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585
촤아아악!
베릭은 아래로 추락하는 와중에도 러더포드의 흔적을 찾고자 눈동자를 빠르게 굴렸다.
끝도 없이 떨어지는 높이에 이게 과연 단순한 절벽이 맞나 싶지만, 지금은 의심할 시간도 여유도 없다. 공기가 점점 뜨거워지자, 베릭은 검을 절벽에 갈아대며 떨어지는 속도를 늦추고자 시도했다. 마력 범위가 벗어나는 곳은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끼이익!
촤악!
운 좋게 절벽 틈에 검이 걸렸다. 한 손으로 매달린 베릭이 몸을 가볍게 흔들며 건너편으로 뛰어넘었다.
“러더포드 십새기야, 어딨냐? 뒤졌냐? 뒤졌으면 말이라도 해봐라!”
절벽 아래에는 또 다른 세상이 존재했다. 거대한 동굴과 곳곳으로 갈라지는 길목. 인위적인 느낌은 없는 것으로 보아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공간 같다.
베릭은 벽에 길게 나 있는 이드갈 흔적을 발견했다. 러더포드도 저처럼 검으로 속도를 늦춘 다음 이곳에 착지한 것이다.
스릉.
“잡히면 바로 뒤진다아?”
베릭이 장난스럽게 소리치며 허리춤에서 새로운 검을 빼 들었다. 그러곤 조심스레 동굴 안으로 들어섰다. 뜨거운 기운이 훅 끼치는 걸 보니, 아까 느꼈던 열기가 이곳에서 나오던 것이었나 보다.
“뭔 놈의 나라가 이렇게 종잡을 수가 없어? 위쪽은 시발, 풀 한 포기 안 자라는 개 땅이라 존나 추운데.”
원인 모를 따뜻한 바람. 베릭은 검을 다잡은 채로 천천히 나아갔고, 이내 느껴지는 인기척에 반사적으로 등을 돌렸다.
쉬이익! 채앵!
“베릭. 나다.”
“어라, 헤일이네.”
“정신 나갔으면 눈이라도 제대로 달고 다니든가.”
“그러니까 누가 인기척을 그따위로 내래?”
“나는 잘 내고 왔다. 긴장한 네놈이 실수한 것이지.”
“긴장? 푸핫! 내가? 이 몸이?”
베릭을 뒤따라온 헤일이었다.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목 옆에 바짝 붙은 검을 내려다봤다. 언제까지 이걸 겨누고 있을 거냐 묻는 시선. 베릭은 아차차 웃으며 코를 훌쩍였다.
“미안하게 됐네.”
“그나저나, 돌아가자. 본대와 합류하는 것이 안전하다.”
“안전 생각할 거였으면 바리엘 안 떠났지. 러더포드도 이쪽으로 들어왔거든? 아까 이드갈 봤나?”
“그래. 놈의 의중을 파악할 수가 없어 위험하다는 것이다. 너는 마법부 소속이 아니라 황제 폐하의 호위임을 인지해.”
“황제 폐하도 러더포드 새끼 모가지 가져가면 아주 좋아하실걸? 그리고, 지금 걔 놓치면 또 어떻게 찾을 건데?”
10년이다. 장장 10년.
이안을 기다린 시간도 10년이지만, 다시 나타난 러더포드를 여기까지 추적하는 데 걸린 시간도 10년이었다. 눈앞에 있는 걸 빤히 아는데, 고작 위험하다는 이유만으로 후퇴할 수는 없다.
베릭은 손을 까딱까딱거리며 위쪽을 가리켜 보였다.
“그렇게 걱정되면 먼저 올라가시든가. 나 여기 있다고 이안이한테 말해주면 되겠네.”
“하아. 미친 똥개.”
“나 그 소리 귀에 딱지 앉을 만큼 들었다. 내가 아무리 배 속에 거지가 들었어도 똥 처먹은 적은 없는데. 왜들 자꾸 똥개래.”
헤일이 궐련을 입에 물며 무어라 이르려는 순간이었다. 두 사람은 동시에 기척을 느끼고 홱 뒤를 돌아봤다. 동굴과 이어진 안쪽, 무슨 소리가 들린다. 바스락바스락…….
“뭐지?”
“쉬잇.”
헤일이 시끄럽다는 듯 경고하자, 베릭이 입술을 비죽이며 몸을 낮췄다. 그러고는 점점 안쪽으로 들어가며 온 신경을 집중시켰다.
뭔가 썩은 내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쿰쿰한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잠깐만. 이거…….”
어디서 많이 맡아봤는데? 뭐지?
베릭이 숨을 깊게 들이쉬며 냄새의 정체를 알아내려고 했으나, 쉬이 번뜩이지 않았다. 하나 확실한 건, 상당히 불쾌한 기억과 관련 있다는 것.
