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589
제589화. 러더포드 심문
“으윽.”
바르사베는 머리가 깨질 것 같은 고통에 신음하며 눈떴다. 그녀의 다리를 닦아주고 있던 마법사가 깜짝 놀라며 일어나려는 그녀를 도로 눕혔다.
“바르사베 대원. 정신이 좀 듭니까?”
“너무 아픕니다, 머리가…….”
“그럴 만도 하지요. 고생 많았습니다. 그래도 무사히 정신 차려 다행이네요. 의사가 내일까지 의식 없으면 정말 위험하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목 마르겠지만 잠시 기다리십시오. 바로 물 마시면 안 돼요.”
마법사는 그녀의 팔에 아코렐라의 증폭제 주사를 놓아주며 젖은 천을 건넸다. 마른입만 먼저 적시라는 것이었다.
바르사베는 천막 천장을 바라보며 물었다.
“며칠이나 지났습니까? 러더포드는요?”
“사흘째입니다. 러더포드는 그날 밤, 무사히 생포했습니다. 마침 곧 있으면 잔당들 처형식이 있을 거라고 하더군요. 이안 님도 그쪽으로 가셨고, 폐하를 비롯하여 황궁친위대 대부분이 아기아르 성안에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까. 다행이군요.”
러더포드를 잡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바르사베는 모든 걸 감내할 수 있었다. 온몸이 찢겨나가는 고통도, 전투 당시 겪었던 치욕도, 자신의 모자람을 직면하는 부끄러움까지, 모두 다 말이다.
“몸 상태는 정확히 어떤가요?”
“무엇을 상정한 질문인지 모르겠군요. 일상생활이요, 아니면 전투요?”
“둘 다 궁금합니다.”
“제 생각에 앞으로 전투에서는 제외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워낙 여기저기 찢기고 벌어진 상처가 수두룩합니다. 다만, 현재 황궁친위대 전력이 이전 같지 않은지라 윗분들 판단은 모르겠네요. 일상생활은 뭐,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어찌어찌 될 것 같고요. 설마, 훈련장 가고 그런 걸 일상생활이라 하는 건 아니시지요?”
마법사가 거즈를 갈며 조잘대자, 바르사베는 대꾸 없이 쓰게 웃었다. 보니타를 비롯하여 너무 많은 동료가 죽었다. 자신이 이리 누워 있을 때가 아닌데, 참으로 한심했다.
“아, 그리고 바르사베 대원. 말할 때 뭐가 좀 불편하시진 않습니까?”
“네. 문제없습니다. 왜 그러시죠?”
“아니오, 아닙니다.”
토올룬의 인형술사들이 바르사베 볼 안쪽을 건드린 것 같아서 걱정이었는데, 금방 아물었나 보다.
마법사는 바르사베에게 깨끗한 옷을 건네주며 일어났다.
“좀 쉬시다가 걸을 수 있으면 걸어보십시오. 저는 의사를 데려오겠습니다.”
“네. 고맙습니다.”
천막에 혼자 남은 바르사베는 천천히 옷을 갈아입었다. 여전히 머리가 깨질 것 같았지만, 사지 멀쩡한 곳 없으니 이만한 고통은 당연했다.
한참 기다려도 마법사가 돌아오지 않자, 바르사베는 다리에 힘을 주어 조심스럽게 걸었다.
스윽.
아기아르 안쪽은 처음 와본지라,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주위를 둘러봤다. 저 멀리 무너진 성벽이 보였다.
저기서 그 난리를 쳤던 것이 벌써 사흘 전이구나. 혼자 그리 생각하며 마법사를 찾아 나서려고 할 때였다.
-보인다.
갑작스러운 음성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너무 섬뜩한 느낌이라, 그녀는 반사적으로 뒤를 돌았고, 반가워하며 서 있는 황궁친위대 동료와 마주했다.
“바르사베, 일어났구나? 몸 상태 좋아 보인다.”
“아아, 그래. 미안하다. 오래 누워 있었지.”
“무슨 그런 소리를 해? 근데 왜 여기 나와 있어? 더 안 쉬고?”
‘보인다’라는 말이 저것이었나?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동료의 인사를 환청으로 착각한 것인가? 바르사베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법사님이 안 돌아오시네.”
“아까 급하게 호출받고 나가시던데? 성안에 문제가 있나 봐.”
“무슨?”
“몰라. 러더포드 심문하는 과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보지. 나도 자세히는 못 들었어. 가서 누워 있어. 나도 들어가보려고.”
