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595
제595화. 머리통
인근 도시에서 몰려든 전령들은 무너진 아기아르 장벽을 바라보며 황제의 답신을 기다렸다. 곧 있으면 자신들의 도시 또한 저리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등골이 서늘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기다림이 길어지니, 긴장감은 지루함으로 변질되어 버리고 말았다.
생각보다 너무 길어지는 것 아닌가? 아무리 중대 사안이라 할지라도, 저 안쪽에는 바리엘의 주요 결정권자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합의까지 불필요한 과정이 필요치 않다는 뜻이었다.
“…해가 하늘 끝자락에 걸리면 떠나는 게 좋겠소.”
“나도 그리 생각하오. 어둠은 언제나 위험하지.”
“무운을 빌겠네.”
“그쪽도. 부디 장벽을 끝까지 사수하시길.”
“버고스인으로서 정의를 지켜봅시다.”
전령들이 짧게 인사를 나누는 사이, 장벽 위쪽으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마법사들이 하늘길을 통해 장벽 너머로 넘어온 것이다.
손에 들린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를 본 전령들 중 하나가 큰 소리로 외쳤다.
“우리는 답신 받을 준비가 되어 있소!”
그러니 순순히 원하는 것을 내놓아주시길 바라오, 하는 의미가 명백히 담긴 외침이다.
마법사는 고도를 낮추더니, 그들에게 따라 들어오라는 듯 고갯짓했다.
“안으로 드시오.”
“…안으로?”
“마법부 장관께서 직접 답하실 것이오. 러더포드와 얽혀 있는 바리엘의 사정이 깊으니, 이는 서면으로 전달하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이 있으셨소. 뭐, 두렵다면 강권하지는 않겠다만, 바리엘의 입장을 들고 가는 게 그들의 사명이지 않은가?”
갈 사람은 가도 좋다. 하지만 바리엘의 입장을 파악하지 못했으니, 앞으로 어떤 식으로든 생존하기에는 어려우리라.
말뜻을 알아들은 전령들은 저도 모르게 말고삐를 세게 붙잡았고, 서로 눈치만 살폈다. 그중 제일 먼저 앞장서 마법사를 따라나선 것은 아기아르 동남쪽의 푸르파토 측 전령이었다.
“크흠.”
전령들은 하나둘씩 천천히 줄지어, 무너진 아기아르 장벽을 넘어 안쪽으로 들어섰다.
생각보다 조용하고 평화롭다 여긴 것도 잠시, 그들은 저 멀리 효시된 여러 개의 머리통을 발견했다.
“…저건!”
“아쉽게 되었소.”
“무슨 뜻이지?”
마법사는 그쪽으로 천천히 날아가며 일렀다.
“너무 늦었다는 의미요. 자세한 건 장관님께서 직접 설명해주실 것이니, 아기아르 주민들의 삶이나 눈여겨 담으시오. 바리엘은 그들을 인도적으로 대하고 있소.”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머리통들은 참으로 끔찍했다. 눈을 뜬 채로 죽은 자도 있었고, 울부짖는 얼굴로 숨 거둔 자도 있었으며, 또 누군가는 고요하게 마지막을 맞이했다.
하나같이 잘린 목 단면에서 핏물이 뚝뚝 떨어졌다. 분명 벤 지 얼마 안 된 것들이다.
“이쪽입니다.”
‘쳐죽일 것들 같으니. 성 주인 다 되었군.’
안내하는 모습이 꼭 원래부터 이곳이 바리엘의 것이었다는 듯 느껴졌다.
전령들은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고, 경계심을 바로 세운 채 입성했다. 바리엘의 전력 상태도 아군에게 전달할 유용한 정보였으니.
‘생각보다 다친 사람들이 많지 않아.’
‘낯빛도 좋아 보이는군. 먹을 것이 풍족한가?’
‘헉! 다른 마법사들이다. 마법사 수가 상당해.’
똑똑.
“이안 장관님. 전령들을 데려왔습니다.”
“들라.”
장벽 안에 들어온 순간부터, 전령들의 예상은 계속해서 조금씩 빗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당혹스럽게 놀라지는 않았으리라. 그들을 맞이한 자가, 이제 겨우 열여섯쯤 되어 보이는 어린 소년이었으니까.
그는 고갯짓으로 앞쪽을 가리키더니, 모두에게 앉으라 허락했다.
“각자 레젠데, 비에이라, 자르, 푸르파토에서 온 전령이라고.”
“예, 그렇습니다.”
“그대들이 무얼 원하는지, 내 확인하였다. 하지만 어쩌지? 너무 늦어버렸는데.”
“늦어버렸다 하심은…….”
“러더포드는 잔당들과 함께 처단되었다. 아기아르 주민들에게 들어보면 알겠지만, 우리는 오늘 이 시각을 처형식으로 정해놓았었다. 답신이 늦은 것은 그대들이지.”
