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591
제591화. 멀리서 행하는 공격
“바르사베!”
아기아르 성에 있던 황궁친위대원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그녀의 이름을 기쁘게 불렀다.
너도 영광 찾아 떠나는 줄 알았다, 이렇게 일어나니 참으로 반갑다, 등등. 서로를 껴안고서 쏟아내는 인사말에는 눈물이 묻어 있었다.
“몸은 좀 괜찮아? 움직여도 돼?”
“왜 여기까지 왔어? 계속 누워서 쉬지.”
“오늘이 러더포드 잔당들 처형식이라고 해서. 그거 안 보면 속이 뒤집힐 것 같더라고. 그리고 며칠 누워 있었더니 몸이 도리어 찌뿌둥하다. 이럴 때일수록 움직이는 게 맞아.”
“미쳤나 봐, 진짜. 제정신 아니지?”
“안쪽에서 진행 중인가?”
바르사베는 괜한 걱정 하지 말라는 듯 손을 내저으며 물었고, 동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전, 치유 마법사가 급하게 든 것으로 보아 무슨 일이 생긴 것 같긴 한데 특별한 지시 사항이 없어 대기 중이었다.
“제이럿 대장도 참관 중이시다.”
“어디? 저쪽? 지금 들어가도 되나?”
“어. 거기 가면 다른 애들도 있어. 우리는 근무 중이라 못 움직이거든?”
“그래. 뺑이 잘 치시고. 나중에 보자.”
헤어짐의 인사로 주먹을 가볍게 맞부딪치자, 그들은 흰 미소를 지었다. 아무리 바리엘을 위해 목숨을 내놓았다하더라도, 살아 있음을 감사히 여기는 순간이 있다. 지금처럼.
끼이익.
바르사베는 동료와 함께 바깥으로 통하는 외부 복도로 들어섰다.
아기아르 성 뒤편, 훈련장으로 사용하던 공간 같은데 처형식을 올리기에 적합했다. 단차 있는 관중석에서는 그들의 죽음을 한눈에 볼 수 있었고, 마른 모래는 핏물을 정리하기에 쉬웠으니까.
무엇보다, 훈련과 고문의 중간 그 어딘가에 사용되는 도구들이 즐비하여 진행에 용이했다.
“저기 있네.”
동료가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키자, 바르사베의 시선도 그를 따라갔다.
실신한 것처럼 보이는 러더포드와 그를 치유하는 마법사. 그리고 무덤덤하게 앉아서는 그 모습을 지켜보는 이안. 바르사베가 전체적인 풍경을 눈으로 담는 순간이었다.
지끈-!
“아.”
또다. 또다시 엄습하는 낯선 고통. 뒤통수가 텅 비어버린 것처럼 공허하고, 동시에 신경을 짓누르는 아픔이 함께 뒤섞였다.
바르사베가 난간을 붙잡고 신음하자, 동료가 화들짝 놀라며 그녀를 부축했다.
“바르사베. 왜 그래? 괜찮아?”
“머리가 좀, 이상해.”
“어떤 식으로? 잠깐만 여기 앉아 있어. 내려가서 사정 말씀드리고 치유 마법사 바로 모셔올게.”
대체 어떤 부상이기에 이렇게 불쾌한 고통을 가져온단 말인가? 바르사베는 지금껏 참으로 많은 아픔을 겪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녀가 무언가를 이르려 했으나, 동료는 듣지 못한 채 재빨리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바르사베는 주저앉아 난간만 붙잡고서 이를 꽉 깨물었다.
-옆을 볼래?
매혹적인 음색이다. 누군가 귓가에 후우- 하고 바람 부는 기분에, 바르사베의 고개가 저절로 돌아갔다.
무섭다. 이제는 아픔보다 두렵고 무서운 감정이 바르사베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정신이 온전한 채로 제 몸을 빼앗긴 기분. 그래. 이것은 온전한 자신을 강탈당했을 때의 상실감과 절망이다.
