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607
제607화. 칼라마트로
“떠난다!”
한참 후, 트웰러의 명령이 떨어졌다.
대기하고 있던 병사들이 분주히 움직이자, 길가에 모여있던 푸르파토인들이 걱정스레 지켜봤다.
황제의 이름으로 항복에 대한 대가를 얻었지만, 과연 저들 저들 입장에서 이를 진정한 항복으로 받아들이겠는가?
절반에 가까운 푸르파토인이 숨을 바쳐내어 황제의 죽음을 빌었다. 번복하여 도시를 절멸시킬 가능성이 충분했다.
“어쩌면 좋지요? 다들 분주히 움직여요.”
“괜찮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럴 의도였다면 애초에 화재 진압에 도움 주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누군가 제 자식을 품에 꼭 껴안으며 중얼거렸다. 희망과 현실 부정이 반쯤 섞인 채로 말이다.
병사들은 한데 모여 수군거리는 푸르파토인을 뒤로 한 채 대열을 정비했다.
“소름 끼치는 작자들 같으니라고, 쯧. 여기 주둔하는 부대가 어디래? 불쌍하기도 하지. 차라리 반파된 아기아르가 낫겠다.”
“글쎄다. 특별히 뭐 없는 것 같은데.”
“뭐가?”
“주둔 부대. 다들 이동 준비하고 있잖아. 저 뒤쪽은 어떨지 모르겠다만.”
“어어? 그렇네?”
“거기! 잡담하지 말고 출발해!”
“예예, 알겠습니다!”
의아했지만, 주위를 살필 틈 따위 없었다. 앞쪽에서 깃발이 크게 흔들리며 출발 신호가 떨어진 것이었다. 수만의 병사들은 뒤쪽 성문으로 행진했고, 칼라마트와 이어진 길목에 올라섰다.
마법사들 또한 창공에서 전방을 주시하며 병력 이동을 관리했다.
“확실히 수도랑 이어진 곳이라 그런가? 경사도 완만하고, 길폭이 넓어. 며칠 안으로 도착하겠다.”
“아마도. 근데, 진짜 주둔 부대 없대?”
“응. 바리엘 소속인 병사들은 한 명도 남김없이 떠나라 하시더라고.”
“무슨 생각이실까. 흐음. 후방 걱정을 그렇게 하셨으면서.”
진과 이안 그리고 트웰러의 결정이니 분명 의도가 있을 터. 마법사들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바람을 헤쳐 날았다. 선발대 앞으로 무언가 있다.
촤아악!
“어? 저자는?”
“라우탄이라 그랬던가?”
칼라마트로 가는 길을 허락할 수 없다는 듯, 한가운데 앉아 있는 라우탄의 시체였다.
꼿꼿한 허리와 굳게 다문 입매, 그리고 죽었음에도 검을 놓지 않은 손아귀. 이에 선발대 중 하나가 하늘 쪽을 바라보며 물었다.
“마법사님들!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뭘 어떡합니까. 치워야지요. 길 옆으로 내려서 감추십시오. 황제 폐하께서 지나가실 것인데, 삿된 것이 있어서는 아니 됩니다.”
“예, 알겠습니다!”
병사들이 라우탄 시체를 잡아끌어 수풀 옆으로 내던졌다.
그래도 푸르파토의 주민들은 수호자를 불러내 발악이라도 했건만, 이자의 죽음은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마법사들은 마지막까지 이안의 이름을 부르짖었을 라우탄을 떠올리며 고개를 돌렸다.
“선발대는 마무리 후, 계속 나아가십시오. 저희가 위에서 위험이 없는지 주시할 것입니다.”
히이잉!
라우탄 시체를 처리한 병사들이 힘차게 말을 몰아 앞으로 내달렸다. 마법사들이 하늘을 나는 것처럼, 그들 역시 어떠한 장애물 없이 시원하게 질주했다. 직감하건대, 푸르파토는 칼라마트로 가기 위한 마지막 난관이었던 게다.
타닥타닥.
한편, 진은 마법사와 선발대가 닦아놓은 길을 천천히 지나며 푸르파토를 돌아봤다. 성벽 위, 주민들이 떠나는 바리엘군 행렬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안 경. 아기아르 쪽으로 서신을 보냈나?”
“예, 폐하. 현 상황을 전달하고 푸르파토 쪽으로 도적 떼를 몰아달라 일렀습니다. 오늘 밤 안으로 인근 도시에 소식이 퍼질 것입니다. 이르면 새벽, 늦어도 며칠 이내로 푸르파토에 손님이 찾아오겠지요. 아기아르 쪽에 정찰병을 계속 운용하라 하였으니, 보고가 올라오는 대로 전하겠습니다.”
“성문은?”
“잠금장치를 고장 냈습니다. 의지만 있다면 쉽게 열 수 있을 것입니다.”
푸르파토에 바리엘 병사가 남아 있으면 도적이 찾아오기 어렵다. 하지만 황제는 주둔군을 남기지 않았다. 게다가 성문은 잠기지 않고, 도시는 반파되었으며, 생존한 변절자들의 무력은 하찮다. 도적에게 이만큼 잘 차려진 진수성찬이 있겠는가? 반응과 소식이 빠르게 올 것이라고, 이안은 장담했다.
