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575
제575화. 이안의 일생 (2)
“바깥출입을 금하겠습니다.”
이안이 마력운용자라는 걸 안 크로니의 첫 규칙이었다. 그의 시선은 미묘하게 서늘했는데, 이의 제기 따위는 받지 않겠다는 무언의 압박이 분명했다.
이안은 그를 가만 올려다보았고, 크로니는 무언가 불쾌하다는 듯 연신 방 안을 돌아다니며 엄포했다.
“그리고 더하여, 시종과의 접촉에도 제한을 두겠습니다. 이안 숙부. 누차 말하지만, 남들 앞에서는 절대로 그것을 보여줘서는 안 됩니다.”
“예. 명심하고 있습니다.”
“왜인지, 한번 일러보시겠습니까?”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게 맞는지 확인하고자 하는 물음이다.
이안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지금까지 크로니가 수십 번씩 반복했던 내용들이다.
“제가 귀족 출신이니까요. 마법사는 대부분 천민 출신이니, 제가 이런 힘을 갖고 있다는 걸 알면 저택에 머물 수가 없게 됩니다.”
“예, 맞습니다. 숙부께서는 영민하신 분이니 분명 잘 숨길 수 있을 것입니다. 후우. 대체 어떻게 이런…….”
크로니의 중얼거림에 이안은 움찔했다. 황실 방계의 피를 이었으면서도 어찌 천민들이나 지니는 능력을 타고났단 말인가? 이쯤 하면 요절한 부모도 자신의 탓이요,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죄악 같았다.
이안이 숨죽인 채 눈물을 뚝뚝 흘리자, 크로니가 무릎 꿇어 시선을 맞췄다.
“숙부.”
“예.”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지킬 것입니다. 숙부를 절대, 천민굴로 밀어 넣지 않아요. 그러니 저를 믿고, 숙부께서는 이전과 같은 일상을 지내시면 됩니다. 아시겠지요?”
“…알겠소.”
크로니는 이안을 가볍게 안았고, 이안은 그 품에서 눈물을 마저 훔쳐냈다. 하여, 그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수업도 최소한으로 줄이겠습니다.”
“그리해도 되겠습니까?”
안 그래도 모자란 자신인데, 수업을 줄이면 뒤처질 것 같아 두려웠다. 크로니는 괜찮다는 듯 이안의 등을 토닥였다.
“예. 대신 제가 수업을 맡도록 하지요. 검술과 승마를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그러면 답답한 마음도 풀릴 것이고, 지내시는 데 지루함도 없을 것입니다.”
채앵! 챙!
이안은 그날 이후, 크로니와 함께 하루 대부분을 검술 연마에 전념했다. 하루가 멀다고 성장하는 실력에 크로니는 자주 소리 내어 웃었고, 이안은 살아 있음을 느꼈다.
그렇게 둘만의 세상이 계속 이어지던 어느 날.
“그런데 말입니다, 크로니. 제 마력을 본 사용인은 어찌 되었습니까?”
“그런 건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자, 다시 해볼까요? 검 잡아보십시오.”
“오늘 다섯 시간째인데요.”
“곧 있으면 숙부의 생일이시지요? 저를 이긴다면 소원을 하나 들어드리겠습니다.”
소원이라.
이안은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검을 다잡았다. 벌써 저택 밖에 못 나간 지 몇 년째던가? 이번에는 풍년이라 추수감사절을 크게 지낸다고 하던데, 구경 가고 싶었다.
“무엇이든요?”
“물론입니다.”
타닥타닷!
이안은 검을 크게 휘두르며 크로니에게 덤벼들었다. 이제 고작 열다섯인 소년. 그는 여유롭게 검날을 맞물렸다.
하지만 아무리 날고 기어봤자 거기까지. 크로니는 이안이 절대 자신을 이길 수 없으리라 여겼다. 아무리 신의 사랑을 타고났다 한들 어린애니까. 자신의 말 한마디면 벌벌 떠는, 미련한 어린애.
