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609
제609화. 뜻밖의 상황
“이안 님. 앞쪽에서 신호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마차 앞쪽에 기대어 있던 이안이 품에서 망원경을 꺼내 들었다.
저 멀리 작은 부락이 보였다. 칼라마트 외곽지에 가까워질수록 저런 공동체를 몇 개 지나왔는데, 하나같이 인기척이 뚝 끊어진 곳들이었다.
하지만 저기는 다르다. 커다란 버고스 국기가 거꾸로 게양되어 있는 게 아닌가. 이안은 직감적으로 왕당파에서 보낸 자들임을 알아챘다.
“폐하! 앞쪽에 왕당파에서 보낸 자들이 신호를 보내오고 있습니다. 잠시 멈추시어 상황을 살펴보심이 좋겠습니다.”
“속도를 낮춰라!”
“예! 알겠습니다!”
반대쪽에서도 바리엘군의 움직임을 파악했는지, 버고스와 바리엘 국기를 단 마차 한 대가 일직선으로 내달려 다가왔다.
병사들이 멈추라 손짓하자, 녹색 벨벳 드레스를 입은 중년 여인이 천천히 내렸다. 더하여, 그녀를 따라 쭈뼛거리는 젊은 남성. 그녀는 병사들에게 신분증을 건네주며 일렀다.
“홀린 공작가의 다니트 홀린입니다! 황제 폐하와 마법부 장관께 왕당파의 입장을 가져왔노라 올려주시오.”
병사들은 신분증을 확인한 다음 곧장 윗선으로 보고를 올렸다. 이에 트웰러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두 사람을 안쪽으로 안내하여, 황제의 마차 앞쪽으로 데리고 왔다.
“다니트 홀린 부인, 반갑습니다. 이안 히엘로입니다.”
“어머. 안녕하세요.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오랜 기간 버고스에서 사업하시느라 바쁘셨을 터인데, 제 얘기는 어디서 들으셨을까요?”
“딸아이가 전해주던데요? 홀린 가문이 이안 경에게 빚진 것이 많다고. 만나서 반갑네요.”
이안은 다니트의 손등에 입 맞추고는 의례적인 미소를 지었다. 부인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생글거리며 이안을 자세히 살필 뿐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마차 커튼이 반쯤 걷히자, 드레스 자락을 붙잡고서 허리를 깊이 숙였다. 황제인 진에게 올리는 예였다.
“황제 폐하. 홀린 가문의 다니트 홀린, 인사 올립니다. 먼 타국에서 뵙게 되어 참으로 영광스럽습니다.”
“다니트 부인. 이야기는 많이 전해 들었소만 이리 보는 건 처음이군. 사업권 입찰 때도 홀린 공작만 궁에 들어, 내 그대를 심히 궁금해했노라.”
“송구합니다, 폐하.”
진은 얼굴은 반쪽만 드러낸 채 다니트 부인을 내려다봤다. 그녀 혼자인가? 의문스러워 이안을 쳐다보자, 그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일행이 있으나 뒤로 물려놓았다는 뜻이다.
“제 딸아이, 카일라가 전해준 폐하의 뜻을 받들고자 홀린 가문에서는 명령하신 바를 성실히 수행, 완수했습니다. 이리 앞서 나온 것은, 폐하께 현 상황을 직접 전달하고 앞으로의 대책을 논의드리고자 함입니다.”
“이르라.”
“왕당파 주 병력의 주둔지는 칼라마트 남쪽 외곽지에 세워진 작은 성입니다. 바리엘에서 보낸 물건은 왕당파 쪽 담당관이 운송하여 그쪽으로 전달하는데, 며칠 전, 저급의 검 3천 자루를 모두 보급했습니다.”
“왕당파의 전력이 고작 3천 명이라는 뜻인가?”
“아닙니다. 칼라마트를 사수, 경계하는 병력이 3천이라는 뜻입니다. 아시다시피 왕당파의 간부들은 버고스의 귀족 출신이라 사병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는 저도 정확한 규모를 파악할 수 없습니다. 그들의 영지가 칼라마트 인근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껏 거래했던 것들을 토대로 짐작하는 것이 다입니다.”
다니트는 그리 보고하며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이안은 그걸 받아 창틈으로 넘겨주었고, 진은 바로 펼쳐보았다. 왕당파 간부들의 명단과 추측 사병 수가 적혀 있었다. 그들의 영지 위치 또한 함께.
“현재 카일라가 그들과 함께 남아 있습니다. 왕당파의 명분을 파훼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데, 저와 함께 대동한 젊은 간부가 마침표를 찍어 줄 것입니다. 왕당파 내부 균열의 심지와 같은 자가 되겠지요.”
