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590
제590화. 검은 씨앗
“제가 알고 있습니다!”
이안의 물음이 끝나기 무섭게 마검사 한 명이 고래고래 소리쳤다. 그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자신이 알고 있노라 연신 중얼거렸다.
이번에도 러더포드가 대답 대신 침묵을 택한다면, 필시 검에 베인 자신들의 비명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될 것임을 사내는 잘 알았다. 곧 있으면 목이 베일 것인데, 그깟 팔다리 좀 잘리는 걸 무에 그리 두려워하는지, 원.
이를 멀리서 지켜보던 트웰러는 혀를 쯧쯧 차며, 군인의 기개가 부족하다 탄식했다.
“내가 무엇을 물을 줄 알고.”
섣부르게 나선 것이라면 그것 또한 네놈에게 고통일 것이라. 이안은 신중히 대답하길 바란다는 눈빛으로 물었고, 사내는 말을 조심히 더듬었다.
“다, 다몬 왕의 반쪽짜리 혈육들이 어디로 갔는지, 왜, 왜 갔는지를 궁금해하시는 것 아닙니까? 제가 그 운반을 다, 담당했습니다.”
“운반을?”
“다몬 왕의 혈육은, 토올룬의 마산타르라는 지역의 신전에서 처리되었습니다. 장면을 직접 목격한 건 아니지만, 순백의 신전 바닥이 피로 흥건하게 물드는 건 예삿일이 아니었지요. 그리고 그, 저기, 시체는 신전 내에서 소각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잠깐.”
이안이 미간을 찌푸리며 손을 들었다. 너무 갑작스럽게 날것의 증언이 들려온 탓이다.
“제물로 삼았다는 뜻이로군.”
“신전에서 죽임을 당했으니, 예, 그렇겠지요.”
토올룬에 있는 신전이라면 지하신을 직접 숭배하는 곳일 수도 있겠다.
구체적인 장소는 알아냈으니, 이제는 그 제물이 무엇을 의미하고, 무엇을 가져오려 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다몬의 회귀 외, 숨겨진 무언가를 말이다.
“안쪽까지는 외부인이 출입할 수 없었습니다.”
다몬은 자신의 회귀가 러더포드 덕이라고 했다. 정확히는, 러더포드 뒤에 있는 지하신의 힘 덕이겠지만, 다몬이 그것까지 알지는 못했으리라.
아무튼, 마산티르 신전에서 다몬의 회귀와 관련된 무언가가 행해졌을 가능성이 컸다.
‘뭘까.’
이안의 눈매가 가늘어지자, 러더포드가 고개를 들었다. 방금 무언가를 막 깨달은 낯빛이다. 러더포드는 입가에 미소를 걸더니, 이안에게 물었다.
“혹시 말이다.”
“…….”
“100년 후의 황제 자리에서 폐위되었나?”
그의 발언은 동요를 가져왔다. 이안에게 직접 사정을 전해 들은 자들은 물론이고, 아무것도 모른 채 서 있는 병사들 사이에도 큰 반응이 일어났다.
이안을 표정을 살피던 러더포드가 즐거워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안색을 밝혔다.
“그렇군! 베로시온의 이름이 필요 없어진 게 아니라, 네놈이 필요 없어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 황제를 어찌 이 자리로 데려온단 말인가? 100년 전의 바리엘이 귀중하다면, 100년 후의 바리엘도 귀중할 터인데!”
“닥쳐라, 이놈!”
듣다 못 한 트웰러가 천둥 같은 고함을 질러댔지만, 러더포드를 막진 못했다. 이안은 계속해보라는 듯 다리를 꼬고서 침묵했다.
“내 친히 일러주마. 바리엘은 앞으로 끝없는 쇠락의 길만 걸을 것이다. 그 시작점을 막아내고자 이리 시간을 거스른 거겠지만, 글쎄다. 이미 초침은 움직이기 시작했으니, 과연 그 누가 이를 거스를 수 있을까?”
이안 베로시온? 100년 후의 바리엘에서조차 버림받은 황제 주제에?
러더포드가 실성한 듯 웃어대자, 트웰러와 제이럿 등 이안의 사정을 아는 자들이 그의 눈치를 살폈다. 황제이시다. 다른 자도 아니고, 존엄으로는 감히 올려다볼 자가 없는 귀하신 분. 한데, 저런 모욕이라니.
“이안 경-”
“초침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건, 이미 내 손을 떠나간 무언가가 사건을 굴리는 데 핵심 되는 사안이라는 뜻이겠지.”
이안은 잠시 기다려달라는 듯, 다시 한번 트웰러의 말을 저지하며 중얼거렸다. 복잡한 머릿속을 차근차근 정리하는 말투였다.
‘마산타르 신전을 언급하는 와중, 러더포드는 무언가를 떠올렸고 이내 저리 일렀다. 그렇다면… 내 손을 떠난 사안이란, 다몬 형제자매들의 죽음을 뜻하는 것일 터.’