촤아악! 채앵!
하지만 그것은 자만을 넘어선 오만이었다. 크로니는 점점 자신이 힘겨워하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이안의 검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궤를 예측할 수 없었으니. 목검이지만, 금방이라도 제 목을 벨 수 있겠다는 두려움이 크로니를 관통했다.
투욱.
결국 크로니의 검은 저만치 날아갔고, 이안의 검이 그의 목덜미에서 멈추었다. 집중하여 숨만 고르던 이안이 점차 기쁜 표정을 지었다.
“크로니!”
이것 보아, 내가 이만큼 성장했어.
이안은 곧 들려올 크로니의 칭찬을 기대했다. 참으로 잘하셨다고, 실력이 대단하시니 자신을 따라 황궁에 들어와도 되겠노라고, 그리 일러줄 줄 알았는데…….
“하아.”
크로니는 짜증스러운 한숨만 내뱉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나? 이안은 가쁜 숨을 내쉬는 와중에도 몸을 움츠렸다.
“대단하십니다. 이안 숙부.”
“저기, 크로니…….”
“소원을 들어드려야겠군요. 말씀하십시오.”
웃옷을 탁탁 터는 손짓에 불쾌함이 잔뜩 묻어났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대체 무엇이 그의 심기를 거슬렀는지 말이다. 하지만 기회는 기회. 이안은 조심스레 소원을 말했다.
“추수감사절 축제가 곧 열린다고 하던데, 가보고 싶습니다.”
“축제… 좋지요. 대신 딱 세 시간입니다. 상업지구가 주요 장소이니 돌아보기에는 모자람 없는 시간일 것입니다. 호위를 붙일 것이니 꼭 함께하시고, 외부인과 접촉은 엄금하겠습니다.”
“…알겠소.”
세 시간. 너무 짧지만, 달콤한 외출이다. 이안은 고맙다는 말과 함께 괜찮냐고 물어보려 했지만, 크로니는 단호하게 몸을 돌려 훈련장을 나가버렸다.
이때부터였다.
묘하게 크로니의 행동이 날카로워지고, 사나워진 것이.
“어서 오세요! 추수감사절을 맞이해서 맥주를 공짜로 드립니다! 들어오세요!”
“자자, 돌림판 돌아갑니다! 대망의 1등은 은화 1닢에 해당하는 식사 이용권! 단돈 동화 1닢으로 노려보세요!”
“에이, 이거 사기 아니에요? 제가 돌려볼게요.”
“어허, 왜 이러세요? 손대지 말고, 안 할 거면 저리 가세요.”
“아하하하! 악단끼리 거리에서 붙었다!”
“춤춰! 춤! 와아아!”
여기저기서 떠들어대는 웃음, 음악,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춤추는 사람들, 처음 맡아보는 온갖 음식 냄새까지. 이안은 축제의 열기를 만끽하느라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로브를 뒤집어쓴 소년과 그를 따라다니는 호위들이 이목을 끌 법도 한데, 다들 노느라 바빠서 관심 두지 않았다.
한참 골목을 돌아다니며 구경하던 그때-
“마법사들의 행렬이다!”
누군가의 외침에, 이안의 고개가 저절로 돌아갔다.
여기저기 흩어져서 놀고 있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몰려들어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이안은 의도치 않게 휩쓸려 거리 쪽으로 밀려났다.
“도련님!”
“젠장!”
호위들도 금방 따라붙었지만, 홍수처럼 불어나는 인파 탓에 계속해서 거리가 멀어졌다. 이안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손짓으로 시계탑 쪽을 가리켰다.
“와아! 마법사다!”
마법사들과 마주하면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날 수 있기에, 이안은 서둘러 발걸음을 옮기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머리 위로 드리우는 그림자.
“아.”
날고 있다.