“이, 이게…….”
흔들리는 눈동자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위엄 있게 일렬로 서 있는 병사들. 장관에게 무언가를 보고하는 장교, 제이럿 대장,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는 시종들, 서류 한 뭉치 들고서 정리하는 마법사. 그리고 이안과 러더포드…….
광경 세세한 부분 하나하나가 바르사베의 머릿속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 같았다. 텅 비어버린 그 미지의 공간으로 말이다.
이에 바르사베가 이마를 짚는 순간-
반짝.
허공에서 가느다란 무언가가 반짝였다.
이 낯선 기운에 러더포드를 내려다보고 있던 이안은 시선을 돌렸고, 이내 청명한 하늘 아래 반짝이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마법사들과 아기아르 전투 당시 보았던-
피잉!
촤아악! 퍼엉!
“으앗! 뭐, 뭐지?”
“이안 님? 괜찮으십니까?”
“방금 그거잖아! 인형술사 놈들이 했던 거!”
의문의 그 공격이다.
그것은 이안의 머리를 노리듯 단숨에 내려꽂혔고, 이안은 고개를 살짝 옆으로 꺾어 기습을 피했다. 적중에 실패한 공격은 아기아르 훈련장 벽을 단숨에 반파시켰다. 그대로 맞았더라면, 머리가 아니라 몸 전체가 터졌으리라.
“인형술사? 살아남은 놈이 있었나?”
“놈들이라면 원거리 공격이 가능합니다만, 이안 님! 지시를 내려주십시오!”
이안은 자리에서 일어나 공격이 떨어진 쪽을 돌아봤다. 자신의 배를 꿰었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게 크고 강력한 힘이다. 그때는 날카로운 바늘이 복부를 뚫었다면, 저것은 거대한 철시(鐵矢)가 날아든 것 같다.
‘베릭의 증언대로라면, 인형술사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하게 구현된 배경과 대상자라 칭하는 인형. 전투 중이 아닌데도 내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해 공격했다면, 둘 중 하나다. 아기아르 성 안쪽 배경과 정확히 일치하는 ‘무대’를 지니고 있든가, 그게 아니라면…….’
직접 보고 있는 거겠지.
도망치던 인형술사에게 전자의 경우는 거의 희박했다. 뭔가를 챙길 새 없이 급하게 후퇴했으니까 말이다. 이는 절벽 인근에서 발견한 인형술사의 시체들로도 확인 가능한 부분이다. 그들은 토올룬 통행증과 소정의 금화 외에는 빈손이었다.
‘그렇다면, 직접 보고 있다는 뜻.’
러더포드를 통해서인가? 아니면 그 옆에 무릎 꿇은 마검사들? 은신술이라면 자신이 먼저 알아차렸을 것인데.
따악!
이안은 손가락을 튕기며 병사들을 물러나게 했다. 그리고 이어서 러더포드와 잔당들에게 검은 천을 씌웠다. 마법사들이 어찌하면 좋을지 물으려고 하자, 이안은 입을 가리며 침묵하라 신호했다.
“집중해. 또 올 수도 있다.”
“아, 예예.”
마법사들은 마력을 불러내어 금방이라도 보호막을 펼칠 수 있도록 준비했고, 트웰러와 제이럿도 검을 빼 들어 자세를 낮췄다. 황궁친위대원들은 모두 성 안쪽으로 달려가 황제의 안위를 확인하고자 했다.
반짝!
“옵니다! 이안 님!”
촤아아악!
누군가의 외침보다 이안의 반응이 더 빨랐다. 왼편에서 이안의 심장을 노려 떨어진 것이다. 이안은 이드갈 보호막을 만들어내 문제없이 파훼했다.
채앵!
“속도가 좀 느리네요. 장벽에서 보았던 것보다.”
“어, 정신 집중하니까 보일 정도네. 저번 거는 진짜 눈 깜빡할 사이에 내리박혔는데.”
