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588
제588화. 밝은 곳
진은 초조하게 손끝으로 탁자를 두드렸다.
의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는 연신 바깥쪽을 주시하며 작은 소음에도 귀 기울이는 중이었다. 밤중에 벌어진 갑작스러운 러더포드 생포 작전에 바깥은 횃불로 훤했다.
‘괜찮을까?’
러더포드다. 오래전부터 서자 이안과 엮여 있는 지하신의 꼭두각시이자, 이안을 무릎 꿇리고, 10년 가까이 심연으로 처박아버린 장본인. 그뿐인가? 그가 유통했던 이드갈은 황자들의 난과 깊이 연관되어 있었으니, 깊게 보자면 자신의 황위를 위협하던 자이기도 했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놈이다 보니, 이안과 시아오시, 트웰러 등 자신의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걱정을 떨칠 수 없었다.
“믿어야지.”
진은 스스로 나무라듯 작게 중얼거렸다. 자신이 믿지 않는다면 대체 누가 믿는단 말인가?
혼자 짐작했다가 걱정 떨치기를 수십 번, 진은 바깥에서 들려오는 인기척에 벌떡 일어났다.
스윽.
그러고는 시종들이 움직이기 전, 손수 문을 좌우로 열어 복도 저편을 내다보았다. 저 멀리, 이안과 마법사들이 조금 지친 기색으로 들어오는 중이었다.
“이안 경!”
“폐하.”
걸음 하던 이안이 조금 놀란 눈치로 진을 쳐다봤다. 하지만 이내 그의 걱정을 잘 헤아리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게 문제없이 잘 해결되었다는 의미다.
“송구합니다. 조금 늦었습니다.”
“아니다. 늦지 않았어. 다들 무사한 것인가? 다친 곳은 없고?”
“예, 폐하. 다행히 헤일 대장도 무탈하고, 다른 마법사들도 문제없이 임무를 수행하고 복귀했습니다. 잠시 나가보시겠습니까? 너무 늦은 시각이라 간단히 보고하려 했는데, 직접 보여드림이 옳겠습니다.”
이에 진은 이안을 찬찬히 살폈고, 이내 곳곳에 묻은 피가 다른 자의 것이라는 걸 알아챘다.
하지만 안도할 순 없다. 말은 이리 하여도 햇빛 아래에서 본다면 어떠한 상처가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아기아르 궁에는 횃불로 밝힐 수 없는 어둠이 있는 터라, 살필 수 없어 속상했다.
“…앞장서시게나.”
“예, 폐하.”
마법사들도 마찬가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으나 크게 다치거나 한 자는 없다. 그렇다면 황궁친위대는?
뒤에서 보좌하며 따르는 황궁친위대원들도 동료들의 생사가 궁금한 눈치다. 진은 빠르게 걸음을 재촉하여 아기아르 성 밖으로 나갔다.
끼이익!
쿠웅!
거대한 나무문이 반쯤 열려있었고, 진이 다가가자 시원하게 젖혀졌다. 전투에 참여했던 제국방위부 장교들과 병사들이 한곳에 모여 갑옷을 풀어헤치고 있었으며, 시아오시가 트웰러와 무언가를 의논하는 중이었다.
“베릭! 괜찮아?”
“제이럿 대장, 무사하십니까?”
“으아, 세상에. 또 배에 구멍을 내 왔네.”
“미친놈아, 내가 내고 싶어서 냈어?”
베릭은 상처가 깊어 보였지만 문제없다는 듯 누워서 가운뎃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그 옆에 주저앉은 제이럿도 온전한 모습이었다. 땀을 뚝뚝 흘려대긴 했으나, 그것은 회복하지 못한 채 기력을 소모한 탓이다.
“폐하.”
“다들 괜찮은가? 사망자는?”
“없습니다. 러더포드의 마검사들과 대적했던 병사들이 조금 다치긴 했으나, 가벼운 낙상 정도라 걱정하실 바가 못 됩니다.”
시아오시가 그리 이르자, 눈에 확 들어오는 자들이 있었다. 손목과 발목이 묶인 채 바닥에 엎어져 있는 러더포드의 일당들이다.
마검사들은 끝까지 반항했는지 쥐어 터져서는 피떡 된 상태고, 반면 마법사들은 상대적으로 상태가 온전했다. 이드갈로 사지가 결박당한 것은 똑같았지만.
“마검사는 러더포드의 수하들이고 마법사는 루스웨나 측 전력입니다. 마법사들은 비교적 수월하게 항복했습니다. 아무래도 루스웨나에 본을 두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루스웨나는 러더포드 쪽에서 발 빼려 한 것 같습니다. 각각 진술하길, 루스웨나 쪽은 귀국하려 했고, 러더포드 쪽은 토올룬으로 가고자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문제는 인형술사들인데…….”