“칼라마트까지 걸리는 시간은?”
진의 시선은 정면에 고정되어 있었지만, 질문은 트웰러를 향해 있었다. 그는 고개를 가볍게 숙이며 대답했다.
“사흘입니다.”
“문제가 없다면?”
“아니오. 어떠한 문제가 있다 한들, 사흘 안에 당도하도록 하겠습니다.”
트웰러의 다짐에 진이 그를 돌아봤다. 이안이 중재하긴 했지만, 의견 대립이 있었던 건 사실이지 않나. 트웰러가 먼저 굽히고 들어오자, 진 역시 의연하게 대꾸했다.
“무리하지는 말도록. 병사들의 체력과 기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예, 폐하. 명심하겠습니다. 칼라마트는 친바리엘 성향인 왕당파가 장악하고 있는 지역이니, 무분별한 저항보다는 원만한 합의를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그자들이 헛된 생각을 품고 있지 않다면 말이지.”
반왕당파가 격파당했으니, 이 틈을 타서 버고스를 통일, 바리엘에 대항하는 힘을 기르고자 하는 헛된 생각 말이다. 저번에 보내온 서신으로 봤을 때 영 가능성 있어 보이진 않았다만, 어떠한 것도 확신할 수는 없었다.
대화를 듣고 있던 이안이 덧붙였다.
“다른 계획을 가지고 있다 한들,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겠지요. 폐하. 제가 잘 주시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안은 뒤에서 따라오는 보급품 마차 행렬을 돌아보며 잠시 뜸을 들였다. 아마 저중 하나에 클로이 다비온이 타고 있을 것이다. 황후 조건에 부합하고자 출정하기는 했는데, 뚜렷한 성과 없이 죽을 고비만 넘긴. 그래도 본국으로 돌아가겠노라 떼 쓰지 않은 것만으로도 예상을 넘긴 했다.
“카일라 영애가 남쪽에 있습니다. 그녀라면 분명 성과가 있을 터. 염려하시지 마십시오.”
그녀가 왕당파에 질 낮은 무기를 성공적으로 보급하였다면, 바리엘과 전력 비교가 되지 않을 터.
진은 꽤 날카롭고 형형하던 카일라의 눈빛을 떠올리며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 * *
타닥타닥!
칼라마트의 새벽.
카일라의 어머니인 다니트가 인기척을 알아채고는 눈썹을 찌푸렸다. 아직 여명도 터오지 않은 시간이지만, 그녀는 일찍이 일어나 몸단장을 마치는 중이었다. 완벽하게 올린 머리칼과 녹색의 벨벳 드레스…….
다니트는 먼저 일어나 문을 열었다. 하인이 다급하게 복도를 가로질러 달려오는 게 보였다.
“무슨 일이니?”
“바리엘군이 푸르파토를 지나 칼라마트로 진격해오고 있다 합니다. 도, 도착 예정 시일이 이틀 안쪽이라, 왕당파 간부들이 급히 면담을 청했습니다.”
“푸르파토를?”
다니트는 단번에 지도를 떠올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생각보다 남하 속도가 너무 빠른 것 아닌가? 그녀는 창문으로 비친 모습을 재빨리 확인했다.
“그래 알겠다. 면담 일정은?”
“지, 지금 아래층에 모두 모이셨는데요.”
“하여간 예의라고는… 참담하구나. 카일라도 불러.”
“예, 부인.”
하인이 반대쪽 복도로 뛰어가자, 다니트는 윗입술을 깨문 채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상, 정리했다. 바리엘의 남하에 맞서, 왕당파 간부들은 자신과 카일라를 앞세울 것이 분명했다.
‘보급품은 모두 저급이고, 이를 알아채는 건 시간문제. 바리엘군과 접선하여 그대로 합류한다면 안전은 보장할 수 있겠지만, 당장 묶여 있는 잔금 처리는 불가해져. 그리고 무엇보다 배신한 것을 안다면, 훗날 왕당파에서 채권 인정을 안 해줄 가능성이 크다. 바리엘에서 도와줄지도 불투명하고.’
가문 견제를 위해 방관하거나, 혹은 도와주는 대가로 채권 일부분에 대한 헌납을 주장할 것이다.
그렇다고 곧 전쟁터가 될 이곳에 계속 있자니, 안전 보장은커녕 바리엘에 변절자 명분을 줄 수도 있다.
“어머니!”
카일라 역시 일찍 일어나 있었는지, 깔끔한 모습이었다. 다니트는 카일라의 어깨를 감싸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기가 됐다. 바리엘군이 코앞까지 왔어. 그때 엄마가 했던 말, 기억하지?”
“예, 물론입니다. 잘 해내겠습니다.”
“좋아, 우리 딸. 오늘도 참 예쁘구나.”
