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592
제592화. 실을 봉합하다
“이안 님. 아스타나의 인형술사, 카티마코가 도착했습니다.”
“들라.”
이안의 허락에 문이 좌우로 열렸다.
급하게 연락을 받고 온 터라 카티마코의 숨이 꽤 거칠었다. 그는 이게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듯 주위를 둘러봤으나, 누구도 섣불리 입 여는 자가 없다. 결박당하여 눈이 가려진 채 훌쩍이고 있는 여자와 그를 둘러싼 사람들 모두.
“무슨 일이십니까?”
“이쪽은 바르사베. 황궁친위대 소속 마검사인데, 아무래도 토올룬의 인형술사에게 주술이 걸린 듯하오.”
“주술이요? 잠시만, 실례합니다.”
“바르사베의 눈으로 대상자를 파악해, 공격까지 이루어졌소. 예상하기로는 토올룬 본토에서부터 날아든 게 아닌가 싶은데.”
“…강력하게 결속되어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얘기입니다. 어떤 방식의 공격이었습니까?”
“그때, 아기아르 전투 당시 아스타나인들이 당했던 의문의 공격과 같은 것이었다. 다만, 훨씬 강하고 묵직한 힘이었지.”
카티마코는 그제야 굳게 친 커튼의 용도를 알아챘다. 혹여라도 위치가 노출되지 않도록 임시방편으로 친 게다.
그는 등불을 가져와 달라 손짓했고, 이에 친위대원 하나가 불붙인 촛대를 가져와 카티마코 앞으로 들어주었다.
“카티마코. 러더포드 생포 당시 인형술사는 모두 죽었다. 즉 바르사베에게 주술을 건 자도 죽었음이 명백한데, 어째서 주술의 효과가 사라지지 않은 건지 모르겠군.”
“주술 종류에 따라 다릅니다. 우선 확인 먼저 해보겠습니다. 바르사베 대원, 입을 벌려보십시오. 인형술사가 만든 상처가 입 안에 있다고요.”
“흐윽…….”
연신 훌쩍이던 바르사베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동료들은 무너지는 마음에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카티마코는 입 안쪽 상처를 자세히 들여다보더니, 이내 주머니에서 작은 칼을 꺼냈다.
“…시야가 전달되는 것이 사실입니까?”
“흐윽, 예. 그렇습니다. 뒤통수가 텅 비어버린 느낌입니다. 그러니까, 제 머리가 제 것이 아니고 누군가 들여다보는 구멍 같이 여겨집니다.”
“우선 다행이라 할 점은 대원은 정신이 온전하다는 것입니다. 인형술을 떠나서, 오감이라 이르는 감각이 모두 지배되면 그다음으로는 인격이 망가집니다. 바르사베 대원, 혹여 명령이나 의지와 달리 움직인 적 있습니까?”
“아니요. 없습니다.”
카티마코가 칼끝으로 바르사베 입 안 상처를 건드렸다. 인형술사들이 실 꿴 자국이 보였다.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산 사람에게 인형술을 행하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당사자인 인형술사가 죽었기에 지배가 되다 만 것 같습니다만…….”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가 잠시 망설이며 말끝을 흐리자, 황궁친위대원들이 착잡한 심경으로 이마를 문질렀다. 혹여 바르사베가 듣는 것 또한 상대에게 전달될까 봐 말을 아끼고 있는 것이다.
“바르사베 대원. 또 다른 이상 증세는요?”
“누군가의 음성이 간혹가다 들립니다. ‘보인다’라는 감탄 정도인데, 아까는 옆을 보라는 식으로 회유하기도 했습니다. 저도 모르게 따르긴 했는데, 무의식적으로 움직인 건 아니고, 귓가에 음성이 너무 생생해서 놀라 돌아봤습니다.”
“흐음. 그렇군요.”
카티마코는 바르사베의 입 안을 자세히 살펴보더니, 이내 꿰인 실 하나를 칼끝으로 툭툭 건드렸다. 이미 그녀의 신체 일부가 된 것처럼 단단히 얽혀 있다. 그는 바르사베에게 양해를 구하며 중얼거렸다.
“우선 뜯어낼 수 있는 실은 모두 뜯어낼 것인데, 괜찮겠습니까? 조금 아픕니다.”
“물론입니다. 하나 남김없이 모두 잘라내 주십시오.”
그는 대답 대신 곧장 행했다. 의자 손잡이에 묶인 바르사베의 팔이 움찔거렸으나, 그뿐이다. 그녀는 손등 뼈가 희게 튀어나올 정도로 꽉 주먹 쥐며 아픔을 삼켜냈다. 고통스러운 비명은 수치라는 듯, 신음 하나 흘리지 않는 모습이다.
