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579
제579화. 토올룬에 대하여
“그런데 말입니다. 토올룬은 대체 어떤 나라입니까?”
둥글게 모여 고기를 뜯어 먹던 와중, 한 마법사가 물어왔다. 다들 입안 가득 음식물을 우물거리며 눈만 깜빡였고, 시원한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잠깐의 침묵 끝에 먼저 입을 뗀 건 아코렐라다.
“토올룬? 마크노티피아랑 켈런 매장지가 풍부한 곳이지. 희한하게 그거 두 개는 토올룬 외에선 보기가 힘들어. 매장량이 풍부해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바로 희귀석으로 분류되었을걸? 참고로 난 그거 두 개 다 별로임. 마크노티피아는 응집력이 영-”
“그러게. 나도 얘기는 많이 들어봤는데, 정작 아는 게 없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몰랐지. 그쪽에도 마법사가 있나?”
“새끼, 너 방금 내 말 잘라 먹었지?”
“아니오. 고기 잘라 먹었는데요.”
“마법사? 있지 않을까? 마법사가 어느 한 지역에서만 나오는 건 아니니까.”
“그래도 북쪽 지대와 가까우니 주술사들의 입김이 셀 겁니다. 아스타나 쪽에 물어보면 자세히 알 것 같은데요.”
“아스타나도 잘 모른대. 토올룬 쪽이랑 교류가 그렇게 활발하지 않았나 봐. 그리고 그쪽은 지금 초상집 그 자체라서, 말도 못 붙여.”
“맞아. 그 의문의 원거리 공격 때문에 피해가 심했지? 베릭이 잡은 인형술사랑 연관이 있나?”
“몰라.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저는 한 번 가본 적 있습니다.”
한 마법사의 말에 다들 눈을 동그랗게 떴다. 토올룬은 바리엘과 교류가 거의 없는 지역 아니던가? 워낙에 거리가 먼 나라이기도 했고, 종교적인 차이가 확실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지하신을 숭배하는 신흥종교가 부흥하여 나라를 휩쓸고 있지만, 사실 바리엘인에게는 지하신이든 그 이전의 신이든 생소한 게 사실이었다.
“언제? 어떻게?”
“그러니까. 신기하네. 황제 폐하 즉위식 때도 토올룬에서는 사절 하나 안 왔는데, 거길 네가 어떻게 갔는데?”
“예전에요. 아주 어릴 때 아버지 따라서 간 적 있어요. 그래봤자 한 두어 달 머문 게 다지만요.”
“아아, 맞아. 너 아버지가 행상하셨다고 했지?”
“행상은 아니고, 그 밑에서 잡일 하셨어요.”
“아무튼, 어땠는데? 듣기로는 막 사람들이 지붕 위에 올라가서 엎드려 기도하고 그런다던데. 맞아?”
마법사들은 고기를 한쪽으로 치우고서 눈을 빛냈다.
난데없이 주목받은 마법사가 머쓱해하는 것도 잠시, 어릴 적 기억을 새록새록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시간이 되면 어디선가 종이 울려요. 그러면 사람들은 하던 것을 모두 멈추고서 하늘에 기도를 올리는데, 설령 지붕 위에 있더라도 반드시 해야 하는 거라, 그런 말이 생긴 것 아닐까요?”
“흐음. 그런가?”
“그리고 제가 기억하기로는 되게 개방적인 분위기였어요. 뭐랄까, 엄격한 규율 속 자유로움이라 해야 하나…? 아니, 혼돈 속 질서가 맞으려나? 그리고 사람도 엄청 많았고요. 당나귀 탔었는데 옆 사람이랑 어깨가 계속 맞물려서 내가 지금 걷고 있는 건가, 싶을 정도로요.”
“거기, 땅도 좀 큰 편이지? 바리엘 두세 배 정도 되는 걸로 아는데.”
“예, 아마 맞을 거예요. 대부분이 농지였어요. 좀 건조한 기후라 농업 효율이 좋진 못했지만.”