다니트는 카일라의 이마에 키스를 남기며 시선을 나누었다. 좌우에서 칼날을 들이밀며 서서히 좁혀오고 있었으니, 살아남으려면 한쪽을 어지럽히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대상은, 혼란스러운 버고스 쪽이 나을 터.
끼이익.
다니트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간부들이 일제히 일어나 그녀를 맞이했다. 예의상 그런 것이 아니라, 워낙에 급한 사안이라 행동이 먼저 나온 것이다.
“오, 부인. 어찌하다 보니 이른 시간에… 이리되었습니다.”
“예, 저도 전해 듣고 놀랐답니다. 현재 바리엘이 어디까지 내려온 것이지요?”
“칼라마트에서 북동쪽으로, 이쪽 지점이 마지막 확인이오. 빠르면 오늘 아침, 70킬로미터 안쪽으로 들어오겠지. 부인과 영애가 바로 출발하여 이쯤에서 접선했으면 좋겠는데.”
거의 반강압적인 지시였다.
그들이 짚은 곳은 칼라마트 수도로 들어오기 전 지나치는 작은 소도시. 부인은 미소를 유지하며 알겠노라 답했다.
“예, 일전에 이르신 대로 제가 나서서 황제 폐하를 맞이하겠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오?”
“우선, 제 딸아이인 카일라는 이곳을 지키고 있을 것입니다. 홀린가 소유의 재산을 모두 들고 움직일 수 없어서요. 그리고 다음으로는-”
그녀는 간부들을 쭉 훑어봤다. 그리고 개중 제일 젊은 사내를 눈으로 짚었다. 이름은 샹데트. 젊은 만큼 발언권이 제일 적은 자다.
“누군가 저와 동행해 주셔야겠습니다. 황제 폐하께 버고스 통일을 호소하려면, 그 정도 성의는 보이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흐음. 그렇긴 한데, 바리엘의 정확한 입장을 파악하지 못한 터라 너무 위험하네.”
그러는 나와 딸아이 카일라는?
다니트가 대답 없이 눈웃음만 치자, 간부들이 헛기침을 작게 터트렸다. 그러자 한 남자가 은근슬쩍 샹데트를 밀어넣었다.
“하면, 샹데트 경께서 갔다 오시는 게 어떤가? 젊으시어 이동하는 데 무리 없을 것 같은데.”
“저도 동의하는 바입니다.”
“다녀오십시오. 가서 바리엘의 의견을 잘 들어보시고요.”
무엇보다 다니트 저 여인이 허튼짓을 하진 않는지 감시하고 오라는 눈치였다.
사내는 마땅치 않지만 거절할 명분도 없어 표정만 굳혔다. 다니트는 이쯤하자는 듯, 손뼉을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말 나온 김에 바로 준비하여 출발하도록 하지요. 앞으로 두어 시간 내로 나가겠습니다. 마차를 준비해주어.”
“예, 부인.”
다니트는 샹데트와 함께 밖으로 나가며 카일라에게 눈짓했다.
지금껏 내전과 전시라는 특수 상황 탓에 다니트와 카일라는 간부들을 일대일로 대면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워낙에 서로를 경계하는 분위기가 강했기 때문이다.
하나 이러면 잘 되었다. 왕당파 간부를 둘로 갈라놓는 것, 그것이 모든 계획의 첫째였으니.
“샹데트 경. 궐련 태우시지요?”
“예, 부인. 창문 있는 마차라면 보다 편하실 것입니다.”
“저도 즐겨 태워서요. 신경 쓰지 마세요. 가면서 할 얘기가 많답니다. 넉넉히 챙기도록 하지요.”
“할 얘기라니요?”
“어머, 마차가 벌써 준비됐네요. 타시지요. 자세한 건 가면서 말씀드릴게요.”
다니트는 먼저 마차에 오른 다음 서두르라며 손짓했다. 샹데트는 영 찜찜하여 멈칫거렸지만, 이내 재킷을 바로하며 마차에 올랐다.
‘다녀올게.’
‘네 어머니. 잘 하고 있을게요.’
두 모녀는 눈빛으로 인사를 주고받았고, 급하게 꾸려진 마차는 지체하는 바 없이 바로 출발했다.
다니트는 어색해하는 샹데트를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긴장 푸세요, 샹데트 경.”
“긴장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는데…….”
“제가 책임지고 폐하께 소개하겠습니다. 버고스 왕당파에 있어 아주 중요하신 분이라고요.”
다니트의 말에, 샹데트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녀를 돌아봤다. 흘려듣기에는 상당히 의미심장한 말이지 않나? 다니트 또한 생긋거리며 그를 마주 보았다.
‘중요한 사람? 맞지. 바리엘에서 두말하지 못하게 밀어넣을, 인질 될 몸이니까.’
“길이 좀 멉니다. 나눌 대화가 많겠어요.”
치익. 다니트가 궐련을 태우자, 샹데트 또한 두말없이 자신의 것을 꺼냈다.
한편, 카일라는 점점 멀어지는 마차를 보다가 등을 돌렸다. 이제 여기 남아 있는 왕당파 간부들은 오롯이 자신의 몫. 하나같이 차가운 눈동자가 그녀를 위아래로 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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