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593
제593화. 카티마코의 예상
티잉!
“에구.”
인형 줄 끊어지는 소리에, 토올룬의 왕 쿠마샤가 눈을 살짝 떴다.
하얀 민무늬 인형이 줄 하나에 겨우 매달린 채 버티는 중이었다. 그것은 마검사의 두 눈과 연결된 마지막 실이었으니.
아기아르 전투에 소수민족인 아스타나가 참전했다는 정보를 듣긴 했는데, 개중 인형술사가 섞여 있을 줄은 몰랐다.
“괜찮으십니까?”
“아쉽게 되었네. 눈을 제외한 다른 줄을 모두 끊어버렸어. 당분간 계속 안대 하고 다닐 것 같으니, 버리는 패가 되려나?”
“아직 모를 일입니다. 어쨌거나 연결되어 있지 않습니까? 필시 유용하게 쓰일 때가 올 것입니다.”
“그렇지? 황궁친위대 한 명을 묶어 놓은 것에 의의를 둘까? 그나저나, 소문대로더군. 바리엘 황제는 은발에 벽안이었어. 반쯤밖에 보이지 않아서 상처가 얼마나 큰지는 못 봤지만.”
쿠마샤가 기지개를 쭈욱 켜며 주위를 둘러봤다.
주변으로 거대한 아기아르 전경이 축소되어 펼쳐져 있었다. 구조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벽돌색과 나무까지 최대한 유사하게 구현되어 있다.
그 한가운데 앉아 있는 모습이란,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거인과 같았다. 아이는 허리를 숙이더니, 박살 난 창문 틈에 끼워진 장대 바늘을 빼 들었다.
“딱 1초만 더 있었더라면 끝낼 수 있었는데.”
“아직 때가 아닌가 봅니다.”
“그런가? 그리고 마법부 장관, 이안 히엘로라고 했었지? 생각보다 훨씬 어려 보여서 놀랐어.”
“그쪽도 소문대로입니까? 금발에 녹안이라 하던데요.”
“으응. 맞아. 아주 화사하고 어여쁜 것이, 사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고왔다.”
아이의 깔깔거리는 웃음이 거대한 홀을 외롭게 울렸다. 인간의 형상을 한 것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데, 호응해주는 자는 없다. 옆에서 말 시중을 들고 있던 신하조차 고개를 푹 숙인 채 못 들은 척 침묵했다.
“…….”
쿠마샤는 소리 내어 웃거나, 울어서는 아니 된다. 살아 있는 토올룬의 신이자 절대자이기 때문에, 그 존재가 감정을 보이면 세상이 어지러워진다는 신화 때문이었다.
아이는 색소 옅은 분홍빛 눈동자로 주위를 둘러보더니, 성큼성큼 걸어가 제일 먼저 손에 잡힌 인형을 집어들었다.
푸욱!
그러고는 있는 힘껏, 단검으로 그 안면과 복부를 무자비하게 찔러댔다. 솜이 터지며 묶여 있던 실이 끊어지자, 이어서 다른 인형, 또 다른 인형, 그리고 또…….
“하아, 하아…….”
아이의 뒤쪽으로 넝마가 된 인형 수십 개가 널브러졌다. 배가 찢기고 목이 부러진, 혹은 팔다리가 뜯긴 채 쓰레기가 되어버린 존재 모를 인형들. 저것과 연결되었던 자들은, 까닭조차 모른 채 죽어갔을 테다.
신하의 눈짓에 시종들이 들어와 망가진 인형들을 치웠고, 쿠마샤는 분이 좀 풀렸는지 인형 더미 쪽으로 몸을 내던졌다.
‘답답해.’
분명 궁 밖에 있을 때보다는 안락한 삶이었지만, 그럴수록 쿠마샤가 감당할 수 없는 답답함이 분노를 타고 일렁거렸다. 쿠마샤는 품에 한가득 인형을 끌어안고서 물었다.
“배경 제작은 잘 되어가고 있어?”
“예, 문제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바리엘군이 인근에 접근하기 전 완성될 것이니, 너무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오래전부터 착수해온 위업이다. 자신만이 아니라 이전의 쿠마샤, 그리고 그 이전, 이전의 쿠마샤까지- 지하에 ‘토올룬 축소 배경’을 만들기 위해 헌신했다.
그것이 만들어지면 쿠마샤 그들은 정말이지, 토올룬 이 땅에서는 신이 되는 것이다. 앉은 자리에서 모든 곳을 들여다볼 수 있고, 즉시 천벌을 내릴 수도 있으며, 방금처럼 인간에게 영문 모를 죽음을 선사할 수도 있다.
“서둘러 시간이 갔으면 좋겠다.”
쿠마샤는 그리 중얼거리며 인형에 얼굴을 묻었다. 어서 지하의 거대 배경이 완공되기를, 그리고 바리엘의 대군이 토올룬으로 진격해 오기를. 하여, 심심하고 지루한 일상에 핏빛 어린 즐거움을 선사해주길.