“그래, 맞아. 나라 자체가 좀 폐쇄적인 경향이 있어. 어쨌든 자급자족이 가능하니까, 굳이 밖이랑 교류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거고.”
“그것도 그건데, 아무래도 종교적 변화를 두려워한 것 아닐까요? 가이아에서 토올룬만 좀 비주류잖아요.”
“그럴 수도 있고. 그쪽도 왕이 있지?”
“아, 네. 그렇긴 한데…….”
“한데, 뭐?”
마법사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웃었다. 자세히는 모르겠다는 듯이 말이다.
“제가 너무 어릴 때 들었던 거라, 이게 맞는지 모르겠어요.”
“뭐, 인마. 왕이면 왕이고 아니면 아닌 거지.”
“그쪽은 왕을 ‘선출’한다고 하더라고요.”
“엥?”
이건 또 무슨 개소리? 직계 세습도 아니고 선출이라니? 왕을 선출한다는 게 성립되는 말이던가? 세대마다 반란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왕을 어떻게 선출해?”
“왕족 중에 숨어든 신이 있다고 믿어요. 그걸 찾는 기준이 여러 개 있는데, 거기에 부합한 아이가 왕위에 오른다고 하더군요. 그저 상징적인 건지, 아니면 진짜인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워낙 옛날 일이라서요.”
“네가 나이가 몇이더라?”
“마흔다섯입니다. 아코렐라 대장.”
“아, 맞다. 미안.”
아코렐라는 머쓱하다는 듯 코끝을 긁적였고, 다들 어색하게 헛기침을 터트렸다. 어찌 마법부는 나이가 어릴수록 요직에 앉는 건지 모르겠다. 뭐, 제일 어린 이안이 장관이니 말 다 했다만.
“아무튼, 참 신기한 나라네.”
“예, 한 번쯤 가볼 만합니다. 온 세상이 누런 흙색인데, 특유의 붉고 노란 색감이 인상적이거든요. 하완 쪽이랑은 느낌이 완전히 다르지요. 그쪽은 흰색을 바탕으로 한 강렬한 붉음이라면, 토올룬은 흙색 위에 지어진 모닥불 같은 나라입니다.”
“으응. 안 그래도 곧 가게 될걸? 우리, 버고스 남부까지 진격해 싹 정리하고 나면, 곧장 토올룬으로 넘어갈 거라서.”
“예?!”
그걸 왜 지금 말씀해주세요? 놀란 마법사들이 굳어버리자, 아코렐라는 아무렇지 않게 음식을 와앙 베어 물며 웃었다.
“왜 그렇게 놀라? 토올룬으로 가는 거 알고 있었잖아. 애초에 출정식 때부터 논의되던 사안인데, 뭘.”
“아니, 그땐 논의 중이었던 거고요! 이건 확정이라는 뜻이잖아요?”
“응. 나도 지금 들었네. 됐지?”
“…이러면, 황궁 마법부 쪽으로 전서구 좀 보내야겠습니다. 토올룬 관련 자료 좀 보내달라고요. 로만드로 님께 안부도 전할 겸요.”
“아아, 됐어. 이미 보냈어.”
아코렐라는 손을 휘휘 내저으며 부하들의 옷깃을 잡아끌었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밥이나 계속 먹으라는 뜻이다.
“예? 정말요? 그럼 혹시, 이안 님 얘기도……?”
“응.”
“전부요?”
“응. 전부. 로만드로 님도 알아야지.”
“…놀라시겠지요?”
“놀라기만 하면 다행이게?”
크으! 아코렐라는 포도주를 한껏 들이마시며 쓴 신음을 흘려댔다. 사연 없는 인생 어디 있겠냐마는, 안쪽에서 전해 들은 이안의 일생은 완벽하게 처참했다. 마치 신께서 하나하나 공들여 파멸시키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그때, 저 옆으로 지나가는 헤일이 보였다.