다니트는 카일라와 자신이 어떤 식으로 일을 진행하고 있는지 상세히 일렀다. 왕당파의 명분이 사라지면 바리엘에서 칼라마트로 밀고 들어오기에 쉽고, 무엇보다 훗날 홀린 가문의 존재가 더욱 빛을 발하게 된다.
이안은 다니트 부인을 바라보며 눈썹을 까딱거렸다.
‘앞쪽에서는 바리엘, 뒤쪽에서는 왕당파가 밀고 들어오는 상황을 역으로 이용했다. 둘 사이에서 짓눌리는 대신, 가교 역할을 맡아 둘 중 어느 쪽이라도 홀린 가문을 통할 수밖에 없게끔 한 것이라. …사업가가 맞는군.’
이안과 진이 커튼을 사이에 두고서 시선을 주고받았다. 당장은 홀린 가문의 이러한 행보를 내버려 두는 것이 낫겠다 여긴 게다. 어찌 되었든, 나서서 왕당파를 도맡겠노라 하고 있으니.
“왕당파의 입장은?”
“자신들의 자치권을 완전히 인정해달라는 쪽입니다.”
“불가하다.”
진이 딱 잘라서 거절했다.
바리엘이 왕당파를 지원해주었던 것은 내전을 길게 가져가 혼란을 일으키고자 한 목적도 있지만, 왕당파를 통해 바리엘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자치권이라니? 지금까지 퍼주었던 모든 걸 부정하는 주장이다.
“반왕당파를 처리하기 위해 바리엘은 북쪽 지대를 멀리 돌아왔다. 왕당파가 협조하여 길을 열었더라면 애초에 이런 수고를 들이지도 않았겠지. 게다가 아기아르 점령과 러더포드 처단에 대하여 그들은 일말의 기여도 하지 않았거늘, 어찌하여 자치권을 인정해달라 하는 것인가? 버고스가 몰락하면서 염치도 갖다 팔았나 보군.”
신랄한 진의 대꾸에 다니트가 입을 꾹 다문 채 미소만 지었다. ‘그러게 말입니다.’라는 듯이 웃고는 있으나, 생각보다 젊은 황제의 반응이 날것 그대로라 내심 당황한 눈치였다.
이안은 다니트 부인의 주의를 환기하며 물었다.
“함께 왔다던 간부 말입니다.”
“아, 예. 샹데트 경입니다. 그자를 바리엘이 왕당파 정수로 인정하여 혼란을 주는 방법이 있습니다. 탐탁지 않으시다면, 그저 뜻대로 사용하십시오.”
황제 폐하께 바치는 일종의 선물이라 이르는 것이다.
이안은 이것이 그녀가 준비한 안전장치임을 알아챘다. 홀린가가 의심 살 만한 상황에 놓였을 때 면책하기 위한.
“폐하.”
다니트와 카일라가 살기 위해서라면 어쨌거나 왕당파를 처치하고자 할 터. 이안은 진에게 믿고 기다려 보는 게 좋겠다 눈짓했다. 이에 진은 고갯짓하여 샹데트를 데리고 오라 명령했다.
“크, 크흠.”
“이쪽입니다.”
“알겠으니 놓으시오. 난 인질이 아니오.”
샹데트가 병사의 손을 거칠게 내치며 중얼거렸다.
인질 맞는데, 자기 혼자 제 처지를 모르는 듯하다. 아주 바보 같은 놈을 어디서 잘 데려오셨군요? 이안의 시선에, 다니트가 화사하게 웃으며 눈을 찡긋거렸다.
“무릎을 꿇어라.”
“호,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버고스의 자작 샹데트 2세입니다. 다니트 부인과 함께 폐하의 명을 따르고자 이리, 이리 왔습니다. 크흠.”
“고개를 들라.”
“감사합니…….”
순간 샹데트의 입이 꾹 다물렸다.
커튼 틈으로 난 벽안, 아래쪽으로 길게 찢어진 상처. 황제는 생각보다 더 여렸고, 그 이상으로 위압적이었다.
“내 명을 따르고자 그대가 할 일이 무엇인가?”
“예? 아-”
황제는 샹데트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묻고 있었다.
그는 말끝을 흐리며 잠시 고민하다가, 다니트 부인을 돌아봤다.
“바리엘과 버고스의 진정한 화합 아래, 역사를 새로이 시작하는 것입니다. 과거와 미래를 잇는 현재만이 가능한 일이지요.”
“듣기에 좋은 말이군.”
“화, 황송합니다. 폐하.”
