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597
제597화. 푸르파토로 가는 길
“푸르파토? 거기까지 얼마나 걸린대?”
“저번에 그쪽 전령이 말 타고 왔었잖아. 이틀에서 사흘 정도면 도착하지 않을까?”
“그래? 생각보다 가깝군. 푸르파토로 가면 칼라마트까지는 금방이라고 들어서 더 먼 줄 알았거든.”
“아니아니, 푸르파토에서 칼라마트까지도 거리가 꽤 돼. 근데 이동하는 길이 다른 데와 달리 완만하고 편하다 하더라고. 그래서 그런 거야.”
“흐음. 그렇군. 이봐! 반대쪽 제대로 묶었어? 왜 자꾸 풀리지?”
“기다려봐. 확인해볼게.”
아기아르를 떠나 푸르파토로 떠나는 날.
병사들은 마차에 짐을 잔뜩 실어 올리며 바삐 움직였다. 바리엘에서 가져온 보급품은 동나기 시작했지만, 아기아르에서 보충한 덕분에 부피는 더욱 커진 것이다. 힘들긴 해도, 이게 그들의 목숨 줄이라 생각하면 하나라도 더 갖고 갈 수밖에 없다.
“재화로 가치가 있는 건 모두 바리엘로 보낼 것이니 따로 빼놓아라. 보급품을 우선으로 챙길 것이다.”
“예, 알겠습니다!”
“이쪽 물건도 옮깁니까?”
“그건 뒤쪽 마차에! 이안 님은 어디 계시지?”
“안쪽 서재 정리 중이십니다.”
타닥타닥!
어수선하기로는 안쪽도 성 밖과 마찬가지였다. 마법사가 서재 문을 열자, 낡고 찢어진 책들 사이에서 종이를 정리하는 이안이 보였다.
이안은 무슨 일인가 싶어서 고개를 틀었고, 마법사는 바깥쪽을 가리키며 보고했다.
“이안 님. 아스타나의 왕이 잠시 뵙고자 합니다.”
“들라 하라. 위층은 정리가 끝났나?”
“예, 지시하신 대로 마쳤습니다. 드십시오!”
끼이익.
한창 바쁜 바리엘 측과 달리 아스타나 쪽은 여유로워 보였다. 이안은 그 모습을 보며 희게 웃은 다음, 계속해서 짐을 꾸렸다.
“느긋해 보여 부럽군.”
“그리 이르지 마시오. 우리는 바리엘을 대신해서 아기아르에 남는 걸 선택한 것이니. 그 무게감은 절대 느긋하지 않아.”
아기아르를 감시할 목적으로 아스타나가 남는 것은 상당히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최소한의 병력만으로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었고, 라로메디아 연구도 이어갈 수 있었으며, 푸르파토보다 북쪽 지대의 아기아르가 가까워 통신에도 용이했기 때문이다.
하샤가 소파에 앉자, 이안도 하던 것을 마무리하고서 그의 맞은편에 자리했다.
“카티마코는?”
“어젯밤 먼저 떠났소. 그대가 부탁한 것을 위해.”
인형술사의 흔적을 찾아내고, 필리아의 행방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혼자 몸으로 불가능했다. 그는 여기서 라로메디아에 대한 연구도 진행해야 했으니까. 하여, 본국 아스타나로 돌아가 자신과 같이 인형술에 조예가 있는 자들을 모으기 위해 떠난 것이다.
그를 믿고 기다리다 보면, 소식이 들려올 터. 이안은 고맙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대해서는 내 언제고, 이안 히엘로의 이름으로 보답하겠네.”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마법부 장관의 개인적인 일이라며 선을 딱 그어버리는 이안의 말에, 하샤는 웃음을 터트렸다. 지독한 자다. 아마 방금의 발언은 이안 자신도 모르게 나왔을지도 모르겠다.
“일이 다 끝나면 그때 자세히 얘기하도록 하지. 점심 전에 떠난다고 들었는데, 서두르는 게 좋겠어. 이대로 가다간 저녁쯤이나 가능할 것 같네.”
어째서? 마법사의 말대로라면 성 안쪽 정리는 거의 다 끝나가는데? 이안이 의아하게 눈썹을 까딱거렸으나, 하샤는 웃음만 머금을 뿐이었다.
“그럼, 이만. 나중에 또 보자고.”
하샤가 자리를 뜨자, 이안은 창문 밖을 살폈다. 뭔가 문제가 있나 싶었건만, 세상에.
“조금만 더 담자!”
“안 됩니다, 베릭 님. 이대로 가다간 마차 퍼집니다! 아까 보셨잖아요. 이제 진짜, 진짜 안 됩니다.”
“아니, 조금만이라니까? 딱 이 정도만!”
“으아아악! 얹지 마세요! 베릭 님!”