베릭이 모퉁이를 돌아 동굴 안쪽으로 고개를 틀자, 어둠 속에서 무언가 움직이고 있는 게 느껴졌다.
“헤일.”
저쪽으로 불빛을 쏘아달라, 베릭의 부탁에 헤일이 마력을 발동시켰다.
주위가 순식간에 밝아졌고, 이내 몸을 웅크린 채 무언가를 씹어 먹고 있는 남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헝클어진 머리칼과 엉망이 된 옷. 어렵지 않게, 그자가 러더포드임을 알아챘다.
“이 시발 놈아, 이런 상황에서 뭘 처먹-”
쏘아붙이려던 베릭의 말문이 턱 하고 막혔다.
그의 손에 들린 것은 말라버린 붉은 꽃, 그리고 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였다. 황당한 광경에 베릭은 할 말을 잊었고, 헤일 역시 궐련을 툭 하고 떨어트렸다. 그러고 보니…….
“여기, 단순한 동굴이 아닌데.”
밑동 잘린 나무와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가시덤불 등이 눈에 들어왔다. 푸른 이끼에 뒤덮여 한눈에 알아보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러더포드는 무언가가 절박한 사람처럼 연신 손에 잡히는 것을 뜯어 입에 넣어댔다. 그것만이 자신을 이 위기에서 구원해줄 수 있다 믿는 듯이.
“아, 저거…….”
베릭이 눈살을 찌푸렸다. 말린 빨간 꽃도 그렇지만, 러더포드가 쥐고 있는 것의 정체를 알아챘기 때문이다.
“그건데? 인형 속에 들어 있던 요정.”
라로메디아. 형체가 으스러져 자세히 비교할 수는 없었지만, 외형과 크기로 미루어 짐작했을 때 거의 확실했다. 직전까지 살아 있었던 것인지, 러더포드의 손에 끈적한 액체가 잔뜩 묻어 있었다.
“야! 그만 처먹어! 미친놈아!”
헤일이 재빨리 주위를 둘러봤다. 라로메디아의 서식지는 가이아의 북쪽과 남쪽, 극지방이라 들었다.
가장 최근에 발견된 것은 토올룬 인근. 버고스가 토올룬과 인접하긴 하다만, 이런 곳에 서식지가 있을 줄은 몰랐다.
‘혹시 이동한 것인가?’
라로메디아 시체를 사용한 인형술이 토올룬에서 성행하고 있음은 거의 확실시 되는 사안이었다.
그러니 무분별한 학살을 피해 서식지를 남쪽으로 옮겨 도망쳐 왔을 가능성이 있다. 서식지의 규모가 너무 작고, 생긴 지 얼마 안 된 것처럼 엉성한 것이 그 증거였다.
“헤일. 저 새끼, 눈깔 맛 갔는데?”
“…베릭. 환각을 조심해야 한다. 살아 있는 라로메디아는 말린 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효과가 강하다 했어.”
“아니, 근데, 와나. 지금이라도 가서 베는 게 맞지? 근데 역겨워서 가까이 갈 수가 없네.”
베릭은 그리 말하며 러더포드 발치 아래 짓밟힌 꽃들을 살폈다. 저것들도 어딘가 눈에 익었다. 뭐였더라? 저게…….
“어어?!”
베릭은 무언가 번뜩이는 느낌에 눈이 커졌다.
“실라스크!”
한 번 피면 지지 않는다는 붉은 꽃. 이안이 대사막으로 갈 때 화분에 담아 갔던 것 아닌가? 말라서 바스라진 채였지만, 확실히 알아볼 수 있었다.
러더포드는 입가를 가볍게 닦아내며, 두 사람을 가만 노려봤다.
“…역겹나?”
“그래. 존나게.”
“살아남는 것에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신께서 일러주신 하나의 방법. 전지전능한 신의 능력을 잠시나마 빌릴 수 있는 수단. 러더포드는 마른 꽃잎을 잔뜩 움켜쥐며 독살스럽게 웃었다.
“베릭. 그것보다 너부터 조심해야 하지 않겠나?”
“어디서 친근하게 이름을 불러, 썅. 뒤질라고.”
“온몸이 불타고 있는데?”
“뭐?”
촤아악!
러더포드의 말을 듣는 순간, 베릭은 치솟는 불길을 눈으로 보았다. 방금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자신의 몸을 장작 삼아,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그가 놀라서 뒷걸음질 치자, 헤일이 붙잡았다.
“베릭! 정신 차려! 환각이다!”
“아니, 씨발! 이거 뜨거운데?”
“환각인 걸 인지해!”
지이잉! 지잉!
헤일이 마력을 터뜨려 주위를 환기시키려고 하자, 러더포드가 속삭였다.
“이봐. 너무 가까이 붙지 마. 불이 옮겨붙는다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