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576
제576화. 이안의 일생 (3)
“저자인가? 최초의 귀족 마법사라는 자가?”
이안이 어디를 가든, 수군거림은 끈덕지게 달라붙었다. 귀족 마법사라는 사실 자체도 충분히 이목을 끌었지만, 그보다 더한 그림자는 바로 크로니다. 이안의 후견인은 여전히 크로니의 아버지였고, 입궁 전날까지 기거했던 곳도 그자의 저택이다.
“오, 이안 숙부. 여기입니다. 인사하십시오. 제 직속 부하들입니다. 저택에 있었을 때 몇 번 보았지요? 한, 이만할 적이었나?”
“하하. 그보다는 조금 컸습니다.”
크로니는 보란 듯이 주위 사람들에게 이안을 소개하고 다녔다. 다섯 살, 더듬더듬 말하던 시절부터 제 손으로 키워온 자식 같은 아이라. 이안의 모든 것이 크로니의 역량으로 포장되었다.
“마력이 그렇게 세다고 하던데요.”
“무슨, 아직 어려서 기운이 좋은 탓이지. 우리 바리엘에 대단한 마법사들이 좀 많은가? 그 아래에서 배울 것이 한가득일 것입니다. 숙부.”
“크로니 님께서 이안 님을 참으로 반듯하게 길러내셨습니다. 대단하십니다. 쉽지 않은 일일 터인데요.”
“무슨 그런 말을. 민망하네. 숙부께서는 아직 많이 모자라.”
“참, 마법부에서는 아직도 마력봉인석으로 왈왈대더이까? 회신이 없어 직접 가볼까 생각했습니다.”
“그럴 것 있나요? 여기 이안 님이 계시니 부탁드리면 될 일 아닙니까?”
“어허, 이보게들. 그 사안은 나중에 따로 얘기하지. 아직 숙부께서 황궁에 적응하지 못하셨다네.”
“이런이런, 실례했습니다.”
마법부 소속인 자를 앞에 두고서 ‘왈왈’이라 지껄이는 작태부터 시작하여, 부탁을 가장한 심부름이라니. 이안은 저자들이 자신을 얼마나 하찮게 보고 있는지 단박에 알아챘다.
그가 낯을 딱딱하게 굳히자, 크로니가 먼저 알아채고는 눈짓했다.
“인상 펴십시오, 숙부. 아려도 웃어야지요. 그것이 황궁입니다. 숙부의 선택이었고요.”
저택에서는 몰랐지만, 황궁에서의 크로니는 상당히 위험한 사내였다.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정치 행보로 황궁 중심 세력을 꿰찬 것은 물론이고, 절대 만족하는 법 없이 갈망하는 자임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어찌하여 저택에 있을 땐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아마 그가 이안의 세상 전부여서 그럴 것이다. 다른 세상이 있다는 걸 알지 못했으니, 크로니에 대한 어떠한 판단조차도 불가했던 게다.
“이안, 크로니 경을 만나고 왔어?”
“나움. 늦어서 미안하다.”
“부른다고 갈 필요는 없다니까.”
“알아봐달라고 했던 건?”
“여기.”
이안은 나움이 건네준 서류를 천천히 읽어내렸다. 영지는 열 토막 났고, 각종 재화는 대부분 증발했다. 이안은 그것들이 모두 크로니의 정치 행보에 사용되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제국방위부 부장관 자리값인가.’
갓 세상으로 나온 이안이었지만, 바리엘이 쇠락기라는 건 바로 알아봤다. 고작 100년 안 되는 기간, 황제가 몇 번이나 바뀌었고, 황궁에서는 피바람이 수차례 불었다. 모래알 위에 쌓인 환상보다 더 위태로운 상황인 것이다. 어찌하여 황가의 방계인 자신이 크로니에게 위탁되었는지, 이해했다.
‘황위를 보전하기에도 모자란데, 거기에 어찌 방계를 들인단 말인가. 제 목을 물어뜯는 짐승 새끼를 거두는 것이나 마찬가지.’