“혹시 주체와의 거리에 따라 조금 달라지는 걸까?”
“이전의 인형술사는 아기아르 성벽에 안에 있었으니까 비교적 가까운 거리였지. 지금은 좀 멀리 떨어져 있어서 속도가 떨어진 거 아닐까 싶어.”
“이안 님! 들으셨습니까? 일리가 있다 여겨지는데요.”
“예, 저도 동의합니다. 아기아르 성벽 안쪽에 인형술사가 숨어 있을 가능성은 없습니다. 이건 바깥쪽, 그러니까 더 먼 곳에서 행하는 것 같습니다.”
“장소를 옮기시지요.”
“그래. 나도 그것이 옳다 여겨지지만-”
혹시나 인형술사가 모종의 능력으로 이곳들 들여다보고 있다면, 장소를 옮기는 게 도리어 독이 될 터였다. 시선을 차단하지 않은 상태라면 성안 곳곳의 구조와 심지어는 바리엘 전군의 현황을 그대로 전달해주는 꼴일 터이니 말이다.
“크흑, 윽!”
검은 천을 뒤집어 쓴 러더포드가 피 섞인 기침을 연신 해댔다. 죽은 인형술사와 마지막까지 함께 있었던 자. 지금으로는 이놈과 잔당들이 그 매개체라 의심되지만-
한 명 더 있다.
마지막까지 인형술사들과 접촉했던 자가.
“…바르사베.”
“예? 바르사베 대원은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바르사베가 성에 들었는가?”
“어, 잠시만요. 알아보고 오겠습니다.”
“아니오! 나가실 필요 없습니다! 바르사베 와 있습니다! 아까 정신을 차렸는데 처형식을 보고자 걸음 했습니다!”
밑으로 내려오던 마검사가 대신 일러주며 위쪽 관중석을 올려다봤다. 이쪽에서는 각도상 보이지 않지만, 이안이 있는 곳에서는 분명 보일 것이다. 그는 응답하라며 연신 바르사베를 불렀다.
“바르사베! 아파서 대답하기 힘들겠지만, 어서!”
“…그대 위쪽에는 아무도 없다.”
“예? 그럴 리가요. 제가 방금 내려왔는데요.”
황궁친위대원이 당황해하며 훈련장 한가운데로 뛰어왔다. 그러곤 넋을 잃었다. 정말이었다. 있어야 할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다들 어리둥절해하며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파악하는 와중, 이안이 소리쳤다.
“바르사베를 찾아와라!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아야 한다. 혹여 저항한다면 명예롭게 죽여라.”
“아…….”
“서둘러! 폐하의 위치와 모습을, 바르사베가 보아서는 안 된다.”
명령은 알아듣겠는데, 그 의미를 이해하기까지 수 초가 걸렸다. 마법사의 안색이 희게 변했고, 트웰러와 제이럿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는 문을 박차고 단숨에 달려나갔다.
타닥타닥!
콰앙!
“바르사베!”
“바르사베 대원! 어디 있습니까?!”
의식마저 빼앗겼나? 바르사베는 더 이상 바르사베가 아닌 걸까? 다들 머릿속이 어지러운 상태로 성 안쪽을 샅샅이 수색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황제가 있는 응접실 쪽으로 달렸지만 말이다.
“크흐흐, 흐윽.”
러더포드의 신음이 웃음으로 변했다. 신께서 이르신 게 이런 것이었구나. 어떻게 된 영문인지는 자세히 모르겠다만, 알 필요 있나? 그저 바르사베라는 자가 황제와 마주하게 되면, 모든 게 끝난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것이지.
이안은 단상을 내려가 러더포드의 목을 한 손으로 잡아쥐었다.
“러더포드.”
“커헉!”
“인형술사에 대해서, 아니, 토올룬에 대해 새기고 있는 것을 빠짐없이 보여라.”