이를 보던 친위대원들은 고개를 돌리거나 입술을 질끈 깨물었고, 카티마코는 꽤 수월하게 잘리는 실들을 살피며 일렀다.
“인형술 중에서도 아주 어렵고 위험해서 금기시되는 주술이 있습니다. ‘이중괴뢰(二重傀儡)’라 불리는 것인데, 말 그대로 인형술을 겹쳐서 사용하는 것입니다. 주술자가 죽었음에도 효과가 사라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이것일 가능성이 큽니다. 또 다른 주술자가 있는 것이지요.”
“주술을 풀 가능성은?”
“있지요. 어느 주술이나 거는 법이 있다면 푸는 법도 있기 마련이니까요. 특히 인형술사는 대상자를 형상화한 ‘인형’으로 상대를 조종하기 때문에, 필시 핵심 되는 물건이 있습니다. 그걸 파괴하면 자연스레 주술에서 벗어날 것입니다.”
이안은 미간을 가볍게 찌푸렸다. 그 말인즉, 바르사베와 연결된, 토올룬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인형술사를 찾아내는 수밖에 없다는 것 아닌가? 지금 당장 행할 수 없는 방법인지라 곤란했다.
“다른 방법도 있습니다. 바르사베 대원의 경우 감각적인 지배만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것만 처리하면 연결고리를 끊어낼 수도 있습니다.”
시각을 포기하라는 뜻이다.
함께 듣고 있는 황궁친위대원들이 격렬하게 나서서 반대했다.
“안 됩니다! 절대 그럴 수는 없습니다!”
“검사에게 눈을 포기하라니요. 안 될 일입니다!”
“…다들 자중하라.”
“하지만 제이럿 대장!”
“조용히 하지 못할까.”
제이럿 대장의 나지막한 경고에 등골이 서늘해진 카티마코는 흠칫 뒤를 돌아봤다. 나름 수술 중인데 저런 소란이라니, 쯧쯧. 그가 다시 칼을 바로잡자, 바르사베가 덜덜 떨며 속삭였다.
“…괜찮습니다.”
“뭐?”
“바르사베!”
“제가 보는 것이 황제 폐하와 바리엘에 위협을 가져온다면… 차라리 영원한 어둠 속에서 살겠습니다. 세상의 온갖 찬란한 빛보다, 저에게는 그것이 더 아름다운 삶일 것입니다…….”
안대 밑으로 눈물이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지만, 바르사베의 음성엔 흔들림이 없었다.
친위대원들 모두 안타까워하며 어떠한 말도 꺼내지 못했고, 제이럿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말았다. 참혹하고, 원통하다.
“안 돼.”
그때, 베릭이 침묵을 깨며 딱 잘라 부정했다.
“푸는 법이 있다는데 왜 눈을 포기해? 그리고 지금 황궁친위대는 피해가 커서 사람 하나하나가 귀하다. 어금니. 지금 상황에서 너마저 잃으면, 우리 진짜 힘들다.”
“그래, 맞아! 베릭 말이 옳다. 바르사베 네가 어떻게 되든, 황제 폐하의 안위에 문제가 생기는 건 똑같아. 그러니까 제발 쉽게 포기하지 말자? 응? 주술을 풀 수 있다잖아.”
“너무 많은 동료를 떠나보냈다. 이런 걸로 너를 포기할 수는 없어.”
“바르사베, 그만 울고, 제발.”
안대 아래로 끝도 없이 토도독 떨어지는 눈물방울, 그것이 아니었다면 사람들은 바르사베가 울고 있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제이럿이 낮은 목소리로 이안을 불렀다.
“이안 장관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황궁친위대는 바르사베를 살리고자 하지만, 현재 전력의 핵심인 마법부에서 반대한다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들은 긴장한 낯으로 이안의 대답을 기다렸다.
“위치를 파악하는 것만으로 적이 황제 폐하를 공격할 수 있다는 건, 상당한 위험 요소입니다.”
이안이 나지막이 대답하자, 바르사베가 각오했다는 듯 손잡이를 꽉 잡았다.
“하지만 그것은, 이곳이 아기아르라 그렇습니다.”
인형과 배경, 둘 중 하나라도 존재하지 않으면 공격이 불가하다. 아기아르는 토올룬 인형술사들이 직접 지원 왔던 곳이니 지형지물에 대한 공유가 가능했고, 무대를 만드는 데 있어 무리가 없었을 터였다.
하지만 그 밖으로 벗어난다면?
아기아르 바깥에 있어도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을까?
허허벌판 대지까지 갈 것도 없다. 성벽만 넘어도, 정보는 흘러가되 공격까지 이어지지는 못할 터.
“카티마코, 보는 것 외 다른 감각은 전달되지 않는 게 확실한가?”