똑똑.
“실례합니다. 전하.”
그때, 바깥에서 시종의 인기척이 들렸다. 고개만 까딱 들어서 문 쪽을 쳐다보자, 시종이 문을 연 채로 손만 들이밀었다. 귀족 이하의 천한 것들은 쿠마샤를 직접 눈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법 때문이었다.
신하가 대신하여 금쟁반을 받아들었다.
“바리엘에서 온 서신이군요.”
“읽어주라. 난 지금 아무것도 하기 싫어.”
“예, 전하.”
사락.
신하는 짧은 문장을 가볍게 읽어내리더니, 희소식이라는 듯 미소를 지었다.
“마법부 장관 이안 히엘로의 모친, 필리아를 확보했다는 소식입니다. 아직 바리엘을 벗어나지는 못했다고 하는군요.”
오호. 그것참 듣기 좋은 소식이다. 쿠마샤는 발끝을 까딱거리며 중얼거렸다.
“어서 토올룬으로 데려오라 이르거라. 이안 히엘로가 어미를 닮았던 거라면, 내 정말로 기대되는군. 어느 인형이 좋을까?”
이거? 아니면 저거? 아이는 인형 몇 개를 휙휙 내던지더니, 밑에 깔려 있던 금발의 녹안 인형을 찾아냈다. 아주 알맞은 모습이다.
방금까지 짜증을 부려댔던 쿠마샤의 안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녹아들었다.
* * *
“토올룬이라는 나라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나라의 형태와 조금 다릅니다.”
카티마코는 차를 홀짝거리며 이안을 살폈다. 분명 어두운 실내를 나서서 환한 곳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이상하게 그의 안색은 더욱 차갑고 어두워 보였다. 이상하다? 복도를 걸어오는 그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카티마코의 서두에 이안은 대충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왕이 선출되는 나라라고요.”
“예? 정말요? 그런 게 가능합니까?”
“토올룬인들은 그들이 믿는 신이 인간 여자아이의 몸으로 현현하여 토올룬을 다스린다고 믿는다 하였다. 인간의 눈으로 신의 존재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몇 가지 충족 조건이 있는데, 그리 찾아낸 아이를 왕의 자리에 올려 ‘쿠마샤’라는 이름을 선사한다고.”
“맞습니다, 이안 님. 정확히 알고 계십니다. 이제껏 모든 토올룬의 왕은 쿠마샤라 불리고 있습니다. 뭐, 중간중간 권력을 찬탈하려는 자들로 인해 문제가 생기긴 했었지만, 지금 그건 중요한 게 아니지요.”
카티마코는 찻잔을 한쪽으로 치우며 말을 이었다.
“바르사베 대원에게 술식을 걸었던 자들 말입니다. 그자들 분명 토올룬에서 온 지원군이라 들었던 것 같은데, 맞습니까?”
“그렇다. 러더포드와 그 잔당들을 심문하는 과정에서 확실히 밝혀진 사안이다.”
“그렇다면, 하나 알아두실 필요가 있겠습니다. 제 예상으로는 토올룬의 왕, 그러니까 쿠마샤가 인형술사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토올룬의 왕이 술사라고?
뜻밖의 말에 이안이 눈썹을 까딱거렸다. 그들만의 기준을 통과하여 왕이 된 자이니, 분명 특별한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 짐작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 기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단순히 종교적인 해석상의 특별함인지, 아니면 능력 자체의 특별함인지에 대해서는 더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예, 우선 아까 말씀드린 중첩괴뢰 말입니다. 본디 누군가의 힘을 이어서 받는다는 건, 적어도 그와 동등한 힘을 지니고 있거나, 아니면 더 월등한 능력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원리는 이해했다.”
“바그반이라는 인형술사 총책임자가 있었지만, 죽었습니다. 그럼에도 중첩괴뢰가 유효했다는 것은, 그의 능력을 상회하는 또다른 술사가 토올룬에 주둔하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하지만 그것이 토올룬의 왕이라는 확증은 없지 않습니까? 바그반과 마찬가지로 왕의 신하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가만 듣고 있던 한 마법사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손 들어 질문하자, 카티마코는 고개를 저었다.
“중첩괴뢰는 생각보다 훨씬 강력한 힘입니다. 마법과 비교하자면, 금기의 마법과 거의 동급이지요. 그런 힘을 다루는 자를 하나도 아니고 둘씩이나 휘하에 둘 왕이, 세상에 있을까요? 제아무리 종교적 믿음 위에 세워진 왕이라 한들… 글쎄요.”
다른 술사도 아닌 인형술사다. 사람의 몸과 마음을 조종하여 다룰 수 있는. 권력 중심에 있는 자라면, 꼭 견제하고 경계할 수밖에 없는 성질을 가진 자들이 아닌가?