“왜? 죽이기라도 할 것인가? 고맙군. 그럼 나는 다음 육신으로 네놈을 찾아오겠다. 혹여 다음이 없다 한들, 나는 기뻐 웃겠지. 그토록 원하던 영혼의 안식을 찾았으니까.”
“영혼의 안식?”
헛된 소리에 이안이 피식 웃었다. 검은 천을 뒤집어쓴 탓에 실루엣만 겨우 보였지만, 러더포드는 이안의 표정을 그려낼 수 있었다. 비웃음이다. 그것도 진심 어린.
“신께 여쭈어 보아라. 네놈에게 그런 것이 허락될지.”
다몬의 다음 생과 러더포드의 환생에 대한 실마리를 잡았다. 지하신을 없애고, 토올룬에 가 검은 씨앗을 모조리 거두어들인다면, 두 사람에 대한 반복된 환생은 끊어낼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영혼이 품고 있는 죄의 무게는 신께서 확인해주실 터.
털썩.
이안이 손아귀를 풀자, 러더포드의 몸뚱이가 힘없이 쓰러졌다. 의지와 마력만으로 기절시킨 것이다. 놀란 병사들에게 이안은 고갯짓했다.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려라.”
지이잉! 지잉!
이안의 이드갈이 러더포드와 그 잔당들 주위로 솟아오르며 보호막을 만들어냈다. 그 어디서 애먼 공격이 날아오더라도, 자신의 뜻 없인 러더포드의 숨을 가져갈 수 없을 것이라는 의지였다.
* * *
“하아, 하아…….”
바르사베는 구역감을 느끼며 발길 닿는 대로 달리고 있었다. 머릿속의 무언가를 떨쳐내고 싶은 마음에 온몸이 살려달라 비명을 질러댔지만 멈출 수 없었다. 멈추면, 의문의 존재에게 정말로 잡아먹힐 것 같아서.
타닥타닥!
처형식 탓에 조용했던 성 안쪽이 점점 소란스러워지는 듯했다. 무엇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알 만한 기력도 없고.
눈물을 줄줄 흘리며 달려가던 바르사베가 저 멀리, 황궁친위대원들을 발견했다. 자신의 동료, 친우, 가족, 그리고 존재 이유 자체인 자들. 바르사베는 도와달라며, 이것 좀 어떻게 해달라며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바르사베가 이쪽으로 왔어?”
“어금니? 걔 일어났대? 근데 왜 여기서 찾아?”
“폐하! 이쪽입니다! 장소를 옮기십시오!”
“무슨 일이지, 베릭?”
“몰라요. 어금니가 뭐 어쨌다고?”
“자세한 건 나중에-”
“바르사베가 폐하와 마주해서는-”
촤아악!
대화를 인지함과 동시에 바르사베의 몸이 모퉁이를 돌았다. 자신이 황제 폐하를 보아서는 안 되는구나. 하지만 생각과 다르게 몸은 관성대로 움직였고, 곧 황궁친위대원들의 실색한 낯과 시선을 마주했다.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는 것 같다. 하나둘 얼굴을 인지했고, 이어서 베릭, 그리고…….
‘황제 폐하.’
진의 왼쪽 얼굴이 서서히 보이려고 할 때였다.
타앗!
“바르사베.”
제이럿 대장이 뒤에서 바르사베의 목을 끌어당겼고, 반대쪽 손으로 그녀의 눈을 가렸다. 바르사베는 균형을 잃은 채 뒤로 쓰러졌으며, 친위대원들이 검을 빼 들었다.
피잉!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진의 뒤쪽으로 나 있던 창문이 깨지고 말았다. 목표물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공격이었다.
“…죄송, 죄송합니다. 몰랐습니다. 저는 정말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자신의 몸에 문제가 생겼다. 바르사베는 눈물을 펑펑 쏟아냈고, 제이럿은 그런 그녀의 머리를 더욱 세게 껴안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