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602
제602화. 푸르파토의 전설
옛날 옛적, 홀로 가난하게 사는 소녀가 있었습니다. 아이는 남들이 먹다 버린 것을 주워 먹을 정도로 힘든 생활을 이어 나갔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푸르파토에 신비한 보랏빛 사슴이 나타난 것 아니겠어요? 비틀비틀, 사슴은 힘겹게 발걸음을 옮겨 광장 한가운데 누웠습니다.
사람들은 사슴이 배고파하는 것 같기에 먹을 것을 내어주었어요. 하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지요.
-내가 죽으면, 인근의 숲이 모두 죽을 것이다.
사람들은 조금씩 두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사슴의 보랏빛 몸이 흘러내리는 것 같았기 때문이에요.
그것은 대지와 하늘 그리고 인간을 잠식하는 죽음이었습니다. 사람들은 큰일 났다며, 곳간을 털어 음식을 내왔어요.
“이것도 먹어보십시오.”
“이것도요!”
하지만 사슴의 상태에는 차도가 없었지요.
다들 걱정과 절망에 잠겨 있을 때, 소녀가 조심스레 다가왔습니다. 그러고는 수북하게 쌓인 음식 사이로 자신의 것을 얹었습니다. 남들이 먹다 남긴 빵과 사과 조각 따위였어요.
사람들은 화를 크게 냈지요. 신성한 사슴께 좋은 음식만 올려도 모자란 마당에, 어디서 이런 것을 올릴 수 있냐면서요.
-드디어.
하지만 사슴의 반응은 뜻밖이었습니다. 귀한 음식을 수많이 먹어도 꼼짝하지 않던 사슴이 소녀의 음식을 먹고서 기운을 차린 것이었어요.
보랏빛 털에 윤기가 돌았고, 흘러내리던 죽음은 생명으로 돌아갔습니다.
-가진 모든 걸 내어주었으니, 마음 깊은 곳까지 만족스럽다. 보답으로 인근 숲을 영원히 관장하겠다. 그리고 아이야, 네가 진정으로 원하는 소원을 들어주마.
보랏빛 사슴은 그리 이르고는 사라졌습니다.
사람들은 굉장히 기뻐했지요. 계속 사슴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었다간, 그들이 굶어 죽었을 것이니까요. 사람들은 소녀를 영웅으로 추대하여 다정하게 대했고, 소녀는 처음 느끼는 따뜻함에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얼마 안 가 사람들은 다시 걱정에 빠졌습니다. 사슴에게 전부 나누어 주었던 터라, 겨울을 날 음식이 많지 않았던 거예요.
어느덧 겨울이 다가왔고, 그들은 다음 봄이 올 때까지 꼼짝없이 굶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떡하지?”
“사슴에게 기도해보자. 사슴을 살린다고 이렇게 된 것이니, 분명 도와줄 거야.”
사람들은 의기투합하여 사슴을 찾아 나섰으나 헛수고였습니다. 결국 그들은 큰 수확 없이 겨울을 맞이했습니다.
그렇게 혹독한 바람 속에서 굶주리던 사람들은 문득 떠올렸습니다. 소녀의 존재를요.
“아이에게 소원을 빌어달라고 하는 건 어때? 먹을 걸 풍족히 내려달라고.”
“맞아. 걔도 결국에는 우리 덕분에 먹고 산 것이나 마찬가지잖아. 버린 걸 주워 먹었으니까!”
“가자! 소원을 빌어달라고 하자!”
마을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갔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아이는 난감해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습니다.
“네. 여러분을 위해 소원을 빌게요. 따뜻한 겨울을 나게 해달라고요.”
“고마워, 어서 해주렴.”
아이가 두 손을 모으고 기도했으나, 어떤 반응도 없었습니다.
무슨 일인가 고민하던 사람들은 이내 답을 찾았습니다. 아이는 사람들의 풍족함과 따뜻함을 진정으로 원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에 격분한 사람들이 소녀를 마구잡이로 때렸습니다.
“네가 감히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버려진 거나 주워 먹던 거지가 은혜도 모르고!”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아이를 제물 삼아 기도 올리자. 그러면 사슴이 모습을 보일 것이다. 죽이자!”
“죽이자! 벗기자!”
아이는 모질게 맞은 다음 묶인 채로 단상에 올려졌습니다. 그러자 아이의 죽음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소리쳤습니다.
“아이를 내려놔!”
“아이는 잘못이 없다!”
“대체 무슨 자격으로 사람을 죽여?”
