말만을 되뇌고 있었다.
어차피 다리 두 짝 모두 작살 나서 뀨가 아니면 움직일 수 없다만, 전의가 이토록 상실하여 꼼짝하기 싫은 건 처음이다.
‘아니 그래서 씨발, 대체 어떻게 된 건데?’
이안이가 미래에서 온 사람이라고? 그것도 황제? 그럼 브라츠 훈련장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이안이는 뭐지? 서자 출신의 마법부 장관? 아니면 황제?
넋 나간 듯 허공만 바라보고 있던 베릭의 눈동자에 반짝, 기운이 감돌았다.
“아니지. 잠깐만.”
“예?”
다리를 보던 의무관이 의아한 낯으로 고개를 들었으나, 베릭은 쳐다보지도 않고 떠들어댔다.
“봐봐. 이안이가 브라츠에서 나를 처음 만났거든?”
“아, 예에. 그런데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어쨌거나 이안이는 한 명이란 말이라 이거지. 이해해?”
“…송구합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아니, 그러니까 중간에 바뀐 게 아니라 이안이는 계속 이안이었다고. 이건 일종의 말하지 않은 과거! 뭐 그런 거네, 그치? 맞네. 나도 어릴 적에 옆집 밥 훔쳐 먹다가 홀딱 벗겨져서 얻어터진 적 있어. 그런 거구먼.”
미쳤나? 의무관은 대답하지 않고 두 다리에 붕대를 친친 감아댔다.
그러거나 말거나, 베릭은 드디어 답을 찾았다는 듯이 계속해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맞네. 나 존나 똑똑해. 마법부 장관이든 황제든 뭔 상관? 이안이인데.”
“저기, 친위대원님. 누가 듣겠습니다.”
황제란 호칭을 그런 거친 단어들과 함께 한 입에 담다니, 불경죄다.
하지만 베릭은 뭔가 놓치고 있다는 기분에 눈매를 가늘게 뜨며 침묵했다. 보자, 보자. 똑똑한 김에 조금만 더 똑똑해 보자…. 뭐가 이렇게 찜찜한 건지…….
“필리아?”
그래. 필리아인가?
과거, 빙의되기 전 이안을 기억하는 사람은 단 한 명밖에 없다. 바로 생모인 필리아. 로만드로야 베릭 자신과 같이 황제 이안을 만나 인연을 쌓아왔다지만, 필리아는 서자 이안을 낳은 장본인이니 그녀 입장에선 중간에 아들이 바뀐 것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맞다! 이 불쾌하고 찜찜한 감정은 바로 필리아에 대한 연민이다! 필리아가 이런 사실을 안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베릭은 벌떡 일어나, 앞으로 걸어가고자 한쪽 발을 떼었다.
“어어, 안 됩니다!”
“안 되는 게 어딨어?”
쿠웅!
말 끝나기가 무섭게, 중심을 잃고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지만 말이다.
베릭이 꾸물꾸물 기어가려고 하는 순간, 누군가 그 앞에 발을 내밀었다.
“오, 영감탱.”
제이럿이었다. 그는 베릭을 빤히 내려다보며 침묵했고, 베릭은 좀 잡아달라는 듯 손을 까딱거렸다.
“나 좀 일으켜봐.”
하지만 그는 그대로 베릭의 목 뒷덜미를 잡아 들곤 침대로 되돌려 던졌다. 의무관은 이때다 싶어 흐트러진 붕대를 마저 감아댔고, 제이럿은 의자를 끌고 와 그 앞에 앉았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것이 어딜 움직이려고.”
“뀨만 있으면 돼. 걔랑 나 은근히 잘 맞더라.”
“드래곤도 지금 부상 때문에 움직이는 건 무리다. 장벽이 무너진 이상 무리해서 주요 전력을 소모할 수는 없으니 가만있거라. 너나 나나 서둘러 회복하는 것이 폐하와 동료들을 돕는 길이니.”
“아니이! 나 싸우러 가는 거 아닌데? 이안이랑 얘기하려고 가는 건데? 내가 지금 기분이 좀 거지 같거든. 이거 보니까, 필리아 때문에 그래.”
“필리아? 이안 경의, 그러니까 서자 이안의 생모?”
“어. 로만드로 님한테도 알리고, 의논 좀 할 필요가 있어. 아니면 찜찜해서 나 밥도 못 먹을 듯.”
제이럿이 가늘어진 눈매로 그를 찬찬히 살폈다.
이안 히엘로가 자신의 진명을 밝힌 이후, 사람들 반응은 주로 두 가지였다. 놀라워하거나, 반기거나.
대부분은 전자였고, 후자는 그의 존재 자체를 ‘승리’로 해석하는 경우였다. 아, 진 황제는 조금 결이 다른 것 같았다만-
“찜찜한가?”
