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604
제604화. 신의 뜻을 받드는 자
“폐하!”
마법사들의 부름에 황궁친위대원들이 반사적으로 검을 다잡았다.
자결한 시체가 계속 발견되고 있다 들었는데, 혹여 무슨 문제라도 생긴 것일까? 진도 놀라서 이안을 돌아봤다.
“폐하. 서둘러 푸르파토를 지나가심이 좋겠습니다.”
“원래도 지체할 일정은 아니었다만. 무슨 일이지?”
“라우탄을 따르던 자들이 스스로를 제물 삼아 수호자에게 기도 올린 듯합니다. 상황을 짐작할 수 없으니 경계를 늦추지 마십시오.”
“스스로를 제물 삼아? 버고스에 그런 풍습이 있었나? 처음 들어 보는데.”
“송구합니다. 저도 처음 듣는지라.”
그때, 마법사 한 명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저기, 말씀 중에 송구합니다. 이쪽을 잠시 봐주시겠습니까? 단서 될 만한 게 있는 것 같습니다.”
거대한 사슴 동상 뒤편에 석판이 붙어 있었다. 오래되어 군데군데 풍화된 흔적이 여실했지만, 내용을 알아보는 데 어려움은 없다.
이안은 허리를 살짝 숙이고서 문장을 빠르게 읽어내렸다.
“푸르파토 전설 같습니다만, 맞지요?”
마법사의 물음에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제일 가운데 있는 이것이 중심 되는 얘기다. 폐하, 아무래도 인신 공양은 버고스가 아니라 푸르파토 전설에서 유래된 토속 풍습 같습니다. 여기에 이리 적혀 있군요. ‘사람들은 소녀를 바쳐 사슴을 부르고자 했다.’”
“여러모로 놀랍군.”
이안은 지워진 글자들을 손끝으로 살폈다. 라우탄이 어찌하여 자신의 이름을 부르짖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을 거라 생각했는지 알 것 같았다.
혹여 다른 단서가 더 있지는 않을까, 이안은 손짓으로 마법사에게 지시했다.
“한 문장도 빠짐없이 옮겨 적어라.”
“예, 알겠습니다. 이안 님.”
“폐하, 저희는 서두르는 게 좋겠습니다. 수호자는 인근을 관장하는 자인지라, 칼라마트와 가까워지면 자연스레 그 힘을 잃을 것입니다. 트웰러 장관에게 전달하여…….”
이안이 말끝을 흐리며 하늘 쪽을 올려다봤다. 구름 한 점 없건만, 무언가 기운이 달라진 게다.
마찬가지로 트웰러와 제이럿 그리고 드래곤을 타고 있던 베릭마저 고개를 틀었다. 본능적인 감각이 강렬하게 이르고 있다. 무언가, 무언가 이상하다고.
마법사들은 의아한 낯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안과 하늘 쪽을 번갈아 봤다.
“왜 그러니십니까, 이안-”
번쩍!
콰아아앙!
말 그대로 찰나.
마법사의 물음을 잘라 먹으며 벼락이 내려쳤다. 고막이 찢어질 것 같은 굉음과 짜릿하게 올라오는 열기, 칼날 같은 바람이 주위를 휘감았다.
사아아악.
먼지가 걷힐 때까지, 마법사와 친위대원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인지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그저 상황을 인지하고자 노력할 뿐.
“폐, 폐하……?”
“폐하!”
진도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몸이 그대로 굳어서는 자신을 막아서고 있는 이안 뒷모습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으니.
어느새 진을 중심으로 펼쳐져 있는 마법 보호막. 이안이 경이로운 속도로 반응한 것이었다. 단언하건대, 이안이 아니었다면 그 자리에서 즉사했으리라.
콰지지직! 콰직!
사그라지지 않은 힘이 이안의 보호막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안은 호흡을 흐트러뜨리지 않은 채, 시선만 좌우로 옮겨 상황을 확인했다.
정확히 진 쪽으로 떨어진 공격이다. 토올룬의 소행인가? 아니, 그들이 이제껏 행했던 공격과는 결이 다르다.
“마,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치더니,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죽었습니다.’”
“뭐라고?”
“여기, 여기 그렇게 적혀 있어.”
“어디? 봐봐.”
석판을 옮겨 적던 마법사가 제일 먼저 침묵을 깼다. 그의 말대로였다. 석판에 쓰인 전설 속에는, 사람을 벌하는 방식으로 벼락이 사용되었다 적혀 있었다. 바로 지금처럼.
“이, 이안 경.”
“괜찮습니다. 안심하십시오.”
그 누구라도 방금 내려찍었던 벼락을 눈앞에서 보았다면 안심하지 못할 것이었다.
하지만 진은 놀랍게도 마음 한쪽이 차분해지는 걸 느꼈다. 이안의 눈빛은 올곧았고, 목소리에는 신의가 가득했으며, 갑작스러운 공격에도 그의 보호막은 단단히 존재했으니까.