“다니트 부인과 함께 바리엘과 버고스의 만남을 어지럽히는 것들을 책임지고서 처단하라. 할 수 있겠는가?”
“예, 물론입니다! 제 목숨을 다 바치겠습니다!”
샹데트가 머리를 넙죽 숙이며 맹세했다.
일단 황제와의 알현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남은 문제는, 왕당파 쪽으로 어떤 소식을 가져가면 좋을지였다.
“다몬 왕을 대신하여 바리엘로 올 자를 묻는다 하셨지요, 다니트 부인.”
“그렇습니다. 하지만 저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자들 중 그 누구도, 다몬 왕을 위해 희생할 자는 없다는 것을요. 지난 10여 년간 이곳에서 거래를 트며 몸소 느낀 바입니다. 저들의 명분은 필시, 단 한 마디로 파훼될 것입니다.”
“한 가지 우려되는 게 있습니다.”
“무엇이지요?”
“카일라 영애의 안위 말입니다.”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그들은 바보가 아닌지라, 카일라를 해쳤을 때 오는 불이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건 저급 무기 보급에 대해 모르고 있기 때문 아닙니까?”
샹데트의 눈동자가 이안과 다니트를 번갈아 쳐다봤다. 지금 이자들이 나누는 대화가 당최 뭔지 모르겠다는 듯 말이다.
다몬 왕을 위한 희생?
왕당파의 명분?
그리고 뭐? 저급 무기 보급이라니?
촤악.
다니트는 부채를 가볍게 팔랑거렸다. 불안감을 살살 흘려보내려는, 무의식적 손짓이었다.
“무기가 저급인 것은 실전에 들어서기 전까지 모를 것입니다. 하나같이 교묘하게 제작된 것들이라 노병들도 알아채기 힘들 테지요. 거기에 더해, 훈련용은 또 따로 보급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다행인데, 아실지 모르겠습니다. 아기아르를 시작으로 하여 버고스 북쪽에서는 현재 도적 떼가 창궐하는 중입니다. 분명히 약탈할 것을 찾아 남쪽으로 내려올 것인데, 이쪽 길은 바리엘군이 사용한 덕분에 도적 떼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지요.”
다니트의 부채질이 멈췄다. 그녀의 머릿속으로 버고스의 지도가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통하는 길목 대여섯 개 중, 바리엘군이 사용하고 있는 건 딱 한 곳이었다. 이곳에 이목이 집중되는 바람에, 다른 길목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파악된 바가 없었다.
“그저 우려입니다. 원래 사건 사고는 갑작스럽게 터지는 법이니까요. 그것도 전시에는 더더욱.”
* * *
“진정들 하셨소?”
“하아, 예. 우리 차분하게, 그리고 교양 있게 의견 좀 나누어 봅시다.”
“아까도 그 소리 했던 분이 궐련 재는 잘 튕기시더라고요.”
“해보자, 이건가!”
“제발! 닥치시오들!”
카일라가 떠난 집무실은 여전히 시끄러웠다. 명분과 자신의 신변을 지키려는 자들이 혀에 독을 바른 채 끝없이 서로의 목덜미를 노렸기 때문이다.
진 빠진 자들은 독한 술로 목을 축이며 다시금 인상을 찌푸렸다. 어찌 되었건, 결론을 내려야 자리가 파할 것이다.
“자아, 그럼 다시 돌아가서 얘기해봅시다.”
“모르겠습니다. 그냥 저 바리엘 족속들을 다 죽여버리면 안 됩니까? 전시에 사람 한두 명 죽는 게 뭐 그리 대수라고요? 지금 명분 운운하면서 먼저 칼 들이민 건 저쪽 두 모녀입니다!”
“아까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 결론 내지 않았소?”
“하! 참나, 답답해서, 원! 상상력이 이리 없어서 되겠습니까? 책임 묻지 않고 죽이는 방법은 많아요!”
“다니트 쪽 상황을 모르니까 그렇지요. 저쪽에서 어떤 대응법을 가지고 있을지 파악하는 게 우선입니다.”
“젠장, 젠장, 젠장!”
콰앙!
한 남자가 분을 터트리며 서랍장을 발로 내려칠 때였다.
똑똑.
“실례합니다.”
“무슨 일이지?”
“서쪽 제12경비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무슨 일? 안 그래도 머리 아파 죽겠건만.
“북쪽에서 내려온 것으로 보이는 도적 떼가 출몰하여, 전원 괴멸시켰다고 합니다.”
“근데? 그게 뭐? 잘했네.”
“그런데 문제가…….”
전언하는 자도 이게 맞는지 모르겠다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런데… 무기에 문제가 좀 있는 것 같다 하더군요.”
오