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601
제601화. 맹세 내용
“와아아!”
성문이 크게 열리며, 라우탄이 이끄는 병사들이 정면으로 돌진해왔다.
이에 바리엘 병사들은 대열을 지키며 명령을 기다렸으나, 고요하기만 했다. 적군은 자신들을 죽이기 위해 달려들고 있건만, 자신들에게는 어떠한 지시 사항도 없다.
이게 지금 맞나? 지금껏 겪어왔던 전투와 다른 상황에, 다들 어리둥절한 모습이다.
“덤벼라! 지나가고 싶다면, 내 시체를 밟고 가라!”
“와아아! 푸르파토와 버고스를 지키자!”
“지켜내리라! 무조건 지켜내리라!”
두두두!
뜨거운 기합과 함께 말발굽 진동이 대지를 울렸다.
바리엘 병사들이 주춤거리며 혼란스러워하는 순간, 이안의 명령을 받은 마법사들이 대열의 끝과 끝을 잇는 보호막을 펼쳐냈다.
지이잉! 지잉!
“더 높게!”
“보호막! 더 앞쪽으로!”
푸르파토 병사들의 돌격을 일차적으로 막는 용도였다.
그 모습을 본 라우탄의 눈빛이 희열로 차올랐다. 그저 작은 의심에서 비롯된 돌격이었다. 이를 증명하고자 한, 자신조차 확신하진 못했던 의심.
그런데 지금. 바리엘군 마법사들은 반격 대신 보호막을 펼쳐 대지에 선을 긋고 있다. 얼추 의심이 들어맞은 것이다.
일말의 희망이 엿보인다. 정말로 저들은 푸르파토의 숲을 지나오며 불살(不殺)을 맹세한 것이라고, 저들은 푸르파토를 절대 해할 수 없노라고!
“마법사들이 방어진을 구축합니다!”
“화살을 준비해! 우리는 계속 돌격한다!”
“숨을 토해내며 모든 것을 베어내자!”
타닥타닥!
피이잉! 핑!
라우탄의 손짓에 성벽 위에서 화살이 날아들었다. 활시위를 당길 수 없는 자들은 고함을 질러 결사 의지를 보였고, 이에 바리엘 병사들은 마른침만 삼키며 적군이 몰려오는 걸 지켜봤다.
“흐아압!”
채앵! 챙!
콰지지직!
드디어 라우탄의 검이 커다란 궤를 그렸다.
라우탄은 두 손으로 손잡이를 잡은 채 이를 꽉 깨물었다. 이것으로 마법사의 보호막을 깰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지금의 공격이 가져올, 전투의 흐름.
“선공이다!”
“푸르파토가 바리엘군에 대항해서 선공했다!”
“가자! 라우탄 님을 따라 공격하라!”
채앵! 챙!
푸르파토 병사들이 검을 휘두를 때마다, 보호막이 지이잉거리며 흔들렸다.
깨질 염려는 없다만, 마법사들은 곤란해하며 이안을 돌아봤다. 죽자 살자 덤벼드는 상대의 기세 탓에 전투의 승기가 기우는 듯한 ‘착각’이 드는 것이다.
“이안 님. 계속 버티면 되겠습니까?”
“바리엘 병사들이라도 뒤로 물리는 게 어떨까요?”
“되었다. 상대의 흥분이 가라앉을 때까지 자리를 지키도록 한다. 보호막 유지에 집중하라. 혹 틈이 있어 바리엘 쪽에 피해가 와서는 아니 된다.”
“예, 알겠습니다. 이드갈도 아니고, 뭐. 이 정도면 충분히 감당 가능합니다.”
“계속 지랄해봐라! 누구 팔이 아픈지 보자!”
“대화로 풀자니까, 새끼들이. 쯧쯧. 마! 너희들 지금 실수하고 있거든?”
