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574
제574화. 이안의 일생 (1)
“참으로 의젓하셔라. 울지도 않으시고.”
장례식장에 참석한 자들은 하나같이 입 모아 이안을 칭찬했다. 아이는 그저 ‘죽음’을 인지하지 못했던 것뿐인데 말이다.
유모의 손을 꼭 잡은 채로 조용히 서 있던 이안은, 손님들 틈에 섞여 있는 한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집요한 시선이다. 모두 손을 모으며 기도하는 와중에도, 그는 아이를 쳐다보며 옆자리의 누군가와 속닥거렸다.
“그런데, 아이가 너무 어려서 어떡해요?”
“몇 살이라고 했지요? 다섯 살? 여섯 살?”
“유모가 있긴 한데, 귀족 아닌 자에게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친‧인척 중에 담당하는 자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황족의 방계이긴 하나, 지금 실정으로 궁에서 봐줄 것 같지도 않고.”
“아이 앞으로 재산은 많겠지요?”
“어허, 그런 말은 삼갑시다. 적절치 않은 장소입니다. 아직 관 위에 흙도 덮지 않았어요.”
“뭐 어때서 그래요? 어차피 논의할 일인데.”
“이안을 맡는 자에게는 영지 관리 자격도 맡긴다 유언했대요. 그쪽, 꽤 크지 않습니까? 분기별 세금만 해도 금화 100닢이라 하던데요. 오로지 영지에 관해서만요.”
유모는 아이를 천천히 품에 안았다. 대놓고 귀를 막아줄 수 없으니, 이렇게 해서라도 천박한 말소리를 막아주고 싶다는 듯 말이다.
그러자 이안은 습관처럼 어머니의 초상화를 올려다봤다. 그리하면 어머니에게 안긴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에.
“…유모.”
“예, 도련님.”
“이제 영원히 어머니를 안을 수 없어?”
이안은 영민했다. 죽음을 인지하지는 못했지만, 헤아릴 수는 있었다.
유모는 어떻게 대답하면 좋을지 몰라 그저 침묵했다. 사랑 없이 계약으로만 이루어진 부부 관계는 너무도 건조하고, 비극적이었으며, 무의미했다. 그들은 이득을 위해 행한 합리적인 행동이라 생각했겠지만, 끝을 본 유모는 동의할 수 없었다.
실패했다고, 그들의 거래는 완벽하게 실패했다고. 인생을 무의미하게 만든 것으로도 모자라, 이안이라는 아이에게 너무도 몹쓸 짓을 하고 말았다고.
“다들 정숙하십시오.”
그때, 이안과 연신 눈 마주쳤던 남자가 나지막이 일렀다. 깊고 힘 있는 발언이 순식간에 주위를 압도했다. 목소리에 힘이 있었던 건지, 아니면 힘 있는 자의 목소리였던 건지는 잘 모르겠다.
이안이 기억하는 것은 단 하나-
“이안은 저희 쪽에서 데려갈 것입니다.”
자신의 거처가 정해지는 그 순간뿐.
그자가 바로, 크로니였다.
촤악!
“다시.”
그렇게 크로니의 저택에 들어온 지 일주일째.
이안은 심장이 쿵쿵 뛰는 걸 느끼며, 굳어버렸다. 피아노 선생이 뒤에서 회초리를 휘두른 것이다. 안 그래도 낯선 장소에서 받는 첫 피아노 수업인데, 강압적인 말투와 위협적인 손짓은 이안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피아노 선생은 허리에 손을 올린 채 이안의 악보를 거칠게 넘겼다.
“앞부분부터 다시 하십시오. 어디가 틀렸는지 모르겠습니까?”
“…예. 선생님. 모르겠습니다.”
“그걸 깨닫는 게 학습입니다.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자세도 바르게 하시고요. 감정을 담아내야 하는데 집중이 흐트러지니 옳게 쳐질 리 없지요. 이안 도련님. 제가 수십 년 동안 유수의 자제분들을 가르쳐 왔는데, 이토록 당황스러운 경우는 처음입니다.”
이안은 대답하지 못한 채 손가락만 꼼지락거렸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정말 모르겠다. 아이는 달달 떨리는 손을 다시 건반 위에 올렸고, 무의식적으로 연주를 시작했다.
피아노 선생이 날카롭게 보고 있다가, 이번에는 회초리로 피아노 모서리를 내려쳤다.
촤악!
“다시!”
촤악!
“다시!”
계속 가까워지는 회초리질에 이안은 완전히 질려버렸다. 더 이상 못 하겠다고, 수업을 멈춰달라고 이르려는 순간. 바깥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똑똑.
“수업 중 실례하오.”
“아닙니다. 크로니 님.”