“어. 막 답답하고, 좀 그렇네. 짜증 나고. 모르겠어.”
하지만 베릭은?
제이럿은 천천히 다리를 꼬더니, 아직 그가 깨우치지 못한 걸 일러주었다.
“이안 경의 시간이 미래에서 흐르고 있다는 걸 깨달아서 그렇다. 베릭.”
“그게 무슨 말인데?”
“미래의 황제라 하셨잖은가. 모종의 사건‧사고와 신의 뜻이 맞물리며 지금은 이곳에 있지만, 언젠가는 그의 시간으로 돌아갈 거란 뜻이다. 한 시대에 어찌 두 개의 태양이 뜨겠어.”
베릭이 다시금 멍하니 제이럿을 쳐다봤다. 단어 하나하나는 이해가 되는데, 전체적으로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 기분이었다.
그는 눈을 깜빡거리더니, 이내 가볍게 부정했다.
“…아닐걸.”
“근거는?”
“지금 물어보면 되겠네. 비켜.”
베릭이 의무관 어깨를 밀치며 일어서려고 했지만, 제이럿이 더 재빨랐다. 그는 목발로 베릭의 가슴팍을 누르며 저지했다.
“까불지 말고, 회복해서 직접 걸어 다녀라. 네놈 회복력이면 또 얼마 안 걸리겠지.”
풀썩, 뒤로 넘어간 베릭은 평소와 다르게 누워서 꼼짝하지 않았다. 의무관은 드디어 조용해졌다며 붕대 위에 풀을 발라 고정했고, 제이럿은 한 번 혀를 찬 뒤 밖으로 나왔다.
바람이 차다. 새벽에 전투가 시작되었던 것이 이제 정오를 지나고 있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던 것인가?
“제이럿 대장.”
그때, 삼대장 중 한 명인 사이먼이 그를 불렀다. 보니타와 바르사베를 수색하기 위한 준비를 끝마친 모습이다.
제이럿은 고개를 끄덕이며 잘 다녀오라, 그의 어깨를 토닥였고, 이내 다른 황궁친위대원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눈에 품었다.
“무사히, 하지만 전력을 다하여 임무를 완수하도록.”
“저녁에 회의가 있다 하니 그때까지 돌아오겠습니다.”
“보니타 대장과 바르사베를 데리고요.”
“그래. 서두르자.”
“베릭 저놈 좀 잘 봐주십시오, 대장.”
회의는 분명히 길 것이었다. 아기아르 도시의 상태와 아군의 전력 확인, 이후의 작전 등을 제외하더라도 이안과 나눌 이야기가 산더미이지 않은가?
출격 보고가 끝나자, 황궁친위대원들은 모두 마력을 개방하며 장벽 쪽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지이잉! 지잉!
타닥타닥!
제이럿은 대원들의 뒷모습을 지켜보다 장벽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아기아르 장벽 맨 꼭대기에서 펄럭이던 버고스 깃발이 추욱 늘어지더니, 병사들에 의해 아래로 찢어졌다.
이어서 새로이 게양되는 푸른색의 바리엘 제국기. 장벽을 온전히 점령했다는 신호다.
부우우-!
부우!
이를 알리듯 곳곳에서 물소뿔 소리가 동시에 울렸고, 바리엘 병사들은 화답하듯 크게 포효했다.
말을 타고서 달리던 트웰러 장관이 제국기가 게양된 것을 확인하곤 소리쳤다.
히이잉!
“버고스 국기가 내려갔다!”
“와아아! 몰아내자!”
“으아아악! 바리엘군이다! 바, 바리엘! 도망쳐!”
“아기아르를 지켜! 도망치는 놈들은 모두 배신자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버고스 병사다! 저쪽이다!”
“패잔병들이 좌측 길로 빠졌습니다! 루스웨나 측 전력은 보이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드래곤을 이용해서 움직인 것 같은데, 이렇게 빠르게…….”
“패잔병을 쫓아라! 끝까지!”
촤아악! 촤악!
지휘관을 잃은 버고스 병사들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사방으로 흩어졌고, 바리엘 병사들은 그들을 끝까지 추격해 등에 창을 꽂았다.
눈앞에서 죽음을 목격한 민간인들이 새된 비명을 질렀고, 넓지 않은 거리는 순식간에 혼란으로 가득 찼다. 쫓는 자와 도망치는 자, 울부짖는 자, 반항하는 자…….
트웰러는 목청을 높이며 명령했다.
“아기아르 주민들은 투항하라!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는 자들은 살려줄 것이다! 거리로 나와 황제 폐하께 예를 갖추어라! 이봐! 어린아이는 건들면 아니 된다!”
아기아르 장벽과 도심지는 생각보다 가까웠다. 거리 곳곳에는 아까 있었던 폭발로 인한 장벽 잔해로 어지러웠다. 반파된 건물도 듬성듬성 눈에 띄었다.