인형술사들은 모두 죽어버렸다. 병사들이 인형술사인 걸 모르고 베기도 했고, 도망치다 절벽 아래 추락해 버리기도 했으며, 반항하다 스스로 혀를 깨문 자도 있다고 했다. 시체는 모두 회수했지만, 살아 있지 않은 터라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없다.
“되었다. 그렇다면, 저건?”
“예. 러더포드입니다.”
머리에 천을 뒤집어씌워 묶은 상태다. 얼굴을 확인하고 싶다는 눈짓에, 이안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은 안 됩니다. 폐하.”
“어째서?”
“절벽 아래, 라로메디아의 서식지로 보이는 곳에서 마지막 저항이 있었습니다. 러더포드가 그것을 섭취하여 상대에게 환각 작용을 일으켰는데, 그 매개가 무엇인지 정확히 조사해봐야 합니다. 가장 유력한 것은 목소리이나, 단순 호흡이나 눈빛도 영향이 있을 수 있어 가려두었습니다.”
헤일과 베릭은 동굴 안쪽에 떠도는 가루 탓이었다고 하지만,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안전을 위해서 러더포드를 철저히 격리하는 수밖에.
“그렇군.”
진은 죽은 듯 결박된 러더포드를 잠시 내려다본 다음 몸을 돌렸다. 수많은 자가 자세를 낮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들 수고가 많았다. 아기아르 전투의 핵심이었던 러더포드와 그 일당, 특히 마검사와 마법사를 생포하였으니 이보다 더한 승리는 없으리라. 제국의 영광과 명예가 그들을 위해 빛날 터, 나는 그대들이 나와 함께하고 있음이 자랑스럽다.”
처억.
진의 치하에 다들 고개를 깊게 숙였다. 이안도 자세를 낮추려고 하자, 진이 손수 그의 어깨를 잡아 토닥였다.
“무사히 돌아와주어 고맙네.”
“황송한 말씀을 하십니다, 폐하.”
“고생했다. 다들 치료에 전념하고, 몸과 마음을 편히 하는 것에 집중하라.”
“예, 폐하!”
장교들이 병사들을 물렸고, 이안은 진에게 다가와 조용히 속삭였다.
“폐하. 베릭이 러더포드의 이드갈에 베였습니다.”
“러더포드의 이드갈에?”
“예. 베릭은 워낙 회복력이 뛰어나 전력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었는데, 출혈이 계속되는 것으로 보아 이번에는 복귀까지 좀 오래 걸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이럿 대장의 몸 상태도 좋지 않고요.”
“이런. 바르사베도 위중하다 들었는데.”
“폐하. 송구하오나, 황궁친위대의 피로도가 상당합니다. 마법사들도 지쳤지만, 전력 손실이 큰 저들의 심적 부담감을 감히 헤아릴 수 없습니다. 예정했던 것보다 체류 기간을 늘려 잡으심이 어떠십니까?”
“좋다. 보급에 문제가 없도록 준비하라.”
“예, 그리고 체류하는 동안 라로메디아 서식지에 대해서도 조사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전에, 바리엘 중앙 거리에서 불손한 자가 폐하의 형상을 한 인형으로 수작질을 하지 않았습니까? 자세히 밝혀낼 기회입니다.”
“아스타나에게 맡길 것인가?”
“카티마코가 라로메디아에 대해 자문해 주었으니 맡기면 좋을 듯하지만,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아스타나의 사령술사 대부분이 전사하여 여의치 않다 할 가능성도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알겠다. 날이 밝으면 아스타나 왕과 담화하도록 하겠다.”
“현명하신 처사입니다. 마검사들은 적당한 시기에 처형할 것이고, 마법사들에 대한 처분은 조금 더 지켜보시지요. 루스웨나 측에서 먼저 반응이 올 수 있습니다.”
“따로 전언을 보낼 것인가?”
“폐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저는 어느 쪽이든 무방할 듯합니다.”
진은 잠시 고민하며 엘더트를 떠올렸다. 에리포니의 뒤를 이은, 사특하고 건방진 청록색 뱀과 같은 자. 정보를 많이 주면 줄수록 머리를 굴려댈 것이 분명했다.
이럴 때는 침묵으로 혼란을 초래하는 게 낫다. 제 혼자 머릿속에서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라지.
“보내지 않겠다.”
“알겠습니다. 그리 일러두도록 하겠습니다. 마력과 이드갈은 다르므로, 마력봉인석으로 러더포드를 완전히 제압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제가 주도하여 러더포드를 지켜보겠습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이드갈을 만들어내는 자였다. 다른 마법사들을 가까이 두어 감시하기에는 위험도가 상당했다.