협상 결렬이다. 바리엘 측에서는 자신들의 제안을 이행하지 못할 것이다. 의도되었든 아니든, 결과는 분명했다.
전령들의 낯이 어두워지자, 이안이 손을 탁탁 튕겼다.
“러더포드의 얼굴을 알고 있나?”
“아니요. 알지 못합니다.”
그 말에, 이안이 미간을 찌푸리며 신호했다. 그러자 한 마법사가 은으로 만든 함을 가져와 이안 옆에 섰다.
“아무도? 이런. 하면, 시체 확인은 누가 할 것인가?”
“우선 주군께 현 상황을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러더포드는 이미 죽었으니, 바리엘은 다른 방식으로 그대들과 화합하고 싶다는 뜻을 전해주게. 그리고 한 가지 덧붙이자면 말이지-”
스윽.
이안은 그들에게 손수 물 한 잔씩 따라주며 덧붙였다.
“바리엘은 곧 아기아르를 떠나 남하할 것이네. 목적지는 버고스의 수도, 칼라마트. 갈 길이 멀어 조금이라도 수고를 덜고자 하는데, 처형식 같은 사소한 일이 또 발생해 발걸음이 묶이면 되겠는가?”
왕당파를 직접 만날 것이니, 다른 도시들은 섣부르게 끼어들지 말라는 경고였다. 영악하게 머리를 놀려 왕당파 쪽으로 돌아설 계산에 앞서, 바리엘이라는 거대한 상대를 직시하라는 충고이기도 했다. 이를 깨닫지 못한다면, 저 거리의 머리통이 그대들의 도시에도 걸릴 것이니까.
이해한 자들과 그렇지 못한 자들 사이에서 극명한 반응이 일어났다. 전자는 당황스러움을 침묵으로 감추며 분위기를 살폈고, 후자는 정보를 알아내고자 말을 붙여왔다.
“러더포드가 정말 죽었습니까?”
“믿질 않는군. 보여주어라.”
이안이 고개를 옆쪽으로 돌리며 지시하자, 마법사가 함 뚜껑을 열었다.
그 안에 담긴 것은 처참한 모습의 머리통. 훼손되어 얼굴을 알아보기도 힘든 상태였다. 전령들은 소매로 입가를 가리며 헛구역질했고, 이안도 불쾌하다는 듯 미간을 좁혔다.
“시체까지 보여주었으니, 그대들은 더 이상 말을 덧붙여서는 안 될 것이다. 알겠는가?”
친히 일러주는 이안의 말에, 몇몇 전령들은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차라리 보여주지 않았다면 나중에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었을 터인데, 이리 누구인지도 모를 자의 머리통을 보고 말았으니, 바리엘 측에서는 명분을 확보한 셈이었다.
안 되겠다. 여기 계속 있다간 분명 더한 걸 내어주게 되고 말 것이다.
“먼저 일어나 보겠습니다.”
“푸르파토인가?”
“예, 저희가 제일 멀리 있는 터라, 지금 출발하지 않으면 산중에서 밤을 보내게 됩니다. 여럿의 운명이 달린 중대한 소식을 그리 방치하면 안 되겠지요.”
얼마든지, 마음대로 하시라. 이안은 상관없다는 뜻으로 턱을 들어 보였다.
“바리엘이 푸르파토에 머무르는 일이 없길 바라지.”
“…실례하겠습니다.”
전령은 대답 대신 예의 바르게 허리를 숙인 뒤 다급히 방을 나섰다. 다른 전령들도 아차 싶어 그 뒤를 따라 후다닥 나갔다.
모두가 나간 뒤, 시체 머리를 들여다보고 있던 마법사들이 뚜껑을 거칠게 닫으며 문 쪽을 쳐다봤다.
“저것들 고분고분 안 나올 것 같은데, 미리 머릿수 줄여놓는 게 어떻습니까?”
“아오, 그거 뚜껑 제대로 닫아라. 썩은 내 난다.”
“에비! 얼른 갖다 치워. 이안 님 눈 상한다.”
“이안 님, 저대로 보내도 되겠습니까? 몇 놈은 못 알아들은 눈치던데, 경고장이라도 적어서 들려 보내는 게 낫겠습니다.”
이안은 버고스 지도를 천천히 살피더니, 푸르파토 쪽을 짚어냈다. 그러고는 아기아르에서 그쪽으로 갈 수 있는 최단 거리 경로를 확인했다.
“다른 도시들은 갈 것 없겠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인근에서는 푸르파토가 중심 되는 역할을 하고 있을 터. 그리고 전령 또한 판단이 좋고 행동이 침착한 것으로 보아, 그쪽의 전력을 기대할 수 있겠다. 푸르파토만 무사히 통과하면, 수도인 칼라마트까지는 금방일 터.”
“칼라마트까지 가서 왕궁을 점령한다고 한들, 왕당파가 순순히 백기를 들까요?”