짐이 산더미처럼 쌓인 짐칸으로 고깃덩이를 쑤셔 넣는 베릭이다. 옆에서 병사들이 두 팔 걷고 말렸으나, 그 고집을 꺾을 수 있겠는가. 기어코 빈틈을 찾아내서 고기를 욱여넣었고, 그 탓에 기우뚱, 마차가 옆으로 쓰러졌다.
쿠우웅!
“으아아악! 안 돼!”
“왐마. 마차가 뭐 이렇게 부실해?”
“베릭 님! 제가 안 된다고 했잖아요!”
“괜찮아, 괜찮아. 세우면 되지. 뭘 이런 걸로.”
일반 병사들과 베릭의 처지가 같나? 마차 수리도 하고, 상급자에게 정강이도 얻어맞고, 쏟아진 물건도 주워 담아야 하는데? 천하태평 머리에 꽃밭 그득한 발언에 병사들이 눈물을 머금으며 벽을 짚어댔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이안이 혀를 쯧쯧 차며 마법사를 불렀다.
“베릭 묶어놔.”
“예, 이안 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명령을 받자마자 바람처럼 뛰어나갔다. 이안도 서류를 마저 정리한 다음, 서재를 나와 성 밖을 천천히 둘러봤다. 시끄러운 쪽을 제외하면, 어느 정도 출발 준비가 거의 다 된 듯싶다.
그때, 시선을 사로잡는 움직임이 있었으니-
촤아악! 촤악!
홀로 구석에서 목검을 휘두르고 있는 바르사베다.
이안은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갔고, 훈련에 전념하던 그녀의 몸이 빠르게 틀어졌다. 그러고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안 쪽으로 겨누어지는 검. 여전히 눈을 가리고 있었지만, 상당히 정확했다.
“누구십니까?”
“마법부 장관, 이안 히엘로다.”
“아, 오셨습니까.”
투욱. 바르사베는 검 끝을 내리며 가볍게 묵례했다.
“보이지 않음에도 궤가 정확하군.”
“감사합니다만, 아직 멀었습니다.”
“불편하지는 않나?”
“뭐, 그렇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괜찮습니다. 다들 바쁠 때 혼자 이리 훈련할 수도 있고요. 보이지 않으니 비로소 보이는 것도 있습니다.”
바르사베는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다시 검을 잡을 수 있었다. 아기아르 밖에서는 안대를 벗어도 좋다고 했지만, 바르사베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자신으로 말미암아 바리엘에 위험 요소를 조금도 남겨두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습하면 된다. 훈련하면 된다. 이전과 완전히 같지 않아도, 제 몫은 해낼 수 있게끔. 그 결과, 시각을 제외한 감각으로 상대를 보는 법을 익힌 듯했다.
“…진정한 검사로군.”
안대 아래, 바르사베의 입술이 호를 그렸다. 그때 제이럿이 그녀를 데리러 뒤뜰로 들어왔고, 이안을 발견하자 바로 덧붙였다.
“여기 계셨군요, 장관님. 베릭 좀-”
“묶어두라고 했다.”
“아, 그렇습니까? 감사합니다.”
“출발할 시간인가?”
“예, 바르사베. 너도 준비하자.”
“알겠습니다. 대장.”
밖으로 나가니, 출발 준비를 마친 마차가 한 줄로 길게 늘어져 있었다. 무장한 병사들 또한 대열을 이룬 채 신호를 기다리는 중이다.
이안은 마침 트웰러 장관과 함께 나오는 진을 발견하곤 인사했다.
“이안 경. 출발하면 되겠는가?”
“예, 폐하.”
“그것은?”
진의 물음에 이안의 시선이 오른쪽으로 돌아갔다. 마법부 마차 가운데, 병사들까지 따로 붙여둔 짐마차였다.
동결된 러더포드가 잠들어 있는 곳. 이안은 문제없다는 듯 확신했다.
“아코렐라 대장이 책임지고 만들었습니다. 걱정하실 일 없습니다.”
“고생했다. 토올룬 신전에 도착할 때까지, 경비를 삼엄히 하라. 트웰러, 아스타나와 아기아르에 남는 병사는 총 오백이 맞는가?”
“예, 만티스 장교가 남아 지휘할 것입니다. 또 병사 중 일부를 따로 편성해 바리엘로 전리품을 옮기도록 할 예정입니다.”
진이 마지막으로 계획을 확인한 다음 마차에 올랐다.
그러자 병사들이 바리엘 깃발을 크게 흔들었고, 길 밖에 나와 있던 아기아르 주민들은 복잡한 심경으로 그들을 주시했다. 성벽을 무너트린 적이 떠나간다는 건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황제가 떠나간다는 건 우려스러운 일이다. 이곳에 남은 바리엘 병사들이 어떤 식으로 나올지, 예상할 수 없으니까.