“예, 지금 상태를 보아서는 그렇습니다. 이놈들, 급하긴 급했나 봅니다. 아주 엉망으로 처치해서 전이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천운 중의 천운이지요. 시각 쪽은 실이 단단해 끊어낼 수 없지만요.”
보는 것 외, 듣고 말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는 진단에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안 장관님. 이제 마무리하겠습니다? 이것만 마저 끊으면 저쪽에서 바르사베 대원에게 하는 말 같은 건 들리지 않을 겁니다.”
“잠깐만요!”
소리친 건 바르사베였다. 그녀는 어깨로 턱 아래 맺힌 눈물을 훔쳐내며 물었다.
“그건 그냥 두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우리도 그걸 통해서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다른 문제 없이 들리기만 하는 거라면, 저는 그리하고 싶습니다.”
“뭐, 판단하는 대로.”
카티마코가 어깨를 으쓱거리자, 이안도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위험 부담이 없다면 굳이 상대에서 이쪽으로 오는 말을 막을 필요가 없다.
카티마코는 가져온 가방에서 약초 따위를 꺼내더니, 그녀의 볼 안쪽에 덧대며 마지막 조치를 준비했다.
‘바르사베가 보는 것이 적에게도 보인다라.’
이안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잠시 고민했다. 상당히 위험하지만, 이는 반대로 잘만 이용한다면 큰 무기가 될 수도 있을 게다.
처치가 끝났는지, 카티마코가 이마의 땀을 손등으로 닦아내며 몸을 일으켰다.
“일단 끝났습니다. 혹여라도 끊어지지 않도록 잘 봉합했습니다.”
“수고했네. 바르사베, 그대는 아기아르에 있는 동안 계속 안대를 착용하라. 황궁친위대에서는 이에 대한 관리 감독을 철저히 해야 할 것이오. 제이럿 대장.”
“예, 이안 장관님.”
“잘 해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아.”
물론이라고, 바르사베를 온전하게 지킬 수만 있다면 그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노라고, 제이럿은 가볍게 묵례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때, 카티마코가 소매를 정리하며 이안을 불렀다.
“저기, 괜찮으시다면 잠깐 얘기를 더 나누시지요. 안 그래도 아스타나에서 연락이 와서요. 토올룬 인형술사에 대해 말씀 나누면 좋겠습니다.”
“물론이오. 먼저 나가 계시오. 응접실로 모셔라.”
“예, 이쪽입니다.”
카티마코가 먼저 밖으로 나가고 이안도 그 뒤를 따르자, 황궁친위대원들이 일제히 바르사베 쪽으로 달려가 그녀의 결박을 풀어주었다. 그러고는 자유로운 손으로 서로의 팔을 붙잡고 토닥이며 위로의 말을 나누었다.
“바르사베, 괜찮을 거다. 우리가 네 눈 찾아올게.”
“그래. 토올룬으로 가면 당한 거 배로 쳐서 갚아줄 거다. 바르사베. 너무 울지 마라.”
카티마코의 처치 탓에 대답할 수 없는 바르사베는 그저 웃기만 했다. 그녀는 의지를 다지듯 안대를 더욱 단단하게 조였고, 이내 앞으로 주먹을 내밀었다.
투욱.
그러자 동료들이 가볍게 그녀와 주먹을 맞부딪쳤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바르사베가 유일하게 따라갈 길이었다.
끼이익.
쿠웅.
한편, 이안은 마법사들과 함께 상황을 정리하며 응접실로 향했다. 너무나 큰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기분이다.
“황제 폐하께서 검진을 마치셨다고 합니다.”
“특별한 이상은 없으시고?”
“예, 유리 파편이 튀면서 살짝 긁히신 듯한데, 그 외 크게 다치신 곳은 없습니다. 그리고 이안 님, 이건 방금 바리엘 마법부에서 올라온 서신입니다. 로만드로 님이 급히 보내셨습니다.”
“로만드로 님이?”
무슨 일이지? 황궁에 문제가 생겼다면 마법부가 아니라 황제에게 직접 내용이 전달되었을 터. 이는 마법부나 이안 자신과 관련된 내용일 가능성이 컸다.
이안은 응접실로 향하며 편지를 뜯었고, 이내 걸음을 멈췄다.
“…이안 님? 왜 그러십니까?”
마법사들이 이안의 안색을 살피며 물었으나, 대답은 없었다. 다만, 눈빛이 차갑게 식어 내리는 것으로 보아 긍정적인 내용은 아닐 것이라 판단할 뿐.
이안은 한참이나 가만 서서 편지 내용을 읽어 내리더니, 단칼에 종이를 접어 품에 넣었다.
‘…필리아가 실종되었다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