다몬은 형제자매를 지하신에게 넘겨주는 대신, 세 번째 삶을 얻었다. 하지만, 그게 진짜인지는 아직 모른다. 다몬은 계속 죽고자 노력했으나, 아직까지 2회 차의 삶에 머물러 있기에.
러더포드의 사고 흐름을 다시금 짐작해보았다. 다몬 형제자매들의 죽음이 바리엘의 쇠락을 가져올 것이고, 나아가 이안 베로시온의 폐위를 점치도록 했다…….
“잠깐.”
이안은 바리엘에서 가져온 서류를 거칠게 뒤적이더니, 티모시의 기록을 확인했다.
다몬이 처음으로 반쪽짜리 형제자매들을 찾아내서 러더포드에게 전해준 것은 그가 열셋 때의 일.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이었다.
‘20년 전이면-’
진이 태어날 때와 맞물리는 시기 아니던가?
검은 씨앗이다. 희생된 버고스 왕가의 자손들은 신전에서 검은 씨앗으로 변모하여 바리엘 황실에 심어진 것이다. 그중 하나가 바로 아르센.
이안은 문득, 자신이 즉위하기 전 100년간 기울었던 황실을 떠올렸다.
‘잔인한 성정으로 바리엘에 피바람을 몰고 와 결국 황후의 손에 의해 숙청당했던 자, 태생부터 허약하여 즉위 후 세 달 만에 승하한 자, 사치와 낭비가 심하여 국고를 단번에 바닥냈던 자, 사리 분별이 어두워 충신들을 모두 처단한 자…….’
너무 많았다. 대성한 바리엘을 바닥으로 끌어내린 자들이 너무도 많아서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그들 모두가 아르센처럼 마물이었는지 아닌지는 장담하기 어려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황실에 어둠을 가져왔다는 것.
“…황실은 신의 축복을 받고 있어.”
그러니 그 안에 검은 씨앗을 심어두려면 특별한 피가 필요했다. 왕가(王家)라는, 신성하고 귀중한 피가 말이다.
때마침 바리엘과 접경한 곳에 동생에게 죽임당한, 그래서 왕위 찬탈을 위해 특별한 힘을 갈구하던 사내가 있었다. 다몬 런크비스라는 사내가.
모든 상황이 맞물렸다.
지하신이 버고스를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럼, 나 또한 그 과정의 일부였나?’
이안에게 검은 씨앗이란, 크로니다. 씨앗은 거대한 고목으로 자라나 이안의 숨통을 조였고, 결국 잘라내지 못한 채 죽임을 당했다.
모든 게, 조금씩 윤곽을 보이는 듯하다.
“저기, 이안 님.”
그때, 마법사 한 명이 이안에게 다가와 속삭였다.
“문제가 좀 있습니다. 방금 지도를 확인했는데, 토올룬에는 마산타르라는 지역이 없습니다.”
그 말에 이안이 마검사를 돌아봤다. 영문도 모른 채 이안의 차가운 시선과 마주한 그는 고개를 푹 숙이며 사지를 떨어댔다.
“토올룬의 마산타르라 하였지.”
“예? 예예, 그, 그렇습니다.”
“한데, 토올룬에는 마산타르라는 곳이 없다고 하는데.”
“무슨, 무슨 말씀입니까? 잘 찾아보십시오! 분명히 있습니다. 수도 서쪽, 마차로 사흘 정도 거리입니다. 그리고 저기, 버고스에서 올라가면 열흘에서 보름 정도 걸리고요.”
“목숨을 두고서 장난치는 자처럼 보이지는 않는데.”
“아니라니까요! 진짜입니다! 지도, 지도 저 주십시오!”
사내는 억울해하며 펄쩍 뛰어댔다. 버고스와 마산타르를 오간 게 몇 번인데, 그런 말을 한단 말인가?
마법사가 그에게 지도를 건넸고, 사내는 긴장한 채 지명을 읽어댔다.
“어…. 부, 분명 이쯤인데.”
그가 가리킨 곳은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여백이었다. 사막인지, 산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마법사가 날카롭게 노려보자, 마검사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라며 이안에게 호소했다.
“여기가 확실합니다! 마른 나무숲인데, 입구에 문지기 마을이 있습니다. 신전을 수호하며 사는 사람들이지요. 이자들 안내를 받아 한 시간 정도 숲을 가로질러 들어가면 신전이 나옵니다!”
“이안 님. 혹시 모르니까 물에 담갔다 빼죠.”
“뭐를? 나를?”
“그럼, 지도를 담갔다 빼리?”
바리엘과 토올룬은 워낙 교류가 없다 보니 아무리 황실에서 제작한 지도라 한들 완전하지 않을 수 있다. 무엇보다 타국에 자국의 지형 정보를 모두 내어주는 경우가 없기 때문이다.
아기아르 성에서 토올룬 지도를 찾을 수 있다면 좋겠다만, 아직까지는 별다른 성과가 없다.
“되었다.”
진술이 구체적이고 번복되는 점이 없다는 근거 아래, 이안은 사내가 진실을 이르고 있다 판단했다. 그는 아코렐라에게 가까이 다가오라 손짓한 다음, 입가를 가리고서 속삭였다.