진과 이안이 현 상황을 파악하며 적절하게 지시를 나누는 동안, 하늘이 밝게 터왔다. 그러자 조금씩, 어둠에 가려져 있던 사람들의 안색이 드러났다.
“해 뜬다.”
“하아, 하루가 왜 이렇게 길어.”
“잠을 못 잤으니까 길지. 자자, 어서 가서 자자고.”
“이래서 집 나오면 개고생이라니까! 으하하핫!”
“그래도 집에 틀어박혀 있었으면 내가 어찌 제국의 명예와 영광을 얻었겠어? 아이고! 고되다!”
피곤하고, 초췌하고, 기진맥진하여 눈을 깜빡이는 병사들. 진은 문득 이안을 돌아봤다. 혹여 어둠 속에 숨어 있던 상처 같은 것이 보일까 싶어서.
하지만 그건 기우였다. 이안의 녹안은 더욱 맑게 반짝였고, 거대한 산을 넘었다는 안도감에 그 언제보다 더욱 편안한 표정이었다.
“폐하도 어서 가서 주무십시오. 드디어 하루가 끝났습니다.”
아기아르 성벽이 무너지고, 러더포드를 추적하여 생포하기까지 걸린 고작 하루의 시간. 너무 길고 길었다.
“…그래. 마음 편히 잘 수 있겠다.”
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번 주위를 살폈다.
모두가 살아 있었다.
* * *
바리엘의 아기아르 점령 사흘째.
전쟁으로 터전이 박살 나고 나라가 망하기 직전이었지만, 해는 꾸준히 떠올랐다. 민간인은 건들지 않겠다는 바리엘의 관용 덕분에, 사람들은 일상에 ‘가까운’ 삶을 영위했다.
“이게 다 빨랫감입니까? 오늘은 좀 많네요.”
“어제 훈련을 두 번 해서 그렇소.”
“알겠습니다. 이쪽에 두고 가셔요.”
“이건 수고비. 이름을 올려둘 터이니, 보급 때 밀을 타 가시오.”
“예에, 고맙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혹시 바느질 하는 사람들 좀 모을 수 있나? 단체로 기워야 할 것이 있어서 그런데.”
“그럼요. 몇 명이나 필요하신데요?”
“한 서른 명 정도?”
아기아르 주민들은 소정의 수고비 혹은 보급 우선권 따위를 받으며 인력을 지원했고, 바리엘은 도시 곳곳을 정리해 장악하는 중이었다.
이미 버고스와 바리엘 구도의 전투는 끝난 지 오래였다. 지금은 반(反)바리엘과 친바리엘 성향의 주민들이 묘한 기류를 형성하며, 보이지 않는 전투를 치르는 중이었으니까.
“그런데 아까 보니까 다른 병사들이 성 쪽으로 가더라고요. 무슨 일이 있나요?”
빨래방을 운영하던 주민이 넌지시 옷감을 정리하며 물었다. 정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사소한 것이라도 알고 있는 것이 하나의 경쟁력이었으니.
병사는 별것 아니라는 듯 코를 훌쩍이며 마른고기를 질겅거렸다.
“러더포드 쪽 마검사들 처형식이 있거든.”
“아, 그게 오늘이군요?”
“그래. 덕분에 훈련 쉬고 좋지. 어제 두 번 했지만.”
“공개 처형이 아니네요?”
“심문도 같이 한다 하더라고. 아무튼, 수고.”
“예, 알겠습니다. 연락드리겠습니다.”
모처럼 쉬는 시간을 얻은 병사는 그대로 뒷골목 술집으로 들어섰다. 영문 모르는 사람들만이 병사들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서 아기아르 성쪽으로 움직일 뿐이다.
하지만 굳게 닫혀 있는 성문. 안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알 길이 없다.
끼이익.
문이 이중으로 닫히고,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병사들이 좌우로 길게 둘러섰다.
이안은 단상 위, 의자에 앉아 차가운 눈빛으로 아래를 내려다봤다. 머리에 복면을 쓴 자들이 일렬로 줄 지어 무릎 꿇은 상태다.
“벗겨라.”
“예.”
이안은 한쪽 손으로 턱을 괴며 느긋하게 지켜봤고, 그들은 갑작스러운 빛에 정신을 못 차리며 고개를 저어댔다.
그리고 개중, 넋이 반쯤 나간 채로 이안을 올려다보는 러더포드. 이안이 차가운 웃음으로 인사했다.
“밝은 데서 보니 더 별로군.”
“…….”
“러더포드. 지금부터 심문을 시작할 것이다. 성실히 대답하지 않으면 곱게 죽지 못할 것이니 선택 잘하길 바란다. 그대의 부하들에게도 발언권을 주지. 언제든 이르고 싶은 게 있다면 이르도록.”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