트웰러의 명은 곧 장교들로 인해 전군으로 전달되었고, 병사들은 달달 떠는 주민들을 그대로 지나쳐 안쪽 깊숙이 달려갔다.
“투항하라! 투항하라!”
“무기를 버리고 엎드려라!”
도심지 중앙 도로를 순식간에 훑고 지나가는 바리엘 병사들. 항복을 거부하는 자들에게는 기꺼이 죽음을 선사하며 그 발자국을 단단히 찍어냈다.
그런데 그때.
“장관님. 루스웨나 측 병력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러더포드도요. 장벽 아래 묻힌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에 트웰러는 말 머리를 돌리며 창공에 떠 있는 마법사를 불렀다.
“위에서는 어떠신가?”
“예, 지금 선발대가 아기아르 중심지에 막 당도했습니다. 여기서도 루스웨나 마법사들이나 드래곤이 보이지는 않습니다. 반대쪽에도 장벽이 있지 않나요?”
“후문이 있긴 하지만, 절벽과 바로 이어진 곳이라 유명무실하다고 들었네.”
“저희 쪽 마법사 두 명이 그쪽으로 크게 돌 것입니다! 절벽 아래라면 드래곤을 숨기기에는 적당하지 않겠습니까?”
“이안 님!”
마법사의 외침에, 이안이 뒤를 돌아봤다.
로브를 벗어 한껏 가벼운 옷차림에 표정 또한 변화가 없었지만, 시선만큼은 집요하여 수천 명이 얽혀드는 거리를 꼼꼼히 살피고 있었다.
“러더포드가 보이지 않습니다!”
“시체라도 찾아야 할 것이다.”
“장벽 아래를 파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지금 동원 가능한 골렘은?”
“아, 아스타나 술사들의 피해가 막심해서, 알아보고 오겠습니다. 잠시만요! 아스타나!”
“거기, 투항한 민간인은 건들지 말고 계속 나아가라!”
“바리엘의 명예를 욕되게 하는 자는 벌을 면치 못하리라! 투항하는 자는 살려두어라! 건물을 수색해!”
“이안 님! 한 마리인데, 고작 몇 분 정도가 전부일 것이라 합니다. 바로 시작할까요?”
마법사의 보고에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러더포드를 잡지 못하면, 아기아르를 함락한 전공(戰功)의 가치가 절하된다. 오직 러더포드의 소재지라는 명분으로 행한 전쟁이니까.
게다가 놈은 지하신과 연결된 자였고, 환생의 비밀을 쥐고 있는 자다. 최대한 생포하되, 죽었다 한들 시체라도 확보해야 했다. 무조건.
“트웰러 장관님. 이쪽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예.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안이 몸을 돌려 장벽 쪽으로 날아가자, 트웰러 장관은 그 모습을 눈으로 가볍게 쫓았다.
황궁의 흔적이 느껴지던 검술과 나이에 걸맞지 않은 처세 등으로 비범한 자라 여기긴 했으나, 설마 그렇게 거대한 비밀을 품고 있었다니.
트웰러는 난생처음 전장에서, 앞이 아닌 뒤쪽에 더 큰 흥미를 느끼고 말았다.
“진격하라!”
100년 후의 바리엘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반역을 거론한 것으로 보아, 정세가 혼란했나? 한데 지금껏 그가 봐왔던 이안이라면, 그리 두지 않았을 터인데.
잠시 상념에 빠져 있던 트웰러가 검을 치켜들려는 순간-
부우우-
이번에는 물소뿔이 낮고 길게 울렸다.
황제가 걸음 하신다는 신호다. 즉위하여 처음으로 지휘한 전투에서 승리, 함락한 도시에 첫발을 딛는 역사적 신호.
아기아르 주민들은 본능적으로 납작 엎드리며 몸을 굳혔고, 괴성을 내지르던 병사들도 침묵하여 예를 갖췄다.
히이잉!
타닷!
진은 말고삐를 가볍게 잡아당기며 아기아르 안쪽으로 들어섰다. 감회가 새롭다만, 거기까지다. 이곳은 버고스의 반왕당파 거점 중 하나. 즉 버고스를 함락한 것이 아니라, 그저 도시 하나만을 점령했을 뿐이다. 앞으로 나아갈 길은 너무도 길었다.
-우어어어!
“딱 3분입니다! 골렘 왼쪽 팔은 쓰지 못하니 오른쪽으로 붙어 도우시면 됩니다!”
한편, 골렘도 겨우겨우 움직여 폭발 근원지로 추정되는 곳에 올라섰다.
그의 키만큼 쌓인 돌무더기 잔해 앞에서, 이안은 마법사들과 황궁친위대원들에게 눈짓하며 일렀다.
“시작하라. 나오는 시체는 하나도 빠짐없이 신원을 확인할 것이니.”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