아이는 묶인 채 눈물을 뚝뚝 흘리며 사람들이 싸우는 모습을 지켜봤어요. 그리고 한참 뒤, 두 눈을 꼭 감고는 나지막이 중얼거렸지요. 저자들을 고통스럽게 죽여달라고요. 아이는 자신을 해하려는 사람들의 이름을 되뇌고 또 되뇌며, 사슴에게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쿠웅! 쿵!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치더니, 소녀가 중얼거린 이름의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죽어버렸습니다.
영문 모르는 사람들은 깜짝 놀랐지만,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이 죽으면서 입도 함께 줄었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그들은 혹독한 겨울을 안전하게 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시 봄이 찾아왔습니다. 사람들은 감사와 사과의 말을 전하기 위해 소녀의 거처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마을 어디서도 소녀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 뒤로 누구도 아이의 행방을 알지 못했습니다.
* * *
라우탄이 멈칫거렸다. 짧은 순간, 푸르파토에 내려오는 전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것이다. 워낙 많은 얘기가 있지만, 대부분 큰 줄기는 저것에서 변하지 않았다.
“침묵이 그대의 대답이라 생각하면 되겠는가?”
이안 히엘로가 아니라, 다른 이름이라니? 마법부 장관이란 자가 가명을 쓰고 있다는 뜻인가?
바리엘 측에서는 동요하는 기색이 없다. 저자의 비밀을 공유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에 라우탄은 허튼소리 집어치우라며 일갈했다.
“…수호자께서는 초월적인 존재다. 네 이름이 무엇이든, 네놈에 의해 내가 죽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음이라.”
“그렇다면 어디 한번 시험해보게나. 나도 그 결과가 궁금하니, 그대의 죽음을 응원하겠네.”
저주를 피할 순 없지만, 감당 가능한 선이라 일렀다. 게다가 정말 맹세에 빈틈이 있는 것이라면? 라우탄, 자신의 죽음이 효과가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푸르파토의 존망을 눈앞에 둔 지금, 죽으려면 마법부 장관의 목숨 줄 또한 함께 쥐고 뛰어야 했다. 그런데, 진짜 이름이 따로 있다니…….
“생각이 많아진 것 같군.”
따악!
이안은 손끝을 튕기며 라우탄과 그 부하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원한다면 다시 돌아가도 좋다는 아량이었다. 아직 그 누구도 피를 흘리지 않았으니, 되돌릴 길이 남아 있다는 게다.
이는 이안에게도 합리적인 길이었다. 아무리 감당할 수 있는 저주라 한들 가능하다면 피하는 게 옳고, 선의를 베푼 수호자에 대한 예의이기도 했으니.
“두 시간 주겠다. 그 사이 의견을 모아 다시 이르도록 하라. 무엇이든 존중하여 바리엘은 따르도록 하겠다. 죽음을 원한다면 죽음을, 생존을 원한다면 생존을 선사해줄 터이니.”
“라우탄 님. 우, 우선 돌아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예, 일차적 목적은 달성했습니다. 수호자의 맹세가 걸려 있다는 걸 알아내지 않았습니까.”
“재정비할 시간을 갖는 것도 우리에게 유리합니다.”
“라우탄 님, 검을 거두시고 이쪽으로.”
부하들이 꼼짝하지 않는 라우탄을 잡아당기자,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검을 내렸다. 그렇게 천천히 말 고삐를 잡아당기며 성문 쪽으로 몸을 틀 때였다.
“이것을 가져가라.”
이안이 부러진 나뭇가지를 던져주었다. 전설의 숲이 실존한다는 증표이자, 바리엘의 경고. 라우탄은 차마 버릴 수 없어 품에 넣고는 성문 쪽으로 말을 몰았다.
그들이 멀어지자 보호막을 유지하고 있던 마법사들이 한시름 놓으며 마력을 줄였고, 병사들 또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이안 님. 두 시간 뒤에 저자들이 항복할까요?”
“알 수 없다. 저항이든 항복이든, 저들에게는 둘 다 옳은 길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더 효과적이고 그들의 목적에 부합하는지는 나중에 생각할 문제다. 결국 어떻게 될지는 시간이 지나면 역사가 알려줄 터.”
이안은 잠시 쉬어가자는 뜻으로 트웰러를 돌아봤다. 두 시간, 넉넉하진 않지만 병사들의 피로를 다독이는 데는 충분한 시간일 것이다.
마법사들이 주섬주섬 이안 곁으로 다가와 속삭였다.
“한데, 이안 님. 대체 그 저주가 무엇입니까?”
“수호자의 축복이란 나를 위해 기도하는 자에게 행운이 내려지는 것이었다. 그들의 행운은 곧 나에게도 물드는 것이니 아름다운 선순환과 마찬가지지. 저주는 그것과 연관되어 있었다.”
바로 그들이 얻고 누렸던 행운만큼 불행으로 치환되어 이안이 갚아내는 것, 그것이 저주였다.