부우우-
부우-
물소뿔이 크게 울렸다. 선두에 선 마차가 천천히 움직였고, 그 뒤로 병사들이 걸음을 떼었다.
“그럼, 아기아르를 잘 부탁하네.”
“걱정하지 마십시오, 장관님.”
“하샤, 고마웠네.”
“떠나가시오, 친우여.”
하샤와 아스타나인들, 그리고 만티스 장교와 그 병사들이 떠나가는 황제에게 허리를 숙이며 예를 표했다.
그렇게 무너진 아기아르 장벽을 넘어 끝없이 펼쳐진 길목으로 나오자, 행렬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타닥타닥!
히이잉!
목적지는 푸르파토.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니, 서두르면 내일 아침 중으로 도착할 수 있을 터. 마법사들이 창공에서 전방을 주시했고, 그들의 행진에는 문제가 없었다. 적어도-
“이안 님! 전방에 숲입니다!”
출발 후, 세 시간까지는 말이다.
한 마법사의 외침에, 이안이 품에서 지도를 꺼내 펼쳤다. 의아하다. 지도에는 별다른 특이 사항이 없었다. 고도가 표기되지 않은 탓도 있지만, 본래 이 근방에는 아무것도 없어야 하는 것이 맞았다. 혹여 이동 거리에 착오가 있나 싶었지만, 마찬가지로 예상 경로에는 숲 따위 없었다.
“잠시 멈추는 게 좋겠습니다. 트웰러 장관님.”
“부대, 정지!”
“정지!”
이안의 제안에 트웰러가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병사들이 말고삐를 잡아당겼고, 곧이어 마차가 완전히 멈췄다.
진이 창문 커튼을 걷으며 고개를 내밀자, 이안이 날아가 상황을 설명했다.
“폐하, 앞쪽에 지도에 없는 숲이 있습니다.”
“숲? 갑자기? 의아하군.”
“예, 아기아르에서 입수한 지도인지라, 분명히 표기되어 있는 게 정상일 터인데요. 아무래도 지도에 문제가 있거나, 아니면 숲 자체가 문제일 수도 있겠습니다. 당장은 파악되는 게 없습니다.”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다. 다른 길은?”
“두 시간 전, 거대한 고목나무를 기억하십니까? 거기서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또 다른 길이 있긴 합니다. 하지만 숲의 크기에 따라 그 길 또한 숲과 이어져 있을 수도 있고, 무엇보다 그쪽 길은 험해서 바리엘 마차 바퀴에 부담이 클 것입니다.”
마차 바퀴를 죄다 바꿔 끼울 수도 없다. 이쪽도 그렇지만, 저쪽도 위험 부담이 있는 건 사실이었다.
이안은 창공에서 보내는 마법사의 신호를 읽어내며 전달했다.
“숲 크기는 그리 크지 않다고 합니다. 위에서 보았을 때는 마차로 10분이면 통과가 가능할 것 같다고 하는데, 정찰을 먼저 보내보심이 어떻습니까? 마차가 통과할 수 있고,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바로 통과하는 게 낫겠다 여겨집니다.”
“흐음. 트웰러 장관. 그대의 뜻은?”
“예, 저도 이안 경과 뜻이 같습니다. 지도에 나와 있지 않아 멈춘 것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문제없이 진입했을 것입니다. 험해 보이지도 않고, 마법사들이 하늘에서 전방을 계속 주시하고 있으니…….”
“좋다. 하면 정찰대를 보내도록 하겠다.”
“마법사 둘을 빠르게 보내겠습니다.”
“그동안 병사들에게는 휴식을 주도록 하라.”
“예, 폐하.”
타앗!
이안은 하늘에서 대기하고 있던 마법사들에게 손짓으로 신호했다. 숲 쪽을 둘러보고 오라는 뜻이었다. 마법사 둘이 빠르게 날아들었고, 이내 숲 초입에 인접하는 순간이었다.
지이잉! 지잉!
진입하는 순간, 그들의 몸이 반대로 되돌려지며 밀려났다. 보고 있는 사람도, 직접 들어갔던 사람도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서 당황스러웠다.
두 마법사는 몇 번이고 몸을 던지며 숲으로 달려들었지만, 그때마다 몸이 돌려져서는 왔던 쪽을 바라봤다.
“이안 님, 저거…….”
“평범한 숲이 아닌 것 같습니다.”
마치 숲에 들어오는 걸 거부한다는 듯, 들어오려는 자를 그대로 돌려보내는 현상. 다들 어리둥절하게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 이안이 다른 마법사들에게 지시했다.
“갈림길 오른쪽으로 나갈 수 있는 길, 그쪽에도 혹시 지도에 표기되지 않은 숲이나 특이 지형이 있는지 살피고 오라.”
바리엘군의 남하(南下) 첫날, 좋지 않은 징조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