바르사베는 잠시 고민하곤, 따라나설 것처럼 몸을 돌렸다. 잔당들이라 한다면 분명 자신을 검으로 농락한 놈들일 터. 그들의 최후를 눈으로 보고 싶었다.
“얘가 왜 몸을 이쪽으로 돌리지?”
“같이 가자.”
“뭐래. 방금 일어난 사람이.”
“처형당하는 거, 마검사들 맞지? 나 걔들한테 빚진 거 많거든. 죽기 전에 못 갚으면, 나 속병 나서 다신 검 못 잡는다.”
그러니까 닥치고 가서 말 가져와.
여기저기 성한 곳 없었으나 바르사베는 여전했다. 동료는 한마디 쏘아붙이려다가, 그녀의 고집을 떠올리고는 한발 물러섰다. 그는 마구간에서 쉬고 있던 말의 고삐를 잡아끌며 당부했다.
“가서 보기만 해. 알겠어? 무리하지 말고, 제발.”
* * *
사락.
드넓은 외부 공간, 바람 한 점 불지 않아 침묵이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들리는 것이리라고는 무릎 꿇은 자들의 거친 숨소리와 이안이 서류를 넘기는 소리뿐이다.
바리엘 병사들은 창끝에 긴장을 풀지 않았고, 러더포드는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웃고 있었다. 자신의 처지가 이렇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는 듯,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아직 끝나지 않은 헛된 희망을 품고서 말이다.
“물어볼 것이 워낙에 산더미라 그 시작점을 찾는 것이 일이다. 러더포드. 절벽 아래 라로메디아의 서식지가 있음을 알고 있었나?”
이안이 던진 화두에, 카티마코가 펜을 잡았다.
절벽 아래로 내려가 라로메디아에 대해 조사했으나, 특별히 크게 밝혀진 것은 없었다. 다만, 라로메디아가 서식지를 만든 지 얼마 안 된 것 같다는 의견만이 조심스레 올라왔을 뿐이다.
“…신께서 알려주셨다.”
“지하신이?”
균열 아래 있을 지하신이, 가이아를 밟고 있는 러더포드에게 지시를 내렸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지하신이 가이아로 제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균열을 일으키려 한다는 것은 기정사실. 이 말인즉, 균열이란 매개 없이는 그럴 수 없단 뜻이다.
이안은 턱을 괸 채 미간을 찌푸렸다.
“의문이다. 러더포드, 너는 대체 어떻게 지하신과 연결되어 있는 것인가?”
“…지하신은 토올룬의 신흥종교다.”
“잘 알고 있군. 네놈이 따르고 숭배하는 ‘신이란 것’의 정체가 바로 그것이다.”
러더포드가 아랫입술을 깨물며 이안을 노려보았지만, 이안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생각에 잠긴 것이다.
지하신은 대체 어떻게 러더포드에게 직접 명령을 내릴 수 있었을까? 그게 가능하다면, 러더포드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에게도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 아닌가?
러더포드라서 가능한 것인지, 아니면 지하신만의 능력이 따로 있는 것인지 알 필요가 있었다.
“토올룬과는 원래부터 교류가 있었나?”
“…….”
“인형술사들을 지원받은 것도 그렇고, 10년 전- 그러니까 러더포드 네놈이 직접 움직이기 전 거처로 삼았던 곳 역시 토올룬으로 파악된다. 어떤 과정을 통하여 연이 닿았으며, 체류하는 동안 무슨 일을 했는지 낱낱이 이르라.”
이안이 담담하게 물었으나, 러더포드는 물론 그 누구도 대답할 기미가 없어 보였다.
몇 초간의 침묵 후, 이안은 손짓으로 병사들에게 지시했다. 그들의 검은 러더포드가 아닌, 그 옆의 마검사들에게 날아들었다.
촤아악!
“으아악!”
“말을 할 줄 아는군. 한데 어찌하여 답이 없는지, 내 그것 또한 궁금하다. 러더포드가 대답하지 않으면 네놈들이 피를 흘릴 것이니, 원한다면 계속 침묵을 유지하라. 나는 네놈들의 비명으로 그걸 깨겠다.”
“토, 토올룬에서 러더포드를 처, 처음 만났습니다!”
병사가 다시 한번 검을 치켜들자, 한 마검사가 두려움을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대상단주가 호위 구한다는 소문을 듣고 갔는데, 그게 저자였습니다. 저는 거의 마, 마지막쯤에 합류해서 과정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때는 이미 여기저기서 힘 좀 쓴다는 자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바리엘을 적으로 돌려 세상을 어지럽히려고 한 대가가, 그저 돈이었는가?”
이안이 한심하다는 듯 되묻자, 사내의 눈동자가 조금씩 흔들렸다.