“어여, 헤일 대장. 밥 안 먹고 어디 가?”
“잠깐 친위대랑 정찰 좀.”
헤일은 고갯짓으로 황궁친위대 천막 쪽을 가리켰다. 아무래도 하늘을 날 수 없는 마검사들인지라, 헤일과 그 부하들에게 도와달라 부탁한 것 같다.
하여간, 쉬라고 해도 쉬는 법을 모르는 사람들 같으니라고. 아코렐라는 입술을 비죽이며 물었다.
“이안 님은? 아까부터 안 보이시는데.”
“아기아르 주민 대표와 협의 중이시다. 진척이 더딘 걸 보니 문제가 좀 있는 것 같은데.”
“흐음? 왜? 아기아르는 이미 끝났잖아.”
“아기아르 이전에, 그들은 버고스인이니까.”
민간인들 사이에서도 입장이 극명하게 갈렸다. 바리엘에 협조하느니 차라리 전쟁 포로가 되겠다는 견해와, 목숨을 온전하게 부지하여 새로운 시대를 열자는 견해.
그들이 팽팽하게 맞서는 걸, 이안은 가만 앉아 지켜보는 중이라고 했다. 무엇이 되었든 바리엘이 원하는 쪽으로 진행될 것이지만, 최대한 반대되는 의견을 소멸시키기 위해서는 억압하기보다는 격렬하게 부딪치도록 유도해 산화시키는 쪽이 이득이라 판단한 것이다. 그들에게 주어진 밤은 길었으니까.
“계속 먹고들 쉬어라. 나는 나키나랑 같이 잠시 다녀올 터이니.”
“그려. 늦게 오면 남는 거 없다.”
“실컷 먹어라.”
헤일은 그리 말하며, 황궁친위대 천막을 걷었다.
전투의 승리에 한껏 도취한 바깥과 달리, 천막 안쪽은 축 가라앉은 분위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승리를 위해 치른 대가가 상당하지 않은가.
부상 부위에 붕대를 감던 대원들이 헤일을 반기며 일어났다.
“오셨습니까.”
“예, 지원 부탁한다고 하셔서요.”
“제이럿 대장.”
제이럿 대장은 이미 정복을 갖춰 입은 상태였다. 북쪽 지대에서 얻은 부상이 깊어 계속 전선 뒤에서 자리를 지켜왔는데, 이제는 안 될 일이다. 보니타가 죽은 지금, 제이럿은 대장의 책무를 수행해야 했다.
“절벽 아래쪽을 다시 한번 수색했으면 합니다. 드래곤이 진입하기에는 너무 좁으니, 마법사분들이 비행을 도와주었으면 하는데요. 이안 장관님께 언질은 드렸습니다만.”
“예, 대장의 무거운 마음을 잘 이해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오늘 밤은 어둠이 너무 짙으니, 멀리까지는 가지 않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베릭.”
“어. 그려그려.”
찌이익, 베릭은 붕대를 대충 찢어 묶은 다음 웃옷을 걸쳤다. 상처가 깊었지만, 그럼에도 다른 대원보다 기동력이 좋았다. 베릭은 머리를 대충 묶으며 지도를 들여다봤다.
“아까 낮에 둘러본 곳 위주로 가면 되지?”
“베릭, 술 안 취했어?”
“포도주가 술인가? 음료수지. 다들 발 뻗고 쉬고 있어라잉. 멀쩡한 베릭 님이 다녀오려니까.”
“예, 선배님. 고생하십시오.”
“제이럿 대장.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그들은 대충 손짓하여 인사했고, 이내 헤일과 나키나의 도움으로 힘차게 날아올랐다.
휘이잉-
짙은 밤하늘 속. 바람이 거셌다. 높이 올라섰지만 보이는 것이라고는 아기아르의 불빛뿐. 저 먼 곳까지 모든 게 암흑이다.