누군가의 행운이 생과 사 앞에서 목숨을 구해냈다면, 이안이 맞이하는 생과 사 순간에는 필시 불행이 덧붙여지게 된다. 죽지 않을 일에도 죽을 수 있고, 예상했던 것이 어긋날 수도 있는 것이다.
무엇이 얼마만큼의 양으로 돌아올지는 예상할 수 없다. 행운이란, 그들 삶에서 보이지 않게 스며들어 사라지니까 말이다.
“그, 그러면 차라리 맹세를 먼저 깨버리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아직 시간이 많이 지나지 않았으니, 이안 님을 위해 기도하는 자가 뭐 얼마나 많은 행운을 누렸겠습니까?”
“예, 저도 동의합니다. 시간이 갈수록 행운은 거대해집니다. 저주에 대한 부담감도 분명히 커질 것입니다.”
“전쟁 중이니 행운이 필요한 것은 알겠습니다. 하지만 대가가 너무 비쌉니다. 차라리 무마하시지요.”
마법사들의 걱정에도 이안은 반응이 없었다.
푸르파토인의 죽음으로 발동되는 게 아닌 이상, 먼저 축복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행운의 대상자가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자들’이었으니까.
‘나움. 그리고…….’
“…필리아에게 행운이 필요하다.”
“아.”
어디서 무슨 일을 당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그들은 이안 때문에 삶이 흔들린 자들이었다. 그러니 이런 방식으로라도 자그마한 행운을 덧붙여 주는 수밖에.
“…알겠습니다. 이안 님 뜻이 그러하시다면요. 서둘러 필리아 님과 관련된 소식이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분명히 필리아 님께 도움 될 것입니다. 눈치채지 못할 만큼 작은 순간이 모여서 운명을 만드는 법 아닙니까.”
이해해주어 고맙다고, 이안은 마법사들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였다.
때마침 저 멀리, 푸르파토 성문이 좌우로 크게 열리는 게 보였다. 라우탄과 그 부하들이 입성한 듯싶었다.
“들어갔습니다! 두 시간! 지금부터 재겠습니다!”
마법사가 회중시계를 확인하며 그리 일렀다.
한편, 푸르파토 성벽 뒤쪽에서는 다급한 회의가 열렸다. 라우탄이 말에서 내리기도 전에 주민들이 몰려와 한마디씩 던진 것이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바리엘은 무어라 합니까?”
“숲의 맹세가 있었음은 분명한데, 이안 히엘로의 본 이름을 모르는 터라 이용할 수가 없다. 젠장. 라우탄 님,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항복합시다. 무력으로 맞섰다가는 그저 개죽음입니다. 푸르파토의 생존은 보장되어 있으니, 훗날을 도모하는 게 현명해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여기서 성문을 열면 다른 도시에도 영향이 갈 것입니다. 싸우지 않고 포기하는 것만큼 불명예인 게 어디 있습니까? 버고스의 몰락에 우리가 힘을 보태는 것이란 말입니다.”
“예, 저도 동의합니다. 차라리 개죽음이 낫습니다. 그리고 그거, 따지자면 개죽음 아닙니다. 결사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고요, 버고스를 지키는 일입니다.”
라우탄은 문득 전설 속 아이가 보았던 광경이 이것과 같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죽고 사는 것을 두고서 치열하게 떠들어대는 사람들. 목소리가 귓가에 웅웅 울리더니, 뚝 하고 끊어졌다.
라우탄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들고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피해는 최소화하되, 버고스 전역에 푸르파토의 의지를 보여주자는 것이 모두의 의견 아닌가?”
항복하자는 쪽과 맞서 싸우자는 쪽의 뜻을 합치자면 그러했다.
다들 아무런 말 없이 라우탄을 바라보았고, 그는 품에서 부러진 나뭇가지를 꺼냈다. 이안 히엘로의 말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렇다면 어디 한번 시험해보게나. 나도 그 결과가 궁금하니, 그대의 죽음을 응원하겠네.”
“…그래. 해보지, 뭐.”
“라우탄 님?”
“항복하고자 하는 자들은 성문을 열고, 무기를 버려라. 겉으로는 저들의 제안을 수용하는 척하여 바리엘이 푸르파토를 지나가도록 하라. 나는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스스로 죽겠다. 이안 히엘로의 이름을 부르짖으면서.”
라우탄은 흔들리는 버고스 국기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리하여 다른 도시가 푸르파토를 비난한다면, 그때 나의 죽음을 알리도록 하라. 주어진 상황에서 죽음으로 대항한 자들이 있었노라고. 그리고 성문을 연 것은 작전과 명령의 일부였다고 말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