“처음에는 그랬는데, 분명 처음에는- 예, 그랬습니다.”
“그렇다면 나중에는?”
“나중에는-”
그가 말을 잇지 못하며 횡설수설하자, 지켜보고 있던 제이럿이 다가와 이안에게 속삭였다.
“일종의 세뇌 아니겠습니까. 제가 북쪽 마물 지대에서 당했던 것처럼, 지하신에 의해 거짓된 충성을 마음에 새겼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당위성이 부족합니다.”
“동감하는 바입니다. 아무리 러더포드에게 이드갈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었다고 한들, 그것만으로 바리엘을 적대시하는 건 어리석은 일입니다.”
당시 이드갈은 마법사와 마검사를 제어하는 수단. 마력을 지닌 자들을 완전히 파훼할 힘이긴 했다만, 두려움만으로 지나친 충성을 얻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토올룬에 균열이 있었나? 지하신의 음성을 들었던 것으로 보아, 역시 러더포드 자체가 놈과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는데.’
“이안 베로시온이라고 했나.”
한참이나 말이 없던 러더포드가 입을 뗐다.
“미래의 바리엘에서, 베로시온의 이름을 잇는 자라고.”
“그렇다.”
러더포드는 몸을 들썩이며 웃음을 흘렸다.
저놈이 드디어 미쳤군. 다들 인상을 찌푸리며 그를 주시했고, 이안은 무엇이든 지껄여보라는 듯 턱을 살짝 들어 올렸다.
“그런 자가 어찌 이런 자리에 있는 것인가? 미래의 바리엘에는 베로시온이라는 이름이 필요 없게 되어버린 것인가? 그렇다면 그것은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니, 웃음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구나.”
무슨 이유로 이곳에 온지 모르겠지만, 그 사실 자체만으로 바리엘에 문제가 있다는 걸 방증하는 셈이다. 미래의 바리엘에 황제가 필요 없어지거나, 혹은 지금의 바리엘에 이안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뜻이니까.
러더포드는 긴 머리칼을 내려트리며 중얼거렸다.
“가만 보니까, 이안. 너는 나와 참 많이 닮았다.”
영혼이 몸을 옮긴 것, 이드갈을 만들어내는 것, 신이라 불리는 존재와 연결되어 있는 것, 심연을 다녀온 것 등등.
이안의 눈빛이 담백한 것과 달리, 주변인들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불손한 말에는 대가가 필요한 법입니다, 이안 님. 손가락을 자르시지요.”
“흐익!”
비명을 내지른 건 러더포드의 마검사들이었다.
하지만 이안은 도리어 그의 도발에서 단서를 얻었다.
‘서자 이안의 몸으로 들어서면서 이드갈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처럼, 반도르도 러더포드의 몸에 들어서면서 이드갈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러더포드의 존재 자체가 지하신의 작품이라는 뜻.
“서자 이안과 브라츠에서 만났을 때, 러더포드 네놈은 분명 이드갈을 쉬이 만들 수 없었다. 하지만 서자 이안이 도와줌으로써 타개했어.”
마물을 억제하고 균열을 봉인하고자 했던 신의 의도와, 마법사를 제압해 바리엘을 무너트리려 했던 지하신의 의도가 완벽하게 맞물린 것이다.
그로 인해 서자 이안은 러더포드에게 이드갈을 주었다. 자신이 베릭의 혈을 뚫어주었던 것처럼.
‘하지만 신께서는 서자 이안의 존재가 계속 브라츠에 있는 것이 옳다 여겼다. 그러니 대상단인 러더포드와 계약 마법을 맺어 유예 기간을 얻어낸 것이겠지. 그러지 않았더라면, 상황상 서자 이안은 납치되어 러더포드에 의해 목줄이 채워졌을 터.’
“…내가 황궁으로 갈 것이라고 일렀나? 충성을 맹세하여 황궁 쪽으로 길을 터놓을 것이니, 당장은 어미와 함께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원한다면 마법으로 계약을 맺어도 좋다고, 그리 이른 게로군.”
대답을 바란 물음이 아니었다. 결국 적기에 이안이 빙의하여 목숨을 부지했고, 적기에 황궁으로 들어가 아르센을 처치했으며, 또 적기에 러더포드와 재회하여 심연으로 들어갔으니까 말이다.
아마 앞으로 일어날 일들 모두, 역사의 한 페이지에서는 ‘적기’로 해석되겠지.
“그게 계약 내용이었군.”
이안은 알겠다는 듯 끄덕이며 서류를 넘겼다.
“다음은 버고스의 왕, 다몬에 대한 물음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