마법사들은 하늘을 유영하며 자유로이 움직였고, 그 뒤로 아름다운 꽃가루가 잔흔처럼 반짝였다.
사람들 전부 닿고자 손을 뻗었고, 마법사들은 화답이라도 하듯 더욱 많은 꽃비를 흩뿌렸다.
정말, 정말로 아름다웠다.
이안의 눈가에 눈물이 고일 만큼.
‘마법사란 저런 존재구나.’
천하다 여겨지는 피를 타고났지만, 세상 그 누구보다 신과 가깝다는 자들.
이안은 문득 크로니의 저택을 떠나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들처럼 하늘을 날고, 기적을 행할 수 있다면 말이다.
스윽.
다른 사람들처럼 손을 뻗었다. 동시에 손끝에 작은 마력을 만들어냈다. 본능이었다.
순간 크로니의 엄포가 떠올라 움찔했지만, 금세 안도했다. 분명 화사한 꽃비에 가려져 보이지 않으리. 나도 그저 저들처럼…….
타앗!
“……!”
무수히 쏟아지는 손길 속, 한 마법사가 여섯 번째 감각으로 이어진 이안의 존재를 알아채고는 그 손을 붙잡았다.
단정히 묶은 갈색 머리칼이 물결처럼 흘러내렸다. 그의 갈색의 눈동자는 정확히 이안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두 사람은 놀랍다는 듯 서로를 바라봤다.
“너, 마력운용자구나?”
나움 오비아.
이안의 일생에서 처음 내려온, 하늘의 손길이었다.
“마력운용자?”
“오오. 이봐, 아이야! 자네 정말인가?”
“손, 손 좀 잡아보자! 세상에나, 말세에 이게 무슨 복이람? 신께서는 그래도 바리엘을 버리지 않으셨나 보네. 이번 황제께서는 좀 오래가시려는가?”
“이봐! 그게 무슨 경칠 소린가? 말조심하게!”
“뭐 어때? 어차피 우리네 축제인걸. 들을 사람도 없네.”
“어어? 어디 가? 이보게!”
이안은 나움의 손을 뿌리치고는 내달리기 시작했다. 복합적인 감정이 휘몰아친 탓이다. 자신을 알아봐 주었다는 기쁨과 들켰다는 걱정, 그리고 어째서인지 홀가분한 마음이 한데 섞여들어 이안을 어지럽혔다.
“저기-”
“안녕하세요. 주스 한 잔 드릴까요?”
한참이나 서서 고민하던 이안이 가판대에 앉아 있던 여인에게 말을 붙였다. 그녀는 반갑게 인사하며 나무 잔을 들어 보였고, 이안은 동전을 건네주며 물었다.
“혹시 말이오. 귀족 출신 마법사라 하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예? 갑자기요? 무슨 말씀이시람?”
“귀족, 그러니까 황족에 가까운 귀족이 마법사라면, 어떨 것 같은지를 묻는 것입니다.”
“흐음. 글쎄요.”
여인은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이를 드러내며 환히 웃었다.
“제국의 축복 아닐까요? 귀하신 분께서 귀한 힘을 지니셨으니, 신께서 얼마나 사랑하신 것인지 모르겠네요. 부럽습니다!”
“여보, 왜 그래?”
“으응. 아니, 손님이 희한한 걸 물으시네. 귀족 출신 마법사 하면 어떤 생각이 드는지.”
“하핫! 참으로 재밌는 상상이네요.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아마 황제 폐하 다음으로 제일가는 분이실 것입니다. 사실상 요즘은 황궁이 예전 황궁 같지가 않아서, 뭐.”
“어머, 쉬잇! 좋은 날 경치려고.”
“알겠어, 알겠어. 그냥 하는 말이지, 뭐.”
부부는 아무렇지 않게 음료를 퍼 주었지만, 이안은 받을 수 없었다. 하늘이 무너지며, 지금껏 살아왔던 모든 시간이 부정당하는 기분이었기에.