이드갈은 물리적 충격에 반응이 있지만, 보호막은 특수한 물질이 아닌 이상 걱정할 일 없었다.
마법사들은 동요 없이 보호막을 둥글게 말아 바리엘 병사들 위쪽을 감쌌다. 멀리서 날아오는 화살들을 막아내기 위함이다.
“좋아! 계속 집중해!”
마법사들이 보호막에 치중하자, 라우탄의 부하들이 확신에 차서 소리쳤다.
“맞는 것 같습니다, 라우탄 님! 바리엘에서 반격이 없습니다! 아예 접촉조차 시도하지 않으려는 것을 보니, 푸르파토 숲 맹세가 있었나 봅니다.”
“감사합니다, 푸르파토의 수호자여!”
다들 감격에 차서 기도하는 동안, 라우탄은 잠시 검을 내리고서 숨을 골랐다.
일단 바리엘이 푸르파토를 공격할 수 없다는 건 분명한 진실. 하지만 더욱 상세하고 정확한 증거가 필요했다. 이런 식이라면 푸르파토가 제풀에 꺾여 쓰러질 터이니. 인간의 체력에는 한계가 있고, 그들이 보유한 음식과 무기들도 한정적이지 않나?
스윽.
사기를 끌어올리던 라우탄이 손을 들었다. 공격을 잠시 멈추라는 신호다.
이에 가만히 지켜보던 트웰러가 한 발 앞으로 나섰고, 보호막을 사이에 둔 채 라우탄과 마주했다. 멀리서 보았을 때는 몰랐는데, 상당한 거구의 사내였다. 트웰러는 그를 잠시 살펴본 다음, 입을 떼었다.
“…다시 한번 나를 소개하지. 바리엘의 제국방위부 장관 맥심 트웰러다.”
“몇 날 며칠이고 이러고 있을 건가? 진정한 무인이라면 보호막을 걷어내고 이리 나와 결판을 내자.”
“나도 그러고 싶지만 황제 폐하의 뜻은 그렇지 않군. 한데, 그대들은 이 보호막이 바리엘을 위한 것으로 보이는가?”
“그렇지 않으면?”
“이것은 그대들을 위한 보호막이다. 푸르파토의 공격으로 단 한 명의 병사라도 다친다면, 우리는 바리엘의 이름으로 그대들을 살려둘 수 없다. 제국을 위해 몸 바친 자들을 위해, 결코 가만있지 않을 것이란 뜻이지. 그러니 의미 없고 소모적인 공격은 잠시 거두라. 깊이 대화를 나누고자 한다.”
라우탄은 검을 어깨에 걸치고는 트웰러를 내려다봤다. 제국방위부 장관이라. 아마 여기서는 황제 다음 결정권자일 터.
대화를 나누다 보면 필시 얻을 만한 정보가 있겠지. 라우탄은 좋다는 뜻으로 고개를 까딱거렸다. 무엇이 되었든 일러보라는 듯이 말이다.
트웰러는 무덤덤하게 라우탄을 주시했다.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푸르파토 맹세에 대해 알아내고자 하는 움직임이 분명했다. 말을 내뱉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는 게 좋겠다 생각하며, 트웰러는 품에서 궐련을 꺼내 물었다.
“푸르파토의 맹세는 사실이다. 숲의 주인이 푸르파토를 어여쁘게 여겨 제안받았다.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제안에 불과한 것. 그대들의 저항이 거칠어 바리엘에 해를 끼친다면, 우리는 기꺼이 그대들을 죽이고 시체를 밟아주겠다. 수호자가 사랑하여 아꼈던 푸르파토 또한 모조리 불태워 역사에서 지워버릴 것이다.”
“네 이놈! 어디서 감히 뚫린 입이라고!”
“침입자 주제에 잘난 듯이 지껄이지 마라! 여기는 우리가 나고 자란 터전이고, 자랑스러운 버고스다!”