“지금 아버지가 잠시 깨어나셔서 이안 숙부를 데리고 가야 할 것 같은데, 괜찮은가?”
“물론이지요.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크로니가 어서 나오라는 듯 손짓하자, 이안은 냉큼 피아노 의자에서 내려와 그에게 달려갔다.
“수업은 어떠셨습니까.”
“…모르겠습니다.”
“모르겠다? 어떤 것이?”
하지만 이안은 대답 대신 고개만 가로저었다.
“유모는요? 어찌 되었습니까?”
“아무래도 가족이 따로 있다 보니 이쪽으로 올 수 없다 하더군요. 아쉽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이안의 가슴 밑에서 무언가 울렁거렸다. 분명 저택을 옮기더라도 함께한다고 했는데, 거짓말이었던 걸까? 이제 자신을 안아줄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인가?
크로니는 아이를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정식 후견인은 제 아버지시지만, 몸이 워낙 편찮으셔서 자주 뵙지는 못할 것입니다. 숙부가 이곳에서 적응하고, 잘 자라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전적으로 저의 역할이 될 것이니, 숙부께서는 불편하거나 나누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언제든지 편하게 이르십시오.”
“예. 알겠습니다.”
“오후에는 수학과 글쓰기 수업이 있습니다. 수업이 벅차십니까? 이전 저택에서는 무리가 없었던 것 같은데.”
“…아니요. 괜찮습니다.”
“그리 말씀하시니 다행이군요. 기대가 큽니다.”
크로니가 싱긋 웃으며 이안의 머리를 토닥였다.
그때, 이안은 생각했다. 유모의 품을 대신하는 온기가 여기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참, 이안 숙부. 나중에 수업 끝나고 나면, 잠시 제 집무실로 오십시오.”
연유를 묻는 눈빛에 크로니가 별거 아니라는 식으로 흘리듯 대답했다.
“영지 관리 문제로 제게 위임할 것이 있습니다. 오셔서 제가 이르는 칸에 서명하시면 됩니다. 아, 아직 서명이 없으신가?”
“예.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 만드는 게 좋겠군요. 안 그래도 제가 몇 가지 생각한 것이 있는데, 그것 중 하나로 선택하시면 되겠습니다.”
영지에 무슨 일이라도 생겼습니까? 이안은 되묻고 싶었으나, 복도 끝에 다다른 참이라 말하지 못했다.
크로니는 어서 들어가자는 듯 웃으며 아이의 등을 떠밀었다.
스윽.
“영지 분할 매각 위임 동의서…….”
이안은 촛불 아래에서 글자를 중얼거렸다. 분할, 매각, 위임. 어렴풋이 의미를 알 것도 같다만,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다.
이안은 고개를 슬쩍 들었고, 소파에 앉아 자신을 지켜보는 대여섯의 어른들과 시선을 마주했다. 크로니와 낯선 자들이다. 변호사, 지방 영주 대리인, 관리인, 관공서 직원 등등. 신원을 밝히긴 했다만, 다들 왜 여기 모인지는 모르겠다.
“문제 있으십니까, 이안 숙부?”
“아, 그것이-”
“설마 뜻을 모르십니까?”
옆에 앉아 있던 변호사가 거만하게 다리를 꼰 채 끼어들자, 이안의 볼이 붉게 물들었다. 크로니는 그걸 가만히 보다가 보란 듯이 변호사에게 손짓하여 자중시켰다.
“이안 숙부께 무례하네. 힐론.”
“아, 송구합니다.”
“숙부. 영지를 보다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계약서입니다. 아직 어리시어 이해가 어려운 건 문제 되지 않아요. 배우면 되는 일이니까요. 하지만 진짜 문제는, 여기 모인 모두가 바쁜 시간을 내어 힘겹게 모였다는 것입니다. 숙부의 서명을 받기 위해서요.”
이안은 마른침을 삼키며 잠시 머뭇거렸다. 그럴수록 어른들은 침묵한 채 이안을 주시했고, 조금씩 한숨과 혀 차는 소리를 흘려댔다.
“…알겠습니다. 영지를 위한 일이라고요.”
“그럼요. 물론이지요.”
“서명은 어디에 하는 겁니까?”
“이쪽입니다. 여기 한 번, 그리고 다시 여기.”
크로니가 벌떡 일어나 다정하게 손으로 짚어주며 빈칸을 일러주었다.
이안이 크로니를 불안한 눈빛으로 올려다봤다. 정말 괜찮은 것 맞지요? 그러자 크로니가 다시 이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모두 이안 숙부를 위한 일이니까요.”
이안은 믿었다. 아니, 믿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아이의 세상은 온전히 크로니에게 달려 있었으니까.