“맞습니다. 뭔가 지금 녀석들 머리 굴리는 거 보니까 친바리엘이고 뭐고, 세력 통합할 기세인데요.”
“푸르파토만 잡을 게 아니라, 모두 단단히 정리한 다음 내려가는 게 맞지 않을까요? 아기아르와 푸르파토만 잡고 가기에는 좀 불안합니다.”
“어째서 불안하지?”
“위와 아래, 동시에 밀고 들어오면 버겁지 않습니까.”
당연한 것을 왜 물으신담? 그것 때문에 윗분들 회의에서도 아기아르와 주위를 확실히 매듭짓고 넘어가자 결론 난 것 같은데?
“…왕당파의 아래에도 아군이 있다.”
“예?”
버고스 남쪽에 포진해 있는 왕당파.
그런데 그 아래에도 바리엘이 있다니? 그게 무슨 말이람? 마법사들이 서로 무슨 뜻인지 알겠냐는 듯 쳐다봤지만, 명확한 답을 내놓는 사람이 없었다.
이안은 대답 대신 걱정하지 말라는 듯 소파에서 일어났고, 문 쪽으로 걸음 했다.
“바리엘을 위해 욕보인 시체다. 잘 정리하여 장례를 치러주어라.”
“아, 예예. 물론입니다.”
“어디 가십니까?”
필리아가 사라졌다는 소식을 접한 이후로, 이안의 행동 하나하나가 걱정되었다. 이에 이안은 그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듯.
“지하 감옥.”
끼이익.
쿵.
이안이 나가자, 마법사들은 가만히 서 있다가 소파 위쪽으로 널브러지며 중얼거렸다.
“이안 님 기분, 많이 안 좋아 보이지?”
“어. 눈빛이 다르잖아, 눈빛이.”
“그나저나, 왕당파 쪽으로 사람 보낸 일이 있으신가? 아까 하신 말, 당최 뜻을 모르겠어. ‘왕당파 아래’라고 한 게, 실제 남쪽에 아군이 있다는 건지, 왕당파 내부에 첩자를 숨겨뒀다는 건지, 원.”
“흐음. 바리엘에서 버고스로 간 사람이 있나?”
“바리엘에서 버고스로? 아아, 아!”
한 마법사가 알겠다며 벌떡 일어나자, 다른 마법사들이 옹기종기 몰려들었다. 그는 함 안에 놓인 머리통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제안했다.
“알려주면, 나 저거 처리하는 일에서 빼줘.”
“와씨. 이 새끼, 마법사가 아니라 장사꾼이었네.”
“어. 장사꾼 맞아.”
“그래, 말이나 해봐라. 이안 님, 무슨 뜻인데?”
“장사꾼이라고. 바리엘에서 버고스로 간 사람. 특히 왕당파랑 거래를 자주 했다고 하니까, 가능성 있지.”
마법사들이 눈을 깜빡거리더니, 이내 한 사람을 떠올리곤 중얼거렸다.
“…카일라 영애?”
* * *
이안은 지하 감옥 제일 깊은 곳으로 내려갔다.
차갑고, 서늘하며, 비린 냄새가 가득한 불쾌한 장소. 바닥은 핏물로 엉망이었지만, 어두워서 식별할 수 없었다.
“아오, 시발! 루론석을 두고 왔네!”
“대장, 그거 안 넣어도 된다니까요? 언제부터 루론석을 넣었다고 그래요?”
“효과가 훨씬 좋다고, 띨빡아. 멍청이는 입 다무는 법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쯧. 가서 루론석 구해와!”
“우기는 것도 법으로 금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그걸 어떻게 구해요? 혼자 바리엘 다녀오시든가!”
“문제 있나?”
아코렐라와 그 부하들이 시끄럽게 싸우고 있자, 이안이 다가왔다. 간이 책상을 가져다 놓고서 임시 연구실로 만든 것인데, 재료가 워낙 부실하다 보니 조잡했다.
“이안 님. 루론석 있어요?”
“말이 되는 걸 물어요, 대장. 제발. 그리고 동결물약 만드는 데 루론석 없어도 된다고요. 아, 정말.”
동결(凍結)물약.
산 채로 신체를 멈춰버리게 하는 물약이다. 이전 황제가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사실상 아코렐라도 처음 만드는 것이라 의견 대립이 있었던 게다.
그 전에 쓰인 것은 황제가 웨슬리 전 마법부 장관에게 은밀히 지시한 것이라, 아코렐라의 소관 밖이었다.
“나 해독제는 만든 적 있어! 내 말 들어!”
“동결물약은 만든 적 없잖아요!”
“우씨, 진짜 해보자 이건가?”
“덤벼요. 차라리 맞고 끝내게.”
이안은 소란을 뒤로하고서, 감옥 안쪽을 들여다봤다. 그곳엔 기절한 러더포드가 여전히 사지 결박된 채 누워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