“그리고 토올룬에 그 정도 힘을 지닌 자가 있었더라면, 분명 외부에 말이 들었을 것입니다.”
“나라 자체가 폐쇄적이라 모를 수도 있는 일 아닐까요?”
“폐쇄적이지만, 왕권 자체는 너무도 강력하고 굳건한 나라입니다. 양분해서 존재하기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이라 생각됩니다만. 그리고 결정적으로, 토올룬 왕이 인형술사라 생각한 부분은 따로 있습니다.”
스윽.
카티마코는 기억을 더듬으며 뭔가를 적어 내리기 시작했다.
“바리엘과 달리 아스타나는 토올룬과 상대적으로 가깝습니다. 그리고 저를 비롯하여 학문적 정진을 위해 토올룬에 방문했던 자들이 몇 있지요. 물론 왕을 알현하지는 못했지만, 그때 주워들었던 쿠마샤의 조건 중 일부입니다.”
-1. 신의 의지를 그대로 전달하는 깨끗한 음성.
2. 세상의 작은 일부분이라도 크게 볼 수 있는 시각.
3. 백성을 통솔할 수 있는 경이로운 힘…….
그 아래 적힌 것들은 전부 외형적인 기준이었다.
이안은 문장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가 상당히 묘하다는 걸 바로 알아챘다.
“첫 번째부터 세 번째까지는 인형술사의 자질이라 치부해도 무리가 없군.”
다른 때였다면 그저 종교적 가치를 바탕으로 세워졌나 싶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인형술사에 혈안이 된 상황에서 모든 해석이 그쪽으로 통하고 있었다.
“맞습니다. 저도 의미 부여를 따로 하지는 않았는데, 문득 떠올려 생각해보니 묘합니다. 이런저런 정황을 따져보았을 때, 아무래도 토올룬의 왕이 인형술사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마법사들은 팔짱을 끼거나, 턱을 괴며 생각에 잠겼다. 어차피 격파할 거, 그쪽 왕이 인형술사든 인형쟁이든 사실 상관은 없었다.
다만, 문제 되는 건 바르사베 대원의 시각. 왕과 연관된 게 확실하다면 외교적인 방법으로도 방책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인형술사의 흔적을 찾는 방법은?”
“어렵지 않습니다. 인형술사들은 인형을 가까이 두니 눈에 잘 띄지요. 베릭이라는 작자도 바그반을 바로 수상한 자라 확신하지 않았습니까?”
“혹, 그것 외에 마력처럼 흔적을 남긴다거나 그런 것은? 조사하는 방식에 대해 조언할 건 없나?”
“글쎄요. 정확히 어떤 걸 말씀하시는지 모르겠네요.”
“필리아가 실종되었다.”
째앵!
찻잔 옮기던 마법사가 잔을 깨먹었다. 동시에 다른 자들도 마찬가지. 그대로 굳어버린 채 눈만 크게 깜빡이며 숨 쉬는 것조차 잊었다.
카티마코는 갑자기 변한 마법사들의 반응에 당황하며 고개를 좌우로 돌렸다.
“피, 필리아가 누구입니까?”
“내 어머니.”
“아아. 어머니. 예? 어머니가 실종되셨다고요? 바리엘에 계실 것 아닙니까?”
“그렇다. 그래서 더욱 의문이지. 버고스와 루스웨나 그리고 하완까지, 인근에 접하여 의심되는 나라들은 모두 그럴 여력이 없고, 한낱 장관의 어미를 납치할 만한 이유도 없어. 차라리 황궁에 행동을 취하면 취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곳은 어디인가?
이안의 어미를 노릴 법한 세력은 지하신 쪽이다. 그놈의 근거지라 볼 수 있는 토올룬이 제일 의심되는 건 자연스러운 추론이었다.
“피, 필리아 님이! 납치되셨다고요오오!”
“미치겠네, 이게 무슨 일입니까? 정녕 사실입니까? 이안 님! 필리아 님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요?”
“이런 개 미친놈들이! 감히 건드릴 분을 건드려야지! 그분은, 어?! 하늘에서 내려오신 천사였다고!”
“이 새끼, 그때 그 일 아직도 마음에 품고 있네. 이안 님, 이 자식부터 족쳐야 합니다.”
“아니이! 다들 잡소리 할 때가 아니라고. 로만드로 님은요? 괜찮으시답니까?”
“괜찮으니까 서신을 보냈겠지?”
“와아, 어떡하지요? 이안 님! 어떡하지요?”
마법사들은 마치 자신의 어미에게 문제라도 생긴 것처럼 소란을 피워댔다. 어지간해서는 당황하지 않을 것 같던 헤일조차 코를 찡그리며 궐련을 깨물었다.
이안은 다들 자중하라며 손짓했고, 카티마코에게 재차 물었다.
“해서, 알아볼 방법이 필요한데. 도움 줄 만한 것이 있겠는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