“제가 직접 폐하를 모시겠습니다. 곁에서 절대 떨어지지 마십시오. 제이럿 대장! 호위해주시오!”
“알겠네. 명심하겠다.”
“알겠습니다. 모두 대열 정비!”
“마법사들도 준비하라!”
“아, 예에!”
“또 온다.”
또? 이안이 그리 중얼거림과 동시에 다시 벼락이 내려쳤다. 아까보다 더 강한 굉음이다.
그리고 이미 한 차례 겪은 바, 인지했다는 건 이미 늦었다는 뜻이다. 인간의 감각으로는 도저히 감지할 수 없는 속도와 궤였다.
‘젠장. 이안 님은 대체 어떻게 아는 건데?’
‘돌아버리겠네, 진짜.’
“계속.”
눈앞까지 열기가 확 치솟자, 마법사들이 이를 꽉 깨물며 보호막을 펼쳤다.
한편 이안의 시선은 하늘에 고정되어 있었다. 쨍한 하늘에는 티끌 한 점 없다. 그럼에도 사정없이 내려찍는 공격을 모조리 쳐내며, 이안은 진의 주위를 사수했다.
“근원지가 어디인지 알겠는가?”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공격을 눈으로 쫓기도 힘듭니다! 죄송합니다!”
“황궁친위대! 제이럿 대장! 보이십니까?”
“아니. 몇 번 더 내려오면 알 것 같소.”
진의 주위가 소란스러워지자, 병사들 또한 혼란에 빠졌다. 갑작스레 벼락이라니? 그것도 황제 쪽으로만 떨어지는 기이한 현상?
틀림없다.
“마물이다!”
“마, 마른하늘에서 날벼락이 계속 떨어진다!”
“으아아악! 또, 또 무슨 일인데?”
“당황하지 마라! 다들 대열을 유지하며 계속 앞으로 걸어가! 멈추면 안 된다!”
“앞에! 주저앉은 새끼 일으켜!”
“푸르파토인들이 자결하면서 뭐, 뭐를 했나 본데.”
“에라이, 이놈들아! 소란 없이 지나가겠다 했는데, 왜 이렇게 일을 크게 만들어? 다 죽고 싶어서 환장했지?”
“진정하게. 명령을 잊었나? 푸르파토인은 절대 건들지 말라 하셨잖아.”
“흥, 그럼 이건 되겠지? 캬아악! 퉤엣!”
바리엘 병사들은 두려움과 분노를 마음껏 터트려댔고, 숨어 있던 푸르파토인들은 낯선 희망을 감지하여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이는 조금 곤란했다. 기도에 효과가 있다는 걸 푸르파토인이 알게 되면, 너 나 할 것 없이 바리엘을 막아달라며 제 숨을 끊을 것이기 때문이다.
“병사들은 성 밖으로 이동시키고, 일부에게는 푸르파토인을 감시하라 일러라. 더는 자결하는 자가 나와서는 아니 된다.”
“예, 알겠습니다!”
사슴의 정체부터 파악하는 게 우선이다.
직접 대면했을 때 느꼈던 맑은 기운으로 보았을 때, 마물은 아니다. 그렇다면 신의 뜻으로 파생된 어떠한 존재라는 뜻. 이를 정의하는 게 조금 난해했다.
솨아악.
그때였다. 푸르파토 곳곳에 심겨 잇는 나무 줄기가 길게 뻗어나더니 도시 전체를 순식간에 덮쳤다. 건물을 식별할 수 없을 정도로 무성한 이파리가 가득하다.
“이, 이게 무슨!”
“말이 움직이지 못합니다! 줄기가 너무 억셉니다!”
익숙한 광경이었다. 바리엘군을 막아섰던 의문의 숲 안쪽 풍경이 이러하지 않았던가? 이안은 사슴이 이곳에 왔음을 알아챘고, 곧바로 자세를 낮췄다.
“성문이 막혔습니다. 푸르파토를 빠져나갈 수 없습니다!”
“이런, 젠장. 아까 낮에 보았던 그 숲과 같은 현상입니다!”
푸르파토에 갇혔다. 사슴이 푸르파토 안쪽에 자신의 숲을 조성한 것이었다.
이에 마법사들과 황궁친위대가 당황하는 것도 잠시, 저 멀리 거대한 보랏빛을 감지해냈다.
“…이, 이안 님.”
“사슴입니다. 저, 저렇게 컸습니까?”
“아니. 내가 보았을 때는 작았다. 아무래도 기도로 인해 힘을 얻은 것 같은데.”
금안(金眼)의 사슴. 고개를 쳐들자, 성벽 위쪽으로 뿔이 닿을 정도였다. 사슴은 광장, 정확히는 진 쪽을 노려보며 서늘한 기운을 흘러댔다.
이안은 진을 자신의 뒤로 숨기며 소리쳤다.