나움은 이안을 찬찬히 살펴보더니, 조심스레 그 어깨를 다독였다.
“후견인 재신청을 해보는 건 어때?”
“…재판부에서 받아줄까?”
대외적으로 크로니는 이안을 완벽하게, 모자람 없이 길러냈다.
반면 이안은 세상 물정 모르는 열다섯의 어린아이였고, 가진 것 또한 아무것도 없었다. 제국의 부장관직이 매매되는 판국에, 재판부가 이안의 손을 들어줄 리 없지 않은가.
이안은 되었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서류를 접었다.
“한데, 나움. 제국방위부가 마력봉인석에 대해 언급하던데, 그게 뭐지?”
나움의 미간이 단박에 찌푸려졌다.
마력봉인석은 사실상 마법부를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 하여, 제국방위부를 중심으로 여러 부서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봉인석 분배에 대한 제안을 새롭게 하는 중이었다.
“황제 폐하께서 마법부를 측근으로 두고 계시거든. 그래서 자꾸만 봉인석 관리를 저들이 한다고 난리다. 안 그래도 마법사 수가 꾸준히 감소하고 있는데.”
상당히 복잡한 정치적 사정이 어지러이 얽혀 있었다.
관심이 깊게 가긴 했지만, 이안에게는 마법부 적응이 먼저다. 그간 겪어왔던 학문과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아득하고, 경이롭고, 찬란한 세계. 마법진을 그려내고, 그 발동법을 알아내고, 수련하고, 이해하느라 하루가 너무도 부족했다.
타앗.
“이안. 이거 내일까지 처리해놔.”
“내일까지 말이십니까?”
“왜? 못 하겠어? 그럼 제국방위부 사람들 손이라도 빌리든가.”
더하여 신분 차이로 인해 시작되었던 경계는, 크로니가 황궁에서 세를 잡을수록 배척으로 변모했다.
‘마법사이면서 제국방위부에 연을 두고 있는 자.’
태도가 너무 분명한 탓에, 이안은 이 관계를 어디서부터 손보면 좋을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그는 지난 평생 크로니를 대하는 법만 배웠지, 사람들을 대하는 법은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너도 할 수 있는 걸 시켜.”
“…나움.”
“네가 못 하는데 신입이 이걸 어떻게 해? 아니면 다 같이 하든가. 너 어차피 오늘 비번이지? 잘됐네. 하고 나서 맛있는 거나 먹자. 나도 도와줄게.”
중간중간 나움이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장담하건대 이안은 황궁에서 절대 적응하지 못했을 터였다.
점차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났고, 마법사로서 정체성을 찾는 나날이 이어졌다. 돌이켜보면, 이안의 일생에서 제일 많이 웃었던 시절이리라. 행복했다는 뜻이겠지.
“황제 폐하께서 승하하셨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거대한 폭풍을 맞이했지만.
이안은 친황제파의 전폭적인 지지로 차기 황제로 거론되었다. 베로시온의 방계이며, 신성한 마법사였고, 권신들의 바람대로 흔들릴 수 있는 어린 소년이었기에. 그리고 무엇보다 이안과 크로니 사이에 금이 있다는 걸 황궁 모두가 알게 된 시점이었기에 가능했다.
“황제라니요, 숙부. 당치도 않습니다. 너무 어리시어 그 무게를 모르십니까? 달콤한 말로 속삭이는 자들을 경계하십시오. 그것이 결국 숙부를 파멸로 이끌 것이니. 숙부, 저는 그대를 마음으로 낳아 길렀어요.”
크로니는 처음으로 마법부까지 찾아와 이안을 설득하고자 했다. 그는 절실해 보였다. 이안의 가능성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말 그대로 마음으로 낳아 기른 아이 아니던가. 누구보다 영특하고, 영민하며, 신께서 사랑을 가득 담아 내린 존재.