“선택지를 주는 것이다. 저항하지 않는다면 그대들은 목숨과 터전 모두를 지킬 수 있지. 하지만 그것 외에는 오로지 절망만이 있을 것이다.”
가만히 듣고 있던 라우탄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수호자와 맹세했는데, 어찌 우리를 죽인단 말인가?”
“궁금하다면 직접 보여주지. 그 무엇도 바리엘을 막을 수는 없다.”
푸르파토의 사슴과 맹세한 것은 이안이었다. 이안의 명령으로 푸르파토인의 죽음이 일어나서는 아니 되는 것일 뿐, 다른 방법이라면 되는 것 아닌가?
이안 휘하 마법사들의 도움은 못 받겠지만, 바리엘에는 수만의 병사가 있다. 그리고 그들을 움직일 진 베로시온도.
뭔가를 잠깐 고민하던 라우탄이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수호자와 직접 만나 맹세한 건, 네놈이 아니구나.”
“……!”
뜻밖의 말에 트웰러가 멈칫거렸다. 방금 이른 말에 허점이 있었나? 1초도 되지 않는 시간, 몇 번이나 복기해 보았지만 특별한 지점은 없었다.
꽉 다문 입술 틈으로 궐련 연기가 새어 나오자, 라우탄이 소리 내어 웃었다.
“푸르파토인이라면 모두 알고 있지. 수호자에 대한 전설을.”
푸르파토를 비롯하여 인근에 큰 재앙이 들이닥칠 때마다, 수호자는 ‘미로의 숲’을 세워 올려 이 땅을 보호했다.
“숲을 지나오려면 무엇이든 맹세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맹세엔 예외 없이 축복과 저주가 주어지지.”
저주.
그 말에 마법사들이 이안을 돌아봤다. 저게 지금 무슨 말인가 싶은 낯이다. 저주에 대한 언급은 없었는데? 트웰러도 이안 쪽을 바라보지는 않았지만, 온 신경을 그쪽으로 집중했다.
마주한 라우탄이 이를 눈치채지 못했을 리 없다. 그는 고개를 옆으로 틀어 이안을 바라봤다.
“그대인가? 숲의 수호자를 직접 본 자가?”
소매 안쪽에서 나뭇가지를 매만지던 이안의 손길이 뚝, 하고 멈췄다.
범상치 않은 자다. 다른 무엇보다 두려움이 없어 보인다는 측면에서 말이다. 죽음을 각오하고서 덤벼드는 것 이상으로, 저자에게는 호전적인 무언가가 있었다.
“그렇다면?”
“어디 한번 들어나 보지. 맹세가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를. 그래야만 내 바리엘에 협조할지 안 할지에 대해 깊이 고심할 수 있음이라. 여기서 푸르파토인이 죽는다면 그대에게는 피할 수 없는 저주가 내려질 것이니, 그게 낫지 않겠나?”
거짓말이다. ‘깊이 고심하겠다’라는 말에서, 이안은 라우탄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그저 정보를 얻어내려는 수작인 게다.
무자비하게 흘러가는 시간 앞에서 푸르파토는 언젠가 바리엘에게 무릎 꿇을 수밖에 없으니, 그 전에 정보를 캐내 빈틈을 찾아내려는 움직임. 선택이 과감하고, 옳다.
“이안 님, 피할 수 없는 저주라니요? 정말입니까?”
“왜, 왜 말씀 안 하셨어요?”
“어떤 저주입니까? 이안 님, 제발 그런 건 저희에게 일러주십시오. 설마 못미더워서 그러신 것입니까? 그렇다면 차라리 책망하십시오. 혼자 끌어안지 마시고요.”
“예, 책망하면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받아들이지 못하겠습니다.”
마법사들이 잇새로 원망을 속삭이자, 이안이 한 손을 들었다. 잠시 흥분을 멈추고 말을 들어달라는 듯이.
“그대들을 못 믿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요?”