“숲의 주인은 똑똑히 들어라. 이분은 대제국 바리엘의 황제, 진 베로시온이다. 신의 뜻으로 이곳에 와 있는 것이니, 해를 끼친다면 신께서 그대를 용서하지 않으시리라.”
-나는 기도를 듣는 자. 기도에 응답하여 움직이는 것은 신께서 허락한 이치이니, 그 누구도 나를 막을 수 없음이라.
“…그대, 대체 정체가 무엇인가?”
사슴의 금빛 눈동자가 환하게 빛났다. 이안은 문득, 그것이 마법사들의 금안과 같은 기운이라는 걸 깨달았다.
-말하지 않았나. 나는 기도를 듣는 자라고.
본래 인간의 기도를 신에게 전달하던 사자(使者)였으나, 언제부터인가 인간들은 신이 아닌 그에게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수호자라는 의미와 함께, 권능이 깃든 것이다.
그로부터 그는 더 이상 신께 기도를 전하지 않았고, 인근 인간들이 자신에게 기도하는 것을 기쁘게 들었다.
“그러니까, 따지자면 탈영병이라는 거 아녀?”
타앗.
베릭이 드래곤의 등에서 뛰어내려 이안 옆에 섰다. 말은 거창하게 해도, 결국에는 뺑끼 치고 있다, 이거 아닌가?
“베릭.”
“사슴 고기는 내가 또 안 먹어봤지.”
“…불경하다.”
“저 새끼가 더 불경해. 인간이 목숨 걸어 강렬하게 기도한 염원이라고, 지금까지 맛나게 쳐드신 거 아니세요, 사슴 님? 계속 이러고 있으면 신께 아가리 맞으실 것 같은데. 지금이라도 회개하고 그만 돌아가시죠?”
“베릭, 미친놈아!”
“왜? 맞잖아? 벼락 안 먹히니까 모습 보인 것 같구만. 신께서 허락하신 이치? 그냥 X만 해서 가만 놔둔 거 아니고?”
마법사들은 입을 틀어막으며 경악했고, 사슴은 금빛 눈동자를 더욱 짙게 번뜩였다. 살기가 한층 더 거세졌다.
-증명해 보아라, 네놈들이 신의 뜻을 받든 자들이라는 걸. 그렇다면 고통 없이 죽여주마.
“봐도 모른다면, 이미 신과 많이 멀어졌나 보군.”
타앗!
사슴이 고개를 쳐들며 포효하자 이파리들이 크게 흔들렸다. 동시에 이안은 이드갈 검을 빼 들며 사슴 쪽으로 달려갔고, 마법사들도 재빨리 그 뒤를 따라 호위했다.
지이잉! 지잉!
「회록(回祿)」.
상대는 사슴의 형상에 숲을 관장하는 자. 불 속성과 상극일 것이니, 쉽게 끝낼 수 있다. 공격이 먹히기만 한다면.
“이안 님! 옵니다!”
사슴 주위로 보랏빛 기운이 일렁이더니, 이내 거대한 회오리를 만들며 주위를 어지럽혔다.
역시나 진 쪽으로 날아드는 공격. 마법사들이 보호막을 펼쳤고, 그 앞을 다시 황궁친위대가 막아섰다.
촤아아악!
“……!”
하나 역부족이었다. 아까의 벼락과는 비교되지 않는 강한 힘이다. 친위대원들은 속수무책으로 튕겨져 나갔고, 보호막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사슴 가까이 접근한 이안이 뒤를 돌아봤지만, 이미 늦었다.
지이잉! 퍼어엉!
마법사들의 보호막이 결국 견디지 못하고 깨져버린 것이다.
이안은 마저 불길을 터트리고서 되돌아가려 했지만, 무성한 이파리들이 그의 앞을 방해했다.
촤아악!
“폐하!”
“젠장! 다들 버텨!”
“다시, 바로 보호막 재생성한다!”
“정신 집중해!”
날카로운 기운이 새로 만들어지는 보호막 사이로 파고들었다. 제이럿과 트웰러가 검과 도끼를 들고서 쳐내고자 했으나, 완전히 파훼하지 못한 채 흘려보내고 말았다.
“폐하!”
진이 검을 빼 들며 맞설 준비하는 순간이었다.
타앗!
그의 앞을 누군가 가로막았다.
순간 느껴지는 순백의 기운.
진의 눈동자가 커졌고, 여인은 담대하게 검을 휘둘렀다. 목덜미와 어깨로 칼바람이 스쳐 지나가자, 질끈 묶었던 갈색 머리칼이 풀리면서 어깨의 상처가 드러났다. 직접 검날로 새긴 십자가다.
“…너는.”
이안은 그녀의 정체를 단번에 짐작했다.
진의 꿈에 나왔다는 그 여인, 에이린. 신성한 기운으로 신의 뜻과 질서를 지키는 성기사(聖騎士)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