“우리 사이가 예전 같지 않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숙부, 보십시오. 제가 염려한 것이 이런 것입니다. 계속 저택에 있었더라면, 그대와 나는 부모 자식 간의 연으로 여전히 서로를 아꼈을 것입니다. 하지만 숙부가 황궁에 들어온 이후, 우리는 참 많은 변화를 겪었어요. 친황제파의 추대를 받아 황위에 오른다는 게 무슨 뜻인지, 정녕 모른다고는 하지 않으시겠지요.”
크로니와 정면으로 맞부딪치게 될 것이라는 뜻.
이안의 낯은 덤덤했지만, 그 속은 파도치듯 수차례 일렁였다. 크로니는, 그래. 어찌 되었든 자신의 아비였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제 마음속에 뿌리내린, 마음으로 따르던 아비. 그들의 인연에는 금이 갔지만 둘 사이엔 절대 끊어지지 않는 무언가가 존재했다.
“크로니. 저는-”
하지만 나아갈 길은 정해진 법. 이안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힘겹게 대답했다.
“저는 바리엘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황제가 되겠노라. 그래서 기울고 있는 바리엘의 하늘을 다시 세우고, 흔들리는 대지를 바로잡아 보겠노라. 할 수만 있다면 그리하여, 자신이 세상에 태어난 의미를 찾아보겠노라.
이안이 그리 이르자, 크로니의 눈빛이 묘하게 변했다. 설득할 수 없음을 눈치챈 것이다.
“…알겠습니다, 숙부.”
결심이 단호할 때 몰아붙이면 역효과만 불러일으킨다. 크로니는 한발 물러서며, 이안과의 인연을 계속 잡아가는 쪽으로 전략을 수정하는 게 좋겠다 판단했다.
“숙부의 뜻이 그러하다면, 저 역시 의지를 보태겠습니다.”
그리고 그건, 아주 정확한 판단이었다.
이안 베로시온이 황제로 즉위했을 때, 사정을 모르는 자들은 드디어 정세가 안정될 것이라 기대했다. 친황제파와 반황제파의 지지를 동시에 받는 자라 여겼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이안에게 그들의 이권 다툼을 중재할 만한 힘이 없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서로에게 빌미를 제공하는 존재였다.
“황제께서 마법사이신데, 그를 견제할 수 있는 마력봉인석을 관리하겠다니요. 위험한 말입니다. 차라리 후견인이자 핏줄인 크로니 경 쪽, 그러니까 제국방위부에서 담당하는 게 옳다 여겨집니다.”
“무슨 말씀을! 마력봉인석은 절대 넘겨줄 수 없습니다. 이건 마법사들의 생존권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황제 폐하! 제국방위부의 권한이 너무 막강합니다. 이를 견제할 안건이 필요합니다.”
“크로니 경께서는 황제 폐하의 대부(代父)이외다. 제국방위부의 힘이 곧 폐하의 힘이거늘, 쯧쯧. 불충하구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바깥에 제국방위부에 대한 원성이 자자합니다. 어째서 지난번, 체투르 구역 민간인 사망 사건에 대한 조사가 부실한 것입니까? 폐하, 일각에서는 가해자가 크로니 경의 직속 부하라 특혜를 받은 것이라 의심하고 있습니다. 이는 곧 폐하의 명예에 누가 될 것입니다.”
“웃기지 마십시오. 마법부 출신인 황제 폐하 덕분에 제일 덕 본 곳이 어디입니까? 예산이 대폭 확충된 것에 대하여, 자세한 감사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폐하!”
“폐하!”
콰앙!
이안은 제발 좀 입 다물어달라는 듯, 책상을 거칠게 내려쳤다. 그의 시선은 나움에게 가 있었다.
‘나움, 네가 나를 도와줘.’
부패한 지금의 마법부 장관 대신, 나움이 새로이 올라 자신을 도와주는 것만이 유일한 타개책처럼 느껴졌다.
사실 일리 있고 적당한 처세였다만, 현실은 언제나 예상을 비껴가는 법.
“나움이 마법부 장관직을 노리고 있소. 도와주시오.”