“아코렐라. 실담물약 제조에 얼마나 걸리지?”
“흐음. 이틀 안쪽이면 충분합니다.”
“저자는 따로 지하 감옥에 투옥하라. 실담물약을 통해 진실을 가린 다음, 따로 처형하겠다.”
“네, 알겠습니다.”
아코렐라의 지시에 마법사들의 사내의 팔을 붙잡았다. 영락없이 머리가 떨어지는 줄 알았는데, 살려주는 건가? 정말로? 사내는 유예기간이 고작 이틀인 것도 모르고, 기뻐하며 이안 쪽으로 허리를 숙였다.
“오늘 처형식에서 그대의 이름을 제한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 모습을 본 다른 마검사들은 깊이 고민했다. 특별한 비밀도 아니고 그저 아는 것을 털어놓았을 뿐인데 죽음을 면했다. 자신들도 이렇게 가만히 있을 게 아니라 어떤 말이라도 덧붙여야 하나? 삶을 구걸할 수만 있다면, 그 무슨 일인들 대수겠나?
“러더포드. 우리가 마법 계약을 맺었던 그날, 넌 서자 이안에게 실라스크를 주었다. 그건 어디서 났고, 왜 준 것이지?”
“네 잘난 신께 직접 물어보아라.”
그리하면 모든 게 쉬이 풀릴 터인데, 왜 자꾸 자신에게 묻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그쪽 신께서는 응답이 없으신가? 러더포드가 그리 대꾸하자, 다른 마검사가 말을 더했다.
“그때 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요. 지지 않는 붉은 꽃은 토올룬에서 가끔가다 구할 수 있습니다. 서식지가 근처에 있는 건지, 알음알음 물건이 퍼지더라고요.”
“저도 대답하겠습니다! 뭐든 물어보십시오!”
“예, 살려만 주신다면 그게 대수입니까. 다 이르겠습니다. 한 점의 거짓 없이.”
러더포드는 단숨에 변심한 부하들을 힐끔거렸다. 낭패다. 자신과 있을 때는 목숨도 바칠 수 있노라 맹세하던 자들인데, 이안과 함께 있으면서 신의 영향력이 희미해진 것 같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며칠 전 밤, 절벽 인근에서 모두 뛰어내리라 하는 건데.
“맞습니다! 아는 건 뭐든지요!”
“동맹국인 루스웨나 쪽 얘기를 듣고 싶다.”
“이드갈입니다. 바리엘이 균열 억제기로 이드갈을 전체 관리하니까 루스웨나에서는 그에 관한 반감이 굉장히 심했거든요. 예전과 달리 황궁 소속 마법사들도 많아졌는데 이드갈이나 마력봉인석을 전적으로 제한당하니, 왕실에서도 위험 부담이 크지 않습니까?”
“루스웨나가 어째서 러더포드와 손잡았는지는 알고 있다. 루스웨나에서 지원해준 흑갑옷이 이전과 조금 다르다는 증언이 있으니, 이에 관해 아는 자가 있나?”
“흑갑옷이요? 거, 거기까지는-”
“클리포포드랑 전쟁 준비가 한창이었습니다. 버고스랑 바리엘이 북쪽에 있는 동안, 자연스럽게 남쪽 패권 싸움을 준비하려던 것이었겠지요. 그때 전쟁 우위를 위해서 품질 좋은 흑갑옷은 모두 루스웨나에 잔류한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마지막으로 연락 왔을 때, 하완국과도 접촉 중이라 했습니다! 엘더트 왕이 그쪽 왕이랑 담화를 진행할 것이라 하던데, 그 이후로는 모르겠습니다.”
하완국 내부 사정도 묻고 싶었지만, 섣불리 언급할 수는 없었다. 국운을 가르게 될 샤티마 수상의 반란이 예정되어 있기에, 여기서 발언하기에는 듣는 귀가 너무 많았다.
스윽.
이안이 서류를 넘기며 남은 심문을 계속 이어가려고 할 때였다. 별안간 러더포드가 갑자기 각혈을 시작했고, 그 핏물의 양이 심상치 않아 절로 인상이 찌푸러졌다.
“왜 저러는가?”
“모르겠습니다. 외부적인 요인은 아닌 것 같은데요.”
“라로메디아 부작용 아닐까요? 환각 효과는 없어졌지만, 부작용은 계속 남아 있을 수 있으니까요.”
“커헉-”
“가지가지 하는군. 치유 마법사를 불러와라.”
이안의 지시에 시종들이 급히 움직였고, 러더포드는 숨을 거칠게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직감적으로 생명이 꺼져감을 느낀 것이다.
하지만 기꺼이, 심지어는 기쁘게 감내할 수 있었으니-
-끝없이 쏟아내라. 너의 피가 바리엘을 피로 물들일 것이다.
신께서 내려주신 마지막 음성 때문이었다.
곧이어 치유 마법사가 도착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르사베 역시 입성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