“그저, 나의 판단인 것이지. 나는 그대들의 상관이고, 바리엘을 짊어진 마법사다. 저주에 대해 언급하는 게 전쟁에 도움 되지 않으리라 판단했다. 그러니, 그대들은 너무 서운해하지 말고-”
이안이 말을 이으려다가 멈칫했다. 마법사들의 눈이 세모로 바뀐 것이다. 잠깐 숨을 고르던 이안이 결국 백기를 들었다.
“…미안하게 됐군.”
“예, 아시니 되었습니다. 으이구, 정말.”
“한 번만 봐드리도록 하죠. 두 번은 안 됩니다!”
곧 있으면 뒤쪽의 진에게도 저주에 대한 보고가 들어갈 것이다. 그 전에 상황을 좀 정리해두는 게 좋겠다.
이안은 나뭇가지를 들어 보이며 라우탄에게 다가갔다.
“짐작대로, 내가 숲의 주인을 만나 맹세한 자다. 이것이 그 증표. 숲이 사라지기 전 꺾어둔 것이지.”
라우탄과 그 부하들이 사뭇 놀라며 나뭇가지를 쳐다봤다. 전설로만 듣던 바로 그것이로구나. 살 수 있다는, 그리고 푸르파토를 지킬 수 있다는 희망이 저절로 샘솟았다.
뚜욱.
하지만, 이안은 웃으며 그걸 꺾어버렸다. 섬뜩할 정도로 망설임 없는 손길로.
“원한다면, 그대들의 바람대로 해주지.”
“저, 저주는 절대 피할 수 없다!”
라우탄의 외침에 이안이 속삭였다.
“피할 수 없는 것이지, 감당할 수 없는 게 아니다.”
…저자도 보통은 아니구나.
라우탄의 뒷골이 서늘해지는 것도 잠시, 푸르파토에 내려왔던 모든 전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전체적인 상황과 트웰러의 태도 따위를 종합해 봤을 때…….
“저자가 죽여서는 아니 되는 거다.”
“예? 라우탄 님, 무슨 뜻입니까?”
“저자! 수호자와 직접 맹세한 자가 이름을 건 것이니, 트웰러나 다른 자들이 주도하여 푸르파토를 공격할 수 있다는 뜻이지!”
마법부 장관이라 하였으니, 전투에서 마법사는 제외되는 것이나 마찬가지. 바리엘 대군이 남아 있긴 하지만, 승리 가능성은 아직 존재했다.
스윽.
그때, 라우탄이 검으로 제 목을 겨누며 소리쳤다.
“바리엘 모두는 들으라! 마법부 장관이 아닌 다른 자의 명령으로 푸르파토를 공격할 시, 나는 수호신께 목 놓아 울며 자결할 것이다! 저자가 내게 준 고통과 두려움 그리고 좌절로 인해 죽는 것이라고!”
그게 뭐? 마법사들이 심드렁한 눈빛을 보냈지만, 푸르파토인들은 반대였다. 반짝이며, 존경심이 가득 담긴 눈이다. 그들은 푸르파토에서 내려오는 전설을 알고 있었기에.
“안 될 것 같은가? 전설 중 지금과 비슷한 내용이 있지. 내 죽음이 네놈의 탓이라 정의하는 것만으로도, 효과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라우탄이 강하게 으르렁거리자, 마법사들이 한 발자국 물러났다. 전설이 뭔지 모르고 수호자에 대한 정보도 없으니, 우선 조심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반대로, 이안은 그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갔다.
“나로 인해 그대가 죽는 것이라면, 숲의 주인이 노여워하긴 하겠지. 하나 그게 가능하려면, 앞서 나에 대해 알아야 할 터.”
“당연하다! 이안 히엘로, 바리엘의 마법부 장관!”
이안은 고개를 가볍게 가로저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희게 웃으며.
“말고, 숲의 주인에게 일러준 내 진짜 이름 말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