제이럿은 혹시 바르사베의 기운이 감지될까 싶어 온 신경을 곤두세웠고, 베릭은 하품을 쩌억 하며 코를 킁킁거렸다.
쉬이익!
“절벽 아래로 내려가겠습니다.”
장벽 밖, 깎아내린 절벽 입구 쪽에 도달하자 헤일이 그리 이르며 고도를 낮췄다. 네 사람은 희미한 마력 빛에 의존하여 암석 사이로 들어섰다.
어떠한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직까지는.
* * *
바르사베는 피가 싸아악 굳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를 깨달았다.
아래쪽을 내려다보는 러더포드의 눈동자는 마치 저승의 사자(使者)와 같이 차갑게 번뜩이고 있었다. 긴 머리칼은 또 어떠하고? 그녀는 숨 쉬는 것조차 잊은 채 최대한 기척을 숨겼다.
“러더포드 님, 왜 그러십니까?”
“횃불을 가져오라.”
단순한 의심이 아니다. 무언가를 감지했음이 틀림없다. 바르사베는 쿵쿵 뛰는 심장 소리가 새어 나갈까 봐 애써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인근에 추격자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불을 피우는 건 위험합니다, 러더포드 님.”
“그럼 너. 네가 여길 내려가 봐.”
“예?”
“아래에 뭔가가 있는 것 같다. 네놈 말대로 추격자일 수 있으니 내려가서 눈먼 귀가 없는지 확인해보라, 이 말이다.”
러더포드의 말에 주위가 다시금 조용해졌다.
바르사베는 참으로 난감했다. 다른 놈들은 전혀 알아채지 못한 눈치인데, 어째서 러더포드만 저런단 말인가?
하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누구도 섣불리 나서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루스웨나 마법사들은 러더포드를 지원하기 위해 온 지원군이지, 섬기는 자가 아니었고, 마검사들은 비행 능력이 없었기에 어둠 속 절벽을 내려가기 껄끄러웠다.
“그럼 제가 한번 보겠습니다.”
그때 끼어든 것은, 찢어지게 불쾌한 그 목소리였다.
“판자와 인형만 있으면 이곳에 우리 말고 또 누가 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단번에 심장을 꿸 수도 있으니, 문제없지요.”
“어느 세월에.”
러더포드가 혀를 쯧 차댔다. 토올룬의 인형술사들은 굉장한 능력을 갖고 있었지만, 그걸 위해 준비할 것이 너무 많았다. 대상자의 정확한 위치, 그리고 주술에 적합한 인형까지.
상급 인형술사일수록 주술이 잘 걸려들게 하기 위해 재료에 큰 공을 들이곤 했다. 그 실력 좋은 바그반도 아기아르 장벽을 구현해낸다고 몇 달 걸린 것으로 알고 있는데.
“횃불 피워.”
재차 이어진 명령에, 부하들이 어쩔 수 없이 횃불에 불을 지폈고, 절벽 아래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점점 어둠이 옅어지며 시야가 밝아졌다.
바르사베는 가까이 다가오는 불빛을 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아, 씨발. 집요한 새끼.’
하지만 방도가 없다. 돌아갈 길이 없다면 앞으로 돌진하는 수밖에.
바르사베는 불빛이 저를 밝히는 순간 마검사의 팔을 재빨리 잡아끌었고, 그를 절벽 아래로 떨어트렸다.
”으아악!“
비명을 내지르며 절벽 아래 어둠 속으로 사라진 마검사.
바르사베는 그 힘을 역이용하여 위로 훌쩍 뛰어올랐다. 그와 동시에 텅 빈 어금니를 꽉 깨물며 마력을 터트렸고, 러더포드 쪽으로 달려들었다.
촤악!
나와서 보니 마검사가 여섯, 마법사가 다섯이라. 그 밖에 인형술사와 일반 병사가 열댓 넘게 모여 있다.
바르사베는 몸을 낮추며 뒤를 돌아봤다.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이다. 한마디로…….
‘…X 됐군.’
그렇게 됐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