이안은 결국 서명했고, 꽤 달콤한 보상을 받았다.
“잘하셨습니다. 숙부께서 걱정이 많으신 듯하니, 내일은 함께 영지를 둘러보러 가실까요? 피아노 수업을 빼고요.”
순간 안면에 기쁨이 물들었다는 걸, 이안은 알아채지 못했다. 오로지 크로니만 아는 이안의 변화였다.
* * *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이안은 케케묵은 먼지 속 기억을 끄집어내는 것처럼 작게 인상을 찌푸렸다. 듣고 있는 사람들은 더욱 심각한 표정이었지만, 그는 포도주로 마른입을 축이느라 살피지 못했다.
“유모는 저를 따라 크로니의 저택으로 들어오고 싶어 했는데, 그자가 내친 것이었더군요.”
“어째서?”
“명분은 그럴듯했습니다. 유모가 함께하면 제가 저택에서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그녀의 품만 찾게 될 것이라는 명분이요. 나아가, 그에게는 그만의 철학이 있으니 그가 데리고 있는 유모를 쓰겠다는 것도. 전부 그럴듯했지요.”
“하지만 그대는 너무 어리지 않았나.”
진의 말에 이안이 슬쩍 웃었다.
“맞습니다. 너무 어려서 몰랐습니다. 그때의 저는 크로니만을 필사적으로 바라보고 있었기에, 저 자신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계속 일러보시게.”
트웰러의 잔이 비자, 그의 직속 장교가 일어나 술병을 가져왔다. 벌써 두 병째였다. 이안은 희미해진 피아노 선생 얼굴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피아노 선생이 그렇게 엄했던 것도 크로니의 명령 때문이었습니다. 이건 정말 나중에 알았지요. 즉위하고서, 황궁 악단을 새로이 개편하는 과정에서 선생을 다시 만났지 뭡니까.”
사실은 크로니가 지시한 것이었다고, 어린 폐하의 연주에는 하나의 흠도 없었노라 고백하는 말에 자신이 무엇을 느꼈던가? 분노? 황당함?
아니, 서글픔이었다. 그 어렸던 자신이 너무도 처량하고 불쌍하여, 이안은 어떤 대답도 없이 돌아서고 말았다.
“아무튼, 그런 식이었습니다. 크로니는 제게 상당히 친절했어요. 모자람 없는 교육을 제공했고, 이전 저택과 같은 생활 수준으로 자랄 수 있게 신경 썼습니다. 겉으로만 본다면, 보호자 역할을 충실히 이행한 것인데…….”
하지만 그 속에는, 벗어날 수 없게끔 이안을 옭아매는 족쇄가 존재했다. 너무도 많은 일이 있어서, 이 자리에서는 차마 이르지 못할 정도의 족쇄가.
“법적 후견인이 그의 아버지였다고?”
“예. 유명무실했습니다. 그건 혹여 제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책임을 면하고자 한 안전장치였을 뿐입니다. 크로니 집안 사업 대부분이 그렇게 진행되었지요.”
“이안아. 그래서 영지는 어떻게 됐는데?”
베릭이 턱을 괸 채로 반쯤 드러누워 물었다. 남들 한 잔씩 먹을 때 혼자 서너 잔씩 들이마시더니, 술기운이 도나 보다.
이안은 예상하지 않았냐는 듯 잔을 들어 올렸다.
“내가 운영 내역을 직접 확인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영지는 정확히 십분의 일로 토막 나 있었다. 저택은 매각된 지 오래였고, 그 밖의 재산은 증발했지. 양육비 명목으로 크로니가 운용한 결과였다.”
“진짜 개새끼네. 쓰벌.”
꺼어억. 베릭이 트림을 크게 해대자, 제이럿이 머리를 쥐어박으며 예의 좀 차리라 꾸중했다.
하지만 정작 제일 윗사람인 진은 무표정으로 이안을 쳐다봤다.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이.
“힐론이면, 내가 아는 그 힐론인가?”
“예. 맞습니다.”
흐음. 그러고는 무얼 생각하는지, 연신 손끝으로 탁자만 톡톡 두드려댔다.
트웰러 장관은 가득 찬 술잔의 반을 한 번에 들이켜곤 물었다.
“그래서 어찌 되었습니까?”
“무탈한 나날이었습니다. 진흙탕에 잠기는 것도 모른 채 그저 가만히 서 있는 그런 나날이요. 하지만 ‘그날’을 기점으로, 모든 게 달라졌습니다.”
“그날이라 하면?”
이안은 잠깐 숨을 골랐다.
본격적으로 인생이 힘차게 흘러가기 시작했던 지점.
그것은 분명히…….
“제가 처음으로 마력을 썼을 때입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