“황제 폐하께서 뜻이 있으신가 보지요. 장관. 그리고 마법부는 내부 선출직 아닙니까? 저희에게 이럴 것이 아니라, 마법부에서 일을 보시는 게 빠를 듯합니다만.”
“크로니 경! 그래도 황제께서는 자네 말이라면 깊이 새겨듣지 않으시던가! 마력봉인석에 대한 권한을 일부 넘기겠소. 황제 폐하를 설득하여 주시오.”
크로니는 웃었다. 그 어느 때보다 환하게.
“예, 뭐. 노력은 해 보겠습니다.”
나움 오비아가 마법부를 장악하면서 장관직에 오르자, 동시에 마력봉인석 관리는 제국방위부로 넘어갔으며, 친황제파는 주요 인사들을 잃어 세력이 와해되었다.
모든 게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이안은 당최 상황을 감당할 수 없었다. 분명히 옳은 판단이었고, 합리적이었으며, 그 외 선택지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마법부 장관직의 주인을 바꾸면서 너무도 큰 출혈을 입게 된 것이다. 균형이 무너졌다.
“폐하. 괜찮습니다. 권한은 다시 찾아오면 되는 법. 나움 오비아, 제 이름을 걸고서 그리하겠습니다.”
이안은 아직 시간이 많다 여겼다. 점점 한쪽으로 추가 기울었지만 되돌릴 수 있다 생각했다. 이안은 어렸으나 그만큼 성장 가능성이 무한했고,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모습을 보였으니까. 해가 지고 뜰수록, 이안의 처세가 빛을 발해가는 때였다.
“폐하. 전쟁을 해야겠습니다.”
크로니가 다시금 이안에게 그림자를 펼쳤다.
제국방위부는 세를 확장하는 동시에 이안과 측근들을 궁 밖으로 내몰 수단으로 전쟁을 선택했다. 명분은 충분했다.
“제국민들이 황궁 밖 출신인 황제 폐하를 우러러 보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업적이 필요합니다. 피로 쓰인 기념비보다 더욱 빛나는 건 없지요. 가볍게, 변방 쪽 국경선을 정리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강력한 마법으로 바리엘의 위상을 새로이 세우면 사기 또한 하늘을 찌를 것입니다. 중앙 밖으로 나가신 적 없으시니, 아주 좋은 기회겠지요. 여러모로.”
마법부 제외, 모든 부서가 전쟁에 찬성했다. 심지어는 마법사 중에서도 전쟁을 원하는 자가 생겨났다. 변절의 조짐이었으나, 이안은 피할 수 없었다.
“제국방위부 장관께서 함께하실 것입니다. 저는 궁을 지키고 있겠습니다.”
누군가를 앞세워 살아왔던 크로니는 일생일대의 기회를 잡았다. 주인 없는 궁에 홀로 남게 된 것이다.
이로써 이안의 몰락은 사실상 아주 어릴 때부터 시작된 셈이었다. 다섯 살, 그 어렸던 시절부터.
* * *
“제 불찰이자, 실책이었습니다.”
이안은 패배한 경기를 복기하듯, 그날의 실수를 가만히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지금이라면 그리하지 않았을 터인데, 지금이라면 좀 더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을 터인데.
“폐하.”
이안은 희게 웃으며 진을 바라봤다. 그의 표정이 너무도 참담하여, 그 마음이 다 가늠될 정도였다. 사실상 그 자리의 모두가 그랬다.
“후회되지만, 괜찮습니다. 비로소 실패의 가치를 다시 찾았기 때문입니다.”
바로, 베로시온의 이름으로 함께하는 그대를 말이다. 실패를 바탕으로 진에게 일러줄 수 있었던 게 무수히도 많았으니, 그 어찌 기쁘지 아니할까. 자신이 있어서 진이 있을 수 있고, 그로 인해 다시 100년 후의 제 역사가 이어지니, 이는 실패가 아니라 하나의 과정이다.
베로시온의 역사는,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은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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