크로니는 분명 자신을 가리켜 저주받았다 하였는데, 다른 사람들은 축복 그 자체라고 한다.
이안은 고개만 까딱거리고서 시계탑 쪽으로 걸어갔다. 저 멀리, 그를 기다리고 있던 호위들이 보였다.
“도련님!”
“괜찮으십니까? 늦으셔서 걱정했습니다.”
“미안하네. 가지.”
“그만 들어가시려고요? 아직 시간 남았습니다만.”
“아니. 들어가겠다. 크로니에게 가겠어.”
경호원들은 심각한 분위기를 감지하고는 바로 마차를 대령했다. 크로니의 저택으로 들어가는 동안에도, 이안은 창밖에 시선을 고정한 채 침묵했다. 그를 만나면 이렇게 말해야지, 생각하며.
“크로니. 들켰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거리에서 마법사를 만났는데, 제가 그들과 같다는 걸 들키고 말았습니다.”
이안은 차분히 고백했고, 동시에 크로니의 반응을 자세히 살폈다. 걱정할까? 아니면, 좌절?
“이안!”
콰아앙!
크로니가 보인 것은 명백한 분노였다. 그는 이안에게 삿대질을 하며 부들부들 떨어댔고, 그럴수록 이안의 머릿속은 차갑게 식었다.
“내가 그렇게 조심하라 일렀는데, 멍청하고 아둔한 것! 죽고 싶은 것인가! 이제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하려고!”
“크로니.”
이안은 나지막이 그 이름을 부르며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황실의 방계임을 증명하는 벽안이 사납게 일렁였다.
“어찌하여 내게 거짓말을 했습니까?”
“…거짓말이라니?”
“되었습니다. 이제는 뭐가 뭔지 정말 모르겠어요. 제가 직접 눈으로 보고, 겪겠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이안 숙부.”
“더 이상 저를 숨기기 싫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마법부가 될지, 아니면 천민굴이 될지 모르겠다만, 이제 그런 것은 문제 되지 않았다. 밖에서 마주했던 마법사가 너무도 아름답고 경이로웠기에.
치익.
크로니는 대답 대신 궐련에 불을 붙였다.
이제 슬슬 때가 온 것인가. 황궁은 어지럽고, 권력의 추는 제 무게에 만족할 줄 모르고 연신 움직이는 중이다.
이럴 때 이안이 마법부로 들어온다면? 어리지만 귀족 출신 마법사의 후광은 강렬할 것이고, 그 빛은 후견인인 자신에게도 닿을 터.
“오해가 있는 듯합니다, 숙부. 나는 어디까지나 그대를 위해 한 일이었어요. 마법부로 가고 싶습니까? 황궁은 언제나 피바람이 부는 곳. 그곳에서 어떠한 불행을 겪을지, 그대는 너무 어려서 몰라요.”
“…….”
“그래도 가고자 한다면, 예. 알겠습니다. 준비하도록 하지요. 한데 그것만은 알아두십시오. 제가 아니었다면 이안 숙부는 당장이라도 바깥의 더러운 것들에게 농락당하여, 귀족으로서 그리고 마법사로서의 긍지를 모두 잃었을 것입니다.”
크로니는 연기를 뱉어 내며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이안이 평생에 가까운 시간 동안 봐왔던, 그 웃음이다.
“나가보면 알 것입니다. 그대는 나에게 고마워할 것이에요.”
그로부터 반년 후.
이안은 크로니가 정해준 최적의 시기에, 처음으로 입궁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금 새로운 세상을 맞았으니-
“제국의 축복이시군요. 최초의 귀족 마법사라! 반갑습니다. 저는 나움 오비아입니다. 편하게 나움이라 부르십시오.”
나움 오비아.
그는 한쪽 눈썹을 찡긋거리며 웃었다.
다시 만나서 반갑다는 듯이.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